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갈 곳은 남한강자전거길의 진짜 출발점인 충주댐 인증센터. 탄금대 인증센터에서는 11km가 조금 넘는다.
남한강을 끼고 달리는 것이라 길 잃을 염려가 없어 좋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멍 때리며 달리다가 갑자기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아니 여기 인도야 뭐야. 아무리 자전
거 도로라지만.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길 옆은 굉장한 경사였는데, 무술 공원 인근에 사는 흑염소들답게 마치 산양처럼 펄
쩍펄쩍 뛰면서 내려가 버렸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은 충주탄금대 - 충주댐 구간을 달리며 내가 받았던 인상을 잘 담은 한 컷이다. 남한
강의 풍경 수려하고, 인근을 둘러싼 위락시설, 운동시설 또한 수준급이다. 그런데 도무지 사람이 없다! 평일 대
낮이니 자전거 도로에 자전거 없는 것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캠핑장, 바베큐장, 게이트볼장,
심지어 활터까지, 잔디 곱게 깔린 너른 벌판에 좋은 시설들 가득가득한데 새 한 마리 안 날아다닌다. 그 고요하
고 한적한 분위기에 나는 뜬금없이, 이래서 충청도가 양반 동네구나, 라고 뇌까렸다.
사진 오른쪽. 너무 작아 잘 안 뵈지만, 달려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전쟁통에 헤어졌던 피붙이 만나듯 반갑게 여기
셨을, '몇 m 남았습니다' 게시판.
충주댐에 올라가는 길은 꽤 심한 경사이다. 적어도 이때까지의 종주 중에서는 가장 심한 경사였기 때문에 나는
나중에 일기에 이 얘기 꼭 써 넣어야지 하고 따로 메모까지 했다. 이제 막 시작된 남한강자전거길에서 이 정도
경사까지 일일이 메모를 했다간 정말이지 잉크 낭비인 줄을 아직은 모르고.
아침 나절에 출발하긴 했지만 집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한 시간 반, 그리고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약 두 시간
정도 걸렸기 때문에 충주에 도착한 뒤 한 시간 정도 달리자 점심 때가 됐다. 새벽에 밥을 먹고 출발한 터라 배가
고팠다. 달리는 도중에 혹 시내를 지나가게 되면 편의점에서 간단한 걸 먹을까 생각하다가 자전거의 계기판을
보니 어찌 된 일인지 배터리가 다섯 칸 중 세 칸이나 닳아 있었다. 서울 시내였다면 두 칸, 재수가 좋다면 한 칸
정도나 닳았을 법한 거리였는데 심한 경사를 오른 탓이었을까. 아무튼 이 날에는 아무리 빨라도 아홉 시간 정도
는 더 탈 생각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차고 앉아 밥을 먹으며 충전하기로 했다. 마침 충주댐 올라가는 길에 눈여
겨 보았던 '가든'이 있어 자전거를 댔다.
1박 2일 여행을 떠나며 아이폰과 전기 자전거 배터리의 충전기를 가지고 갔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잘 아시겠지
만 아이폰의 충전기는 접촉 불량이 잦은 편이다. 대체로 집에서만 곱게 충전하는 나도 벌써 두 번이나 새 충전기
를 구입해야 했다. 그런 판에 자전거 뒤에 싣고 덜컹거리며 달렸다간 고장날 것이 뻔해서, 두꺼운 종이 박스에
충전기들을 넣어 갔다.
메뉴 중에 가장 싼 것이었던 숭어회덮밥. 숭어 몇 쪽 올려놓고 8000원. 넓은 식당에 앉아 밥 먹고 쉬면서 충전까
지 한다고 좋게 생각해야지, 서울에서 내 돈 주고 먹었으면 너무 분해서 일기를 쓸 것 같은 가격이었다.
그나마 흡족했던 것은 멀겋긴 하지만 매운탕이 같이 나와주었던 것. 혼자 살며 밥해 먹고 다니면 정말 해먹기 어
려운 것이 탕 종류이다. 개인적인 만족도로 보자면 숭어회덮밥에 매운탕 서비스가 아니라 매운탕 정식에 숭어회
몇 점이 반찬으로 나온 격이었다. 먼 훗날에 이 일기를 읽을 때쯤엔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 국
무총리 지명자의 코미디 같은 언행이 종편 채널에 나오는 중이라 입도 즐겁게 눈도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로 향한다.
이제 가야할 곳은 지금까지의 단일 구간 중에는 가장 긴 구간인 충주댐 - 비내섬 구간. 위의 지도에서 '충주시'
글씨 위의 숫자 '19'가 탄금대 언저리이다. 말인즉 남한강을 끼고 달려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밟아 돌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배도 부르고, 가면 가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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