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다 읽고 난 뒤 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알맹이다!'였다. 마침 직전에 슬라보예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
라>를 끙끙거리며 읽고 난 뒤, 뭘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마음에 있던 터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
다. 마포 민중의 집 대표인 정경섭 씨의 2012년 8월 작이다.
수 년 전, 민중의 집 설립에 관한 기사를 접했을 때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불온한 일탈을 저지를 때 드는 쾌감의
한 종류였다. 내가 처음 접한 '민중의 집'이라는 단어의 용례는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돈 까밀로' 시리즈에서 공
산주의자인 빼뽀네와 그 일당들의 소굴을 지칭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읽었던 번역본에서는 민중의 집
도 아니고 인민의 집이었다.)
하지만 그 실제의 내용은 문화, 인문강좌나 동아리 활동 등 지역공동체에 가까웠다. 몇 년 후의 내가 무척이나
갈망하게 될 그 내용이지만, 당시에는 거악에 맞서 촛불을 가능한 높이 쳐드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 외에는 여
력이 없었다. '쫄지 않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무척이나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주변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지난 18대 대선 이전부터도 다소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깊게는 아니더라도, 관심을 갖고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대통령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
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일 잘 하는' 대통령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많은 이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의 체제 변화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판에, 정작 현실에서 내 손에 떨어진 것은 '사람
좋은' 후보였다. 비극적 결말의 호인을 보내는 상처는 한 차례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좀 더 관심이 많아졌다. 일차적으로는 사회과학 서적의 독서와 뉴스의 탐독
시간이 부쩍 늘었고, 전공의 공부와 사회 활동의 접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비록 준비의 미숙으로 실패로 돌아
갔지만, 이 홈페이지에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었던 기타 선생님과 일종의 소규모 인문학 콘서트를 기획하였던
것도 후자의 연장선 상에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접하게 됐다. 열 시간이 넘게 앉은뱅이 책상에서 논문 준비를 하다 보면 허리와 목이 아
파 요즘의 독서는 침대 위를 벗어나는 일이 없는데, 책장을 넘기다 말고 벌떡 일어나 정좌를 하고 앉아 읽었다.
독후감에 점잖게 끼워넣기 위해 몇 줄을 인용해 끄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면지 몇 장을 쌓아두고는 혹시 날아
가 버릴까 두려워 독서 중간중간의 단상들을 날림 글씨로 휘갈기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그래서, 마지
막 장을 덮고 나서 '알맹이다!'라고 되뇌었던 것이다.
저자는 2010년, 자신에게 민중의 집 설립을 꿈꾸게 해 주었던 유럽의 민중의 집으로 40여일 간 탐방을 떠났다.
길지 않은 이 기간 동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스웨덴의 세 나라를 방문해 각국의 민중의 집의 연혁과 실태
를 조사하여, 그 내용을 작년인 2012년 8월에 정리해 출간했다.
유럽의 민중의 집은 그런 이름이 쓰여진 건물의 호칭이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지역의 최전선에서 펼치
는 공동체 활동이었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토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곳은 구성원들에게 생존이 아닌 생
활의 터전이었다. 어떤 이에게 민중의 집은 탁구장이었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댄스 홀, 어떤 이에게는 놀이공
원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여가를 보내고 문화를 접하고 교제를 하였다.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
념적인 성향은 짙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했지만, 생활과 문화의 터전이라는 기본 모토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의 초반 부분에서부터, 이런 곳이 있다면 이런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하
고 마구 메모를 하며 읽었는데, 뒷부분을 읽어보니 그 대부분은 이미 유럽의 민중의 집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
을 알게 됐다. 탁구장, 댄스강습 같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니 그렇다 치지만, 일인 가구를 위한 밥집,
소규모 야시장과 놀이공원, 영화 제작소, 지역의 연극 축제가 계속 상연되는 연극 전용 극장 등이 이미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민중의 집 안에 자리잡고 지금까지 훌륭하게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영화 제작 같은 것은 우석훈 씨가 학교 교육의 개선 방안으로 제안했던 것 중 하나인데, 성적 최하위의 학생들에
게 카메라를 쥐어 주고 단편 영화 하나만 찍어보게 해도 그들의 삶과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그
의견에, 아, 참 기발하다, 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따져 보기는 어렵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유럽의 민중의
집에는 이런 시설이 이미 구비되어 있고, 지도해 줄 수 있는 자원 강사도 있으며, 만들어진 결과물을 상연할 수
있는 극장도 있었다. 영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10대 시절의 나라도, 아마 이런 시설이 있었다면 완성도에 관
계 없이 한 편 쯤은 찍어보았을 것이다.
