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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6

5일째. 오르차 - 잔시 - 카주라호 다섯시간 예정의 버스행이 연착과 여러 사정으로 아홉시간이 걸렸다. 인도에서 이 정도를 가지고 불평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그리 화가 나지는 않는다. 뭐랄까 인도의 공기는, 사람을 느 긋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아무리 느긋해도 지금은 벌써 밤 여덟시 반. 얼른 들어 가야지. 여기는 야한 신상이 많기로 유명한 카주라호. 내일부터 본격 공략이다. 한국 자생류 최대호파와 어디 한 번 그 상상력을 겨루어 보자꾸나. 더보기
4일째. 오르차. 여기는 오르차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원래의 목적지였던 카주라호까지는 바로 가는 기차가 없어 기차로 다섯시간, 버스로 여섯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아침일찍 아그라 역으로 나갔음에도 기 차가 연착되는 바람에 연쇄적으로 마지막 버스까지 놓치고 말았지요. 이 마을은 나와 같은 사정 을 가진 여행자가 우연히 뚫었다는 작은 관광지로, 아름다운 성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개발붐이 불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 보거나 붙잡지도 않고 거리도 조용합니다. 오늘 아침에 역에서 만난 대만 여성과도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인도에서는 청결과 조용함이 얼마나 큰 덕목인지. 덕분에 다소간 여유를 찾은 나는 마을을 좀 둘러 보고 옷을 몽땅 빨아 넣은 뒤 다소 가벼운 옷을 입고 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점심을 늦게, 그리고 거하게 먹은.. 더보기
3일째 - 아그라 아그라의 마지막 밤입니다. 오늘은 그 유명한 타즈 마할을 다녀 왔지요. 내일은 아침 일찍 잔시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인도 여행의 백미라는 기차를 처음 타게 되지요. 잔 시는 우리 나라의 천안같은 곳으로, 도시 자체는 별로 볼 게 없지만 교통망의 요충지입니다. 하루 묵고, 모레에는 야한 신상, 미투나가 잔뜩 서 있는 카주라호로 갑니다. 눈앞에 걸어가던 소가 퍼득 싸지른 생똥을 밟고 넘어질 뻔 했던 것도 웃겼지만, (발을 들어 발바닥을 보니 김이 모락모락) 오늘의 코믹 대상은 길거리에서 만난 어떤 인도 젊은이였습니다. '아 유 코리안?' '예스. 프롬 사우스 코리아.' '오, 코리아, 굿, 굿'하고 잠깐 생각하던 그 젊은이는 싱긋 웃으며 또렷한 발음으로 .. 더보기
2일째 나는 지금 타즈 마할로 유명한 아그라에 와 있습니다. 델리에서 내리자 마자 어째서 아그라로 오게 되었는지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거대한 충격에 휩싸여 단 하루만에 그간 느끼지 못 하던 수많은 감정들을 겪게 되었지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오늘 아침에는 눈 을 뜨며 제발 이곳이 인천의 내 방이었더라면 하고 얼마나 바랬는지 몰라요. 컴퓨터가 있고, 게다가 한글까지 되긴 하지만 대단히 느립니다. 다음메일 두통, 싸이월드 방명록 몇 줄, 쪽지 하나를 보냈을 뿐인데 벌써 한시간이 다 지났어요. 속도를 감안해 그리 길게 쓰지 않았는데 도 말이지요. 더럽고, 시끄럽습니다. 인도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인상만은 여행 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더보기
출국 전야 인도에 갑니다. 되돌아 보면 '이야기 인도신화'라는 어린이용 책을 선물 받았던 십수년전부터 오늘 까지 꾸준히 꾸어 온 꿈입니다. 꽤 비싼 가격의 인도여행서를 구입하던 때에도, 훨씬 비싼 가격의 비 행기표를 예약할 때에도, 이래도 실감 안 나랴 싶어 내 발로 길 밟아 가며 여권이니 비자니 다 받으 러 다니던 때에도 별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일이면 나는 인도로 갑니다. 인도여행 치고는 엄청나게 호화로운 예산과, 첫날과 마지막 날의 행선지 빼고는 출발 전날인 지금까지도 대부분 비어 있는 일정표를 가지고, 최대호, 다녀 오겠습니다. 시험과 발표, 취직준비와 홀로됨에 여념 없는 한국의 어린이 여러분, 12월에 만나요. 안녕안녕. 더보기
