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2.09.13 17:01

 

 

 

 

 

기원전 8세기께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가 남긴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보면,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친구인 멘토르Mentor에게 맡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년 동안 멘토르는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주었다. 이후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p21)

 

 

 

멘토라는 단어의 역사적 유래를 다루는 고전적 방식으로 출발하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씨의 20

 

12년 5월 작.

 

 

 

출간되자마자 학교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두면 강준만의 책은 대체로 내가 제일 처음 받거나 두세 명 정도를 기

 

다렸다가 받을 수 있는 편인데, 이 책은 한 템포 놓쳤다가 예약을 했더니 석 달을 돌아서야 손에 들어왔다. 처음

 

에는 주로 사회상을 다루었던 저자의 이전 저서들에 비해 안철수 원장이나 이외수 작가, 김어준 총수 등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인물들이 다루어진, '말랑말랑'한 책이라 인기가 좋은가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는데, 오며가

 

며 만나게 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이들에게는 '멘토'라는 단어도 개별 인물 못지

 

않게 중요한 듯 했다.

 

 

 

생각해 보면 그럴만 한 것도 같다. 사회변혁과 같은 거대담론으로 청춘을 위로받았던 윗세대와는 달리, 냉전의

 

한 축이 붕괴된지도 10여년이 지난 90년대 중후반에 10대와 20대를 거쳤던 우리 세대에게는 IMF로 인한 짙은

 

불안이 기저의 정서였고, 그 정서를 위로해 준 것은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새로이 잉태된 아이돌 문화였다. 요

 

사이 화제를 끌고 있는 '응답하라 1997'이라는 케이블 드라마는 아마도 이 근원적인 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에 성

 

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는 더 팍팍해졌다. '노동 유연성 강화'나 '양극화의 심화'는 사회에 일찍 눈을 뜬 불량학생들만이 알

 

고 있는 지식이 아니라 대입 논술 시험의 단골 논제다. 살기가 힘들다는 것은 학교에서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딱히 이런 시대가 아니라도, 청춘은 늘 찾을 수 없는 답들을 죽을 각오로 구하고 있기에 그만큼의 위로를 필요

 

로 한다. 위로와 대안. 여기서 이들이 발견해 낸 것이 '멘토'가 아닐까.

 

 

 

나 개인의 분석이 어떻게 됐든, '멘토'는 이미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사회적인 환경이 갖추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돈이 되는 상품임이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에 주목한 강준만이 다종한 멘토의 상들을 보

 

여줌으로써 멘토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해가는 과정,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책은 총 13장과 맺는말로 이루어져 있는데, 실질적으로 분류해 보자면 '멘토 개론'에 해당하는 서론 (1장) - 인

 

물 분석인 본론 (2장-13장) - 멘토의 제도화를 주장하는 결론 (맺는말) 의 3단 구성을 취하고 있다. 열두 명이

 

나 되는 인물을 촘촘히 분석한 본문도 흥미롭지만, 새로운 사회를 위해 멘토를 활용하자는 맺는말의 제언도 눈

 

길이 간다.

 

 

사회정치사를 다룰 때에도 쉽게 읽히는 필체와 구성으로 호평을 받았던 저자이다. 소재부터가 좀 더 말랑말랑해

 

진 이 책에서, 그는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힐링'일 수도 있겠다. 아울러, 원심력을 갖

 

인물의 역사는 때로 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2012년의 '코드'인 '멘토'로 호출된 이들의 역사는 '지금 이 순

 

간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합쳐서 추천.

 

 

 

 

 

책의 메인 디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열 두 개의 인물 분석인데, 저자는 이 내용을 이미 머리말에 요약해 두었다.

 

페이지로는 11부터 16까지로, 각 인물의 내용 당 여섯 줄에서 열 줄 정도로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으니 서점에서

 

든 도서관에서든 일단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이 책에 대한 호오를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는지를 소개하고, 그들에 대한 강준만의 평가를 좀 더 알기 쉽게 다시 전달하는 한편 내 개

 

인적인 생각을 조금씩 덧붙이는 데에 목적을 두기로 한다.

