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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손석춘, <박근혜의 거울 - 왜곡된 반사 또는 부풀려진 신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이사장 손석춘 씨의 최신작.


며칠 전 새 당대표와 지도부를 선출하는 한나라당의 전당대회가 있었다. 당 지지도가 바닥을 기고 있고 대선 후

보들이
몽창 빠져서 열기가 미지근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레임덕에 허덕이는 청와대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 재

보궐 참패의 이
력을 가진 채 치루어야 하는 총선과 대선, 그리고 이전투구와 이합집산의 징조가 여기저기서 드

러나고 있는 당내 계파
간 정리 등 적지 않은 과제들이 부여되어 있기에 귀추가 주목된 바 있다. 결과로, 비주

류, 혹은 비계파라고 평가되는
홍준표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된 것은 그럭저럭 근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일

이었으나, 암묵적으로 친이계를 등에
업기 시작한 원희룡 의원이 4위에 그치고 친박계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유승민 의원이 2위를 차지한 것은
많은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결국, 박심을 얼마나 따랐느냐

가 성패를 갈랐다는 말이다. 한 언론은 이 결과를
두고 '수첩 공주와 일곱 난장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왜곡된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자 비극적 가족사의 주인공. 가장 유명한 여성 정치인이자 가장 속내가 알려지지

않은 예
비 대권 후보. 유럽 순방 시의 패션까지 대문짝만하게 올려대는 보수 언론들의 행태 탓도 있긴 하겠지

만, 박근혜 전 대
표(이하 박근혜)를 둘러싼 수식어들은 대부분 드라마틱한 데가 있다. 거기에 집필,기고 등의 활

발한 사회 활동을 펼쳐
온 손석춘 씨가 한 획을 덧붙인 것이다. 그 주장과 식견에 감탄하며 글과 의견을 챙겨 접

하던 손석춘 씨라 기왕의 박근
혜에 대한 평가들과 어떻게 다른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먼저 제목부터. 요 근래 나온 사회과학 쪽 책들 가운데 이렇게 눈을 잡아끄는 제목은 없었다. 박근혜의 별명인

'수첩공
주'가 연상되어 재미있기도 하면서 설마 그것만 가지고 한 권을 엮진 않았겠지, 왜 거울이란 단어를 썼

을까 하는 궁금
증도 자연스레 생기고, 아무튼 잘 뽑았다. 스카치 캔디같이 생긴 표지사진의 거울도 먹어주고.

하지만 실제로 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읽으면서는 좀 불만스러웠다. 이 책은


정치인 박근혜를 설명하는 1부 ''선거 여왕'의 거울'

이승만부터 노무현까지의 근현대사를 대통령 위주로 요약한 2부 '대통령의 거울',

그리고 이명박 시대와 박근혜가 주창하는 시대와의 실제적 차이를 조명해 보는 3부 '주권자의 거울'


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2부 같은 경우에는 왜 굳이 한 권의 책에 묶여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2012년의
대선 주자 박근헤와 관련된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잘 정리된 글이라 이 책을 찾아들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
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내용이긴 하지만 '이런 내용을 알고 그것을 거울 삼아 박근혜를 비춰

보아야 박근혜를 알
수 있다'는 의도는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다. 큰 관련이 없는 내용들을 한 권으로 묶기 위

해 '자, 이런 이야기를 들었
으니 독자 여러분께서 알아서 이해하신 내용에다 박근혜를 비춰 보십시오'라는 기획

의도로 '거울'이란 제목를 뽑아낸
것일까? 많은 사람이 불만으로 여길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나

는 차라리 식상한 제목보다 영 별로였다.



내용의 요약. 앞서 말한 바와 같이 1부 ''선거 여왕'의 거울'은 정치인 박근혜의 실상을 고찰해 보는 장이다. 

1장 '박근혜의 정치 신화'에서는 1997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인 이회창의 손에 이끌려 다시 정계로 돌아오기

까지, 박
근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조명한다. 박근혜는 어머니 육영수 씨가 피살된 이후 5년에 걸쳐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
디 역할을 수행하였고, 79년부터 97년까지 18년 간 실제로는 영남대 이사, 육영재단 이사장, 정수장

학회 이사장 등을
지내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현대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그의 가정사를 비극적인

개인사로 환원하여 그에
게 운명의 피해자와 같은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일각에 의해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평

해진 그 시간동안, 실제로는 강
대한 권력과 부를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책에 의하면, 영남대의 재단 이

사장에 취임하던 때 그의 나이 스물여
덟이었다고 한다.