출국 전전야 아무리 인도여행의 미덕이 현지조달이라지만, 그래도 가지고 가야 할 것들도 있는데 하나하나 채워 마침내 리스트에 있는 것은 가방에 다 넣었다. 오늘도 벌써 밤이고. 내일만 쉬이 흘러 가면 나는 머나먼 이국으로 날아간다. 첫 여행인데 지나치게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첫 여행이라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하 는 생각도 든다. 이 몸은 포항까지 버스로 열두시간을 달려본 적도 있다고. 차라리 이러다 거대한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 첫 여행지는 인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델리입니다. 더보기
짐싸기 짐싸기를 시작했다. 일단 탐나면 사다가 장에다 박아 놓고 보는 습성 덕분에 뒤지다 보니 별별게 다 나와서 좋아하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모자나 선글라스 등등이 손에 턱턱 잡히면 신이 난다. 학교 도서관에서 인도미술과 건축에 관한 책들을 몇권 빌렸는데, 그중에 직접 인도로 들고 갈 것들 외에는 타자로 치고 있었다. 꼼짝 않고 앉아서 몇시간이고 쳤는데 음악파일 하나 재생시켰다고 컴 퓨터가 멈춰 버렸다. 중간에 잠깐 저장해야지 저장해야지 생각은 했는데 귀찮아서 미루다가 큰 코 다쳤지. 그래서 집어 치우고 일기나 써야지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타자 치면서 한 번이라도 더 읽 고 한 것이 있으니 때려 죽일만큼 아쉽지는 않다. 더보기
망상 지인과의 통화 중에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게 되면 뭘 해 보고 싶은가,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근래 가장 많이 하던 질문은 30억이 생기면 뭘 하겠는가, 였지만 그건 '취직안해'로 답이 똑같았기 때문에 재미없어서 관두고 있던 차. 얼마 전 학교 앞 사거리에서 지루하게 파란불을 기다리다 생각났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축제를 기획해 보고 싶다고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피날레에야 다같이 락공연 이라도 보면서 날뛰면 좋겠지만, 그렇게 확 타오르는 것 말고, 아침부터 솜사탕 손에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수 있는 축제. 신촌 거리를 다 막고 장터가 들어 서는 거다. 하루 종일 서 있다가 추억은 못 만들고 부은 다리만 잡지 않도록, 그리고 모두.. 더보기
여행준비 다음 주 이 시간이면 델리에서의 첫날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고 있을 터. 다녀오면 일기 쓸 거리가 좀 생겼겠지. 오늘 비자를 찾아 왔고 내일 아침에는 비행기표가 도착한다. 새삼스럽지만, 아니 다른 나 라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었을텐데 왜 뒤도 안 보고 곧장 인도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쇼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오래 전의 프로그램인 지구탐험대를 하고 있었다. 신인탤런트로 소개 된 이영애씨가 이번 여행 중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자이살메르에서의 낙타 사파리를 직접 체험하 는 내용이 나와 한참 흥미를 갖고 보았는데, 사막을 하루 종일 낙타만 타고 가로지른다는 것에 지 나치게 환상만을 갖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가서 제일 보고 싶은 건, 음, 은하수. 거대한 은하수. 더보기
시월 항상 생각하지만, 조롱조롱이든 주렁주렁이든 마음에 맺히는 것이 있어야 그것이 흘러나와 글이 된다. 책은 쌓였고 웃음은 그칠 일이 없고 애인은 귀엽고 배에는 기름이 두둑하게 끼었다. 모자랄 것이 없는 나는 쓰는 것도 기피하게 된다. 써 봐야 별 게 없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보름씩이나 쓸 것이 없을 줄은 몰랐다. 고민이랍시고 한다지만 그닥 큰 고민은 아닌 모양이다. 인도여행은 얼추 윤곽을 갖춰 가기 시작했다. 군에서 머리 싸쥐고 생각하던 문제들은 막상 사회를 마시자 쉬엄쉬엄 풀려 버렸고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도 명확히 갈렸다. 덕분에 여러가지 의의 를 가졌던 인도행도 이제는 어릴 때부터의 동경 이외에는 그리 효용이 없는 상태. 언제 또 갈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10년짜리로 신청해 놓은.. 더보기
재사회화 시월 초에 반팔을 입으면 밤에 춥다. 연극과 인생은 더 이상 6회 공연을 하지 않는다. 연극과 인생은 뒷풀이에서 더 이상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버스와 기차는 교통카드로. 삼화고속은 2500원으로 가격이 내렸다. 고등학생들은 노약자석에 쉽게 앉고 호통을 쳐도 반응하지 않는다. 돌아오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실상 달라진 건 주위이고 나는 그대로이다. 나는 재사회화 중이다. 말년휴가 7일째, 정신없이 재사회화 중. 더보기