 

참, 분석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대체로 '진보 측 인사'이거나 '잠재적 진보 측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니,

 

강준만이나 이 블로그의 성향을 잘 모르고 들어왔다가 '왜 이런 사람들만 멘토랍시고 뽑아놓았어?'하 화를 낼

 

사람이라면 다음의 리스트를 먼저 읽어보기 바란다. 실린 순서대로 적는다.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김어준. 문성근. 박경철. 김제동. 한비야. 김난도. 공지영. 이외수. 김영희.

 

 

 

 

 

1. 비전, 선망형 멘토 - 안철수.

 

 

 

 

 

이 장에서는 안철수를 '비전이 있는 지도자'와 '대중이 닮고 싶어 하는 성공 모델'의 두 캐릭터로 분리하고, 그가

 

멘토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열 가지 '코드'를 들어 설명한다. 순서대로 적어 보자면.

 

 

안철수는 엔터테인먼트를 이해하며 활용할 줄 알고, 백신의 사례에서 보듯 분배의 양심이 있으며, '안철수식 성

 

공'의 모델을 확립한 바 있다. 정의, 공정, 공생과 같은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고, 진보 세력에 비해 상대적으

 

로 안전하게 개혁을 이끌 수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정치 이력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특정 이념이나 노선에서

 

자유로운 면은 대중의 이념 양극화 혐오 경향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상냥해 보이는 외연과 달리 삶의 이력을 살

 

펴 보면 뚝심과 책임의 윤리가 발견되며, 무엇보다 다른 어떤 정치인보다도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

 

물이고,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 찾아온 역사적인 기회를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이

 

것이 강준만이 대통령 후보로서의 안철수를 지지 선언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일 것일텐데, 그에게는 새 패러다임

 

에 대한 비전이 있다.

 

 

 

 

 

2. 인격, 품위형 멘토. 문재인.

 

 

 

 

 

이 장에서는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의 평을 빌어 문재인의 '애티튜드', 즉 '품격'에 주목한다. 여기에서는 일단

 

강준만의 장기인 '자료'를 들어 문재인의 품격에 대한 예찬이 특정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평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제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이나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아니라 야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이다. 그

 

의 '품격'은, 현실 정치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결함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강준만은 여기에 '노무현 비서실

 

장' 이미지는 다 벗어났는지, '친노 프레임'을 극복할 수 있는지, '나는 꼼수다'와의 관계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의 세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가 품격을 유지한 채로 리더쉽과 비전까지를 갖춘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지

 

켜보겠다고 했다.

 

 

 

 

 

3. 순교자형 멘토. 박원순

 

 

 

 

 

기왕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력을 알아왔거나 그의 책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순교자'라는 호칭에 달리 이의

 

를 달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를 형용하는 말들은 대체로 '일벌레', '책중독', '자료수집중독' 등이다. 손

 

석희 성신여대 교수와 동갑이라는 사실은 유머로 널리 통용되지만, 그의 주름과 노안이 단순히 유전의 영향이라

 

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강준만의 표현에 따르면, 박원순의 멘토링은 '부와 명예도 별 것 아니다. 감옥 좀 가 보면 어떻냐'는 언급에서 보

 

이듯 '얄미운 멘토링'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법을 마냥 얄미워할 수 만은 없는 이유는, 그의 삶이 보여주는 후광

 

때문이다. 부와 명예가 약속되어 있던 직업을 스스로 때려치우고 보상 없는 시민운동에 끊임없이 헌신해 온 그

 

의 이력은 분명 존경할 만한 것이다.

 

 

한편, 지난 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며 '시민운동가의 정계 진출'의 모범적 사례로 꼽히는 시각에는 의문을 제기

 

한다. 물론 박원순은 지도자로서 훌륭한 재목이며, MB정부의 구악은 청산의 대상이긴 하지만, '거대한 악당 대

 

정의로운 우리 편'의 이분법적 시각은 여러가지의 맹점을 갖는다는 지적이다. 강준만이 보기에 한국 사회의 본

 

질적인 문제들은 시스템에 있기 때문에, 악당이 청산되거나 한두 명의 정의로운 시민운동가가 선거에서 승리하

 

였다고 하여 해결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민운동의 승리'라고 하여도 그것은 서울 시민운동의 승

 

리이지, 지방 시민운동의 승리는 아니라는 점을 거론하며 시민운동에도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가 있음을 재론하

 

였다.

