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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박가분, <일베의 사상> (오월의봄. 2013, 10.)

 

 

 

 

 

1.

 

출판사 '오월의 봄'에서 나오는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시리즈의 열세번째 책. 부제는 '새로운 젊은 우파의

 

생'이며 표지에는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라는 문장이 추가되어 있다.

 

 

 

이 책은 근래의 몇 년간 가장 많은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약칭 '일베'를 분석

 

하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필자의 몇 가지 주장들을 함께 묶은 결과물이다. 책의 내용은 일베의 연원, 일베의 사

 

적 기반과 정체성, 그리고 결론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다시 말해, '일베는 어디에서 왔는가', '일베는 무

 

엇인가', 그리고 '(일베가 아닌, 혹은 아니고자 하는) 우리는 어떻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각각의 답

 

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세 부 모두 일베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접근하는 자세에는 차이가 있다.

 

 

 

1부 '일베와 그들만의 문화'의 필자는 키보드 앞에 앉아 있다. 그는 '1980년대 후반생'으로서 각종 인터넷 커뮤

 

니티의 흥망을 목격해 왔고 현재도 게임과 유머 등을 주요 컨텐츠로 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용자이다. 여

 

기에서 그는 일베의 연원과 시초에 관련된 사건들 가운데 자신이 목격하고 인상적으로 인지한 바를 증언한다.

 

일베는 명확한 기획 의도와 집행 단계를 가지고 창립된 정부 조직이나 학술 집단이 아니다. 그 탄생과 진화에 주

 

요하게 근거하고 있는 것은 재미, 친교, 유대감, 우월감 등과 같은 '감정', 혹은 '감성'의 우발적 발현이다.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사건이나 발언, 또는 하나의 댓글은, 긴 시간이 지난 뒤 게시판에 남은 문자의 흔적을 그

 

러모아 일베의 탄생을 학문적으로 증명하려는 어떤 연구자의 눈에는 어쩌면 너무나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라서 동세대로서 그 과정을 직접 체험하였던 저자가 재구의 형식으로 회상과 증언을 택한 것은 무척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2부 '일베의 사상은 무엇인가'의 필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이제 그는 흥미로운 회고담을 마치고 현재의 일베

 

란 어떤 집단인가에 탐구의 펜 끝을 갖다댄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베의 몇 가지 특징, 이를테

 

면 잦은 은어 사용, 소수자 혐오 문화, 사실 관계 검증에 경도된 논술법, 자학과 조롱 등의 현상을 언급하고 그

 

각각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핵심에 접근해 간다.

 

 

 

3부 '일베와 한국의 정치'의 필자는 촛불집회가 끝나고 난 텅 빈 광장에 쓸쓸히 앉아 있다. 앞서 1부와 2부가 일

 

베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베를 혐오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를 뭐라고 분석했는지 궁금한 일베 유저 등 광범위

 

한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이 3부는 '깨시민'도 아니고 일베도 아니고자 하는,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는, 비교적 축소된 규모의 독자를 위한 글이다.

 

명확히 정리하기는 아주 어렵다. 그들은 2002년의 월드컵과 촛불시위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한층 커진 집회의 주체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 집회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회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결집했던 것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부터 2012년 대통령 선거까

 

지 이어지는 '나꼼수의 시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하는 축, 여전히 회

 

의하는 축, 그리고 아직까지도 촛불을 들고 있는 축 등으로 분화되었다.

 

필자는 이 과정에 꼭 필요했던 것으로 '축제의 밤이 끝난 후에도 개인들을 연루시킬 수 있는 기획들'이었다고 평

 

한다. '집회가 끝난 후 한데 둘러 모여서 집회의 소감을 발언하고 선후배와 경험을 공유하는 운동권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예시되어지는 이 방향성은, 거칠게 정리하자면 '연대'일 것이다. 휘발성 강한 쾌락이 있었을 뿐, 그

 

이후 '자유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관철 가능한 집단들을 구성할 능력'을 기르지 못한 것이 의혹과 고민을 가져왔

 

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능력을 조직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그러니까 촛불과 함께 들어졌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 '국가에 의탁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이상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3.

 

그러니까 3부는, 단지 일베에만 관심이 있었던 독자라면 다소 열없는 얼굴로 읽을 수도 있는 내용이다. 다소 갑

 

작스럽다고 해도 좋을 이런 방향 선회의 이유로, 필자는 '시간낭비'를 꼽았다. 일베는 유사한 집단으로 간주되는

 

일본의 재특회와 달리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와 강령을 중심으로 결집'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일베는 오히려

 

그런 현실적 행동을 '결여한 채로 상대를 상처주고 비꼬는 방식을 지속'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

 

의 영향력은 이미 최고점을 지났다는 것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한 인터뷰에서 필자는 일베가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검색 순위가 줄어들거나 서버 유지비가 부족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를 통해 한 차

 

례 생생하게 발현되었던 몇 가지 속성들은 잔존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속성들을 바라보며 하나의 긴 선

 

을 연상해 왔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 선을 뛰어서 넘어가면 지금보다 나은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을 넘어가는

 

데에는 물리적 시간, 자금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귀찮다'. 그 낭비와 고생을 한 끝에 무언가가 없을 수도 있다

 

는 사실은 '두렵다'. 결국 선을 넘어 가서 얻게 된다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단기적인 쾌락이나 물질적 보상과 같

 

은 당장의 쓸모를 주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선 이 쪽에 있는 것이 이익이다. 무서워서 넘어가

 

지 못한다는 마음은 센 척하며 감춘다.

 

 

 

이 선은 작게는 이웃이나 동료와의 친목에서부터 진지함, 양심, 소수자에의 관용 등 내면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

 

합의의 준수, 공동체 의식의 확립, 정의 실현과 같은 사회 일반의 문제까지를 포함한다. 옳고 좋은 것임은 듣

 

배워서 안다. 하지만 일일이 힘을 들여 선을 넘어가는 것은 불편하고 귀찮다. 안 넘어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하

 

잘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나는 이쪽에 그냥 있을 것이며, 그런 나를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말할 것이다.

 

다. 그런 나는 '병신'이다. 그러나 하기 싫다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그 힘든 짓을 하고 있는 너도 병신이다. 따

 

서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이 주장에는 일단의 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일베가 단순히 선을 넘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

 

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혐오의 권리'는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하나의 사상,

 

개념이 갖는 의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구체적 피해자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히고 그의 사회적 관계망을 붕괴

 

시키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그 공격의 대상이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 여성,

 

야당 등과 같이 권력 관계 상의 약자를 향해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우월감과 안온함의 쾌락을 동시에 느끼

 

고자 하는 저열한 의도가 읽힌다. 귀찮음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과정임을 감안해 보면 낙폭의 격차에 놀라지 않

 

을 수 없다.

 

 

 

선 위로 한 발을 옮기는 일은 고단하고 피곤하다. 시간과 돈이 들고, 때때로 자괴감과 패배감을 안겨 주기도 한

 

다. 그러나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선이 상징하는 바를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 (분명히 나를 포함하고

 

있는) 집단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바이며, 아주 작게는 나 자신의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쾌락의 원동력이기 때

 

문일 이다. 재미 없는 결론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인생이 순간마다 쾌감을 느끼라고 있는 것이 아님은 일베도

 

안다. '인실좆'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