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내용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에는 말하는 사람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
겠다'라고 말씀하시면 금언이 되지만, 수 조 원 대의 탈세를 저지른 기업 총수가 그렇게 말하면 블랙 코미디가
된다. 말에는 말하는 태도가 있다. 남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이 '사죄'가 아니라 '위로'를 말하면 그것은 두 번째
의 폭력이 된다. 말에는 말의 맥락이 있다. 비리가 몇십 가지나 드러난 이가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하면 그
말은 아무런 중량도 가질 수 없다. 곧, 말하는 사람이나 태도, 말의 맥락이 어긋난 말은 말로서 존재하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기왕에 작가로서나 일반인으로서의 공지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이 책의 소재인 쌍용자동차 사건에 접
근해 가는 태도와 서술의 기법도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슬퍼서 잠시 쉬었다가 읽는 독서를
했다. 내용의 힘일 것이다. '의자놀이'의 말을 듣고 느껴지는 슬픔과 화의 무게는 묵직하다.
책 덕분에 덩달아 유명해진 '르포르타주'란 장르 명이 말해주듯, 이 책의 내용은 '공지영이 바라본 쌍용자동차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 완벽하게 장악한 필자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잣대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고,
자연인, 혹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공지영'이라는 구체적 개인이 이 사건에 접근하고 공감해 가는 과정을 그
리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야 함부로 독서를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
람에게는 그 이유가 바로 당신도 의자놀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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