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여행기의 제목에서, 맨 앞에 붙이는 숫자는 일차이다. 그러니까 5라고 붙어 있으면 5일차인 셈이다. 그 날 하루의 일을 하나의 기사에 다 쓰기 곤란할 때에는 -를 붙여 구분하기로 한다. 5-1이면 5일차에 있었던 여러개의 일기거리 중 첫번째 묶음이다.
오사카 소풍의 둘째 날이었던 4일차에는 시내를 좀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교토에 돌아와 쉬었다. 짧은 일정으로 모르는 도시에 가고 또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공연을 보고 해서 지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충전하고, 5일차에는 본격적 탐방 시작. 오전부터 저녁까지는 '교토는 정사각형'에서 오른쪽 윗변에 해당하는 금각사 라인을 돌아보기로 했다. 교토에는 수백 개의 절이 있다지만 그래도 그 가운데 좀 더 유명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천박한 비유이긴 하나, 버스로 약 삼십 분 정도의 거리인 이 라인에는 A급에서 S급 사이에 속하는 절이 네 곳이나 있다. 대덕사(다이도쿠지) - 금각사(킨카쿠지) - 용안사(료안지) - 인화사(닌나지)이다. 인화사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에, 다른 세 절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권에 소개되어 있다.
위 사진은 교토대학 버스정류장에서. 아날로그 느낌이 나는 표지판이 재미있어 찍어보았다. 여행을 마칠 무렵에는 몇 군데의 정류장에서 우리나라처럼 디지털식 표지판으로 교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토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귀인이라면 역시 이 프리 패스 사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은 대중교통 비용이 무척 높다. (하기사 특별히 일본이 높다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대중교통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이상하게 낮긴 하다.) 1회 탑승의 기본 요금이 230엔, 약 2000원 꼴이고 거리가 늘어나면 추가 비용을 내며 환승시에는 다시 계산을 해야 한다.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한 차례 환승을 했다면 최소한 4500원이 날아가는 셈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것까지 계산하면 버스만 탔을 뿐인데 9000원을 쓴 셈이다.
하지만 한 장에 500엔, 그러니까 4500원 정도 하는 이 프리 패스를 한 장 사면 하루 종일 얼마든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카드는 길가의 가게나 여행객이 묵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버스에서 기사님이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가이드북을 보면 기사님이 들고 나오는 카드의 양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오전에 미리 구입해 두라는 충고를 볼 수 있는데, 나는 비성수기-준성수기 기간에 간 탓인지 저녁에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망가'의 나라 일본답게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주머니에서 꺼낼 때마다 기분이 좋았던 이 카드. 내가 있었던 때에는 버스는 버스만의 프리 패스가, 지하철에는 지하철만의 프리 패스가 따로 있었는데 2014년 12월 24일부터는 통합되었다고 한다. 교토 여행이 한층 더 편리해진 셈이다.
처음 찾은 곳은 대덕사(다이도쿠지). 1315년에 지어진 절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22만 평에 달했고 지금도 6만 평 정도의 부지를 갖고 있다 한다.
그래서인지 입구 근처에서 띄엄띄엄 볼 수 있던 인적은, 대덕사 내로 들어가 내 발길 가는대로 걷다 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해가 번쩍 뜬 대낮이지만 길 저편에서 요괴가 걸어오며 '오하-요'하고 인사하며 지나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괴이한 분위기.
대덕사에는 오래 있지 않았다. 너무 넓어서 지치거나 아니면 이후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야 대덕사의 정원이라면 큼직한 거 하나 있는 것인 줄 알았지, 어디 우리네 기왓집 하나 만하게 따로따로 떼어놓고 다른 정원이라고 부를 줄 알았겠나. 그리고는 한 정원 당 500엔에서 800엔 정도를 받으니, 이 참에 일본 정원 문화를 좀 볼까 하고 여남은 개 돌았다가는 거지 꼴을 못 면한다.
