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고나무,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북콤마. 2013, 6.)

 

 

 

 

 

 

이 표지, 대단하다. 근래 접한 표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다.

 

 

 

위에 실은 표지 그림은 띠지가 포함된 출판사 제공 이미지이다. 띠지를 제하고 나면, 바닥을 탄탄하게 밟고 서

 

있는 발 끝까지 전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주름 없는 품에 가려져 있지만 어깨는 단단하고, 요새의 유행에 비해

 

다소 넓은 바지통은 그대로 강력한 다리를 연상케 한다. 적당한 중키에 주머니에 찔러 넣은 팔까지, '강인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얼굴이다. 목과 색깔이 달라 합성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감정 없는 눈매와 가볍

 

게 다문 입술은 몸이 이미 전달한 언어와 동일한 내용을 갖는다. 그리고 반쯤 가려진 그 모습. 어딘가의 뒤에 숨

 

어있는 것일까. 숨었다고 보기에는 이미 당당하게 드러난 반신이 있다. 훔쳐보는 것일까. 훔쳐 보는 얼굴은 이렇

 

게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는, 나를, '감시'하는 중이다. 이토록 당당하고 권력적으로, 그

 

는 아직도 '살아 있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시에 그와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닥 대단할 것도

 

없는 이런저런 일화 끝에,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전두환, 나쁜 새끼지. 사람도 많이 죽이고. 그런데 그 앞에 가 있을 때엔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구. 대통령 앞이

 

라 긴장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진짜 좋은 거야. 재미있고, 남자답고, 내 마음도 잘 알아주고. 나오면서 그런 생

 

각을 했지. 아아, 악당도 저쯤 되면, 나 같은 사람의 그릇으로는 잴 수도 없나 보다, 하고."

 

 

 

위의 표지를 찬찬히 보다 보면, 그리고 그 얼굴을 뜯어보고 있노라면, 당시 그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기

 

도 하다. 선인이 아닌 것은 알겠다. 그러나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 무섭다. 말 잘 들으면 잘해 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전두환은 '아직도' 살아 있다. 백담사는 잊자. 합천에는 그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다. 시민들의 반대

 

개관되기는 못했지만, 모교인 대구공고는 전두환 자료실을 만들었다. 각하배 골프대회에서 큰절을 받고, 육

 

사의 사열식에서 경례를 받는다. 전직 대통령들 중 그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영예이다. 도대체 왜.

 

 

 

질문의 답은 책의 형태로만 세어도 차고 넘칠만큼 나왔다. 거기에 한 권 더해질 뿐인 이 책은 무엇이 다른가. 작

 

는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그 질문에의 답을 부제로 마련했다. '철저히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먼저 지적하자. 이 책, 친절하지 않다. 5부로 나뉘었으나 무슨 기준으로 나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각각의 부에

 

속한 제목과 내용이 온전하게 일통하지 않는 탓이다. '전두환의 화술' 뒤에 갑작스레 '전두환 연표' 그리고 그

 

다음에 '전두환과 미국'이 나오는 배치는 그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게다가 저자인 <한겨레>의 기자 고나무는

 

가장 '기사 같지' 않은 문장을 쓰는 기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같은 신문사의 에디터조차 이 책의 추천사에서 '가장

 

문학적이고 탐미적인 전두환 르포이자 현대사 다큐멘터리'라고 소개했다. 연대별 사건을 따라가며 차곡차곡 쌓

 

여진 평서형 문장을 밟는 산책을 기대했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이 책의 독서는 탐험에 가깝다.

 

 

 

그러나 그 지역을 잘 아는 길은 역시 산책보다는 탐험이다. '가 봤다'고 하기에는 백배 즐기기나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맛집의 순례 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안다'고 하려면 황량한 공터도 양아치가 어슬렁거리는 뒷골목도

 

밟아봐야 할 일이다. '전두환의 화술', '전두환과 골프', '폭탄주와 전두환' 같은 소챕터는 그래서 소중하다. 신문

 

의 기사나 방송의 꼭지로 만들기에는 너무 사적이고 잡스러운, 그러나 그를 재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독재 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간

 

학생이 회고하기를, 고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고문을 하는 형사가 집으로 전화를 해 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순간이었다고. 81년 인천에서 태어난 내게 전두환은 '이미지'이다. 그러니까 그는 도청 하나쯤은 탱크로 밀어버

 

릴 수도 있고, 그 일로 농담을 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 29만원 밖에 없다고 코믹한 말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의 성

 

대모사를 들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그 모든 스펙트럼을 다 가질 수 있다. '이미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뒤의 나는 더 이상 웃으면서 전두환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사람이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

 

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