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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이문영, <만들어진 한국사> 外

 

 

 

 

오늘의 독후감은 메모에 가깝다. 시간을 들여 읽었더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점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을 책들이

 

지만, 버스를 타고 오가는 때에나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의 촌음에 접했던 터라, 생각하

 

며 읽기가 어려웠다. 언젠가 정보가 필요할 때에 다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기록만을 옮겨둔다.

 

 

 

첫번째 책은 이문영의 <만들어진 한국사>. 이문영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한단고기>에 관심을 갖고 있

 

는 사람이라면 '초록불의 잡학다식'이라는 블로그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역사학과 출신이자 관련

 

서적을 출판해 온 저자는 위 블로그의 운영자로, 특히 한국의 상고사에 대한 일각의 주장들을 논파해 왔다.

 

책은 그 기사들을 종합하고 편집한 결과이다.

 

 

 

논파의 대상이 되는 주장은 저자가 명명한 이른바 '유사 사학'으로, 종래에는 '재야 사학' 등으로 범칭되곤 하

 

던 종류의 것들이다. 70년대의 형 누나들은 아마도 김태영 씨의 <단>과 <다물> 등에서 접하셨을, 80년대의 친

 

구들은 같은 작가의 <소설 한단고기>나 임승국 교수의 <한단고기>, 김산호 화백의 <대쥬신제국사> 등을 통해

 

접했을 그 내용들이라고 하면 연상이 쉽겠다. 이 주장들은, 하나로 묶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작게는 신라나 백제

 

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것부터, 크게는 고대에 한국이라고 하는 큰 제국이 있었으며 수메르

 

문명, 인도 문명, 황하 문명이 모두 그 영향력 하에서 발원했다는 것까지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다. 이외에도 상

 

호간에 밀접한 연관성을 갖지 않는 여타의 주장들이 산개해 있는데, 근본적인 공통점은 강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이러한 주장들이 근거로 삼고 있는 기록의 논리적 허점을 변증하고, 다른 기록들과 대조하여 진위

 

를 가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적지 않은 수고가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방법론은 분명한 설득력을 갖

 

는다.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었다 해서 '유사 사학'의 주장 전체를 허구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초보적인 한문

 

고문 독해력이나 객관적인 논리성만으로도 충분히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주장들에까지 현혹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을 짧게 정리해둔다.

 

 

 

하나, 블로그의 기사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탓일까? 소챕터의 분량이 일정치 않아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독서

 

하기가 어렵다. 목차에 기사 별 제목이 쭉 정리되어 있으니, 나중에 개별 항목의 정보만을 필요로 할 때에는 오

 

히려 유리할 수도 있겠다.

 

 

 

둘, 감정적 어조. 저자에게 쏟아지는 '유사 사학'계의 구체적인 협박과 비논리적이고 소모적인 공박의 내용은 저

 

자가 직접 실어놓은 몇 개의 언급 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저열한 수준의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이따금- 일견 폄하나 조롱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유사 사학'계에게나 일반 독자에게

 

나 그리 호소력이 있는 접근 같지 않다.

 

 

 

 

 

 

 

 

 

 

 

응용수학자이자 복잡성 과학의 연구자인 저자의 최신작. 먼저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

 

다.

 

 

 

"우리는 보통 어떤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 사회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조

 

성되어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한 사건을 만들어낸다."

 

 

 

좋게 보면 기발하고 나쁘게 보면 황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커다란 사건들과

 

주가 지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수치 및 그래프 간의 상관관계를 제시하였다.

 

 

 

저자는 먼저 일어나고 지속되는 시기에 따라  '커다란 사건'을 세 유형으로 나누었다. '유행'과 같은 수 개월에서

 

수 년까지의 단기 사건, '전쟁'이나 '경기순환'과 같은 수 년에서 수십 년까지의 중기 사건, '열강의 흥망성쇠'와

 

같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까지의 장기 사건. 어떻게 구분해 놓아도, 분석의 결과는 동일했다.