9월 18일 (D-8)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내 홈페이지에는 칙칙한 사진들이 잘 어울린다. 영선, 생일 축하해. 드디어 서른으로의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구면. 여러분, 우리 말에 '몽키다'란 동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가? 놀랍지! 더보기
9월 14일 (D-12) 이것은 알라딘에서 진행중인 " 구입시 타월 증정" 이벤트의 상품이다. 책은 아직 읽어 보지도 않고 타월에 신나서 사진 찍다가 같이 시킨 여행 안내서 의 뒷장이 심하게 구겨진 것을 보고 대 우울 모드 중. 나는 대부분의 공산품에 대해 대단히 관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책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구겨진 부분에 때가 탄 것으로 보아 접힌 것도 오래 전의 일인 것 같은데, 언젠가 가고 싶은 이상향 인도, 여행서라도 구입해서 꿈꿔야지 하고 주문했다가 그 꼴을 보는 내 기분이 어땠겠는가. 그것도 유명한 여행서 두 종류 중에 비싼 것으로 주문한 것인데. 소설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침울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보기
9월 11일 (D-15) 어, 드디어 보름 남았네. 아직도 실감은 안 나지만. 빨리 제대해야지. 군에 온 뒤로 쓴 일기들은 하나같이 재미가 없어. 더보기
9월 10일 (D-16)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이 왔다. 제대를 앞두고 맹렬 저축 생활 중이지만 책 사는 것만은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고 있다. 다만 멋진 말과는 달리 대부분 만화책. 어쩔 수 없었다. 그간 비싸서 보관함에 넣어 놓고 눈독만 들이고 있던 유럽만화들이 일제히 35% 세 일에 나선 것이다. 흑흑. 통장도둑 알라딘. 그래도 고맙다. 만화로 읽는 세계사 시리즈. 자본주의를 다룬 '돈의 왕', 권력을 다룬 '국가의 탄생', 환경 문제를 다룬 '검은 대륙'. 유럽 만화를 읽다 보면 일본 만화가 얼마나 가독성의 극한에 서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고작 사천원 돈의 에 대단히 만족했던 추리소설 할인 이벤트가 마감일에 당한 것을 발견 하고 고민고민하다가 확 사 버린 &#039.. 더보기
9월 8일 (D-18) 꼭 어제 쓰려고 했는데, 일이 겹쳐 사무실에는 들어오지 못 하는 바람에 적지 못했다. 스물 살 넘어 알게 된 사람들 중의 첫 출산 소식. 자연분만이라니 어쩐지 과연 앨답다. 2.8kg의 조카딸. 무엇이 되어 있을지, 네가 무엇이 될 쯤에 내가 살아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부디 건강하게 자라주길. 세상에 태어난 것을 환영한다. 더보기
9월 5일 -1 (D-21) 오늘 있었던 일이다. 요새의 근무는 저녁 여섯시부터 새벽 두시까지 순찰차를 타는 당직근무이다. 주간에도 평균적으로 200개에서 1000개의 112 신고가 떨어지는 일선과 달리, 소속된 인천 국제 공항경찰대로는 하루를 통 틀어 약 다섯개에서 열개의 신고가 떨어진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이름만 근무이지 그 실상은 쉬고 있는 반장들의 옆에서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보며 무전을 듣는 것이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고, 쉬면 쉴수록 더 쉬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 공항경찰대 의 직원들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선의 직원들보다 더 일을 피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기란 결코 어 려운 일이 아니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매일같이 백개가 넘는 사고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열개 더 처리하라는 무 전이 날아.. 더보기
