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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황상민, <한국인의 심리코드>



새색시처럼 고운 말씨 쓰시는 황상민 심리학 교수의 신작. 현재는 연세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뉴스 등에서 사이

코 패
스의 범죄 동기, 혹은 발렌타인 데이 때 초콜릿을 사는 남자의 마음 등을 설명하는 전문가에서부터 큼직큼

직한 시사
현안들에 대한 국민 정서를 분석하는 토론 패널까지 다양한 스탠스로 방송에 출연하고 있어 지명도

가 높다. 여러가지
문제연구소 소장인 김정운 교수가 같은 인문학자들 가운데 자기보다 외모가 처진다고 공언

하는 몇 안 되는 이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자면서 웃는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 얼굴과 가장 비

슷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 인상이 부럽다.


루트가 다를 뿐 종국적으로는 내가 가 닿고자 하는 지점과 같은 곳에 대한 책이라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다.


겉보기 분류 상으로는 4장인데, 실질적으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

들과
구분될 수 있는 특성, 그리고 그러한 특성을 만들어 낸 환경적 요소에 대해 다룬 앞 부분. 그리고 아홉 개

의 '심리 코
드'를 통해 한국인을 분석해 본 뒷 부분. 이 뒷 부분이 각기 세 개 씩의 심리 코드가 할당된 3개의 장

으로 이루어져 있
다. 한 장이 평균 70쪽 가량. 꼬리 각주를 합치면 300쪽에 약간 못 미친다.


'한국인은 행복하지 못하다'나 '한국인의 일상은 경쟁적이다'는 등의 명제를 이끌어내는 앞 부분은 설득력은 있

으나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한국인의 현실에 대해 '리얼리티 쇼'라는 분석의 틀로 접근한 부분은 다른 심

리학 대중서
들에서 보지 못한 시도이지만 참신한 틀에 맞추기 위해 복잡다단한 현실을 재단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부분은 직
접 읽고 판단하시라.


말하자면 메인 디쉬인 뒷 부분. 각 챕터를 할당받은 아홉 개의 심리코드를 적어두면 이 책의 집필 의도를 어느

정도 짐
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성공과 출세 : 개천용은 다 어디로 갔나?

2, 부와 부자 : 부자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법

3. 교육 :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려라

4. 나이와 세대 : 신입 사원이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사연

5. 리더십 : 리더십도 스타일이다

6. 이상 사회 : 무엇을 꿈꾸는가를 통해 본 현재 나의 모습

7. 짝과 결혼 : 결혼은 미친 짓이다?

8.. 소비 : 무엇을 사느냐가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

9. 라이프스타일 :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지그재그 걷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읽고 난 뒤 나는 이 책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좀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결혼 (7) 에 관해서는 이른바 '결혼 비즈니스'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러한 선택이 불러온 파국적 결과

를 높은
이혼율 등의 수치로 증명한 뒤 '조건보다는 심리코드'라는 훈수를 둔다. 우리 사회의 이상 사회 (6) 는

리영희 선생을
뛰어넘어 '발 딛고 선 그곳에서 시작된다'는 선언은 이 책을 단순한 심리 대중서로만 한정지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게
한다.


허나 졸부의 종류를 분류 (2) 해 가며 '부자 씹는 재미'에 편승하는 한편으로 '품격 부자'나 '보헤미안 부자'와

같은 세
부 신조어를 만들고 그들의 '노블'한 생활의 모습까지 일일이 묘사하면서 은근하게 욕망을 자극하는 모

습은, 탈세와
비리를 일삼는 대기업 족벌들의 '트렌드-리딩' 패션 센스를 소리높여 칭송하는 자본 어용 일간지

와 무에 그리 다를 것
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출세 (1), 리더십 (5) 등의 챕터 제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외의 챕터들에서도 하위 소제목들을 살펴

보면
결국 이 책의 화제는 성공, 그것도 세속적인 성공에 맞춰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좀 더 구체적

인 수치나
도표 등이 동원된 자기계발서의 일종인 것인데, 차라리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말하는 성공 비

법' 등의 제목
이었으면 상처나 안 되었을 것을, 이 책은 '내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분석해 보니

까 한국인 너네가 결
국 이래'라고 말하는 모양이 아닌가.


가장 역설적인 부분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책에서 암묵적으로 제시된 (혹은 적극적으로 오독되게 하는) 이

상형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즉 정신적인 여유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혜택까지 모두 성취한 이였음

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은 '자기 자신을 알라'와 같은 일반론적 도덕의 차원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책 전체에 걸쳐 드러나
는 이 '내용상 오류'는 책의 마지막 문단에 '진짜 성공 비법'이자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이라고 제시된 언급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따옴표까지 그대로 인용해 보

자.


'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를 때, 다른 사람이 너는 진짜 다르구나 하고 인정해 줄 때,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믿어라. 그
러면 김제동이나 이외수처럼 아주 희한한 사람으로 여겨져서 많은 사람이 너를 인정해줄 뿐만 아니

라 돈도 많이 벌
게 될 것이야.'


의문 하나. 저자는 '남을 의식해서 멋있고 잘난 사람으로 보이려는' 것이 한국인에게 역경을 가져다 주는 요인

이며 그
해결책으로 '자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성공이 스스로의 인정 뿐 아니라 다

른 사람의 인정
까지 받았을 때, 더 집요하게 파고들자면 '다른 사람이 내가 성공했다고 인정한 것을 내가 인지

할 때'에 완성된다는 명
제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의문 둘. '다른 사람들이 남과 다르다고 인정해 준다 - 그러면 희한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 그러면 많은 사람들

이 인정
해 준다 - 그러면 돈도 많이 번다'는 4단 논리. 


의문 셋. 위 논리는 아마도 예시로 거론된 김제동과 이외수를 분석하며 도출된 결과일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

서 또다
른 '성공'의 사례로 안철수, 박칼린 등을 들었는데, 과연 그들이 '남과 다른 마음가짐'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을까? 물
론 방송과 사회활동 등을 통해 그들이 존경받을 만한 인품의 소유자인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들의
성공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개별적인 '재능'에 기반한 것이 아닌가? 그런 이들에

게 우연히 공통되어 있었던
'마음가짐'이라는 느슨한 공약수를 모아, 특출한 재능을 갖지 못한 우리네 일반인들

에게 성공의 조건이라고 제시하는
건 지나치게 대담한 시도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 중 많은 이들

에게, 김제동과 이외수가 '성공한 인생'으
로 평가되고 있을까?



총평. 도표 등으로 잘 정리된 의미 있는 자료들은 보다 많은 도구로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에게 큰 도

움이 된
다. 기왕부터 온라인 세계, 광고, 신화 등에 관한 연구를 해 오던 저자라 활용하는 예시가 폭넓고 흥미로

워 인문 대중서를
쓰는 이에게도 좋은 교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 백

서, 잠언서, 자기계발
서, 심리학 대중서의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한 모습은 결국 각각의 내용을 기대한 독자들

중 어느 하나도 완벽히 만족
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자 유형이나 리더 유형 등 이슈 별로 여러 개

의 인간 유형을 구분해 두고 있기 때
문에, 혈액형 별 성격과 실제의 자기 성격을 비교해 보는 재미 정도를 기대

하고 읽는다면 의외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