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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마크 프라우언펠더, <내 손 사용법>

 

 

작년 11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진절머리가 나서 오랜만에 우쿨렐레 악보라도 보며

마음을 좀 다스릴까 하고 도서를 검색해 보니, 지난 겨울 동안 내내 진행되었던 도서관 증축 공사가 끝나면서 음

악 악보책들은 대부분 학교 저쪽 너머 언덕 위의 음대도서관으로 옮겨져 있었고, 엉뚱한 제목의 이 책이 함께 찾

아졌다. '텃밭부터 우쿨렐레까지 좌충우돌 DIY 도전기'라는 부제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나의 DIY는 어둠의 역사다. 약 20여년 전에, '교내 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무척 거창한 이름이지

만, 수업이 다 끝나고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간 토요일 오후에, 칙칙한 과학실에서 토요일 오후에 퇴근하지 못 해

칙칙한 인상의 '자연' 선생님의 감독 하에, 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지정된 문구점에서 '라디오 키트 세트'를

사다가 빨리 조립하는, 심심한 행사였다. 선생님은 빨리 조립하는 순서대로 이름을 적었고, 1등부터 그 밑의 일

정 등수까지는 다음 주 월요일의 조회 시간에 단상으로 불려나가 시상을 하게 될 터였다. 지금처럼 내신이 있고

입학사정관이 있는 세상이라면야 학생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더 써넣을 수 있다지만 당시에 왜 그런 행사를 했

고, 또 왜 굳이 시간을 체크하여 상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입국을 부르짖었던 군인 출신 대통령

의 말씀이 교무원들의 가슴에 깊숙이 남아있었는지 어쨌는지. 결과로 보자면, 나는 꼴등을 했고, 덕지덕지 납땜

이 붙은 나의 첫 라디오는 죽어가는 괴수의 단말마 같은 소리 외에는 아무런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성과물을 낸

학생은 이름이 적히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과학실에는 꼴등인 나와 한시라도 빨리 퇴근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내 납땜의 여분을 다 쓰고 아이들이 남기고 간 여분까지

모아다가 회로판의 뒷면을 납 범벅으로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은 반쯤은 측은하고 반쯤은 지루해 죽겠는 얼굴

로, '노력상'을 만들어 수상할 터이니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말하였다. 여기까지는 일기에도 한 차례 적은

바가 있고 비슷한 화제가 나왔을 때에 사석에서도 입에 올린 적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다음에 적는 것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말이다. 나는 사실, 고개를 들어 집으로 가라고 하는 선생님의 입을 보기 전까지의 그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기계치로 유명하다. 단지 기계를 잘 못 다룰 뿐 아니라, 기계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을 몹

시 귀찮아하고 때로 두려워한다. 상담이나 최면을 통해 증명한 바는 아니지만, 나는 이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분명한 트라우마이며, 특히 정확히 그 날에 생겨난 것이라고 내심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엄마

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유난히 '쪼닥쪼닥'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장난감이고 생활용품이고

가져다 꺾고 부수고 붙이는 걸 좋아하던 나는, 그 과학경진대회 이후로, 완벽한 설명서가 존재하고 어떤 기계치

가 조립해도 항상 균일한 완성품이 나오는 레고 정도에 만족하는 '소비자'가 되고 말았다. 있지도 않은 '노력

상'을 다시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쪼닥쪼닥의 습관, 잔재주이긴 하나 끈덕지게 키워냈다면 어떤 쓸모가

있었을지 모르는 기술은 기껏해야 학알을 접거나 이따금 뜨개질을 하는 등의 소소한 취미 정도로 생활에 스며들

어 그 흔적을 감추었다.

 

 

다시 손 끝으로 무언가를 만지게 된 것은, 외로워졌기 때문이었다. 동기도 후임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군

생활에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끝날지 않은 것 같은 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전

화 몇 통이면 밤새 놀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대학 시절과 달리 열흘 여 전에 잡은 약속도 저쪽의 야근이나 이

쪽의 공부에 밀려 취소되기 일쑤였던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 초반에, 우쿨렐레나 기타를 구경하며 낙원상가를

기웃거렸던 것은 그 과정을 일기에 세세히 쓸 정도로 신이 나는 일이었다. 어차피 혼자 노는 것이라 잘 못해도

재미있으면 장땡이었고, 낙을 찾고 나니 애당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는 부끄러움은 차츰 사라졌

다. 모두, 납땜만큼 즐거웠다.

 

 

근래, 공으로 얻은 문화상품권을 어디에 쓸까 생각하다가,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직접 깎은 목각인형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조각도 세트를 샀다. 나무는 무엇이 좋은지, 색은 무엇으로 칠해야 좋을지 등에 대해 일상의

틈을 빌려 조금씩 알아보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찾으려던 우쿨렐레 내용은 별로 없어보였지만 DIY라는

말에 눈이 꽂혀 꺼내보았다.

