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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4. 4대강 남한강자전거길 - 비사이로 마까

 

 

 

 

그럼 출발. 출발하고 삼십 분쯤 지났을까, 안개와 빗방울 사이쯤에 있는 물이 얼굴에 와 닿는다. 출발하기 전날

 

밤, 이 날 오후 강수확률 60%, 예상 강수량 1-4mm라는 예보를 본 터였다. 강수량 1-4mm는 도대체 뭐야, 하고

 

검색해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었다. 이곳저곳의 답변을 총합해 보면, 온다고도 안

 

온다고도 할 수 없는 비가 예측될 때 기상청에서 때리는 기준이 1-4mm, 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것이 이런 의

 

미였구먼. 한 5, 60cm 앞에서 가끔씩 약하게 뿌리는 분무기를 맞는 느낌이랄까. 시원하니 잘 됐다.

 

 

 

하고 달리는데, 앞 쪽 멀리에서 한 라이더가 달려온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라 아직 멀리에 있는데도 고개를 꾸

 

뻑하며 인사를 했다. 그는 오던 속도 그대로 맹렬히 지나쳐 가며 나에게 '저쪽에 비와요, 비와!'라는 말을 도플

 

러 효과에 실어 남기고 가 버렸다. 저런 나약한 친구 같으니. 1-4mm 가지고 엄살은.

 

 

 

그러나 조금 나아가자 동료를 믿지 못한 내게 벌이라도 내리듯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

 

다. 나는 고민을 했다. 옷이야 말리면 그만이지만 가방에 수첩과 충전기 등 젖으면 곤란한 물건들도 많고 무엇

 

보다 전기자전거인데 비를 많이 맞았다가는 고장이 나지 않을까가 가장 걱정됐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딱히 비를 그을 곳이 없었다. 여러 개의 다리 밑을 지나던 북한강자전거길과는 달리 남한강자전거길은 너른

 

밭 사이를 지나는 길이 많았던 탓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일단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수록 강해

 

지던 빗방울은 조금씩 조금씩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에 거짓말처럼 그쳤다. 

 

 

 

 

 

 

 

 

 

 

뒤를 돌아보자 비구름은 아까 경고를 해 주었던 그 동료를 따라가는 길이었다. 안 됐네 아미고. 해 떨어지기 전

 

더 힘내서 달리라는 하늘의 격려로 생각해 봐.

 

 

 

 

 

 

 

 

 

비구름이 있는 데에서만 비가 내리는 것은 아주 당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빌딩과 건물로 가려진 서울에서는 관찰

 

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 재미있게 쳐다봤다. 진행방향이 내 쪽이 아니어서 한층 더 재미있게 봤는지도 모른다. 지

 

금까지 내내 달려왔지만, 자전거를 타고서 비구름 지역을 빠져 나왔다고 생각하니 내가 실제로 땅 위를 달리고

 

구나, 하는 실감이 드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앞쪽을 돌아보니 맑은 하늘이 쨘.

 

 

 

 

 

 

 

 

열심히 달려가니 강원도 원주가 나왔다. 그러나 밑의 도로 표지판에서도 보이듯이 우리는 원주 시내로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원주를 앞에 두고 좌회전 길. 강원도는 맛만 본 셈이다. 하지만 태백산맥 쪽을 자전거로 갔다면 어

 

땠을까를 생각하니 전혀 아쉽지 않았다.

 

 

 

 

 

 

 

 

 

잠시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비구름이 아까 그 아미고를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었다. 스머프를 쫓는 가가

 

멜처럼. 다시 한 번 힘내, 아미고. 잘못이 있다면 남양주 - 충주 방향을 택한 네 잘못이니 남 탓 말고.

 

 

 

 

 

 

 

 

 

남한강자전거길에 얼마나 사람이 없느냐 하면 심지어 이런 일도 있다.

 

 

 

 

 

 

 

 

 

자전거길의 한 차선을 차량 두 대로 막아놓고 그 사이에 앉아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 나는 사실 재미있다고 생

 

각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달리면서 생각해 보니 조금 무례한 것 같기도 하고, 뭣보다 직선 차선이 아니라 커브길

 

에 저렇게 자리를 잡고 앉은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때 시간은 여덟 시. 해는 꼴딱꼴딱

 

한다.

