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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위르겐 슈미더, <구원 확률 높이기 프로젝트>

 

 

 

 

 

독일의 유명한 신문의 스포츠부 기자이자, 본인이 스스로 설정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그 경과와 결과를 저술로

 

전달하는 저널리스트, 위르겐 슈미더의 최근작. 부제는 '지옥에 가기 싫은 한 남자의 요절복통 종교체험기'. 비

 

록 부제라고는 하나 아직도 책 제목에 '요절복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구나, 하고 좀 놀랐다.

 

 

 

 

기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혹은 스스로 주

 

체가 되어 글을 작성하는 이런 방식을 '탐사 저널리즘', 혹은 '몰입 저널리즘'이라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

 

에서는 이것을 조롱하여 스턴트 저널리즘, 혹은 곤조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곤조 저널리즘의 곤조Gonzo는 우리가 흔히 '곤조가 있어야 한다'고 할 때에 쓰는 일본식 속어 곤조こんじょう

 

(根性·근성)와는 다른 단어이다. 이 단어는 영화 <럼 다이어리>에서 조니 뎁이 분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헌터

 

톰슨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여러 설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탐사 저널리즘을 개척했던 헌

 

터 톰슨이 자신이 심취해 있던 60년대의 재즈 연주곡 앨범 <곤조>에서 이름을 따다 붙였다는 설이다.  

 

 

 

 

찾아보니, 저자는 이전에도 곤조 저널리즘의 작업을 행해왔던 모양이다. 첫 번째 저서인 <내 배는 내 것이다>는

 

번역되지 않았고 인터넷에도 서평이 없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지만, 40일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는 프로젝

 

트의 결산 보고서인 두 번째 저서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는 지난 2011년에 번역되었고 많은 호평

 

이 달려 있었다. 찬사는 대체로 기발한 발상과 추진력, 그리고 명랑한 문체와 쉬운 구성을 향해 있었다.

 

 

 

 

이 책도 그러한 장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단지 '프로젝트'의 차원이 좀 더 거대해졌을 뿐이다. 40일은 4

 

년으로 늘어났고, '거짓말 하지 않기'는 '모든 종교를 섭렵해 보기'로 확대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시도를 감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모든 종교에서 권하는 바를 실행하면서 살면, 사후세계에 갔을

 

때 어떤 종교가 정말 옳은 것이었든지 간에 나는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유머러스한 언급을 한

 

다. 말하자면, 살아 생전에 천주교 신자 이력도 쌓고 불교 신자 이력도 쌓고 사이언톨로지 이력도 충실히 쌓아

 

두면, 죽은 뒤 지옥과 천국을 가르는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 심판이 어느 종교의 신이든 간에 들이댈 이력이 있

 

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든 독실한 신자가 접한다면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는 불경한 주장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일견 합리적이고 또 유쾌하기도 하다.

 

 

 

 

저자는 '범신앙론자'이다. 신앙에 대해 부정하지 않거나 긍정적이지만, 특정 신앙을 신봉하지는 않는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신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 프로젝트의

 

주 목적은 저자에게 딱 맞는 종교를 찾는 데에 있지 않다.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자신의

 

가치관과 82퍼센트 일치하는 종교로 개종하는 게 아니라, 되도록 많은 종교에서 최소한 50퍼센트 이상의 일치

 

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저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언톨로지, 불교, 도교, 심지어 '애플'까지

 

체험을 해 본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범신앙론자'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입지가 애매하다. 많은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종교에 전적인 신뢰를 갖지 못하는 양아치 신자일

 

수 있고,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뚜렷한 체계도 없이 그저 종교체험을 유랑하는 한량일 수 있다. '형제님'이

 

나 '자매님'은 둘째 치고 그가 하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각 종교에서 제시하는 삶과 수련 방법이란 각기 깊은 이해와 나름의 수련을 요하는 것들이 많다. 내실 있

 

