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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김종배, <삼십대 정치학>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1년간 '뉴스 브리핑' 코너를 진행하다가 이 정권 하에서 퇴출

 

당하고 현재는 인기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매일 진행하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의 9월 신작.

 

일찌감치 예약을 걸어두었는데도 몇 바퀴나 돌아 11월 중순인 이제에야 손에 떨어졌다. 바로 전의 저작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의 경우 예약을 하지 않고도 바로 서가에서 빌릴 수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적어도 연

 

대 도서관 사용자들에게 있어 이 주제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 표지를 두껍게 가린 띠지를 벗겨내고 나면, 정장을 입은 채 백팩을 메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이

 

나온다. 짧게 잘라 세운 머리, 몸에 다소 밀착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정장, 그리고 언뜻 정장과는 잘 매치되지 않

 

는 백팩. 모두 30대 직장인의 전형적인 외양이다. 사진을 흑백 처리한 것은 피사체인 이 특정 인물의 개성을 지

 

우고 이러한 외양을 가진 세대 전체를 다루는 책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한다. 띠지에서 '30

 

대 정치학'이라는 제목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직선과 원의 조합은 표지에도 그려져 있는데, 이 책이 '구조적'

 

인 '분석'을 주로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나타내려 했던 것 같다. 한참 들여다 보고서야 그 의도를 추론했을 뿐으

 

로, 사실 나한테는 그렇게 직관적인 표지 디자인이 아니었다.

 

 

 

 

 

제목 그대로, 시사평론가인 저자가 30대의 정치의식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가

 

처음부터 30대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네이버 프로필 상 서강대 84학번인 저는 속한 세대

 

와 이력 모두 386 세대의 전형과 같은 인물이다. 저서에서도 고백하고 있듯 저자를 포함한 386 세대가 바로 뒤

 

의 90년대 학번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80년대의 학생들만큼 사회를 위해 뜨겁게 투쟁하지 않은

 

채 경제 성장의 풍요만을 누린 세대. 'X세대'라는 모호한 소비 지향적 호칭 정도로만 규정할 수 있는 세대. 책에

 

서는 이 정도의 표현만을 접할 수 있지만 오마이뉴스에서 제공하는 저자 강연 영상을 보면 훨씬 더 강성의 발언

 

을 들을 수 있다.

 

 

 

 

 

그랬던 30대에게 저자가 눈을 돌리게 된 것은 MBC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게 된 뒤라고 한다. 시사평론가로서 저

 

자는 한국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인 '부동층'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하는 욕구를 오랫

 

동안 가져 왔는데 마침 넉넉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몇 달에 걸쳐 수치와 씨름을 하였으나 확연한 일관성을 주

 

장하기에는 어려운 가설들만이 남아 한 차례 포기한 뒤, 얼마 후 아쉬움을 가진 채 우연히 자료를 다시 들추어

 

보다가 부동층 만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였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30대'라는 계층의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30대의 특징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기 위해, 저자는 선거 전후의 여론조사 결과와 연령대별 FGI를

 

접근의 방법론으로 삼았다. FGI(Focus Group Interview)는 표적집단면접법, 혹은 집단 심층면접 등으로 번역된

 

다. 일정한 특성을 공유하는 6에서 12인의 집단을 설정하여 수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일종의 인터뷰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이러한 방식은 개별 면접은 갖지 못하는 '예기치 않았던 사실의 발견과 아이디

 

어의 도출'이라는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40대의 설문자들을 한 데에 모아 놓고 '지금의 30대에 대

 

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식이다. 개별 면접에서라면 이전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질문에

 

바로 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FGI에서라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30대는 이기적인 것 같아요'나 '30대는

 

정치 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와 같은 발언으로 생각의 물꼬를 터 준다. 그에 자극받은 나의 발언이 다른 사람들

 

의 또다른 생각의 물꼬를 터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저자는 그 분석의 결과를 총 6장에 걸쳐 정리했다. 서론 격인 1장에서는 30대에 주목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였

 

고, 2장에서는 30대가 보이는 정치의식의 실체를 규명하였다. 3장과 4장은 그러한 정치의식이 등장하게 되

 

배경에 대해 사회경제적인 측면과 정치문화적인 측면을 나누어 접근한다. 5장은 그러한 정치의식과 새로이

 

장한 미디어인 SNS와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결론부인 6장에서는 그때까지의 논의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는 한편

 

30대 정치의식의 한계와 극복 방안을 제시한다.

 

 

 

 

 

수많은 여론조사와 긴 분량의 심층 면접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과정이 이 책의 몸통을 이루는 대부분이라 개개의

 

내용을 모두 전달하는 것은 무리이다. 여기에서는 6장에 요약된 결론을 소개하되 본문 중의 관련 있는 내용을

 

부분부분 덧붙이는 소개가 효율적일 것 같다.