가치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 가운데 2014년 가을 시즌에만 특별히 공개한다는 '황매원黃梅院', 그러니까 '노란 매화가 핀 정원'을 골라 들어가 보았는데, 과연 일본만의 독특한 정원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한 공간 안에 사시사철과 삼라만상의 상징물을 집요하게 배치하고, 미로처럼 생긴 통로로 그 공간을 둘러싸서, 내방자는 통로를 따라 가만히 걷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아도 내용물이 꽉 차 있는 정원을 방향을 바꾸어가며 몇 차례고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나는 처음에는 참 관리가 잘 됐다, 예쁘다,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하다가 어느 정도 걷다가는 그 치밀함과 집요함에 좀 질렸고, 출구를 나오면서는 도저히 못 당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후로 나는 정원 뿐 아니라 교토의 전통 문화 곳곳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자갈로 표현해 놓은 심상.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바라보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겠지만 오랜만에 홀로 간 여행이라 나는 사실 좀 심심했다.
심심해서 꺼내들은 플라잉 타이거 콧수염과 정지용 코스프레 동글백이 안경. 나는 원래 이렇게 입고 쓰는 외국인이라오 연기 시작.
연기 시작 십여 분 만에 입질이 왔다. 대덕사 다음의 목표지인 금각사(킨카쿠지) 앞 건널목.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한 무리의 여성 여행자들이 까르르 웃으며 기웃거리다가 결국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왔다. 얼마든지.
금각사 올라가는 길의 기념품 가게에서. 작은 소리나 옅은 빛에도 잠에서 잘 깨는 나는, 가능한 한 잠자리 옆에 귀마개와 안대를 구비해 놓는다. 필요한 물건이라 그리 해놓은 것 뿐으로 특별히 좋아하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요런 안대라면 수집을 해도 좋겠다, 라고,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한다.
오호라.
새해가 되면 교토의 다섯 장소에서 '큰 대大'자나 '배 선船'자 모양의 불길을 피워올린다고 했겠다. 저것이 그 '대大'자인 모양이로구나. 생각해 보면 그것도 참 재미있는 문화 현상이다.
아무리 짧은 일정이라도 교토 여행 코스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금각사', 이 금각사의 본래 명칭은 '녹원사'이다. 표지판에도 '녹원사, 통칭 금각사'라고 써져 있다.
금각사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와 함께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인 <금각사>의 배경으로도 유명하고, 스스로 갖는 미학적 특성으로도 유명하다.
건물들의 영리한 배치나 잘 조림된 숲도 인상적이지만, 금각사를 금각사로 만드는 것은 역시 호수 위에 떠있는 모양의 금각이다. 조금 호사스럽긴 하지만 호수를 끼고 전각을 짓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소 어렵긴 했겠지만 금박을 입히는 것도 정성을 쏟으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불가능한 구석은 전혀 없지만, 그것이 합쳐져 나타나는 저 형상은 참으로 괴이하다. 저런 것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싹하게 매혹적이기도 하고, 천박할 정도로 불경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한참 쳐다보고 있자니 복잡한 마음만 들어서 발길을 돌렸다. 정말 아름답지만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두 번은 안 올 것 같다, 생각하다가도, 교토 사람들은 눈이 오면 금각사로 뛰어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금박 위로 하얀 눈이 쌓인 모습이라면 홀려서 호수에 빠지는 일이 있더라도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요검妖劍을 본 검객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일본 만화를 잘못 본 탓인지, 나는 일본의 중고생이라면 모두 치마도 엄청나게 짧고 화장도 진하고 뭐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여행 중 만난 교토의 중고생과 교토로 수학여행을 온 중고생들은 나 어릴 적인 80년대 초반에도 볼 수 없었던 모범생 패션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히 신경쓰지 않은 머리와, 멋을 내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래입기 위해 크게 맞춰입은 듯한 헐렁한 교복이 특징적이었다. 비싼 농구화나 구두를 신은 학생도 거의 보지 못했다. 저렇게 입혀놓았을 때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구나...같은 생각을 하다가 수염을 붙인 탓에 노티 나는 혼잣말을 한 것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들어갔던 정문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들어갈 때엔 안 보였는데, 그 짧은 사이에 여기저기 찬찬히 둘러보는 습관이 든 눈으로 보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이것은 말 주차장. 그러니까 지금에는 아무런 실용성이 없는 땅이다. 우리 같으면 악착스럽게 매표소를 세우든지 아니면 밀어버리고 주차장을 세우든지 했을 공간일텐데. 물론 부지가 넓은 절이니 있던 걸 그대로 놓아둔 것뿐일 수도 있겠지마는. 아무튼 나는 다시 한번 세심함과 집요함을 느꼈다.
