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총평. 알차다. 내용도, 내용을 논증하는 방식도.
책날개와 위키피디아를 참고해 저자를 소개해 보자. 저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전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현 뉴
욕대 정신과 교수로, '폭력'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연구해 온 학자이다. 주로 폭력이 일어나게 되는 심리적 요
인과 그 예방책을 탐구해 왔는데, 그러한 그의 이력 때문에 매사추세츠 주 교도소는 그에게 수감자들의 정신 건
강을 책임지는 총괄자(director)를 맡아주도록 부탁하였다. 정신의학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할 정도로 수감자들
의 자살과 살인의 비율이 특별히 높았기 때문이었는데, 십 년 후 저자가 총괄자의 자리를 떠날 때에 그 비율은
양 쪽 다 거의 0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폭력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예방하면 좋을지를 탐구하던 저자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을 찾으려
고 노력하던 중, (미국에서) 자살과 살인이 급증하는 때는 공화당의 집권 시기와 일치한다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
다. 그 때 저자의 머리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였다고 한다.
단순히 어떤 정당이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것이 국민 전체의 삶에, 아니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떤 학자도 쉽게 세울 수 없는 가설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가설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를 증명하는,
한 노(老)학자의 노정이다.
책은 총 7장이다.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지만, 1장부터 3장까지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적 측면과 그 인
과관계를 사회학적으로 고찰하고, 4장부터 7장까지에서는 그러한 사회적 측면이 개인의 내면과 어떤 영향을 주
고 받는지에 대한 정신심리학적 접근과 정치학적 대안에 대해 다루고 있다. 4장부터 7장까지는 '수치심'과 '죄의
식'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살인과 자살에 이르는 사람의 내면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직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
도 있고, 또 한국인에 적용시켜 좀 더 확장적인 논의를 할 필요도 있다고 여겨져 오늘의 독후감에서는 빼기로 한
다. 여기에는 공화당적 이념이라고 할 만한 '수치심의 정서'와 민주당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죄의식의 정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각각의 이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현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제어되는지에 대해 심층적
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소개하지 못하는 독후감은 기실 편린적 소개이기는 하니, 일부분의 독후감
이라 할지라도 흥미를 느끼신 분은 꼭 책을 구해 읽어보길 권한다.
1장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는 앞서 언급하였던, 자살, 살인과 집권 정당 간의 상관관계를 적시한다.
1900년부터 2007년까지의 폭력 치사 발생율 그래프이다. 폭력 치사 발생율은 자살율과 살인율을 합한 수치이
다. 그래프 중 짙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공화당 집권 시기, 옅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민주당의 집권 시기이
다. 2차 세계 대전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1944년에서 1948년과 같이 부분적인 예외는 있으나, 대체로 짙은 선
일 때에는 가파른 상승세이거나 현상 유지가, 옅은 선일 때는 하락세이거나 완만한 상승세가 관측된다.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 가지의 흥미로운 결과를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다. 첫째, 공화당이 오래 집권할수록
상승세는 가팔라졌고, 짧게 집권하는 경우 상승세는 작아졌다는 것. 둘째, 다소간 들쭉날쭉한 예외는 있지만,
어떤 공화당 정부도 '평균값'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고, 어떤 민주당 정부도 '평균값' 이상으로 올라간 적은 없
다는 것. 이것은 분명 '단순히 우연의 일치에서 비롯된 연관성이 아니라 강력하고 아주 특수한 인과 관계가 존
재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2장 '자살과 살인의 진짜 범인, 불평등'에서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 원인들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실업, 불평등, 불황이다.
- 실업율에 관해서는 한 연구 사례가 인용된다. '심각한 폭력 범죄에 관여하는 남자의 비율에서 흑인과 백인의
차이를 비교하면 11세 때만 하더라도 거의 같은데 청소년 시기의 후반으로 가면 흑백 비율이 3:2가 되고 이시배
후반에는 거의 4:1로 격차가 벌어진다. 하지만 직장이 있는 흑인 남자오 백인 남자를 비교했을 때 21세까지는
두 집단이 보이는 폭력 양상에서 의미심장한 차이가 없었다.'
