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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댄 애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원제는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 How We Lie to Everyone - Especially Ourselves>. 위의 표지 사진

 

서 갈림길 아이콘이 있는 것은 띠지로, 벗겨내고 나면 흰 여백만이 남아 깔끔하다. 지하철의 광고판 등에서 흔

 

보는 과장된 표정의 외국인 얼굴은 좀 부담스러워, 원서의 표지 디자인은 어땠을지 궁금해 검색을 해 보았다.

 

 

 

 

 

 

외국어 문학 입문 시간 교재처럼 생긴, 엄청 재미없을 것 같은 원서 느낌. 여기에 비해 보면 좀 낫다 싶긴 하면서

 

도 아무튼 아쉽긴 아쉽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이다. 우리는 왜, 언제, 어떤 마음으로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부정

 

행위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행동경제학자인 저자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행한 실험들과 그를

 

통해 정립된 이론이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행동경제학은 거칠게 표현하자면 경제학과 심리학의 중간 쯤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학문이다. 경제학의 대전제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며, 언제나 가장 큰 효용을 위해 행동한다'인데, 우리 대부분은 체험을 통

 

해 이 명제가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은 때때로 비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며, 행동의 동기

 

또한 언제나 효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여기에 주목하여 인간의 선택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관찰하고 이 현상들이 실제 경제 현상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연구한다.

 

 

 

일찌감치 정리해서 말하자면, 결론은 우리 모두가 파편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예를 들어 낚시를 하다가 붕어를 낚았을 때 그 장면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쏘가리를 잡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

 

을지언정 참치를 잡아 전국 낚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출장을 다녀와 출장비를 정산하면서

 

30$의 택시비를 60$이나 70$로 올리는 경우는 있어도, 예상 외의 접대에 2000$이 들었다고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에 나와있는 좀 더 적절한 사례를 들어보자면, 우리는 직장에서 연필 한 다스를 스윽 가져온다

 

고 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지만, 여덟 살 난 아이가 친구의 연필 한 자루를 훔쳤다고 하면 혼을

 

낸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로 굳이 정리하기는 어려운, 위에서 대비된 두 사례들 간에 존재하는

 

그 기준선을 학술적 용어로 설명해 준다.

 

 

 

이론도 모두 살면서 체험하는 것이라 어렵지 않고 풍부하게 등장하는 실험과 일화들도 흥미롭다. 행동경제, 소

 

비자 심리, 리더쉽 등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특히 더 재미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흥미

 

롭게 읽을 수 있다. 총평하여 추천. 아래에는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실험들을 몇 가지 정리해 두니 읽어 보시고

 

책의 내용을 짐작해 보시라.

 

 

 

 

 

1. 수학 실험.

 

 

(1) 필자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수학문제를 풀게 하고 한 문제를 맞출 때마다 50센트가 지불하는 실험을 행하였

 

다. 이 때, 한 그룹은 시험지를 제출하여 채점을 받게 하고 다른 그룹은 스스로 채점한 뒤 자신이 결과를 말하고

 

돈을 받아가게 하였다. 채점을 받은 이들의 평균 정답수는 4문제로 총 2달러를 받았고, 자신이 직접 채점한 뒤

 

결과만을 보고하는 이들의 평균 정답수는 6문제로 총 3달러를 받았다. 10문제나 20문제를 풀었다고 한 학생도

 

없었지만, 4문제를 풀었다고 하는 학생도 거의 없었다. 다들 조금씩의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2) 이번에는 한 문제 당 보상금액을 1달러, 2달러, 5달러, 10달러 등으로 다르게 설정하여 실험해 보았다. 10

 

달러의 경우, 한 문제를 맞추면 오늘자 환율으로 11,000원, 6문제를 맞추면 무려 6만 6천 원의 돈이 그 자리에

 

서 지급된다. 경제학의 이론에 따르면 기대되는 편익이 유의미하게 커졌으므로, 부정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의

 

수와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문제당 보상금액이 50센트였을 대보다 부정행위의 수준이

 

낮아졌고, 특히 10달러의 경우가 가장 낮았다.

 

 

(3) 이번에는 시험 감독관을 변수로 두었다. 한 감독관은 보통 사람이고 다른 감독관은 시각 장애인이었다. 시각

 

장애인인 감독관의 경우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하기가 더욱 용이했고 심지어 보수를 받을 때 그 감독관이 눈치채

 

지 못하게 돈더미에서 보수를 더 빼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보통 감독관의 경우에도 시각 장애

 

인 감독관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동일한 수준의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2. 상인 실험.

 

 

(1) 앞서 활약했던 시각 장애인 감독관은 사실 이 실험들에 참가하고 있는 대학원생이었다. 물론 실제로 시각 장

 

애인이기도 하다. 그녀를 주축으로 해서 이번에는 상인들을 상대로 실험을 해보았다. 보통 사람과 시각 장애인

 

이 이스라엘의 농산물 시장에서 토마토를 산다. 시각 장애인은 자신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표시하는 흰색 지

 

팡이를 든다. 그들은 각기 토마토 2kg을 일단 산 뒤, 볼 일이 있어 토마토를 잠시 맡겨두고 10분 뒤에 다시 찾으

 

러 오겠다고 한다. 시카고 대학의 전통 경제학자라면, 그 시간 동안 상인들은 시각 장애인의 토마토 중 좋은 것

 

과, 아직 팔지 않은 토마토 중 좋지 않은 것을 바꿔치기 해 둘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사 온 물건을 복수

 

의 토마토 상인들에게 확인해 본 결과, 시각장애인 쪽의 토마토의 품질이 훨씬 좋았다.

