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김어준, 지승호 <닥치고 정치> 2




여기에는 <닥치고 정치>를
읽으며 발췌한 내용들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적는다. 언젠가 참고하려고 끄적거려

두는 것이지만 내용들끼리 서로 연결되지 않았고, 발췌한 내용 자체가 재미있는 경우가 많으니 시간이 많은 분

때때로 읽어 보시라.






- p50. '이 정도면 거대 담론의 도움 없이 일상의 언어로 좌, 우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본다'


이 말은 '좌와 우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지승호의 질문에 '공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해법을 내는

기질이 작동하는 방식, 그 적응의 방식이 서로 다른 두 태도'라고 답변한 뒤 붙인 결론이다.


김어준은 가는 곳마다 '무학'을 자처한다. 위의 언술에서는 그것이 겸양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을, 알아듣기 쉬운 말로 전달하는 것이 곧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스탠스가 드러난다. 이후 진보

세력에 관한 평에서 김어준은 위와 같이 행하지 못 하는 것이 진보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한다. 정확한 지적

이라고 생각한다. 노회찬의 인기는 진보의 언어에서 나왔는가? 노회찬은 노회찬의 말을 썼을 뿐이다.




- p 166-169. '삼성에 대한 모든 비판은 삼성과 이건희를 분리한 뒤, 오로지 이건희 일가에만 집중하면 돼. ...

그게 성공하면 이건희를 비판하면서도 삼성이란 기업에는 아무런 딜레마를 느끼지 않고 취직할 수도 있게 되는

거지. ...삼성이란 기업 집단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라고.'


고민이 된다. 이건희 씨 일가와 그 일가에 종속하는 일군을 제하고라도, 삼성이라는 기업에는 이미 그들이 심어

놓았거나, 혹은 피고용자들이 자발적, 암묵적으로 상상하여 동의하고 동경하는 '기업 문화'가 실존한다고 생각

한다. 텃밭을 잘 가꾸어 놓았는데, 거기에서 제 2의 이건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김어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상징적인 이 씨 일가가 법에 근거해 합당한 처벌을 받고 물러


난 뒤, 삼성이 건강한 방식으로도 이전처럼 한국 경제의 큰형이 되어준다면, 아니면 적어도 타 기업들 만큼의

윤리 의식을 보여준다면, 나도 아이유의 갤럭시 CF나 김연아의 하우젠 CF를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 문제는, 언젠가 정리해서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 p188. '선거에서 당선이란 정치인이 대중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부채 의식, 그 빚을 한 번에 찾아가

는 거니까. 노무현이 갑자기 부상해 결국 대통령까지 됐던 건, 노무현이 오랜 세월 차곡차곡 사람들의 마음에

예치해뒀던 마음의 빚을 한 번에 인출해 간 거라고.'


개인적인 생각이다. 상지상(上之上)은 무익하나 유의미한 것, 하지하(下之下)는 유익하고 무의미한 것. 노무현

은 돈 까먹고 시간 까먹는 무익함에도 끝까지 도전했기에 대권에서 의미를 거둘 수 있었다. 어떤 분은 초등학생

조차 사기인 줄 뻔히 아는 변명을 늘어놓고 이익을 탐한다. 끝이 좋을 수 없다. 정치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

되는 철리라고 생각한다.




- p 204. '그런데 난 그런 차원의 실익(통일이 되면 거둘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큰 이익이 우리의 섬나라 의식

극복이라고 봐. 우린 섬이 아닌데도 섬처럼 사고하잖아. 그럴 수밖에 없어. 삼면이 바다이고 나머지 한 면은 벽

이니까. 분명 육지로는 이어져 있는데 '프랑스에 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가봐야겠다', 이런 상상이 불가능하

잖아. 그래서 우린 세계를 우리와 별도의 공간으로 인지하지.'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스물여섯에 인도로 떠나면서 스스로가 '아, 국경을 넘어도 되는 거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는데도 그 뒤로 5년간 여전히, 돈이 있어도 홍콩조차 못 가고 있다. 작

게 보면 외국의 문물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 이채로운 추억을 많이 쌓지 못하는 정도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상대성', '다원주의'등에 대해 직접 체험하고 고민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 다른 문화권과의 비

교를 통해 자신의 객관적 좌표를 확립하는 경험이 적다는 것, 그리고 국내 사회의 모순점 등을 국제 사회와 비

교하는 데 둔감해지는 것 등의 큰 손해라고도 볼 수 있다. 통일이 되어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갈 수 있는 세상

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덴마크의 레고 본사에 원서를 넣었을 것이다. 




 - p 222-223.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

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

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덤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

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

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

고 혼자 결론 내리지.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

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렇게 그들은 연애를

시작해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

가 내는 거였다는 걸.'


아, 진보. 옷 좀 잘 입고, 유머도 익히자!




- p 300.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

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끼가 아예 삼년

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시위, 농활 등의 광범위한 사회 참여를 통해 선후배 간에 유대가 강고했던 전 세대에 비해, 종신고용의 약속이

사라진 취업 환경과 학부제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붕괴된 학생 사회에서 자라난 우리에게는 '형'이 적다. 2009

년 늦봄에 김어준은 '검은 넥타이'만 매겠다고 말했고, 그 뒤로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정말로 검은 넥타이만

매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만나본 적도 없고 딱히 만나줄 것 같지도 않지만, 김어준 씨는 내게 '어준이 형'이

다. 이런 형이 늙어서 원로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대장 원로는 말고. 심술쟁이 영감 원로 정도.)




- p 305-306. 김어준이 말하는 좋은 컨텐츠의 조건. 기억하자.


하나. 좋은 컨텐츠는 스스로 성장한다. 컨텐츠가 스스로 성장할 때까지 버티는 배짱의 '애티튜드'.

둘. 대중언어로 말하는 자세. 진보진영의 차려 자세는 사람의 의식부터 긴장시키고 내용이 들어오기도 전에 피

로하게 만든다.

셋. 쫄지 않는 자세. 쫄지 마! 떠들어도 돼, 씨바. 그런 자세는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

넷. 덕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