 

 

 

 

 

 

 

 

 

여덟 시 오십 분. 비내섬에서 출발한지 두 시간여 만에 남한강자전거길의 세 번째 거점인 강천보 인증센터에 도

 

했다. 나는 보통 네이버 지도 어플에서 예측해 준 시간보다 1.5배에서 2배에 달하는 시간을 쓰는데 이 때에는

 

예측 시간보다 몇 분 가량 빨리 도착했다. 해가 져 가고 있어 초조했던 모양인지 아니면 하루종일 달려서 다리가

 

일정한 속도에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 다음 목적지는 여주보. 막 도착한 강천보 인증센터가 세 번째 거점이었으니, 여기까지 남한강자전거길 총

 

6개의 구간 중 2개를 달려온 셈이다. '충주댐 - 비내섬', '비내섬 - 강천보'의 2개이다. 6개 중 2개 구간을 달렸

 

고 아직 4개 구간이 남았으니 숫자로만 보면 반도 안 되는 셈이지만 실제 거리 상으로는 60% 이상을 달려왔다.

 

이것은 남한강자전거길에서만의 퍼센트이고 내가 집에 오가는 거리까지를 모두 합해 보면 전체 여행길의 70%

 

남짓을 달린 것이다. 여주보까지는 고작 10km이니 금세 닿을 수 있지만 해도 졌고 또 여주시를 지나고 나면 언

 

또 시내를 통과하게 될지 알 수 없어, 여주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여주시청 인근에 평범한 식당과 합리적인

 

가격의 숙소가 많다는 정보를 접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위의 지도에서도 보이듯 여주시청은 여주보로 가는

 

길 위에 있어, 숙소를 찾기 위해 따로 더 달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속도감 있는 일기를 위해 쓰다 보니 덤덤하게 올라가게 됐는데, 내 사진 폴더를 보면 이 사진은 정말 몇십 장 만

 

에 등장한 시내 장면이다. 밭사진, 산사진, 강사진, 산사진이 몇 바퀴를 돌고 난 뒤에야 나오는 사진이다. 사방

 

천지에 아무도 없는, 하다 못해 저 멀리 보이는 고가로 차 한 대 안 지나가는 곳을 몇 시간씩 달려서 와 보니 싸

 

구려 네온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여주시청 인근의 '라인모텔'. 앞서 들러본 러브모텔 외양의 모텔들에서는 서울에 준하는 모텔비를 부르길래 일

 

부러 홍상수 영화에 나올 법한 모텔을 골라 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얏호 3만원. 복도는 허름하지만 방은 널찍하

 

고 나름 깨끗했다. 자전거길 바로 옆에서 장사하는 곳이라 그런지 헬멧을 쓴 내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 밖에 세

 

워 놓으셨죠? 가져와. 가져와요. 방에 넣고 주무셔야지'라고 먼저 말을 해 준다. 도리어 머쓱해진 내가 '바퀴 밑

 

에 뭐라도 깔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아냐, 내가 내일 닦으면 되지. 우린 매일 해'라

 

고 답했다. 낑낑거리며 자전거를 들여놓는데 어디론가 사라졌던 아주머니는 얼음물병을 두 개 들고 나타났다.

 

'냉장고에 물 두 병 더 있는데 그건 지금 드시고, 이건 녹였다가 밤에 드시고.' 자전거의 신이 계시다면 부디

 

여주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방을 둘러보았다. 물론 아주머니가 나간 뒤.

 

 

 

방은 꽤나 넓었다. 자전거를 들여놓고 짐을 부린다 해도 남자 셋이 쾌적하게 쓸 법한 크기였다. 친밀한 사이라면

 

넷 까지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한 시 경에 숭어회덮밥 먹고 열 시가 넘은 이 때까지 쫄쫄 굶었다. 야식이라도 시켜먹어야지 하고 메뉴판을 넘기

 

다가 위의 사진을 보고 한참 웃었다. 추억의 이름 엘란도 반갑고 티코가 소나타나 로체와 별반 차이가 안 난다

 

것도 재미있다. 몇십 년 후의 문화인류학자나 한국학자가 풍속 자료로 꼭 연구해 줬음 한다.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고 음식 사진을 보아하니 맛이 없을 것 같아 나는 치킨을 시켜 먹었다. 혼자서 먹을 때

 

엔 미식에 돈을 쓰지 않는 편이라 치킨 한 마리를 통째로 혼자 시키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도 안 났다. 그

 

래도 이런 데 와서 이런 거 먹자고 1박 2일로 정한 것 아니었나, 하며 호기롭게 시켜 쉬지 않고 한 마리 다 먹었

 

다. 마침 무한도전의 재방송이 하고 있어 입도 즐겁게 눈도 즐겁게 잘 먹었다. 이빨을 닦고 누워서 불을 껐는데

 

문득 방의 구조가 공포영화 '목두기 비디오'에 나왔던 모텔 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피곤해서

 

그랬는지 응, 비슷하구나, 하고는 바로 잠이 들었다. 남한강자전거길 1일차. 12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