대덕사, 금각사에 이어 용안사로 가는 길. 대덕사에서 금각사까지 버스로 얼마 안 걸렸기에, 이번엔 날씨도 좋은데 걸어가볼까 싶어 걸어서는 얼마나 걸릴지 지나가는 커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둘은 영어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별 도움은 안 됐지만, 사이좋게 기모노를 맞춰입고 나온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더듬더듬 일본어 실력으로 알아들은 것은, '저희는 스무살이예요'와 '(수염은) 진짜인가요'였다.
세번째로 간 곳은 용안사(료안지). 용안사에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권의 표지 사진으로 쓰인 석정(石庭), 즉 돌로 만든 뜰이 있다. 교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책이나 프로그램 등에서 한차례 정도는 보았을 명물이다. 이 뜰에는 다른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꽃, 혹은 작은 시내 등은 없고 오로지 큰 돌 열다섯 개와 그 사이를 채운 흰 자갈만을 볼 수 있다. 이 풍경이 오히려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뜰 뒷쪽에는 재미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사진의 위쪽에 보이는 엽전 모양의 작은 우물은 '쓰쿠바이'라고 해서, 다도를 하는 다실에 입실하기 전에 손을 씻는 곳이라 한다. 그뿐이라면 우리네 고급 요리 먹기 전에 나오는 물수건과 다를 바가 없겠지만 거기에 쓰인 글씨가 재미있다.
가운데에 물이 담긴 입 구口자가 있고 사방으로 글씨가 덧붙었는데, 하나하나가 그 입 구口자를 포함하고 있는 글씨들이다. 이를테면 위쪽에 새겨진 '다섯 오五'는 다섯 오五로 읽지 않고 밑의 '입 구口'를 합쳐서 '나 오吾'로 읽는다. 같은 원리로 왼쪽의 '화살 시矢'는 화살 시矢로 읽지 않고 오른쪽의 '입 구口'를 합쳐서 '알 지知'로 읽는다.
이렇게 하나씩 풀면 전체 문장은 '오유지족(吾唯知足)', 즉 '나는 다만 충족함을 알 뿐이다'가 된다. 그냥 '입 구口자' 들어가는 글자 가져다가 잘 끼워맞췄네,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건 사실 석가모니의 말이다. 노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돌 뜰로 들어가는 길에는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은 돌 뜰이 있다. 들어가기 전에 한 차례 꼼꼼히 살펴보고, 들어갔다 나와서 다시 한 번 쳐다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나는 사실 미니어처 쪽이 더 재미있었다.
아이폰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억지로나마 찍어본 돌 뜰. 여기야 뭐 인터넷에 멋진 사진 많이 나와있고 조금만 발품 팔면 다큐멘터리 등도 쉽게 볼 수 있으니. 예술 까막눈으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에서 우주를 느꼈네 어쩌네 하는 것은 서양인들의 호들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쓰쿠바이. 생각보다 너무 작고, 지나면서 눈을 돌리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더라면 눈에 띄더라도 별 신경쓰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옛날 아저씨들 설겆이하던 데인가봐, 하고.
단풍잎에 가려 있고 물때가 끼어있는 모양이 오히려 더 고적해서 나는 좋았다. 그 앞에 서서 책을 뒤적거리거나 사진을 찍고 있자니 뭐라도 있나 하고 다른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통에 물러났다.
수학여행 중인 일본 학생들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용안사 경내의 훌륭한 산책로 한켠에는 여러 생각이 드는 비석과 탑이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대동아전 비루마 방면 전몰자 위령지비'이다. 대동아전은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 마지막 전쟁으로, 우리는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른다. 비루마는 지금의 미얀마의 옛 이름이다. 말하자면 이 비석은 태평양전쟁 시기 버마를 침략했던 일본군 전사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념물이다.
