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만 되면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십여 년 전인 2002년 말의 어느 날이다. 대학교 2년 째의 겨울방학
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 있던 나는 아침 나절부터 TV 앞과 컴퓨터 앞을 분주히 오가다가 자정 무렵 환호성을 질렀
고 아버지는 여덟 시 무렵부터 아예 안방의 방문을 걸어닫고 드러누웠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일이다.
아버지는 수십 년 된 <조선일보>의 열독자이다. 내가 투표권을 얻게 된 뒤로 치른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후보에게 투표한 적이 없다. 작년의 18대 대선에서는 그동안 지지했던 정당의 후보가
아닌 다른 이를 찍으셨지만 그마저도 겹치지 않았다. 별다른 말씀은 없었으나 불충한 아들은 '2번'을 찍기 위해
서가 아니라 '1번'이 여자였기 때문에 노선을 바꾸셨던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쪽이 되었든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술자리가 아니면 평소의 생활에서 서로 긴 대화를
나누지 않고, 평소에 긴 대화가 없으니 술자리에서도 특정한 주제가 없으면 딱히 찾을 공감대가 없는 신세의 아
들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효도의 수단이다. 접점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즐겁고 열정적인 대화의 소재가 되어
준 것만 해도 나로서는 만족이다. 아버지도 그쯤을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수다의 차원이라고 해도 좋을 그 대화들 가운데 문득 결이 튀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가 지지하는 사람을 내가 까 내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아버지가 폄하하는, 일상과 같은 장면 중에,
마침 그 맘때의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6월 항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읽는 신문과 보
는 TV 채널에는 이런 게 단 한 번도 안 나왔겠지, 하고 우쭐해하며 그 해 있었던 몇 가지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데, 연대 앞에서 출발해 서울시청까지 이어졌던 이한열 선배의 영결식을 듣던 아버지가, 그래, 연대 앞에서 출
발했었지, 라는 말을 했다. 깜짝 놀라며 거기에 갔었어요, 라고 묻자, 아버지는 6월에 있었던 전국적 시위의 인
천 집회에도 퇴근하고 나갔었다고 말했다. 아니, <조선일보>의 유료 구독자인 우리 아버지가 6월 항쟁의 한복
판에! 물론 그 해 87년의 12월에, 서른이 넘어서야 생애 처음으로 맞은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아버지는 기나
긴 '1번'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6월 항쟁이라니.
같은 양말 신고 같은 수건을 쓰고 집에서는 팬티 한 장 입고 있는 가풍을 전수해 준 내 아버지라, 무의식적으로
그 속속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겨 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책상물림인 아들이 기껏해야 남들이 정
리해 놓은 책 몇 권이나 읽고 외웠을 그 역사들을 매일 아침 신문을 받아보며 살아낸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익희
가 죽던 56년에 태어났고,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마침내 대통령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던 63년에 국민학교
에 들어갔다. 국민학교 졸업은 3선개헌이 통과되던 69년, 중학교 졸업은 유신이 선포되었던 72년, 고등학교 졸
업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던 75년의 일이다. 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버지는 박
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던 79년 두 번째의 직장에서 결혼할 여자를 만났고 바덴바덴의 함성이 울려퍼지던 81년
첫 아들을 낳았다.
그러니 <채널A>를 즐겁게 시청하고 계시는 지금의 아버지와는 다른, 그 때 그 때마다의 아버지의 생각이 있었
던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87년 6월 항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삼십
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인천지하철도 없었던 시절에 주안역에 나가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
타고, 신촌역에 내려서 두리번거리며 연대 앞 방향을 찾던 시절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와
의 술자리가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2.
위의 글을 읽으며 일말의 공감을 느꼈던 분이라면 분명히 나름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은 책 한 권. <한
겨레> 토요판의 에디터이자 이 카테고리에는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의 편집자로 등장한 바 있었던 고경태 씨
의 <대한국民 현대사>이다.