9월 5일 -2 (D-21) 우리의 로체 순찰차는 어느새 페라리로 변신하여 대한민국의 저녁 일곱시 퇴근길에서 시속 80km의 속도로 사이렌을 울렸고 우리들은 마이애미 바이스가 되어 짙은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한손에 무전기를 든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많지 않은 검거경험이지만, 음주운전자나 수배범은 순찰차가 따라 붙으면 본능적으로 도망을 친다. 발견하고 나서도 약 십여분간 추격은 계속 되었고, 순찰차가 옆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경고방송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불안해진 탑승객들이 차를 세우라고 게세게 항의를 하고 나서야 운전자는 결국 버스를 갓길에 정차시켰다. 실례하겠습니다. 공항경찰대 수경 최대호입니다. 신고 내용이 있어서 잠시 음주측정하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생활상식을 공부해 보도록 하자. 개정 도로교통법 제 44조 음주운전 조항에 .. 더보기
9월 2일 (D-24) 며칠 안 되는 열외를 빼면, 이제 3주. 나갈 생각을 하고 있자면, 하고 싶은 일도 잔뜩, 하기 싫은 일도 잔뜩이다. 전설의 환자 재규어군이 퇴원하기 싫어서 막노동으로 병원비를 벌던 것이 기억난다. 더보기
26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열심히 살게요. 더보기
8월 26일 (D-31)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근래 10여년간 천문학계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로 다루어지던 '명왕성을 태양계 내의 행성으로 볼 것인가'의 답이 어제로 끝내 퇴출로 결정되고 말았다. 천문학도를 꿈꾸었 던 적도 있는 나로서는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기왕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왜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으로 인정할 수 없는지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문학계도 다른 기초과학계들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학설을 옹호하는 데에 있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네티즌들의 반응 중에는 기껏 외웠는데 다시 외워야 한다고 화를 내는 소리가 꽤 많았다. 그 사소하 며 비정치적인 지식마저도 기득권이랍시고 수호하려는 모습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태양계에 행성이 아홉개나 .. 더보기
8월 22일 (D-35) 군생활 마지막 외박의 첫 날. 줄기차게도 나왔던 외박이지만 항상 첫 외박처럼 반겨 주는 부모님이 고맙다. 하루만 서울 가서 애인 만나고 나머지는 조용히 집에서 요양하다 들어가련다. 집의 컴퓨터. 수백편의 일기를 쓴 이 자리에서 입대 전 마지막 일기를 쓰며 사람의 일이고 지나가는 시간이니 언젠가는 돌아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또 써 나가겠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평생에 손꼽을 만큼 실감나지 않는 일이었는데, 이제 한 달 남았다니. 신기하고 어이없고 그렇다. 더보기
8월 21일 (D-36) 길지 않은 미국행이지만 그 동안 수염을 길러 볼까 생각중이다. 단 한 번도 성공해 보지 못 했지만 이번이 아니면 언제 해보랴 싶어 큰 마음 먹고 있다. 다른 여러 가지, 더 늦으면 훨씬 어려워지는 것들에도 눈길을 줘 봤는데, 피어싱에는 별 매력을 못 느끼겠고 파마는 전속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수지네르 선생님의 콧방귀에 날아가 버렸다. 한 번 더 해 보고 싶었는데. 한참 연습중이겠군. 속해 있던 연극동아리 '연극과 인생'의 이번 가을 정기공연 작품이 '대머리 여가수'라고 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대학 입학해서 처음으로 출연했던 부조리극계의 간판마담. 선선해지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고 있노라면 이 또한 추억만발이다. 마음껏 연극을 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럽다. 더보기
8월 14일 (D-43) 사무실에서 밤새 야간근무를 하느라 시간이 많아 예전 일기를 다시 읽었다. 확실히 사진이나 그림이 많아야 재미있구나, 새삼 느꼈다. 얼른 제대하고 사진 많이 찍어야지. 사진은, 4년 전의 최대호. 더보기
8월 12일 (D-45) 부천 판타스틱, 자라섬 재즈, 펜타포트, 시카프, 군생활동안 몇번이나 놓친 여러 이벤트들을, 아깝기 는 했지만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속상한 적은 없었는데. 칸노 요코 여사가 방한하셨다는 말만으로도 넋이 나갈 정도였는데 며칠 후에는 무려 사인회를 여신 다고 하니. 흑흑. '저는 당신의 멜로디를 듣고 영혼이 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죽기 전에 일본어로 꼭 그렇게 전하고 싶었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일본에 가거나 요코 여사가 한국 에 오는 것은 절대로 없는 일이니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일본에 가는 것도 아 니고 그녀가 여기까지 와 줬는데. 배 타고 부산에서 내렸을리도 없고 영종공항으로 왔을텐데. 미안하오, 요코.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인가 보구려. 다음 생에서나 만.. 더보기