놀이공원도 있고, 바도 있고, 야시장도 있고. 요가에 일렉트릭 기타에 컴퓨터 강좌까지. 그 연혁이 몇십 년에 이
른다지만, 이런 건 어떻게 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 하며 읽다가, 스웨덴 편에서 의문이 풀렸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원활한 운영을 위해 몇 개의 자회사를 두었는데, 그 중에는 '민중공원 소프트웨어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민중의 집에서 행하는 문화 행사와 관련 상품의 개발만을 '사업'으로 삼는, '회사'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올지,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지를, '돈 받고' 연구하는 '기업'이 있는
것이다. 정치활동이나 사회활동 하던 사람 몇이 모여 앉아서 어떤 일을 벌리면 사람들이 좀 찾아올까, 하고 브레
인스토밍 몇 번 하는 수준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갖추어 놓고, 모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유럽 민중의 집은 가장 큰 강점 중의 하
나인 '접근성'을 획득했다. 책을 읽으며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민중의 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처음 오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부모님과 친구들을 따라왔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그건 거기에 계속 있
었고, 내 부모와 친구들이, 그러니까 나에게 중요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행복하게 잘 논다. 그러면
나도 거기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처음에야 단순한 사교의 장이지만, 공간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스레 거기
에서 행해지는 보다 고급한 행위들에도 차차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부럽다, 부럽다 하고 위에 써 놓았지만, 사실
한겨레 문화센터나 구청의 문화강좌를 탈탈 뒤져보면 웬만한 수업은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생 처음 가 보는
동네에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 가며 무언가를 배우거나 직접 하는 것과,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곳에서 대부분 아
는 사람들과 함께 배우거나 무언가를 직접 하는 것의 심리적 장벽의 차이는 과연 얼만큼일까. 스웨덴 민중의 집
은 심지어 선거 기간에는 투표소로도 쓰인다. 정말로, 사람답게 사는 삶의 거의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우리나라 민중의 집은 현재 네 곳에 있다. 이후에 생겨날 민중의 집에는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해 보면 어떨까 싶
다. 예를 들어, 임야에 인접한 민중의 집에서는 대규모 영농이나 화훼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노량진에
민중의 집이 세워진다면, 재수생과 고시생을 상대로 한 식사 기능이 극대화될텐데, 소규모 농가와 바로 연계하
면 의의도 있고 사업성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강좌를 통해 대학생과 공무원이 될 이들의 문화 소양을 키워
줄 수 있다면 이중의 소득이 될 것이다. 공업 지구 같은 경우는 타 지역에서 일하러 온 일인 가구가 많은데, 이들
을 위해 민중의 집 내에 고양이 사육 코너가 있으면 어떨까. 동물과의 교류가 우울증이나 향수를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인근이라면 양심적인 가격의 하숙집을 소개하거나 자원 봉사자들을 통한 무료 이사 서비스 등이
젊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데 유효할 것이다. 30대 직장인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의 민중의 집이라면 결혼 과정
과 결혼식에 대한 컨설팅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 믿을만한 소규모 금은방을 연계해 준다든지, 사진과의 학생들,
혹은 민중의 집 사진 강좌 수강생들과 연계해 무료로 웨딩 사진을 찍어준다든지 하면, 성황을 이룰 것이라고 장
담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여들면, 그 다음부터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정운 교수의 말 중에, 우리나라 남자들을 모두 평일 다섯 시에 퇴근시키면 사회 전체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
라 이혼율이 올라갈 거라는 언급을 음음, 하고 고개를 끄떡거리며 읽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주 5일제가 시행된
뒤 이혼율이 올라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린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해 왔기 때문이다. 생존
이외에 하는 일이란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것으로, 그 또한 다시 생존을 하기 위해 충전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족과 같이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주말에 빈 사무실에 나와 인터넷을 하거나, 아니면
싸우고 헤어지거나 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최고의 구호는 '저녁이 있는 삶'이었지만, 막상 저녁을 돌려주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노력해서, 조금씩의 성과들이 사회의 저변에서 들려
온다. 민중의 집도 그 중 하나이다.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해, 일독을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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