비석의 옆으로는 엎어놓은 차임벨처럼 생긴 기념탑이 있다. 나라가 끌고간 전쟁서 죽은 젊은이들의 영혼, 위로해 줄 수도 있는거지, 싶다가. 그런데 그 중에는 조선인들 못살게 굴던 군인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싶다가. 나는 조선 사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인데, 싶다가. 이걸 우리나라에 세운 것도 아니고 저희 나라에 작게 세워놓은 건데 뭐라고 할 것까지 있나, 싶다가. 문득 울컥해서 오줌이라도 갈기고 싶다가. 아무튼 당대의 일왕과 군부 너네가 나빠.
조금 걷고 있자니 이번에는 학생들이 먼저 사진을 찍자고 청해온다. 수염 붙인 사진은 충분히 찍었기에 이번에는 맨얼굴로 찍으려고 수염을 떼어내니 끼-약 하고 소리를 지르며 깔깔댄다. 진짜 수염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늙은 인솔교사가 까까머리 중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 저 아이들은 이 사진이 얼만큼의 의미를 갖는 일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왠지 뭉클한 기분이 들어 그 모습을 찍어보았다. 그 사이 수염을 다시 붙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내 쪽을 흘끗거렸다. 플라잉 타이거에 가 얘들아.
그리고 마지막 방문지인 인화사(닌나지) 가는 길.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했다. 가을-겨울이 되면 교토의 절들은 네 시 경부터 폐관을 시작한다. 엇샤엇샤 발길을 서두르는 와중에도 잠시 멈추어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던 장면.
인도에 갔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나는 종교가 없는데, 다른 종교의 상징물에 비해 불상은 오래 쳐다보고 있고 싶은 매력이 특출나다. 개인적인 인상이다.
쭉 걸어가니 인화사의 옆문. 폐관 시간이 멀지 않아, 정문은 나올 때에 들르기로 했다.
인화사의 삼문. 지은원(지온인)과 남선사(난젠지)의 삼문과 더불어 교토 3대 삼문으로 불리운다 한다. 아무튼 나올 때 다시 볼 터이니 지금은 패스.
인화사는 왕실의 사찰로 유명하지만 흐드러지는 벚꽃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사진의 앙상한 나무들이 모두 벚나무들이다. 나무가지 사이로 인화사의 명물 중 하나인 오중탑이 보인다.
오중탑. 탄탄하면서도 활동적인 인상을 받는다.
한켠에 마련된 부동명왕不動明王의 신전. 요것도 참 재미있다.
거칠게 설명하자면, 부동명왕은 힌두교의 시바 신을 불교에서 습합한 것이다. 시바는 힌두 교의 3대 신 중 한 명으로, 창조의 브라흐만, 유지의 비슈누에 이어 파괴의 역할을 맡고 있다. 단 이때의 파괴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파괴이기 때문에 나쁜 신은 아니다. 나쁜 신은 커녕 악인을 멸하는 정의로움과 뛰어난 전투력, 그리고 왕성한 생식력 등으로 가장 사랑받는 신 중 하나다.
부동명왕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러한 시바의 몇몇 특성을 보존하고 있다. 악인을 멸하는 점,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점, 불길에 휩싸여있는 점 등이 그러하다. 주로 전투적인 면이 부각되어 있는 셈이다. 이런 부동명왕을 섬기는 신전을, 교토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불교에서 인자한 신격 존재들이 주로 숭앙받는 것에 비하면 재미있는 차이이다.
다소 조야하게 표현된 조각상에서도 꼿꼿이 선 자세, 손에 든 몽둥이, 부루퉁한 표정 등의 호전적인 특징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오층탑의 자태가 마음에 들어, 나오는 길에 한 장 더. 일기에 다 올릴 수 없어 한 장만 올리지만 사실은 여기서 수십 장 찍고 놀았다.
경내에 안내방송이 울려퍼진다. '시간'이나 '내일' 등의 단어 정도만 알아듣겠지만 아무튼 폐관 시간 다 됐으니 나가라는 말인 것 같다. 또 한 무리의 수학여행 학생들과 문 쪽으로 향한다.
돌아보니 어느새 조각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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