8월 11일 (D-46) 오늘은 공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평상복을 입고 있으면 그렇지 않지만 제복을 입고 있으면 길을 묻는 사람이 많다. 두명의 일본인이 '아노...'하며 말을 걸어 왔는데, 어머니로 보이는 일본인은 일본어 외에는 할 줄 몰라 나도 가만히 듣고만 있자 딸이 썩 괜찮은 영어로 말을 걸어 왔다. 일본인 가족으로 한국에 여행을 왔는데, 자신과 어머니는 JAL로 왔고, 동생들은 아시아나로 와서 출구가 달라 서로 찾지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공항 이용법을 알려 주고 사람 찾는 방송을 접수할 수 있는 안내 카운터까지 함께 가 주었는데, 아가씨는 다음 번에 출국할 때에도 혹여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렇게 써 놓으면 설마, 라고 생각.. 더보기
8월 10일 (D-47) 다시, 내무반이 없어진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동안만 일단 조용히 있자는 공무원의 촉각이 이제 슬슬 잠잠해지는 냄새를 맡은 것. 16일부터 나는 공항 어딘가의 쪽방에서 잠을 청하게 된다. 후임 여덟중 일곱이 날아갔다. 3개 중대에서 각각 두세명씩 파견을 받아 교통계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던 내 후임들이 그들의 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됨에 따라 원대복귀된 것이다. 전경은 보통 시설경비가 본업이지만, 의경이 줄어들면서 부득이하게 시위진압에도 동원되게 되었는데, 하필 내 후임들이 있는 세개 부대 중 두개가 상설시위진압부대로 선택되었다.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대원들이 09일 09시부로 원대복귀된다는 소식은 08일 19시에야 전해졌다. 그나마 전해진 것도 아니고, 내가 근무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 오는 길에 .. 더보기
8월 7일 (D-50) 알라딘 16만원. 후후. 불태웠어... 더보기
8월 5일 (D-52) 하루 면회외출을 끊어 남일병이 입원하고 있는 분당의 수도통합병원에 다녀왔다. 분당이 성남시 분 당구더구면. 난 어제까지 몰랐지 뭐야. 분당시인 줄 알았지. 피자와 닭을 시켜 먹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생각보다는 힘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놓였다. 실제론 힘든데 그렇지 않은 척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연기라면 연기를 할 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남일병, 이번 달 게임잡지는 좀 비싸서 못 샀어. 나중에 또 갈게. 분당에 가기 전에 아침에 집에 먼저 들렀었는데, 집에 들른 제일 큰 이유였던 주민등록 초본을 빼 먹고 지하철 역까지 가 버렸다. 막 부평행 지하철을 타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 에이 더워 에이 더워 를 연신 뱉어내며 집쪽으로 가는데, 전화를 받은 엄마는 집 근처에서 만나자.. 더보기
8월 3일 (D-54) 드디어, 경비계에서 전역증을 위한 주민등록 초본과 증명사진 두장을 준비하라는 전화가 왔다. 2년 다 채워 가면 당연히 해야 하는 몇가지 절차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래도 전역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정말로 제대 시켜주는구나. 뻥이 아니어서 고맙다. 뻥이면 나 정말 순찰차 에 수류탄 두르고 청와대 돌진한다. 그것도 무면허로. 주문한 책들이 왔다. 무수히도 언급하는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그나마 최신작, 상하. 2003 년 작이라는데, 어쩐지 만한 느낌이 안 난다. 상권의 반쯤 읽고 잠시 멈췄는데, 제발 꽉 찬 가슴으로 한숨을 뱉으며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길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춘추전국시대의 열국들 중 제나라의 팬. 50%세일에 혹해서 구입한 , 의외로 느낌이 좋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