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던 길 고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구만. 일기에 구구절절이 쓰기 하도 한심해서 툭 치고 넘어가는데, 나는 여
기서 길을 잘못 들어 약 20km를 더 달렸다. 날은 가장 더운 낮 두 시경이라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북한강자전
거길 때에 해 지고 전방 후레쉬 꺼진 판에 틀린 길 10km를 달리다가 대판 넘어지기까지 했던 이제의 나는 웃으
며 달린다. 하하하 한심해. 하하하 샹 한심해.
평일에 다녀와서 더 그랬겠지만 남한강자전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독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경
기도 인근에 들어서면서부터 종주를 시작하는 사람들에다 운동을 나온 동네 라이더들까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틀 동안 달리면서 만난 라이더가 열댓 명 안짝인 것 같다. 위의 사진은 멈춰서서 사진을 찍는데 우연히 나타
난 자전거가 같이 찍힌 단 한 장의 컷이다. 휴일에는 안 가 봐서 장담할 수 없지만, 생각이 많아 혼자 있고 싶은
사람, 혹은 자전거로 운동을 하면서 발성연습이나 가창연습까지 하고 싶은 이라면 평일의 남한강자전거길 강추
다.
달리다 만난 펜션 풍의 작은 마을. 좋게 보면 남유럽의 휴양지 같기도 하고 나쁘게 보면 소년탐정 김전일의 활약
이 펼쳐질 무대 같기도 하다. 남한강자전거길의 다른 모든 저택과 마찬가지로, 인기척은 전혀 없다.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숨을 그늘 하나 없는 쭉 뻗은 길을 내처 달리다 보니 하늘의 흰 구름이 우유빙
수처럼 보인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팔고 있다면 만 원 한 장을 내고라도 기꺼이 먹겠다.
쭉쭉. 쭉쭉. 쭉 뻗은 길을 달리다 보면 이런 일이 흔하다. 주위도 둘러보고 바람도 쐬어가며 마실 가듯 달리다가
아유, 왜 이리 허벅지가 아프지 하며 무심코 속도계를 보면 내 체력의 최고속도로 달리고 있다. 자전거는 허벅지
라도 아프지. 나중에 차를 사게 되면 정말 조심해야겠다.
4대강 자전거길에서 만난 최고의 상냥함.
너무 상냥해서 청혼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비내섬 인증센터. 자전거 거치대가 텅텅 비었다.
남한강자전길에는 총 7개의 거점이 있는데, 비내섬 인증센터는 그 가운데 두 개 뿐인 무인 인증센터이다. 대신
무인 인증센터 앞에 마을기업인 휴게소가 하나 있다. 점심을 먹으며 충전을 했는데도 또 팍팍 닳아버린 자전거
배터리를 들고 비척비척 들어가니, 손님 하나 없이 나른한 수다를 떨고 있던 사장님 두 분이 반갑게 맞는다.
전기자전거예요? 이리, 이리. 여기서 충전해요.
곤궁한 처지에 찾아온 호의에는 겸양하는 것이 아닌 법. 다시 배터리 박스를 풀어 뱀처럼 이리저리 꽂아두고
나는 세 시간 동안 혹사당한 회음부를 잠시 달랜다.
휴게소의 바깥편엔 남한강의 지류를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아아, 안장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앉는다는
것이 이렇게 아찔한 행복이었을 줄이야.
이 때 시간은 다섯 시 반. 못해도 열 시까지는 달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염치불구하고 내처 배터리 충전을 한다.
스마트폰도 따로 가져간 mp3도 모두 빨간 눈 하고 열심히 충전 중이라 수첩에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뭘 그릴까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제일 만만한 게 신발이라 신발을 그렸다. 국토종주를 같이 하고 있는 뉴발란스 운동화
이다.
눈치를 보며 한 시간 가량 충전을 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출발하기 전 비내섬 인증센터에서 인증샷 한 번. 인증
샷의 표정이 다 똑같아 재미가 없다는 주위의 피드백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인증샷 용 표정을 만들기란 어려
운 일이라 가방에 있던 붓펜으로 달리 식 수염을 추가해 보았다. 오후 여섯 시 사십 오 분. 집에서 출발한지는 어
느덧 열 시간 반 째. 눈 밑엔 이율곡 선생님 다크서클이 진하게 패였다.
이제 갈 길은 강천보 - 여주보 - 이포보로 이어지는 보 3형제 중 첫번째인 강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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