출발은 1993년의 일이었다. 이 해, 환갑도 되지 않은 고경태의 아버지는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먹먹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이십 대의 고경태의 눈에, 아버지가 34년 동안 만들어 온 스물다섯 권의 스
크랩북이 들어왔다. 매일매일의 신문에서 인상적인 사진과 기사, 만평 등을 골라 표지까지 손수 만든 스크랩북
에 붙여 넣고 짧은 감상평이나 시 등을 정성스레 적은, '가족의 보물'이었다. 밤마다 386 컴퓨터에 일일이 그 평
과 시를 입력해 넣었지만, 아버지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고 아들도 책을 낼 짬밥은 아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67년생인 아들은 쉰을 눈 앞에 두었다. 스크랩북 중 반 이상이, 생전의 아버지가 자신보
다 어렸을 때 만든 것인 나이가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스크랩한 기사의 사건들을 다시 공부하여 정리하고, 남
기고 전할만한 시를 골라내어 한 권의 책을 써냈다.
3.
책은 두툼하다. 550쪽이 약간 못 되는 분량이다. 무거운 종이를 쓴 탓인지 비슷한 두께의 다른 책들에 비해 중량
감도 묵직하다. 책상 위에 펴고 읽는 것이 적합하다. 누워서 들고 읽다 보면 어느새인가 배 위에 올려져 있는 것
을 발견할 수 있다.
본래 한 웹진에 기사의 형태로 게시되었던 글이다. 분량과 구성에 큰 고저가 없다. 한 꼭지는 15에서 30쪽 가량
이고, 그 안에는 사진의 형태로 정리된 아버지의 스크랩, 그 스크랩에 딸린 평과 시, 스크랩에서 다루고 있는 사
건에 대한 아들의 심층적인 연구, 그리고 이 스크랩과 시, 연구 전체에 대한 아들의 평이 어우러져 있다.
아버지의 스크랩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에서 시작해 1992년 정부가 북미 무역협정의 자동차 원산지
규정을 한국에도 적용하려 하는 것을 GATT에 제소할 예정이라는 기사로 끝난다.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아무
래도 정치, 사회 기사가 주를 차지하고 있고, 재난과 범죄 기사도 적지 않다.
4.
필자는 단순히 아버지를 추모하고 그의 대업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만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책의
곳곳에서는 아버지가 쓴 시의 추상성이라든지, 좀 더 견고하지 못한 통찰의 깊이와 같은 것을 유머러스하게 질
타하는 필자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살갑지는 못하지만 실은 사랑하는, 익숙한 부자 관계의 모습이 보여서,
또 쉰을 눈 앞에 둔 아저씨가 자기 아버지에게 투정처럼 귀여운 타박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웃
음이 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면밀히 살펴 보면, 이러한 '장치'는 이 책이 내 아버지에 관한 일종의 족보인 한편,
같은 땅에 태어나 살다가 죽은, 주관성과 편향성 충분한, 그러니까 '평범한' 한 사람의 역사를 재구하는 사회과
학서의 일종이기도 하다는 기획 의도 하에 배치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대한국民 현대사>라는 제목
과 '국민으로 살아낸 국민의 역사'라는 부제는 그렇게 해서 붙었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필자의 아버지는
긴 시간의 스크랩 동안 강철과 같은 일관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대체로 그때그때의 상식적인 수준의 반응을 보
이고 있으며, 감성적인 접근도 종종 눈에 띄고, 생애의 말년에는 다소간 '우경화'의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일자
천금의 정사正史만이 역사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역사는 있다. 모두에게 존경받지 못할 수는 있어도, 어떤 사람
에게도 무시받을 수는 없다.
5.
쉬운 책은 아니다. 애당초의 스크랩부터가 특정한 카테고리나 주제의식 하에 뽑힌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신문 독
자가 긴 세월 동안 때마다의 관심에 따라 편집해 놓은 것이다. 그 결과물을, 아버지라는 사람도 보여주고 한국
현대사도 보여주겠다는 두 개의 목표를 갖고 아들이 다시 편집했다. 34년의 세월이 담긴 26권의 책을 그냥 한
권으로 축약하는 것만도 거친 흔적을 남길 터인데, 이렇게나 많은 난맥이 있다. 당연히,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요한 몇 개의 사건들만이 편린적으로 언급되어 있어 이해가 어렵
다는 인상을 받기 쉬울 것이다. 현대사를 복습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싶다면, 최소한 여러 사건들의 인
과 관계나 해당 시기의 사회적 환경 정도는 금세 떠올릴 수 있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재미나 공부를 떠나 무엇보다도 한 명의 아들로서 이 책의 기획의도에 깊이 공명했다. 글 쓰는 사
람으로서 이 이상의 정성스러운 효도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이상의 애정을 보일 수 있을까. 그는 아버지의 삶을
역사로 끌어안았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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