 

 

저자인 마크 프라우언펠더는 잡지에 글을 써서 먹고사는 프리랜서 기고가였는데, 2000년대 초반 IT 산업의 붕괴

로 여러 개의 기고처를 잃고 만다. 고민하던 그는 어차피 돈을 못 벌고 살게 된 판에 도시로부터 떨어져 있고 덜

돈이 드는 주거지를 찾다가 남태평양의 '라로통가'라는 외딴 섬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를 하게 된다. 별다른 준비

없이 감행한 이 시도는 결국 몇 달만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이 시기 아내, 두 딸과 하루종일 코코넛을 따

러 돌아다니거나 해변에서 해삼을 잡아대던 생활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전부터

알던 미디어 단체의 설립자와 상의하여 2005년 <메이크>라는 DIY 잡지를 창간하고 편집장이 된다. 이 책은 그

가 편집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저널리스트로서 스스로 행하고 잡지에 기고한 DIY의 기록이다.

 

 

300쪽 가량의 책은 11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서론과 결론, 그리고 서론의 연장선 격에 있는 1장을 제한 여덟

개의 장이 실질적인 DIY 내역이다. 혹 흥미를 가질 분이 있을까 하여 자세한 내역을 순서대로 적는다.

 

잔디 죽이기. 텃밭 가꾸기. 에스프레소 뽑기. 닭 기르기. 기타 만들기. 콤부차 우리기. 벌치기. 딸에게 수학 가르

치기. 이는 단순히 챕터의 소제목들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내용이 있다. 이를테면, '기타 만들기' 장에서

시가 상자로 기타를 만들어 본 데에 우쭐해진 저자는 이어 숟가락을 조각하고 닭장을 짓기도 한다.

 

제목만 놓고 보면 심상하지만, 실제 독서에서 얻는 감흥은 예상 이상이다. 저자의 문체는 화려하지 않고 담담하

게 있는 일을 기술하는데 집중하는 편인데, 그런 구질로 '잔디 죽이기'에 대해 40쪽을 메꾼다고?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잔디를 죽이는데 얼마나 많은 세부 단계가 있으며, 또 어떤 문제들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지. 실제로 일어

난 일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은 몹시 사실적이고, 또 재미있다.

 

저자의 기록 중 많은 수는 실패의 역사다. 기르던 여섯 마리의 닭 중 네 마리의 닭은 튼튼한 닭집을 짓는다고 요

란법석을 떨었는데도 코요테에게 잡혀가고 말았다.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양봉을 시작했지만 따로 지은 벌집

의 벌들은 도망갔고 나머지 벌들은 집의 천장 아래에 둥지를 틀어 '전등 안에 죽은 벌이 가득해 전등 빛이 희미

해질 정도'가 되었다. 원래 수학을 잘하던 딸이 갑자기 점수가 떨어진 차에 시작된 '딸에게 수학 가르치기'에서,

딸은 결국 중요한 최종 시험에서 본래의 떨어진 점수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점수를 맞았다. 그래도 그 실패에

'사서 쓰지', 아니면 '사람 부르지'와 같은 조롱의 웃음을 보낼 수 없는 이유는, 과정의 세세한 기술을 통해 저자

가 작게는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맛보았고, 크게는 다음 DIY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경험'을 쌓았음

이 이미 잘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당장의 결과도, 크게 보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전달하려 한 메시지와 실제 책 내용이 잘 어우러진, 즐거운 독서였다. DIY의 숨겨진 팬에게나, 삶의 목적, 방향성

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독후감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 중 마

음을 크게 움직였던 여러 부분 가운데 하나를 골라 뒤에 덧붙인다. 저자가 양봉을 시작하며 참고하였던, '거꾸로

양봉법'의 창시자 찰스 마틴 사이먼의 '거꾸로 양봉법 원칙' 중의 일부이다.

 

 

 

- 양봉의 선구자들, 현대적인 양봉의 원칙을 구축한 분들, 랭스트로스, 다단츠, 루트.... 그들이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뭘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뭘 하는지 몰랐다. 그냥 부딪히면서 순리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창의적인 원칙이며 효과적인 방법이다. 일단 표준이 정해져서 바위에 새겨

지고 사진과 도표와 절차가 활자로 찍혀 나오면 추종해야 할 모델이 생기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본질적인 것 다음에 나오는 것은 전부 부차적이거나 열등한 취급을 받는다.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성공을 하

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본질이 되어야 한다. 위대한 선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양봉

을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