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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한만수,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책 읽을 시간은 많지 않아 어쩔까 고민하다가, 출판사인 개마고원의 이름을 보고 집어

 

들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부제인 '먹칠과 가위질 100년의 사회사'와, 책날개에 소개된, 꾸준히 검열에 관한 논문을 집필해 온 국문학도로

 

서의 저자의 이력을 보고 식민지 시대나 박정희 시대의 검열에 관한 문화사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본래의 기

 

대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논쟁적으로 언급되는 검열의 역사는 주로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일어난 일들에 집중되

 

어 있고, 이따금 등장하는 식민지 시대의 사건이나 혹은 유럽에서의 사건 등도 이명박 정권 하에서의 사건과 연

 

계되는 수준에서 등장한다. 말하자면 '100년의 사회사'라는 부제는 읽는 사람으로서도 좀 낯부끄럽다. 아울러

 

40여개에 달하는 꼭지들 중 상당수가 사건의 인과관계나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 등을 고찰하는 글이라기보다는

 

필자가 글을 쓰고 있던 때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한 일종의 에세이에 가깝다. 이건 이 책이 인터넷 언론 <프레시

 

안>에 연재된 기사들의 묶음인 탓이 크겠지만, 아무튼 학술적인 접근을 기대한 이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있다.

 

 

 

 

 

단, '논문으로는 쓸 수 없는' '뒷담화'를 까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는 저자의 서문을 읽으면서 부제로부터 비롯

 

대를 내려놓고 천천히 접근해 보자면, 이 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검열과 탄압의 역사를 쉬운 필체로 다시 정리

 

해 놓았다는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꾸준히 검열이라는 주제를 연구해 온 학자의 인도에 의해

 

단지 언론에 의해 행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전방위에 걸쳐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검열에 대해 새롭게 인식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쏠쏠한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검열의 메카니즘 뿐만이 아니라 피검열자

 

인 생산자와 컨텐츠의 소비자들이 이러한 검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다각적으로 살피려 한 시각도 흥

 

미롭다.

 

 

 

 

 

'검열'이라는 소재 하에 여러 성격의 글이 섞여 있어 일관된 주제의식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개인적

 

으로 큰 인상을 받았던 주장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첫번째는, 지금은 검열의 시대라는 것이다. 대

 

통령 최측근의 방통위 장악이나 박경신 교수의 성기 사진 사건 등의 사건에서 이미 명확히 드러난 바이지만, 필

 

자는 그러한 주장의 한 징후로 예술 분야를 거론한다. 언론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검열에 의해 사회 고발이

 

라는 자신의 본연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예술은 그 빈 자리에 대한 대중의 욕구에 조응하여 의미있는 결과

 

물들을 내어왔다. <그것이 알고싶다>나 <PD수첩>에서 꾸준히 다루어 주었어야 할 아이템들이 <26년>과 같은

 

극영화나 <두 개의 문>과 같은 다큐멘터리로 등장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분량 때문이었는지 큰 논지와

 

일치하지 않아서였는지 작가는 두 개의 작품만을 언급하였지만, 사학법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도가니>는

 

이미 큰 흥행을 기록하였고, <MB의 추억>이나 <맥코리아> 등의 다큐멘터리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외

 

에도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작년에 별세한 김근태 씨에 관한 <남영동 1985>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얼마 전 <사람 냄새>의 독후감으로 이 블로그에도 소개한 바 있었던 삼성 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

 

미 씨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가족>도 제작 과정 중에 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복기해 보면

 

예술을 통해서도 지금이 검열의 시대임을 알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을 좀 더 확실히 납득하게 된다.

 

 

 

두번째 주장은, 그럼에도 검열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MB18nomA'

 

라는 트위터 계정을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시킨다'는 이율 차단한 바 있었다. 해당 계정의 이용자 송진용

 

씨는 '트위터의 계정명은 심의대상이 아니'라는 것과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심의할 근거 규정이 없다'는 들어

 

소송을 냈지만 패소하였다. 이러한 상황과 판단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네티즌들은 @2MB18nimA, @see8nomMB,

 

@18nomA2MB와 같은 유사한 계정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방통심의위는 유사 계정 20여 개를 뒤따라 처단

 

시켰다고는 하나, 담당 공무원의 수나 한국 네티즌의 창의성 등을 생각해 보면 완벽한 차단이란 물리적으로 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저항은 단지 인터넷이라는 환경을 등에 업은 현대사회만의 일은 아니다. 저자에 따

 

르면 식민지 시대, 총독부가 일본과 조선 간의 우열관계 성립을 위해 일본은 '내지內地', 조선은 '외지外地'로 표

 

현하도록 강제하자, 조선인들은 일본은 '일본내지', 조선은 '조선내지', 몽골은 '몽골내지' 등의 용어를 만들어냈

 

다고 한다. 한편 '일로露 전쟁(러일 전쟁의 당시 호칭)'에 대해서는 '내로內露' 전쟁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

 

는데, 여기에서는 이 전쟁이 '그 대단한 내지 나리님'과 러시아 간의 전쟁일 뿐 우리(조선)의 전쟁은 아니라는 일

 

의 풍자, 비아냥을 읽어낼 수 있다. 말로 풀자면 '내지님께서 벌린 전쟁이니까 내지님께서 알아서 하시죠 뭐',

 

이런 정도로 쓸 수 있겠다. 엄혹한 식민지 시대라 할지라도 자유로운 표현을 향한 의지는 반드시 탈출구를 찾아

 

내었다는 반증이다.

 

 

 

 

 

총평. 직접 옛 신문의 필름을 찾을 시간이 없어 혹 검열에 관한 참고자료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연구자, 검

 

열의 문화사를 통독하고자 했던 인문학 독자라면 기대를 조금 내려놓으실 것. 흥미 당기는 소재와 편한 접근법

 

의 인문학 서적을 한 권쯤 읽어보고 싶은 독자라면 시간을 내어 읽어보셔도 좋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