 

 

 

예를 들어, 한 시기를 대표할 만한 즐겁고 기쁜 사건은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희망적인 분위기가 최정점에 달

 

했을 때 출산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즐겁고 기쁜 사건이 일어나면 사회 전체가 희망적이 될 것이라는 우리의 일

 

반적인 기대와 달리, 증권 지수나 GDP등의 수치는 그 사건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

 

러한 대원칙의 한 사례로, 아시아의 초고층 건물을 언급한다. 2000년 이후 세계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초고층 건

 

물들은 대개 아시아에서 건설되었는데, 번영과 희망의 상징이 되라는 기대가 무참하게도, 해당 국가들의 '수치'

 

는 착공 시점을 최정점으로 하여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에는 유례없는 최저점에 도달해 있었다. (이 챕터의 끝에

 

저자는 비극적 전망의 현재진형적 사례로, 완성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 될 한국의 제2 롯데월드

 

타워를 들었다. 저자의 이론에 따르자면 잠실의 제2 롯데월드가 완공되는 2015년이 곧 한국경제의 최저점이 되

 

는 셈이다.)

 

 

 

무척 재미있긴 했지만, 읽으면서 크게 감화를 받기는 어려웠다. '커다란 사건'이라는 것도 결국 시기를 얼만큼으

 

로 상정할지, 얼만큼의 영향력을 갖는 사건들을 말하는 것인지 등 다양한 변수를 갖는 자의적 기준이고, 한 시대

 

를 대표하는 준거로 증권 지수를 드는 것이 보편타당한 접근법인지도 의문이 든다. 그러나 사회를 이해하는 유

 

익한 방법론을 설계하고 실증적인 과정을 통해 가설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고

 

한편으로 부러운 연구였다. 다시 읽게 된다면 아마도 이 '연구 방법' 쪽에 주안점을 두고 독서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책의 독후감을 굳이 적는 것은, 이미 출간되었으나 아직 중앙도서관에는 들어오지 않은 저자의 후속작

 

'X 이벤트'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기록해 두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대중의 직관'에서 미래 예측이라는 장을 연

 

저자는 근작 'X 이벤트'에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11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연구하였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

 

와 있는 책소개의 목차를 보니, '디지털 암흑'이나 '핵폭발', '금융의 몰락' 등의 두근두근한 이름들이 줄을 서 있

 

다. 하나하나를 주제로 하는 과학소설을 읽어도 재미가 있을 것인데, 복잡성 과학이라는 틀로 얼마나 체계적인

 

논리를 보여줄 것인지 왕년의 공상과학소설 소년으로서 큰 기대가 된다. 후에 이 독후감을 다시 읽게 되면 잊지

 

말고 중앙도서관에 'X 이벤트'가 들어왔는지 검색해 보자.

 

 

 

 

 

 

 

 

 

 

지난 미 대선에서 오바마 캠프가 행했던 지역 버스 광고 전략, 친근한 이메일 전략 등은,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

 

로부터 그 영향력을 의심받았다. 선거 전략가들 중에도 전국적 TV 광고나 대규모 집회에 좀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우세했다. 그러나 결과는 오바마의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방식이 재선의 가장 큰 성공

 

요인 중 하나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방영되었던 EBS의 다큐멘터리 '킹메이커'에

 

서 짧게나마 언급된 바 있다.)

 

 

 

전작 <스시 이코노미>에서 초밥이라는 소재 하나로 '글로벌 산업주의'를 논하는 데까지 나아가 국제적 명성을

 

얻었던 저널리스트 사샤 아이센버그의 최신작. 저자는 미국 선거 캠페인의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방

 

식들, 그러나 선거판에서는 분명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방식들을 소개하고 그 연원과 경과를 꼼

 

꼼하게 되짚는다. 열 개의 챕터는 각기 한 명의 인물, 혹은 하나의 선거를 대상으로 하여 '왜 이기고 왜 졌는지'

 

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찾아간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따르면 '아마존 정치사회 부문 베스트셀러 1위'라고도 하고, 국내에도 정치 이슈를 다루는

 

블로그들에서 적지 않게 소개된 바 있다. 대선과 같은 큰 선거에서조차 소수점 단위의 퍼센트 싸움이 된 판이

 

니 승인과 패인을 분석하는 것은 무엇보다 긴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참에 정치 컨설팅의 최전방인 미국의 사례

 

가 생생하게 기록된 이 책, 매력적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에 쫓겨서 그랬는지, 번역투의 문장과 저자 특유의 구성 때문에 그랬는지, 그닥 열없는 표정

 

으로 책장을 넘기는 때가 많았다. 아마도 당장의 공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책이어서 그랬을 것이라 짐작하고 훗

 

날의 독서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