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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나카무라 요시후키,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사이. 2013, 10.)

 

 

 

 

 

처음에는 들어본 듯 낯선 듯 외우기도 힘든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신간이 출시되면 반색하며 찾아보게 되는, 건

 

가 나카무라 요시후키中村好文의 2013년 신작. 유명하거나 혹은 유명해질만한 가치가 있는 집들을 찾아다녔던

 

전작 <집을 , 순례하다>와 <다시, 집을 순례하다>와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짓고 살아 본 오두막의 이야기

 

를 전한다.

 

 

전작들과 같은 출판사인 '사이'에서 나왔는데 나름 컨셉 있던 책제목 짓기의 방식을 이번에는 바꾼 이유가 궁금

 

해졌다. 책의 인지에는 일본판 원제목이 'koyagurashi'라고 영어 표기로 적혀 있어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구글 저팬을 통해 저자의 출판 이력을 검색해 봤다. 쭉 훑어보니 최근의 저서 가운데 <食う寝る遊ぶ 小屋暮らし

 

>가 눈에 띄었다. '小屋'의 독음이 'koya'가 아닐까. 추리의 근거는 일본 친구 '코타로'의 명함에서 '小' 자를, 술

 

집 '나고야'의 간판에서 '屋' 자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정답. 잡스런 관찰도 애면글면 모아두면 쓸

 

곳이 있다.

 

 

떠듬떠듬 읽어본 바로는 '먹다 자다 놀다, 오두막에서 살다'인데, 이대로 직역을 해야 할지, 혹은 '먹고 자고 놀

 

다, 오두막에서 생활하기' 정도로 넉넉하게 번역을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한국어 제목인 '집의

 

초심'과 같이 거창한 주제의식은 없었던 셈이다.

 

 

 

 

 

 

 

 

 

 

저자는 여러 집을 건축하면서 특히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는 집을 직접 지어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한다. 환경

 

에 부담을 주지 않는 집이란 전기선, 전화선, 수도관, 가스관 등 '선과 관'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생명줄' 없이 자

 

급자족하는 집을 뜻한다. 와중, 저자는 나가노 현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인근의 한 집을

 

발견하게 된다. 산기슭의 비탈에 자리하였으며 집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보이고 집 뒤로는 나무숲이 둘러싸

 

있는 모습이 매력적인 집이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인기척이 없어 알아보니, 개척 농민이었던 주인 부부가 차

 

례로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가족에게 연락하여 토지와 건물을 임대하고 오랫동안 품어오던

 

을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그 과정과 결과의 기록이, 이 책이다.  

 

 

 

 

 

 

 

 

 

 

나카무라 요시후키의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 저자가 직접 그린 귀여운 그림들이다. 위의 그림은 챕터마다 하

 

나씩 달려 있는 표지 그림 중 여섯 개를 모은 것이다.

 

 

본문은 위에서 밝힌 시공에 얽힌 사연, 계획, 건축 과정, 유지 보수, 그리고 추가적인 활용 등 이 오두막에 관련

 

된 모든 내용을 담은 열한 장의 챕터로 구성된다. 머리말과 맺음말까지를 포함해 140쪽이므로 하나의 챕터는 열

 

남짓이다.   

 

 

 

 

 

 

 

 

 

 

저자는 이 집에 살았던 부부의 기억을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아 전체 철거가 아니라 기존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필요한 시설을 확장하는 식으로 계획을 잡았다 한다. 매력적인 형이야, 라는 생각도 들고, 구두쇠인 형이야,

 

라는 생각도 조금 든다. 왼쪽 그림의 최상단이 본래의 집, 중단에서 빗금 모양으로 표시된 부분이 추가로 확장

 

한 시설 되겠다. 오른쪽 그림이 가옥의 최종 결과물.

 

 

 

 

 

 

 

 

 

 

완성된 가옥의 또 다른 그림. 집 오른편에 있는 것은 태양전지와 풍력발전기가 달려 있는 전기탑. 작은 사진으로

 

올리다 보니 그림의 메모가 잘 보이지 않는데, 전기탑의 태양전지 뒤에 있는 물통에는 '고가수조(위스키 술통)'

 

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고가수조(高架水槽)는 글자 그대로 높은 곳에 설치해 둔 물통으로, 백과사전의 설명

 

에 따르면 수압이 낮은 곳에 설치한다고 한다. 해발 1,000m 정도의 산기슭에 위치한 집이니 당연한 요소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을 식용수 용이 아니라 위스키 술통 용으로 쓰려고 했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실제로 술통으로 쓰

 

였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설계를 할 때에는 일단 하고 싶은 데까지 낭만부림을 했던 흔적인 모양이다.

 

나도 나중에 내 집을 구상할 때 참고해야지. 될지 안 될지는 아저씨들이 결정할 일이고 나는 일단 구상하고

 

자. 3층부터 1층까지 타고 내려갈 수 있는 봉이라든지, 책장 뒤로 이어진 비밀통로라든지.

 

 

 

 

 

 

 

 

 

 

총 조감도. 본채의 건평은 14평이다. 저자는 이 집에, 본인의 건축사무소 이름인 '레밍Lemming'에서 따 와 '렘헛

 

Lemm Hut', 우리말로는 '나그네쥐의 오두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다. 사무소 이름이 레밍인 이유는 본인이

 

쥐띠이기 때문이라고. 무언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싱거운 형이다.