 

 

(2) 동일한 성격의 실험을 택시 운전사들에게 행해 보았다. 보통 사람과 시각 장애인은 초행길인 것처럼 행동하

 

면서 택시를 탔다. 왕복 20회의 실험을 한 결과, 시각 장애인의 경우 지불한 요금이 더 적었다. 미터기를 켜고 달

 

린 것이므로, 택시 운전사들은 보통 사람의 경우 더 시간이 걸리는 루트를 택하고, 시각 장애인의 경우 더 빨리

 

갈 수 있는 루트를 택한 것이다.

 

 

 

 

 

3. 현금 실험.

 

 

(1) 이번에는 부정 행위의 거래 물품이 현금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해 보았다.

 

필자는 MIT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공동으로 쓰는 냉장고 중 반에는 코카콜라 캔 6개를 두었고, 나머지 반에는 1

 

달러 6장을 접시에 담아 두었다. 콜라는 72시간 내에 모두 없어졌고, 돈은 한 장도 없어지지 않았다.

 

 

(2) 앞서의 수학 실험 중 자기가 채점하고 결과를 이야기하는 실험을 다시 한 번 행해 보았다. 단 이번에는 문제

 

를 맞추었을 때의 보상이 현금이 아니라 카지노 등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토큰이었다. 참가자들은 일단 이 토

 

큰을 받은 뒤 실험장 옆에 마련되어 있는 환전소로 가 토큰을 현금으로 바꾸게 된다. 결과는, 토큰 보상을 받았

 

을 때의 부정 행위가 돈으로 직접 받았을 때에 비해 두 배나 높아졌다. 사람들은 현금과 거리가 멀수록 도덕적

 

기준이 무뎌지는 경향을 보였다.

 

 

 

 

 

4. 서명 실험.

 

 

(1) 다시 수학 실험을 행했다. 단 이번에는 참가자가 감독관 앞으로 와 '제가 몇 문제를 맞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세 신고 양식의 서류에 기재를 하여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 실험의 참가자는 두 그룹으로 나뉘

 

었는데, 한 그룹은 자신이 맞힌 문제의 수를 다 표기한 뒤 마지막에 사인을 하게 했고, 다른 그룹에는 먼저 사인

 

부터 한 뒤 내용을 작성하게 했다. 결과는 마지막에 사인한 그룹이 평균 네 문제를, 먼저 사인한 그룹이 평균 한

 

문제를 부풀렸다.

 

 

(2) 필자는 이 실험을 현실세계에 적용해 보았다. 대형보험사와 함께 한 실험에서, 필자는 보험 가입자들에게 전

 

년도에 몇 마일을 운전했는지를 물어보았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한 그룹은 먼저 사인한 뒤 내용을 작성하고, 다

 

른 그룹은 내용을 작성한 뒤 사인을 하게 했다. (적게 운전할수록 보험료를 덜 낸다.) 먼저 사인을 한 뒤 내용을

 

작성한 그룹이 대답한 평균 거리는 26,100마일. 내용을 작성한 뒤 사인을 한 그룹의 경우에는 23,700마일이었

 

다.

 

 

 

 

 

5. 판사 실험

 

 

이것은 필자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동료의 실험을 짧게 인용한 것이다. 한 무리의 연구자들이 이스라엘 법정에

 

서 이뤄진 가석방 판결 사례를 조사한 결과, 일반적으로 판사의 정신이 맑고 원기가 왕성한 시간대일수록 판결

 

의 석방 허가율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주목되는 시간대는 이른 오전의 첫번째 사건과 점심식사 직후

 

의 사건이었다. 연구자들은 '판사들이 원기가 충전됐다고 느낄 때 자기감정을 거스르는 것이 가능해 가석방을

 

허가하지만, 인지부하가 쌓이고 쌓였을 때에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보수적으로 접근해 가석방을 허가하지

 

않는 현상 유지의 판결을 내리는 것 같'다고 추정하였다.

 

 

 

 

 

6. 양말 실험

 

 

이것도 다른 실험을 인용한 사례다. 연구자들은 동네 시장에 텐트를 치고 네 켤레의 양말을 진열한 뒤 지나가는

 

여자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를 물었다. 여자들은 대체로 맨 오른쪽에 있는 양말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로 질감, 소재, 색깔 등을 들었다. 그러나 네 양말은 사실 동일한 종류였다. 이 학자들은 잠옷을 놓고도

 

다시 한 번 실험을 행했는데, 결과는 같았다. (이 실험은 인간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도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행되었다.)

 

 

 

 

 

7. 정직함 상자 실험

 

 

뉴캐슬대학의 심리학부 건물에 마련된 음료 코너에, 교직원에게 차, 커피, 우유 등을 제공하는 무인판매대를 설

 

치하였다. 무인판매대 위에는 '음료를 마신 뒤 정해진 가격의 돈을 '정직함 상자'에 넣어달라'는 안내 문구를 적

 

었다. 연구자들은 1주일마다 안내 문구의 배경을 두 가지 이미지로 장식하였다. 한 주는 안내 문구의 배경에 꽃

 

들이 들어가 있었고, 다른 한 주는 음료를 마시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눈의 이미지를 배경에 배치하였다.

 

한 주는 꽃, 다음 주는 눈, 그 다음 주는 꽃, 다시 눈, 하는 식으로 10주간 실험을 한 결과, 사람 눈의 이미지가 있

 

을 경우 정직함 상자에 든 돈은 꽃 이미지의 경우에 비해 세 배 가량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