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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강준만, <자동차와 민주주의>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2012년 3월 신작. 독후감을 시작하기 전에 반성문부터 쓰자. 나는 약

 

1년 전 저자의 다른 문화사 서적인 <룸살롱 공화국>의 독후감을 쓰면서, 하나의 소재에 대해 이렇게 근면하게,

 

집착의 흔적이 느껴질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다루었으면서 정치적 주장이나 현실적 대안에까지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강준만을 몰랐다. 그의 이름도 모른채 '한국

 

현대사 산책' 20여 권 중의 몇 권을 읽은 것과 90년대 학번 선배들로부터 전해들은 수상쩍은 전설 등이 그에 대

 

한 앎의 전부라고 해도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용감한 평을 달 수 있었던 것이다.

 

 

 

출간되어 있는 책을 거의 다 접하고, 개중 반 수 정도는 중고서점에서 틈틈이 모은 지금에 와 내가 알게 된 강준

 

만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하나. 신문 기사, 자료집, 저작물, 방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출처에서 사회 전반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아, 특

 

히 유기적인 흐름을 구성하는 정치적 사건들을 연대별로 배치하여 일종의 '통사'를 완성한다. 이 원형적 결과물

 

이 '한국 근대사 산책(전 10권)', '한국 현대사 산책(전 23권)', '미국사 산책(17권)'이다.

 

 

둘. 정치 외의 카테고리에서 그 사회의 일면을 반영할 수 있는 사물, 현상 등에 관한 기록들을 골라 한 권으로 따

 

로 묶는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그 사물의 문화사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통사'에서 이미 설명한 그 사회의

 

정치적 흐름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교보재의 역할을 한다. (이미 수행된 작업의 예는 담배, 커피, 축구, 매춘, 강

 

남 등등이다.)

 

 

 

강준만 연구의 뼈대를 구성하는 '통사'들부터가 이미 '산책'이라는 탈논쟁 지향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 교

 

보재 역할을 하는 단권들에 어쩌자고 쟁점을 요구했단 말인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듯, 저자는 최근작인 이

 

책에서도 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인의 자동차 생활을 대중문화,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관련해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예찬도 비판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때론 분석과 해석을 시도하겠지만, 남의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심을 전제로 하련다. 자,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자동차 여행'이 아닌 '자동차에 관한 여행'을 시작해보자.

 

 

 

강준만이 소개하는 현상들이 반드시 일상의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정치적이고 가치

 

판단적인 입장을 요구하는 쟁점들도 도사리고 있다. 이것을 '남의 삶의 방식' 정도로만 치환하는 것은 문제적 인

 

식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무튼 저자가 '담담하게 관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는데 딴지를 거는

 

건 거는 사람이 심술꾼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겠다. 그런 이야기를 안 하겠다는데, 굳이 따질 이유가 무엇이겠는

 

가? (물론 '자동차에 관한 여행'이라는 발언에서는 이 책이 (나아가 그의 연구가) 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호사

 

가의 페티시즘은 아니라는 저자의 '가볍지 않은' 의지가 읽힌다.)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연대별로 구성된다. 그 발걸음은 포드주의 혁명이 일어난 1903년의 언저리에서

 

시작하여 차근차근 시간을 밟아가 2010-11년의 토요타 리콜 사태에 이른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어떤 영향을

 

받았고 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적층적 기술은 '미국인에게 자동차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그

 

에 대한 답으로 끝을 맺는다.

 

 

강준만에 의하면, 미국인에게 자동차는 국가적 자부심이자 '신앙'이다. 책 전체를 통해 살펴 본, 미국 자동차 산

 

업의 지난 100여 년간의 흥망성쇠와 관련 없이, '자신들의 영혼이 된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앙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는 아메리칸 드림인 동시에 그 드림과는 달리 갈수록 소외되고 왜소해지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운전대를 잡을 때에 비로소 만끽할 수 있는 권력의지 그거 하나만으로도

 

미국인들은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다른, 미국인만

 

의 특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들지만, 아무튼 강준만은 이것을 전제로 삼아 '미국은 과연

 

재산권과 재산 가치만에 관심이 있고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프라이버토피아privertopia로 가고 있는 것일

 

까?'라는 발전적 질문을 던지고, 다시 한번, '그런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아니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는 최후의 질문을 통해 이 책을 '통사', 혹은 강준만의 가장 주요한 문제의식과 연결시킨다.

 

 

 

 

 

정치라는 굵은 실로 씨줄과 날줄을 얽어 두고, 사회문화라는 촘촘한 실로 그 사이를 메꾸어 나가 마침내 사회의

 

모습을 현실에 흡사하게 재구해 내는 강준만의 위대함은 그러한 아이디어의 착상에 보다는 왕성한 저작물이 증

 

명하는 실천력에 있다. 그 실천의 실제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나는 항상 강준만 본인의 얼굴과 교수의 책상보다

 

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허공에 뜬 영상들을 척척 조합하는 톰 크루즈나 등에 여섯 개의 팔을 더 달고 현란

 

한 손놀림을 보이는 영화 <스파이더 맨>의 닥터 옥토퍼스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달인'의 체취는 맡을 수 있으

 

나 '장인'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것은 내 부족함 때문일까? 아무튼, 조만간에 읽고자 하는 강준만의 다음 책은 지

 

난해 11월에 출간된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언제나 기대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