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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안대회, <천 년 벗과의 대화>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인 안대회 씨의 신작. 개인적으로는 성대로 찾아가 한 학기동안 대학원 수업을 들

었던 경험이 있는 터라 씨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몹시 어색하지만 독서일지 란에서는 일단 통일하기로 한다.
 

저자는 한양대 국문과의 정민 교수와 함께 한국한문학을 대중화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이따금 서점에 들르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읽지는 않았더라도 '벽광나치오', '선비답게 산다는 것', '조선의 프로페셔널' 등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한문으로 쓰여진 옛 글 가운데 '선비 의식', '프로 의식' 등의 주제를 정하여 대중이

읽을 만한 짧고 산뜻한 글들을 모은 결과물들이다. 이 번의 책 제목은 '천 년 벗과의 대화'. 


'천 년'은 이 글에 소개된 작품의 저자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태어난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와 오늘 사이

의 시간이 약 천 년 정도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 사실 소개된 이들 중 두어 명을 제하고는 조선 중기 이후

출생이고 대부분은 후기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것은 '천 년'이라는 제목을 붙이기 위해 억지로 이규보를 끼

워넣은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수필류', '에세이류'의 서정적인 글이 특히 조선 후기에 폭발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저작들에서는 주제가 그대로 내용에 반영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제목 중 '벗과의 대화'라는 것을 보고

나는 옛 문인들이 서로 나눈 편지를 다루신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여러 문인들이 각각의 주제

에 대해 쓴 글을 모아 소개한 것이었다. '벗'은 저자와 문인간의 관계, 혹은 독자와 문인간의 관계를 지칭한 모

양이다.


금태섭 씨가 특히 현대 사회의 쟁점적 측면에 주목하여 소설의 소개를 통해 자신의 주관을 피력하였다면, 안대

회 씨는 50여 편의 짧은 글로 사람이 평생 지켜야 할 가치관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평화로이 수용할 수 있는 방

법은 무엇인가,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등,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이 가질 수 있

는 근원적, 내면적 물음들에 대해 옛 글을 소개함으로써 답하고 있다.


중요하긴 하되 시급을 다투는 이슈는 아니고, 또 그 이슈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소개하는 옛 글들이 대부분 한시

나 수필이므로 추리 소설, 사회 소설 등을 다룬 <확신의 함정>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꼭 위에 말한 이슈들만이 아니라 좋은 한문작품을 소개하거나 재미있는 일화, 혹은 옛 사람들의 취미 등

을 들려 주기도 하니 한국 한문학에 대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겠

다. 한 편당 두 장의 분량이라 침대 옆에 두고 자기 전에 두어 편씩 읽기에도 좋다.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

하는 20대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 보고자 하는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이 좋겠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매일같이 공부하고 읽는 내용이라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사족 한 가지만. 나는 이 책을 중앙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았기 때문에 애당초 책의 겉표지가 없었는데, 하드커

버로 된 속표지에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 겉표지의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서체와 질감이 모두 감탄스

러워 누가 쓴 것인지 찾아 보았지만 책의 맨 뒤쪽에 있는 서지 정보와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 소개에서

도 모두 찾을 수 없었다. 훌륭한 한글 캘러그러피인데 이런 대접을 받는 것에 괜히 내가 서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