-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불평등과 폭력 범죄의 관계를 조사한 연구에서, 학자들은 세계 39개국에서 소득 불평
등과 국내 총생산(GDP), 그리고 살인율의 관계를 분석하여, '살인율은 소득 불평등 비율에 정비례하고 국내총생
산에 반비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3장 '보수는 경제에 강하고, 진보는 경제에 약한가?'에서는, 2장에서 살핀 실업, 불평등, 불황과 집권
정당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살핀다.
- 1900년부터 2008년까지 모든 공화당 집권기의 증가분을 전부 더하면 실업률의 누적 증가분은 27. 3%이다.
반면 민주당의 누적 감소분은 26.5%. 즉, 증가분으로 따지자면 -26.5%이다. 따라서 전체 기간 동안 두 정당이
실업률에 끼친 영향의 순누적 차이는 53.8%이다.
- 불황은 공화당 정부 때 17번, 민주당 정부 때 6번 시작되었다. 길이에 있어서도, 공화당의 불황은 민주당의 불
황보다 무려 4배나 오래 갔다.
- 민주당이 집권하는 시기에 일어난 불황의 1/3은 공화당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집
권하면서 민주당에게 불황을 물려받은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 국민총생산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난 1948년부터 2005년까지, 1인당 실질 국민총생산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동안에는 평균 1.64%,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동안에는 2.78% 상승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에 의해 일어난 것일까? 정당과 경제의 함수 관계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 결과가
두 정당의 경제 정책 차이로 일어난 필연적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 래리 바텔스의 지적에 의하면, 상위 20%와 하위 20% 간의 소득 불평등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섯 명의 공화
당 대통령 때에는 예외 없이 심화되었고, 민주당 대통령 다섯 명 중 네 명의 경우에는 감소하였다.
- 더글러스 힙스의 연구에 의하면, 민주당 정부는 실업을 줄이고 성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물가 상승률을 무릅쓰
고라도 팽창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실제 물가 상승률을 따져보면, 1948년부터 2005년까지 공화당
집권기에는 3.76%, 민주당 집권기에는 3.97% 정도의 차이만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팽창정책의 결과, 앞서
보았듯이 1인당 실질 국민총생산은 민주당 집권기가 공화당 집권기보다 70% 높았다. 즉, 물가는 근소하게 더 올
라갔지만, 그보다 생산이 더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어떻게 1%의 부자에게 유리하고 99%에게 불리한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인가? 저자가 생각하는 공화당의 해법은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서 내 지갑을 얇게 만
드는 주범이 상류층, 그리고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것이었다.
공화당의 구체적 전략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인종차별. 닉슨의 '범죄와의 전쟁'과 같이 대량 투옥 정책을 시행하되, 이때 주로 투옥되는 대상은 흑인이
다. 아울러 흑인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인종 분리책을 재도입하는 데 목적을 둔 소송을 후원하며, 인종 평등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는 법 제정에 반대한다. 이는 소득과 계급에 관계 없이 백인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 둘째 계급차별. 저소득층의 폭력, 범죄, 마약 음용 등을 강조하며 중상류층과 중하류층을 결집시킨다. 결집시
키지 못하더라도, 그런 이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강경한 민주당의 포지션을 공격하는 효과가 있다. 1964년 배
리 골드워터의 선거 본부장은 미국의 범죄는 공화당에게 공짜로 주어진 억만금의 선물이라고 했고,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였던 리 애터워터는 범죄는 민주당을 쪼개놓기 위해 민주당에 쑤셔 박아야 할 쐐기라고 말
했다.
따라서 공화당은 소득 불평등과 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해결할 생각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집권
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자료 통계청. 이데일리 재인용>
1장부터 3장까지의 독후감 소결을 적는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1위, 소득 대비 주택 가격 1위, 저임금 비율
1위,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 1위, 대학 등록금 1위, 그리고 자살율 1위. 이런 나라에 살면서 이 책을 읽지
않아야 할 이유를 따로 찾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적어도 민주당 시기에는 폭력 치사 발생율이 낮아졌던 미국
과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는 민주 정권 10년이라고 해서 딱히 자살율이 내려가지도 않았다. 정권 별 자살율에 관
한 손석춘 씨의 글(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811)을 참고하거나, 포털에서
'자살율 그래프'를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인과 관계를 밝히기 위해 더 치열하고 세밀
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책, 전략적인 면에 있어 공화당의 사례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히 접한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든다.
