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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2






여기에는 여타의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 가운데 따로이 기억해두면 좋을 법한 내용이나

읽으면서 나름의 단상이 떠올랐던 부분을 추려내어 적는다. 앞에 있는 1편을 읽고 추가적으로 관심이 생긴 분이

라면 더 읽어도 좋겠다. 따로 2편을 적던 다른 때에 비해 양이 많지는 않지만 1편을 너무 길게 쓴 탓에 굳이 떼

어내어 쓴다.




1. 영화 <부당거래>에서처럼 검사들은 서로 '김 프로', '이 프로'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다른 직종에서도 흔히

그러듯이 서로 농담삼아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아닐까 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검사의 영어 단어인

'prosecutor'의 준말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의무경찰로 복무할 때에도 경감, 경정 등을 해당 영어 단어의 맨
 
첫 철자로 표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2. 법무부 - 대검 - 서울중앙지검은 검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근무처로 이른바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린다. 이

중에서도 법무부와 대검은 검사로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직위 이상에 있는 고위 인사

의 추천이 있어야만 진입이 가능하다.



3.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추진했던 방안 중 하나인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배제. 피의자가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작성한 신문조서는 통상 증거능력이 인정됐다. 재판부에서 증거로 받아들였다는 얘기인데, 그 증

거능력이 너무 강해 법정에서 피의자가 '조서가 강압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해도 조서의 증거능력을 내

세워 유죄 판결이 내려졌었다. 이에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을 아예 인정해주지 말고 공개된 법정에서

의 진술만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는데, 물론 검찰은 이를 극력 반대했다. 이 문제는 결국, 피의자

가 동의하면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에서 정리됐다.



4. '저승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냐 (그런 선택을 해서 검사로서 삶을 그만두게 한 것을)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 그는 사석에서 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장.차관에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진행될 때 그 가운

데 나에게 전화 한 통 걸어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정치인이건 재벌이건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그쪽에서

어떤 창구를 통해 연락이 오고 사전에 조율을 거치는 법이다. 그쪽으로서는 최소한의 상황 파악은 해야 하고,

우리로서도 예우라든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통 수사 때는 하다못해 '이거 어떻게 돼가

는 것이냐'고 물어온 이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단, 그쪽에서 물어보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라는 그의 천박한 면피용 인식은 차치해 두고. 말하자면 이른바 

'핫 라인'에 대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을 좀 했다. 김정일이 죽던 날 대통령이 일본에 출장을 가 있었

다거나, 국정원장과 국방부 장관도 북한의 사망 공식 발표일에 조선중앙티비를 보고야 사망 사실을 알았다거

나, 그날 아침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생일 잔치를 하고 있었다거나, 사망소식 발표 뒤로 대통령이 중국 수뇌부

와 통화를 하고자 했으나 며칠동안 라인이 이어지지 않았다거나 하는 건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입장이 다른 세력들 간에 핫 라인이 없는 것은 확실히 문제이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나는 꼼수다' 떨

거지 특집 편에 출연했을 때, 왜 굳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 한명숙 표를 깎아먹고 오세훈을 당선시켰느냐는 비

판에 공당의 선거 출마자로서의 역할이 있었음을 주지시킨 뒤, 아울러 민주당으로부터 관련된 연락을 한 차례

도 받지 못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치의 뒷판에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이 알아서 짬짜미를 하고 있을 것이라 막연히 추정하지만, 만약 있었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

는 전화 한 통도 없었다는 것 아닌가.


통합진보당이 출범하기 전, 유시민 전 국민참여당 대표는 새로이 통합된 진보당이 출범될 경우 자신이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할 이유들을 언급하며 그 가운데 하나로 '협상력'을 꼽은 바 있었다.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으로 재직할 당시, 국정원을 통해 한나라당 영수인 박근혜 측과 접촉하여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먹이'를 던져

주고 복지 현안과 관련해 양측이 만족할 수 있는 선에 대해 협상해 본 '경험'. 그의 이 주장이 진보 세력이 집권

하여도 미숙한 국정 운영 실력을 보여준다면 권력은 다시 더 극적으로 보수층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던 이

들에게 일정한 설득력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민주화운동 시기 데모 현장에서도 학생회장과 경비과장 간에는

서로 연락이 있었던 것처럼, '적'과도 대화와 교섭은 필요하다.


이러한 '협상력'. 그리고 협상력이 발휘되는 무대인 '핫 라인'. 이것이 있었더라면 부엉이바위 위 그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정치세력과 검경 간의 핫라인을 마냥 좋게만 볼 수도 없다. 이번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과 관련

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가 청와대는 물론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도 활발히 연락을 취했고, 그리하여 조사한 것보다 훨씬 축소된 결과가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

다. 이런 핫 라인은 차라리 없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국 핫 라인은 그것을 깔고 쓰는 개인의 양심과 상식에만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저 사람이라면

핫 라인을 쓸 수 있고, 또 잘 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