 

 

 

 

 

 

 

 

 

 

귀여운 연필 그림만 보다가 결과물의 사진을 보면 입이 떡. 책의 두 쪽을 모두 쓴 사진은 시각적 쾌감이 굉장하

 

'다. 이래서 건축이나 인테리어 잡지들 사 보나봐,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야트막한 경사의 지붕하며, 집 아래로

 

수납도 될 것 같은 평상하며, 거기에 얽힌 가족의 기억이 몇 개쯤은 생겨날 것 같은 광경이다. 아파트는 확실히

 

이런 맛이 없지. 택배 받아줄 경비아저씨나 있고 뜨거운 물이나 제깍 뱉어낼 줄 알았지 드라마가 없다.

 

 

 

 

 

 

 

 

 

 

또 한 장의 매력적인 집 사진. 이 사진은 특히 평상 위로 쳐진 차양에 눈길이 간다. 색깔까지 빨간 것이 낼름 내

 

민 혓바닥 같다. 무엇인가 끓고 있는 듯한 야외솥도 못견디게 매력적이다. 책에는 실제로 친구들과 함께 수제

 

햄을 만들어 먹었던 일화가 실려 있다.  

 

 

 

 

 

 

 

 

 

 

앞서 책 내용의 소개에서 건축 과정이 실려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얼마가 들었는지 무슨 장비가 사용되었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까지 가는 것은 아니고, 위 그림과 같은 설계도 정도가 한계점이다. <두 남자의 집짓기>처

 

럼 실용적인 정보까지를 기대하는 분이라면 실망할 수 있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을 보다 보면 기초적인 과학의 원리들이 보인다. 물리 과목의 멍청이였던 나로서도 응, 응,

 

그렇지 하면서 한참 살펴 봤다. 과학 교과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그림책으로 되어 있었더라면 내 깊은 트라

 

우마 중 하나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을.

 

 

 

 

 

 

 

 

 

 

저자는 이 집이 단순히 자신의 별장일 뿐 아니라 이와 같은 건축 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교보재로 활

 

용되기를 바랬다 한다. 그래서 동료, 친구, 학생 등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도 잘 수 있도록 설계하였고, 위 사진

 

과 같이 실험도 하였다.

 

 

 

 

 

 

 

 

 

 

'밤에 이용하는 방법' 6인 버전, 9인 버전, 그리고 궁극의 15인 버전. 평상에 4인용 텐트 2개를 설치하는 15인

 

버전은 집의 해발고도를 생각하면 계절한정 메뉴인 셈이다. 어찌 보면 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아이디

 

어를 구상하면서도 매 시나리오에서 실제 동선까지 고려하는 면이 새삼 전문가임을 되새기게 한다. 15인 버전에

 

서 텐트 투숙객들은 동선이고 뭐고 없는 점이 조금은 슬프다.

 

 

 

 

 

 

 

 

 

 

눈치 빠른 분들은 짐작하고 계셨겠지만, 딸기 케잌의 딸기처럼 마지막까지 아껴 두었던 소개는 바로 위 그림의

 

우측에 위치한 별채. 메모에는 '서재 겸 오두막 욕실'이라고 적혀 있다. 서재와 욕실을 겸하겠다니, 비록 자기 맘

 

대로의 구상이라고는 하나 이와 같은 지경의 쾌락을 추구해도 될 것인가! 남의 일인데도 내 살결까지 지옥의 불

 

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게다가 다른 시설에 비해서 몹시도 꼼꼼한 설계도까지. 서재 아래로는 장작이 쌓여 있고, 들창을 열면 밖의 자연

 

이 보인다. 철제 욕조에서 끓고 있는 것는 지붕의 집수기로부터 모인 빗물이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 불충한 자는 건축계의 동탁. 건축계의 돈 주앙. 건축계의 휴 헤프너.

 

 

 

 

 

 

 

 

 

 

그런데 실제로 지었다. 게다가 계획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단의 왼쪽 사진에서 창틀에는 큰 초가, 오른쪽의 바닥

 

에는 진짜배기 랜턴이 있다. 이 조명을 켜 놓고 호젓하게 독서하는 밤은 과연 얼마에 값할 것인가. 게다가 오른

 

쪽 사진에서 보듯 랜턴은 욕실의 벽에 걸 수도 있다. 욕실에도 창문이 있음은 물론이다.  

 

 

 

 

 

 

 

 

 

 

 

존경합니다. 당신의 거대한 쾌락을 엎드려 존경합니다.

 

 

 

 

 

 

앞서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총 140여 쪽의 짧은 분량을 갖고 있다. 그 안에 두어장 마다 등장하는 그

 

림과 사진이 있고, 내용도 전문적인 접근보다는 소챕터의 주제에 관련된 일화에 가까운 것이 많다. 그나마도 본

 

문의 편집이 쪽마다 넉넉한 여백을 둔 형식이기 때문에 글의 실제 분량은 A4 몇십 쪽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집짓기에 필요한 정를 구하시는 분, 혹은 전작들에서 두툼한 분량에 담긴 다채로운 정보를 접하고 같

 

은 재미를 다시 찾아오신 분께는 함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얇은 두께를 고려해 보면 상대적으로 고가라고 여겨

 

지는 14,500원의 가격도 딱히 친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시리즈를 모으고 있는 저자의 팬, 혹은 건축과 같은 전

 

문 카테고리의 책도 구비되어 있는 도서관을 이용 가능한 독자, 혹은 지긋지긋한 전세고민에서 잠깐만이라도 머

 

리를 쉬고 싶은 이 땅의 '민중' 일반에 권한다. 그 모두에 대체로 해당하는 나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산뜻하고 즐

 

거운 산책 같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