올해 초 뜬금없이 시작되었던 '주폭 척결'운동. 정치와 경제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어느날 갑자기 등장하
여 보수 일간지의 1면을 수차례나 장식하였다. 술먹고 여대생들에게 아나운서 되면 다 줘야 한다는 국회의원도
있었고 여기자가 마담인 줄 알고 껴안았다는 국회의원도 있었고 룸으로 신인 탤런트를 불러다 술시중과 성접대
를 시킨 언론사 사주도 있었는데, 정작 다루어진 것은 우리 주변의 찌질한 누군가였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강조하는 것이라면 요새 연일 방송을 타고 있는 나주 성폭행 관련 기사도 있을 수 있겠
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자고 있는 아이를 그대로 들고 나와 한적한 곳에서 성폭행을 한, 인면수심의
범죄였다. 누구도 이 사건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가 수상
쩍었다. 미디어오늘의 보도(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832)에 따르면, MBC
는 지난 7일 뉴스데스크에서 총 38개의 리포트 중 무려 20개의 리포트를 성폭력 문제에 할당했다. 아울러 '아동
성폭행 사건이 도심 변두리의 서민밀집지역에서 주로 발생되고 '나홀로 아동'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농촌과 시골에 CCTV 설치가 부족하다는 점, 성범죄자들이 주로 피해아동들과 불과 5분 거리에 살던 이웃집 아
저씨라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 그것도 좀 못 사는 누군가.
이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공화당 전략과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주폭은 '척결'의 대상이며, 성폭력 범죄자는 '화학
적 거세', 심지어는 '물리적 거세', 그리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따르면, '사형'의 대상이다. 왜 술을
마셨는지, 왜 성폭력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사회적 제도 차원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술이 문제면, 술을 못마시게 하면 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발표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서 학교, 병원,
청소년수련원 등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는 내용을 밝혔으며 홍대, 명동, 대학로와 같은 대학가에서도 음
주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하였다. 당장 몇 주 내로 있을 연고전에서 백양로를 거닐며 술마시는 대
학생, 주말에 홍대 클럽을 찾았다가 놀이터에서 쉬어가며 맥주를 마시던 젊은이, 병원에서 환자를 위로하거나
고인을 추억하며 소주 한 잔을 채우는 아저씨. 모두, 잠재적 주폭이다.
아동 성폭력을 저지른 놈을 사회가 만들었을 리 없다. 그놈의 문제일 것이다. 그놈의 어떤 문제일까. 아동 음란
물을 본 놈일 것이다. 수원에서는 아동 음란물 소지자가 구속 기소되었고, 인천에서는 P2P에 아동 음란물을 유
포한 10대가 불구속 입건되었다. 발빠르게, 우리나라는 아동 음란물 유통 규모가 세계 5위라는 리포트도 나온
다. 뿌린 놈이든 가진 놈이든 잡아들여서 주사를 놓고 불알을 자르고 목을 매달자. 여기에서 학교 폭력의 주된
요인으로 입시만을 위한 고등교육이나 경쟁을 부추기는 학습 환경 등을 지목하는 목소리보다는 온라인 게임을
죽이자는 목소리가 더 컸던 마녀사냥을 떠올리는 것은 상상력의 영역일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세상의 제일 큰 문제는 대기업 불공정이니 사학 비리니 왜곡된 언론이니 하는 한가
한 것이 아니고, 너희 중에 이웃의 모습을 하고 숨어있는 어떤 미친 놈이다. 숨어있으니 누군지도 모르고 불안
하지. 우리가 정권 잡으면 그 놈 잡아 주마. 피해자 인권이나 제도의 개선 같은 소리나 주워삼고 있는 저 허약한
놈들로는 안 된다. 나쁜 놈 목매달아 네 마음을 편하게 하는 우리가 바로 해결책이다.
요사이의 시류와 뉴스에 관해서도, 인간의 내면에 관해서도 여러가지의 생각을 하게 만든 양서였다. 표지도 깔
끔하고, 오랜만에 원제목을 그대로 번역해 준 경우를 만난 신선함도 좋다. 어떤 흥미를 가진 누구라도 눈길이 가
는 부분을 몇 군데 이상은 반드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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