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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3. 4대강 북한강자전거길 - 끝이 좋으면 다 좋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되어버려서 3구간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배터리가 있었더라도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라

 

여러 장의 사진을 찍지는 못했을 것이다.

 

 

 

3구간은 4차선 차도 옆을 지나는 길과, 한적한 밭과 강변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도 옆을

 

지날 때엔 전방에서 내 쪽으로 연이어 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밭과 강변 사이를

 

지날 때엔 말 그대로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나올까 무서운 것은 둘째치고 나는 전방 플래쉬를 달

 

지 않고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이 날 실감했다. 앞으로는 잘 챙기든지, 안 챙겼으면

 

달리질 말든지, 아니면 근처에서 싸구려라도 얼른 구입해서 달고 타든지 해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했다.

 

 

 

시간은 이미 밤 열 시 남짓. 총 15km 중에 4-5km가 남았을 즈음 전후방 플래쉬를 빵빵하게 터뜨리는 3인조의

 

라이더가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이 사람들을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허벅지가 터져라 그 뒤를 쫓았다. 3명

 

중 2명은 선수급인지 일찌감치 멀어져 버렸지만 맨 끝에 있던 한 사람만은 따라잡을만 해서, 그의 플래쉬가 오

 

가는 방향으로 커브를 짐작하며 열심히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운길산 역. 다행히 마지막 거점인 밝은광장 인증센터는 운길산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

 

다. 만약 춘천역과 신매대교 인증센터 사이처럼 몇 km가 떨어져 있었더라면 나는 운길산 역에서 멈출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그런 상황이었다면 멈추는 편이 현명

 

선택이었다.) 

 

 

 

인증센터 인근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저 멀리의 가로등 불빛으로 사물의 윤곽 정도는 알 수 있었기에 더듬더듬

 

해서 도장을 찍고 다시 운길산역으로 향했다.

 

 

 

 

 

 

 

 

 

운길산 역 내는 텅텅 비어 있었다. 운행 시간표를 보니 서울 방향으로 가는 다음 차가 오기까지 약 30분이 남아

 

있어, 역 구석의 전기 포트를 찾아내어 휴대폰과 자전거 배터리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공공시설에서도 이런 식

 

으로 충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고맙습니다.

 

 

 

 

  

 

 

 

 

바닥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방금 찍은 도장을 확인해봤다. 왼쪽 맨 아래가 밝은광장 인증센터의 도장 찍는 부분이다. 마지막 거점에 오기 전

 

다른 거점을 들르며 북한강자전거길의 도장들은 아라자전거길이나 한강종주자전거길의 도장에 비해 마모가 심

 

한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마지막 밝은광장 인증센터에서도 어두운 가운데 도장을 두 번 찍었다.

 

 

 

 

 

 

 

 

 

유인 인증센터가 연 시간에만 도착했어도 첫번째 종주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지난 번에 완주한 아라자

 

전거길은 너무 짧아서인지 스티커가 없고, 한강종주자전거길은 서울 내의 한강 거점들 뿐만 아니라 충주까지 이

 

어지는 거점을 모두 찍어야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첫번째 스티커는 북한강자전거길로 결정되어 있던 셈이다.

 

게다가 남양주 - 춘천 방향으로 간 사람이라면 다시 남양주로 돌아와서 스티커를 받아야 하지만 춘천 - 남양주

 

방향이었던 나는 마지막 도장을 찍음과 동시에 스티커도 착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이미 인증 도장을 다 받았다면 꼭 오늘이 아니라도 다음 번에 아무 유인 인증센터에서나 스티커를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유인 인증센터는 여섯 시에 닫는 판에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나는 그렇게 아깝지도 않았

 

다.

 

 

 

 

 

 

 

 

 

개구쟁이 인증 무르팍.

 

 

 

 

 

 

 

 

 

고생 많았다. 집에 가자.

 

 

 

 

 

 

 

 

 

시간이 이미 한밤중이 다 됐고 차를 기다릴 때에도 혼자였기 때문에 꼬리칸에 자전거는 내 자전거 한 대일줄 알

 

았는데, 차량에 타 보니 나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던 것인지 춘천 쪽에서 오는 라이더들이 꽤 있었다. 사람이 별

 

로 없을 때엔 그렇게들 하는 암묵적인 관습이 있는 것일까? 라이더들은 차량의 앞뒤로 자전거를 몰아놓지 않고

 

각자 일반 좌석을 서너 칸씩 차지하고는 자전거를 기대어두고 있었다. 좀 무례한 것 같은데, 하기사 사람 없는데

 

아무렴 어떤가, 고민을 하던 나도 눈치를 보며 따라해 봤다. 편하긴 엄청 편하더구먼.   

 

 

 

 

 

 

 

 

 

자전거를 이젤 삼아 수첩에 그림을 그리며 간다. 이 날 책 몇 권 안 들고 온 걸 몇 번이나 후회를 했는지. 다음 번

 

에 다른 코스로 갈 때에는 짐이 늘어나더라도 꼭 책을 챙기자.

 

 

 

 

 

 

 

왕십리에서 갈아탄 2호선 열차는 마침 내 목표지인 홍대입구행이었다. 도착해서 자전거를 질질 끌고 나오는데

 

열차의 불이 꺼지고 오늘자 2호선은 모두 끝났다는 역장님 방송이 나왔다. 재수좋게 막차를 탔구나. 끝이 좋으

 

면 다 좋은 거지 뭐, 하고 크지 않은 웃음이 났다.

 

 

 

이번까지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코스였고 다음 번부터는 버스나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

 

떻게 이동하는 것이 좋은지를 잘 모르는 지금으로서는 언제가 다음이 될지 잘 모르겠다. 70km 정도였던 지난 코

 

스들에 비해 남은 코스들은 이제 100km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 뿐 아니라 서울에서 멀어진

 

출발점까지 이동하는 시간까지를 고려해 보면 하루 안에 끝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하자면 당장 다음 주에 떠

 

날 수는 없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사기 위해 돈을 뽑던 때처럼, 서해갑문을 향해 갑작스레 떠나던 날처

 

럼 또 한 번 에잇 하고 용기를 내면야 언젠가는 다 가겠지 뭐. 아무튼 두번째 4대강 종주길. 실수까지 포함해 총

 

92km. 그럭저럭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