 

 

 

 

 

4. 교주형 멘토. 김어준

 

 

 

 

 

내용의 요약과 함께 인물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포털의 인물 검색에서 프로필 사진을 다운

 

받던 와중 제일 재미있었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사진. 저서 <닥치고 정치>의 클로징 멘트가 '나는 잘 생겼

 

다'였던 것까지 떠올려 보면, 외모 컴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는 일각의 지적은 사실인 것만 같다. 나는 개인적으

 

로 팬이기 때문에 굳이 올리지는 않겠지만, 궁금한 분들은 삼십대 초반의 김총수 사진을 찾아보기 바란다.

 

 

멘토라는 말이 지금처럼 유행을 타기 전에도, 김어준은 꾸준히 멘토 역할을 자임해 왔다. 인생사, 특히 연애나

 

진로 등에 대한 젊은 고민들을 상담하며 그가 꾸준히 강조한 것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책임'이다. 우스갯소

 

리로, 김어준의 상담은 '때려 치세요'와 '헤어지세요'로 요약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쌀쌀맞은 소

 

리만 일삼는 것이라면 그의 상담이 유명세를 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단 자신의 욕망에 정직하게 귀기울

 

일 것을 주문하고, 그럼에도 행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과감히 실천하되,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는 말라고 이

 

야기한다.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네, 힘드시겠네요',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래요' 등의 상담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들이다. 거친 직설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폭력, 김어준은 이것을 오히려 재미로 승격시켰다.

 

 

그가 창립한 <딴지일보>의 주요한 코드이기도 했던 '재미'에 대한 김어준의 통찰은 '나는 꼼수다'에서 마침내 빛

 

을 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나는 꼼수다'의 보다 큰 성공요인은 그것이 진실을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

 

니라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궁극적인 목표는 알 수 없지만, 일차적으로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보다 움직

 

이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마도 여기가, 진중권이나 허지웅이 불편해 하는 지점일 것이다.

 

 

강준만이 지적하는 김어준의 허점도 이 근처에 있다. '나는 꼼수다'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음모론에 바탕한다. 음

 

론은 재미가 있고, 사람들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촛불만으로 변하는 것은 많지 않으며, 이

 

은 오히려 더 심한 정치 혐오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아울러 시민 개개인의 분노가 나꼼수를 공유하는 것만으

 

집단적 정의감으로 환치되는 과정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5. 선지자형 멘토, 문성근.

 

 

 

 

 

강준만의 문성근에 대한 '선지자형'이라는 규정의 근거는 '아버지(문익환 목사) 삶을 보면서, 정치인이라는 게

 

종교인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봉사고, 어느 단계에 가면 희생인데, 전 그런 그릇이 안 돼요'라는 문성근의 발

 

언에 있다. 강준만은 이 발언을 바탕으로, 요즘의 누가 정치인을 이런 식으로 기대하며 또 규정하겠는가마는, 그

 

러나 정치인은 본래 그래야 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세상이 올 때까지 문성근은 선지자 노릇을 해야한다고 규정

 

한다.

 

 

문성근의 '국민의 명령'은 그의 이러한 선지자적 면모가 잘 발현된 운동이었다. 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하는 데

 

목적을 두었던 이 운동은, 시작 전에는 민주진보 진영에서조차 차가운 반응을 받기도 했지만 문성근은 끝내 이

 

일을 밀어붙여 성공하였고 마침내는 민주당의 상임고문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강준만은 한편으로 그 이면이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국민의 명령'은 미국의 진보 운동 단체들이 온

 

라인을 통해 진보적 이슈들을 청원하고 진보 진영의 정치인들을 수호하는 '무브온(MoveOn)' 운동에 그 뿌리를

 

둔 것이다. 무브온은 현대 320만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진보 운동 단체이다. 그러나 이들의 막강

 

한 영향력은 때로 지나친 호전성으로 드러나기도 하며, 이들의 세에 긴장한 미국의 우익으로부터 '티 파티(Tea

 

Party)'가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서로 극렬히 다른 주장들이 있더라도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어느 정

 

도의 완충장치가 존재하는 미국과 달리, 강준만이 보기에 '초강력 일극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국민의 명령에 자

 

극을 받아 한국판 티 파티가 등장했다가는 온 나라가 정치 과잉의 소용돌이로 빠져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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