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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김어준, 지승호 <닥치고 정치> 1





나왔다. 예약까지 걸어 도서를 구매하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 자칭 민족정론지인 <딴지일보>의 종

신 총수이자 이명박 대통령 헌정 방송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인 김어준 씨(이하 김어준)의 9월 신작, <닥치고
 
정치>.

내가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미 알라딘을 비롯한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영화와 함께 다시 인기를 얻고 있

는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에 이어 베스트셀러 2위에 올라가 있다. '나는 꼼수다' 21회 방송에 따르면, 예약

시점에 이미 2위까지 올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굳이 다시 적는다. 닥치고 사자.



이 책의 미덕부터 정리하고 시작하자.


하나,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컨텐츠.

'나는 꼼수다'에서 이미 증명되었던, 그러나 방송이라는 특성상 (그리고 정봉주 전 의원의 활약에 힘입어) 정리

되지 못하거나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던 방대한 팩트(fact), 그리고 팩트 간의 유기적인 연결이 활자로 차근차근

적혀져 있다. 이어폰을 통해 들을 때에는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다시 한 번 듣고 싶거나 하면 임꺽정 소

굴 같은 웃음소리들을 피해 가며 되돌려감기를 해야 했지만, 책은 그냥 다시 한 번 읽으면 된다. 보수와 진보,

각하와 BBK, 삼성과 이건희, 그리고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인물평과 '나는 꼼수다' 홍보까지, 선물상자처럼 꽉

꽉 채워 넣었다.



둘. '인터뷰 북'이라는 전달 방식.

몇몇 부분에서 김어준이 다시 문어체로 정리한 흔적들이 보이지만, 이 책은 본래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 씨(이

하 지승호)의 인터뷰 북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다. 지승호는 현재 활동 중인 인터뷰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로,

전문 인터뷰어라는 직종을 개척했다고까지 평가받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낸 20여 권의 인터뷰 북에서 그의 역

할은 대체로 토론자나 추종자가 아닌 공정한 질문자에 한정되어 있고, 질문의 분량은 인터뷰이의 대답에 비해

형편 없이 적지만, 책을 두 번, 세 번 읽어보면 그 질문들이 적재적소에, 인터뷰이가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

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그의 특성이, 김어준이라는 '필자'를 만나 시너지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필자로서의 김어준은 극단적

으로 감성에 호소하는 글에 능하다. 대체로 구어체이고, 시적이거나 철학적인 표현과 허를 찌르는 비유를 능란

하게 구사하며, 논리적인 본론보다는 임팩트 있는 결론을 선호한다. 이러한 그의 특성은 짧은 분량의 기사나 선

언문 등에서는 빛을 발하지만, 감성적인 호소력 못지 않게 논리적인 증명 또한 필요한 한 권 분량의 서적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인터뷰 북'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최종적으로 글로 표현되었

으나 본래는 입으로 말한 것이라고 하면 그만이고, 아울러 한 의미 단위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지승호가 다시

한 번 정리를 하거나 설명이 미진한 부분, 혹은 논쟁적인 부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는 형태로 완급을

꾀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대단히 성공적이다. 구어의 힘은 살리고 논리적 흐름을 보완했다. 이 콤비,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셋. 타이밍.

만사가 일촉즉발이다. 오세훈 씨의 시장직을 제외하고, 올 한 해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 가운데 매듭이 지어진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곽노현 교육감의 유무죄, 저축은행의 최종 향방, 문재인 씨의 출마 여부 등 거대한

흐름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이슈들이 미결인 상태로 나날이 덩치를 키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

확한 정보와 합리적인 예측이 간절한 상황이다. 영웅을 기다리는 난세에, '나는 꼼수다'라는 보검까지 옆에 차

고 등장한 이 책. 잘 기획된 상품이다. 성공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서점 구입으로 10% 할인, 예약구매자에 한해 2000원 적립금 증정 행사를 합쳐 약 만 원에 구입했는데,

정가인 13,500원을 주고 샀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았을 책이다. 두 배로 비쌌더라도, '나는 꼼수다' 청취료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지불했을 것이다. 위에는 '닥치고 정치'라는 주제와 주로 관련하여 이 책의 장점을 논했는데,

본문 가운데에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김어준 특유의 세계관, 가치관이 다량 제시되어 있어 그와 내 생각을 비교

해 가며 가상의 토론을 벌이는 것도 무척 재미있다. 정리하여 구매 왕추천.



참, 끝내기 전에 하나만 더. 어준이 형, 책 표지는 사기야, '씨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