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는 시작이 늦었다. 어영부영 점심을 먹고 나니 두세 시가 된 것이다. 놀기만 할 것이라면 하루가 많이 남았지만 명승지를 방문하기로 한 날이라 마음이 급해졌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교토의 절이나 신사 등은 대개 너댓 시가 되면 입장시간이 끝난다.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이차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교토국립박물관과 삼십삼간당에 가기로 했다.
시간에 쫓기기도 했고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도 해서 이 두 장소에 내가 찍은 사진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굳이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관광의 여러 요소 중에 '유물, 문화재를 보는 즐거움'에 한정해 말하자면 바로 이 두 장소의 관람이 시간과 노력 대비 최상급이었기 때문이다.
삼십삼간당三十三間堂은 이름 그대로의 건물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하나의 '간間'으로 볼때 서른세 개의 간이 있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당堂이다. 긴 변의 길이가 118미터라고 한다.
건물 자체가 일본의 국보라고도 하는데, 막상 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허리가 무척 긴 고양이를 보면 신기하긴 하지만 뭐가 됐든 고양이는 고양이다. 긴 건물이래도 결국 건물은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뭐가 있길래 호들갑이람, 하고 들어서면.
약 백여 미터에 걸쳐 늘어선 천 개의 천수관음千手觀音상이 기다리고 있다. 천수관음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갖고 있는 관음이다. 당연히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표현될 때 그 모습이 화려하고 역동적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손과 그 손마다 들고 있는 무기, 성물 등이 함께 묘사되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따르면 삼십삼간당의 천수관음은 각기 11면의 얼굴과 40개의 팔을 지녔다고 한다. 거기에 머리 뒤로는 오오라, 즉 광휘를 표현하는 화려한 조각이 추가되어 있다. 이런 천수관음이 자그마치 천 개다.
삼십삼간당에 들어섰을 때 나는 금각사를 보며 받았던 인상을 다시 떠올렸다. 천수관음을 조각하려면 손이 40개쯤은 될 수도 있다. 천수관음 천 개를 모아놓자면 그만큼 만들어서 모아놓으면 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을 실제로 하다니. 이렇게 거대한 호화로움을 사람이 이루어도 될 것인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선생님은 '놀라서 발을 떼기 힘들었다. 이래서들 관람객들이 모두 법당에 들어서면 멈추었던 것이구나!'라고 입장할 때의 충격을 표현했다. 나는 일본에 가기 전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문가들은 역시 반쯤 멋있고 반쯤 호들갑스러워 보인다, 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저것은 오히려 담백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됐다. 나는 천 개의 천수관음이 시야로 일제히 뛰어들오는 순간에 그 자리에 서서 으으으아...하고 길고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천수관음 떼의 앞으로는 천수관음을 수호하는 28개의 신상이 서있다. 이 또한 하나하나가 대단한 작품들이다. 인도 신화나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자체로 감상의 재미가 있는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한층 더 큰 감흥을 받았던 것은,
천수관음 떼의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을 장식하고 있는 풍신과 뇌신의 조각상이다. 바람과 번개의 신이라면 특별히 농경 사회부터의 신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이전부터 커다란 힘을 가진 자연 현상으로서 인간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신격화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말하자면 '오래된 신'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새로운 종교와 융합하고 또 생생한 캐릭터성까지 갖추었다는 것이 놀랍다. '때리면 번개가 나오는 북'이나 '바람을 담은 주머니'는 오늘날에 보아도 대단히 강력하고 또 매력적인 장치들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떠나서, 무엇보다, 박력이 있다. 생동감 있는 표정과 세밀하게 표현된 근육 등이 강한 이미지로 뭉뚱그려져서 눈 안으로 돌진해 온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마침 비가 와서 어둑어둑해져 있어서 그 낯섦과 괴이함이 한층 더했다.
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길흉 뽑기, 오미쿠지おみくじ가 있었다. 한 판에 100엔. 뽑기라면 환장한다. 냉큼 도전.
기운을 넣어서 뽑으면 좋은 것이 나올까.
결과는 중길中吉이올시다.
중길이니까 중간쯤 되겠지 뭐 하고 생각했는데 영어로 된 해설을 보니 6등급 중에 2등급! 나는 신이 났다.
대길
중길
길
소길
말길
흉
의 순이다. 영화 등에서 보았던 대흉大凶같은 것은 없었다.
삼십삼간당을 관람하는 데 시간이 또 들어갔으니 엇샤엇샤 뛰어서 길 하나 건너 교토국립박물관으로 간다. 사진의 박물관이 기존의 건물이고 왼편으로 새로 지은 현대식 박물관이 하나 더 있다. 나는 현대식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은 총 3층으로 되어있었는데 문화재의 장르별, 작품의 소재별로 나누어져 있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입장은 했지만 폐관인 다섯 시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 나는 '조각상'과 '칼' 위주로 관람을 했다. 특히 조각상은 크기가 무척 커서 보는 맛이 있었고, 또 조각상 사이에 공간을 넉넉하게 비워 두어서 찬찬히 하나씩 관람하기가 좋았다.
그 중에서도 한참 동안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것은 이 입상이다. 이 입상의 얼굴 부분만 찍어놓은 사진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니 본 분도 꽤 있을 것이다. 원래의 얼굴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똑같이 생긴 얼굴이 새로이 솟아나는 이 기괴한 광경.
입상 밑에는 이 조각에 얽힌 출전이 적혀 있었는데 일본어라 떠듬떠듬만 읽을 수 있었다. 후에 간단히 조사해본 바로는 다음과 같다.
이 입상의 주인공은 지공志公, 혹은 지공誌公선사이다. 법명은 보지寶志 또는 보지保志, 보지保誌로 418년에 태어나 514년까지 살았던 남조 시대의 스님이다. 높은 식견으로 양梁의 무제武帝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갈라지는 얼굴'에 얽힌 이야기는 크게 갈라 두 버전이 있다. 일단 무제가 양의 궁정에서 그림을 담당하였던 이름난 화가 장승요張僧繇를 불러 지공의 초상을 그리도록 하였다는 '상황설정'과 갈라진 얼굴에서 새로 돋아난 것은 십이면관음의 얼굴이라는 '결과'는 동일하다. 얼굴이 왜 갈라졌는지에 대한 내용이 각기 다르다. 두가지를 각각 적어 보자면.
- 그림을 그리기 전에 지공이 먼저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자 얼굴이 갈라지며 십이면관음의 얼굴을 내보였다. (이것은 자신의 진면목을 그려달라는 지공의 요청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장승요는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지공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지공이 벌떡 일어나 칼로 그림의 한가운데를 갈랐다. 그 아래에서 십이면관음의 얼굴이 돋아났다. (이것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 화가의 '잘못'을 깨우쳐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이 됐든 사람 안에 그 사람의 얼굴을 한 관음이 있다는 메시지는 동일한 셈이다. 메시지로만 놓고 보면 특별히 별다를 것은 없는데 그것을 문자 그대로 표현해 놓고 보니 이렇게나 충격적이다. '기괴하고 낯선 묘사를 통해 충격을 주고 나아가 메시지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천 년도 훨씬 지난 뒤에 성립되는 예술 이론은 이미 오래 전에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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