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遊記/2014 교토

6. 자체 정비

 

 

 

 

6일차.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우비가 내린다. 전날 빨아서 밖에 널어놓은 빨래는 모두 잘 젖어 있었다.

 

 

 

 

 

 

 

 

마지막까지도 항상 신기했던 풍경. 교토에서 본 일본인들은 정말로 남과 녀, 노와 소를 막론하고 자전거를 엄청나게 잘 탄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는 것은 노상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나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한 손에 우산 들고 한 손으로 샌드위치를 먹는다든지, 한 손에 아이팟을 들고 다른 손으로 맥주를 마신다든지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자전거를 잘 탄다기보다는 생에 대한 애착이 적은 편이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방으로 돌아가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봤다. '지구호'의 도미토리 룸은 17인실이다. 인도 여행을 할 때에도 이 정도 크기의 도미토리 룸은 본 적이 없다.

 

 

 

 

 

 

 

 

밤마다 책도 읽고 여행기도 좀 쓰고 싶은 마음에 내내 싱글 룸을 잡고 싶었지만, 여행 계획을 급하게 세우느라 싱글 룸이 다 차있던 탓에 17일 중 전반의 반 정도는 이 도미토리 룸에서 지내게 됐다.

 

가격만 놓고 말하자면 말이 안된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총 네 군데의 숙소에 머물렀는데, 위 사진의 17인실 도미토리 룸이 2500엔, 2층 침대를 나 혼자 쓸 수 있는 작은 싱글 룸이 3000엔, 둘이서 넉넉하게 쓸 수 있는 일본식 다다미 룸이 3500엔, 그리고 이불방과 테라스까지 딸려 있으며 남자 넷이 써도 좋을 것 같은 넓은 다다미 룸은 4000엔에서 4500엔 사이 정도였다.

 

 

 

 

 

 

 

 

가성비 외에도 도미토리의 큰 단점이라면 난방 문제를 들 수 있겠다.

 

교토의 온도가 서울보다 5도에서 10도 가량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주택, 혹은 게스트하우스는 우리처럼 실내 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일본영화의 주인공들이 집에서도 옷을 껴입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보다. 검소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와 달리 강력한 난방시설이 없어도 대충 버틸 수 있을만큼만 춥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통유리가 달려 있어 외풍이 슝슝 부는 17인실 큰 방에 에어콘 겸용 히터 한 대가 전부였으니 한국에서도 안 신던 수면양말을 꺼내어 신은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집에서는 되도록 적게 입는 것이 최씨의 가풍인데 반팔 티셔츠 위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후드티까지 입고 자야 했었다. 그러고도 추워서 쪼그려 자는 통에, 일고여덟 시간씩 자고 일어나도 몸이 뻐근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나는 큰 불만이 없었다. 여러사람이 들고 나는 통에 북적북적해서 재미있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이었다. 매일 밤 자정이 되면 누구 하나쯤은 주전부리를 들고 들어왔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내가 나가서 맥주를 사왔다. 그리고 4, 5인실이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분을 살폈어야 할텐데 아예 확 넓어버리니까 신경쓸 것이 적어서 좋았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노는 것이 시끄럽다면 저 - 멀리 구석 쪽의 침대로 짐을 옮기고 자면 된다. (그리고 뭐라고뭐라고 하더라도 '지구호'는 앞에 '무라야'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이 끝난 상태였다.)

 

 

 

 

 

 

 

 

빨래를 다시 돌려놓고 산책을 나섰다. 교토대학 인근 뿐 아니라 교토 전체에는 작은 크기의 서점과 고서점이 많아서 그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와중 한 가판대에서 아직도 표지에 당당히 실린 손오공과 해후. '드라곤의 비밀'이라는 제목을 단, 손바닥 크기의 해적판으로 처음 만난 것이 이렁구렁 이십수 년 전의 일이다. 이 만화책을 처음 보던 때의 나는 그만한 시간이 지난 뒤 일본에서 그 만화를 다시 보게 될 줄 상상이나 할 수 잇었을까. 이십수 년이라는 시간이 얼만큼의 시간인지, 아니, 시간이고 자시고 간에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을 것 같다. 무상하구나.

 

 

 

 

 

 

 

 

하다가. 무상하다고 생각할 나이가 전혀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엔 아직 보아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산처럼 많고나.

 

 

 

 

 

 

 

걷다가 배가 고파 교토대의 학생회관 식당에 들어가봤다. 한국의 여느 카페테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일본에서 지내면서 이런 점은 좀 서운하다. 닮은 데가 너무 많아서 편리하긴 하지만 재미가 없다.

 

 

 

 

 

 

 

 

메인 요리와 반찬을 집어다가 함께 계산하는 부페식이다.

 

 

 

 

 

 

 

 

카레라이스와 사라다, 감자 고로케. 4,500원 정도 나왔다. 나는 음식의 맛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고 먹는 편인데, 이후로도 두어 차례 더 이용했던 경험을 종합하여 말하자면, 교토대 학생 식당의 음식은 분명히 맛이 없다.  

 

 

 

 

 

 

 

 

식사를 한 뒤 소화시킬 겸 해서 은각사 앞까지 걸어갔다 오고,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동네의 몇 군데의 고서점을 뒤졌다. 고서점에는 옛날 책뿐 아니라 옛날 차표와 엽서 등도 함께 팔고 있어 무척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서점에서 마침내 원하던 책을 사고 밖으로 나와보니 해가 넘어가는 늦은 오후가 되어 있었다. 무리하면 한두 군데의 관광지는 갈 수 있었지만 교토에 도착한 뒤로 푹 쉰 적이 없어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하루 자체 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젖은 빨래를 다시 빨아 널고, 앞으로 방문해야 할 곳들의 정보를 찾으며 밤시간을 보냈다. 틈을 타, 고서점에서 산 엽서에 철학의 길에서 보았던 니시다 기타로의 말도 옮겨 써보았다.

 

 

 

 

 

 

 

어느 고서점에서는 금각사를 멋지게 그린 엽서가 있었다. 사기엔 너무 비싸서 사진으로 찍어다가 따라 그려봤다.

 

 

 

 

 

'遊記 > 2014 교토'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 청수사  (0) 2015.04.01
7-1. 삼십삼간당, 교토국립박물관  (0) 2015.01.31
5-2. 도시샤의 두 시비  (0) 2015.01.31
5-1. 금각사 라인  (0) 2015.01.26
3. 오사카 1일차  (0) 2015.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