 

 

 

 

 

저자가 보는 30대 정치의식의 성향은 명백한 진보이다. 단지 진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2040 세

 

대의 전위에 서 있는 '꼭지점 진보'이기도 하다. 이들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하나. 이들은 '생활 진보'다. 진보라는 이념적 가치에 조응하여 스스로 각성하였다기보다는 취업 시기의 IMF,

 

사회 진입 시기의 벤처 버블과 카드 대란,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찾아온 부동산 대란 등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진보로서의 정치 의식을 형성한 면이 크다.

 

둘. 이들은 '참여 진보'이다. 이들이 세대로서의 정치 의식과 그 경향성을 뚜렷이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대통령 선거부터였다. 2002년 대선은 누구나 알고 있듯 포스트 3김 시대의 첫 선거였다. 제왕적 리더쉽과 지역

 

에 근거한 강고한 세력을 보유한 정치인의 시대가 지나간 뒤, 유권자가 자신의 요구에 의해 대표성을 지닌 인물

 

을 발굴해 내는 시대의 첫 기수 역할을 행하였다. 이들에게 있어 정치 지도자는 수직적 질서의 최상위가 아니라

 

유권자들이 모여서 발현시키는 팬덤의 대상에 가깝다.

 

셋. 이들은 '소통 진보'이다. 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정치 참여 공간에서 30대가 발휘하는 힘은 막강하다. 이들은

 

자신들과 정치적 의사를 같이 하는 소식들을 퍼나를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때로 어두운 면을 갖기도 한다. 이들의 정치의식은 강고한 이념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발원

 

한 측면이 커서, 하나하나의 정치 이벤트에 일희일비하거나, 지지의 정도가 일관되지 않기도 하고, 때로 '우리

 

편'이라면 무조건 감싸고 도는 맹목적 진영 논리에 함몰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실에 굳

 

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정치와 이념의 성향은 개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불변의 것

 

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이고 삶의 귀결'이다. 진보적인 '30대 정치학'을 잉태한 사회, 경제, 정치 환경은 이미 상

 

당 부분 구조화되어 단기간 내에 해소될 전망이 없다. 30대는 앞으로도 정치적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자기 삶의

 

소구 때문에 스스로의 진보 성향을 진행시켜 나갈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의 40대를 형성하고 있는 60년대 출생들을 '386 세대', 20대를 형성하고 있는 80년대 이후 출

 

생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부른다. 각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입지에 따라 붙여지고 생명력을 얻은 호칭들이다. 하

 

지만 7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마땅한 이름이 없었다. 근래에 와서 '건축학 개론 세대'라는 호칭이 반짝 힘을

 

얻었던 바 있지만 이는 한 편의 영화라는 개별적 문화 현상에 근원한 것으로 그 세대의 현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저자는 30대의 정치의식에 관한 치밀한 탐구를 마치며 애정어린 시선으로 '리모델링 세

 

대'라는 호칭을 제안한다. 30대는 '정치권'의 정치에서 벗어난 새 구조를 짜고자 하며 정치를 리모델링한다. 30

 

대는 자신의 탈정치적 속성을 벗고 정치의 한가운데로 진입하며, 단지 대중문화의 소비자일 뿐이었던 과거에서

 

능동적 유권자로 진화하는, 자기 자신의 리모델링을 행하고 있기도 하다.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

 

질적 골조를 유지한 채 구습은 발라내고 능동적 재미라는 새 장식들을 추가하는 중이다. 저자는 이 '리모델링 세

 

대'의 방향성이 실현할 수 있는 가치들이 다른 어떤 세대가 담보하는 가능성보다 크기에, 더 객관적인 논의와 더

 

냉정한 선택을 부탁하며 글을 맺는다.

 

 

 

 

 

'세대론'은 말하자면 요검(妖劍)이다. 사람을 홀딱 홀리는 요기를 지녀서, 보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꼭 손에 들고

 

휘둘러보고 싶게 만드는 요검. 십 년 단위의 한 세대가, 동일한 사회 환경을 겪으며 통일된 정치 의식을 갖게 되

 

고, 그 의식이 현실 정치에 선연하게 드러난다. 사회를 이해하는 효율적인 도구를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매혹적

 

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의 요구가 다변화되고 사회의 변화상이 일 년 뒤도 알 수 없는 이 때에, 그

 

처럼 광범위한 수의 사람을 '세대'라는 호칭으로 묶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진실을 담보하는 일일까. 손꼽히는 한

 

시사평론가가 이 질문에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바로 이 책이다. 자신이 30대가 아니라 할

 

지라도 함께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특징을 일람하는 것은 호사라기보다는 필수가 아닐까 한다. 해당 화

 

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수치를 통해 주장을 끌어내는 논리적 분석의 과정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숫자와 표가

 

많이 나오지만 간명하고 실증적인 문체가 이해를 돕는다. 이 정도면, 읽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