2장 '거울에 비친 신화의 얼굴'은 그가 내세우는 '성장, 서민, 원칙'의 정치 구호가 얼마나 진실성을 담지하고 있

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특히 3부에서 대선 주자로서의 박근혜에 대해 보다 깊게 다루는 장이 있기 때문에, 여기

에서는 그의
정치 구호와 배치되는 언행을 소개하여 문제 의식을 공유코자 하는 차원에 그치고 있다.


3장 '신화는 어떻게 소통되는가'는 박근혜 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언론, 그리고 그 공정의 강력한 에너지

원 중 하
나인 색깔공세와 지역감정이 어떻게 박근혜에게 봉사하고 있는가를 밝힌다.



2부 '대통령의 거울'에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을 '보수 정치'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을 '개혁 정치'로 분

류하여
각각 한 장을 할애해 그 이력과 공과를 서술하고 있다. '보수 대통령'이야 당연히 신랄하게 비판받지만,

평소 손석춘
씨의 논조를 알고 있는 분이라면 당연히 예상하시듯이, '개혁 대통령'이라 해서 그늘진 부분이 언

급되지 않는 것은 아
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IMF 사태를 초래한 무지, 경제 회복을 위해서라지만 신자유주의

적 구조의 기반을 마련한 김
대중 전대통령의 과오, 그리고 기대와 현실 간에 가장 큰 격차를 보여주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치세 등을 지적하는
데에서 그 붓끝은 대체로 공정하다. 손석춘 씨가 이 2부와 박근혜를 잇는 가장

중요한 고리로 사용한 것은 '이러한 왜
곡된 경제구조가 박근혜에게 경제 개혁의 구호를 주었다'는 것 뿐인데,

이미 그 수혜를 더 일찍 받고 분수에 넘치는 자
리까지 올라가신 분도 있고 하니 크게 설득력이 있다고 보긴 어

려울 것 같다.




3부 '주권자의 거울'은 이명박 정부의 실상을 자세히 살피고, 그와 다른 노선인 것처럼 표방하고자 하는 '박근혜

식 복
지'가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 고찰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박근혜 개인이라기보다 근래 들어 이력과 성향

에 관계없이
복지와 인권 등의 구호를 남발하고 있는 일군의 세력에 대해 보내는 일갈 쪽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다. 손석춘 씨 개
인이 하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주요한 화제로 삼았어야 할 박근혜의 복지 정책이

워낙 공갈빵이었기 때문
에 조목조목 반론할 것도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인 박근혜에 관한 네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 끝을 맺고 있다.


하나. 박정희식 경제 성장은 21세기 한국경제에 가능한가?

둘. 박정희와 박근혜는 친서민인가?

셋. 박근혜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인가?

넷. 경제 발전, 선진국, 평화 통일에 박근혜는 적격인가?


유권자들이 이 중 단 하나의 질문에라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의 당선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한다. 구차하게 덧붙이자면, 이 책을 통해 더욱 강하게 갖게 된 생각이니 혹여라도 예비원수 모독죄 같은

걸로 잡아 넣
으려면 손석춘 씨부터 먼저 잡아주길 바란다.



정치평론서는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선후보가 얽힌 경우에는 워낙 소설

이 많아
서 나중에 보면 그저 당시가 얼마나 유치한 시기였는지를 씁쓸하게 확인하고 말 뿐이다. 그래서 개인적

으로는 구입하
지 않는 하위장르 중 하나인데, '명토박다'나 '살천스럽다'와 같은 신선한 우리 단어와 함께 정연

하게 풀어나가는 글
솜씨가 눈 건강에 좋기도 하고, 적어도 반 년 동안 박근혜가 화제에서 내려올 일은 없으니

몇 번은 더 읽게 되지 않겠
나 싶기도 해서 구매목록에 넣어 두었다. 특히 첫 대선 투표를 앞두고 있을 20대의 학

생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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