는 기도나 성과 있는 명상과 같은 것은 짧은 시간의 호기심만으로 그 득실을 따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또, 개별 종교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과 시각이 균등하지 않은 점도 들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경우의 사례로

 

사이언톨로지를 언급한다.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던 저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싱긋하고 웃어주던 아주머니는, 저

 

자가 사이언톨로지의 교본을 꺼내 읽기 시작하자 조용히 자리를 떴다. 사이언톨로지의 건물을 방문하겠다고 계

 

획을 세우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몹시 불편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들을 직접 겪으며 넘어지고 자빠지는 저자 덕분에 독자는 몹시 즐겁다. 실제로, 저자가 '모든

 

사람을 용서해 봐야지'하는 마음을 먹고서는 지인들에게 '나에게 나쁜 짓을 하고 비밀로 해 두었던 일들을 모두

 

고백해 달라. 전부 용서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가 차차 돌아오는 끔찍한 답변들을 읽고 길길이 날뛰는 장면에

 

서 나는 정말로 깔깔대고 웃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가 이 책의 특장점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나는 사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할 때까지도

 

'이러다 믿음의 당위성에 대한 창대하고 거룩한 결말이 나와 주겠지'라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본인이 경험하지 못했거나 증명하지 못하는 일은 언급하지 않고 결론내리지 않는다. 딱 자기가 겪은 만

 

큼, 느낀 만큼만 이야기하는데, 여기에서 오히려 묘한 호감과 신뢰감이 일어난다. 'OO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결

 

론이 나왔더라면 즐겁게 읽은 앞 부분의 추억마저 날아가버릴 것이지만, '이만큼 겪어보니 이만큼은 느끼고 이

 

만큼은 변하더라'는 말에는 분명히 호기심이 생긴다. 그리고 저자가 제기했지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신앙적

 

질문들에 대해 내 스스로 생각해 보고 답해 보고 싶은 계기도 된다.

 

 

 

 

미션스쿨인 대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일정 학기 이상 채플을 이수하고 '기독교의 이해'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의

 

무가 있었던 탓에, 그 전에도 일정량 갖고 있던 종교에의 반감이 한층 심해졌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

 

채플 시간에 종교와 큰 관련 없는 사회명사의 인터뷰도 수 차례 들을 수 있었고, 종교 수업 또한 인문학에서 접

 

할 수 있는 한 연구 분야이므로 한 차례라도 들어본 것이 오히려 다행인 면도 있었지만, 강제로 이식되는 그 방

 

식에 대한 큰 거부감 때문에 그런 장점들에 주목할 여유가 없었다. 사회에 막 나오던 시기에 생겨난 실체 없는

 

거부감이 오늘 이 때까지 마음에 자리잡고 있으니 나로서도 큰 손해다. 만약 그 처음에 이런 책을 읽게 해 줬더

 

라면, 좀 더 유연한 마음으로 종교에 접근할 수 있고, 또 험난했던 20대를 헤쳐가는 데 또 하나의 도구를 가질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한편으로는 요새 블로그에 쓰는 글과 앞으로 쓰고싶은 책에 대한 고민에 한 힌트가 되는 독서이기도 했다. 생각

 

과 논리만으로도 훌륭한 글을 쓰는 이들이 있지만, 나는 역시 쓸 때에나 읽을 때에나 몸을 움직여서 나온 글을

 

좋아한다. 쓸 것이 없어 불퉁거리지 말고 몸을 움직이자!

 

 

 

 

저자인 위르겐 슈미더 형은 종교들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가, 마침내는 한 단어와 이미지로 이

 

루어진 포스터를 통해 그 종교를 표현하고자 하는 데에까지 나간다. 쓸모없다면 쓸모없는 일일 수 있겠지만, 나

 

는 몹시 재미있었다. 그 결과물이 책에 실려있는데, 사진으로 찍어 마지막에 덧붙인다. 해당 종교에 몸담고 있거

 

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표현됐나 어땠나를 생각하며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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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신앙의 캐릭터에게만 눈이 달려 있는 것은 좀 얄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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