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5.07 19:51

 

 

 

 

 

출판사 미디어트리거의 기획작.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 명의 패널을 초대하여 '대통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정리해서 출간한다. 부제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 대통령을 이야기하다.'.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정치를 말할 때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당연한 첫걸음이다. 그 기획의 패널으로 굳이 이 세

 

명을 부른 이유로는 아마도 '합리성'이나 '관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에게는 모두, '속해 있는' 진영의 논

 

리와 완결이 일치하지는 않은 언행을 보인 공통점이 있다.

 

 

 

윤여준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16대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소장을 지낸 바 있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략을 짠 '책사'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전략

 

을 지도하여 참패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을 구원했던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안철수와 박경철의 '희망콘서트'를 후원하기도 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연

 

설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함께 하다가 2014년 3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과정에서 결별했다. (이 책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 이전인 2월에 출간됐다.)

 

 

 

중앙대 법대 교수인 이상돈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조선일보>의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당

 

시 대통령이던 김대중, 노무현에게 날린 신랄한 독설은 보수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이후 보수의 재집권에 성공한 MB정부 하에서, 이상돈은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추진되고 있는 중에도 그 의도와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여, M

 

BC 100분 토론에서 화면 왼편에 자리잡은 패널이 정부를 공격하는 진기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짜 보수'

 

를 표방하던 그는 19대 대선에서 김종인, 안대회와 함께 박근혜 캠프의 참신함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약했지만 대선 이후로는 그에 값하는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가 지난 뒤부터는

 

'비상식적 인사'나 '무너진 신뢰' 등을 근거로 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인 이철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당대표인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 직을 수행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몸을 담기도 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소장을 거쳐 현재는 1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특히 19대 대선을 전후하여 활

 

발한 방송 활동으로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평론가가 되었다. 인생 대부분의 이력이 민

 

주당에 놓여져 있지만, 사안을 논함에 있어 당략이나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공과를 비교적 공정하게 가늠한다

 

는 평을 받아, 급격히 보수화된 방송 환경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론가로 자리잡았다.

 

방송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그리고 인터뷰 등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전략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 면도 있다.

 

 

 

이런 이들의 언행은 일각에서 '변절'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자

 

신이 설득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자세'는 진영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정략이 심화되는 정세에서 많은 사람들

 

에게 '합리성'과 '관용'을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특히 그런 일면이, 논쟁적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명된 까닭일 것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종 제목인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와 달리 토론의 주제 이름은 <대통령의 과

 

거,현재, 미래>였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대부분 전현직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서로에 대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호명되는 대통령은 4대 윤보선과 10대 최규하를 제외한 9명이다.

 

 

 

총 11장 중 1장부터 9장까지가 각각의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 보통 20쪽에서 30쪽 가량의 분량인데, 가장 짧은

 

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다룬 10쪽의 4장이며 가장 긴 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38쪽의 7장이다.

 

 

 

각 장은 다시 세 개의 소챕터로 나뉘는데, 책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소챕터는 대체로 '그 대통령

 

정권이 갖는 의미', '그 정권의 공', '그 정권의 과'로 구분되어 있는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이 구

 

분이 엄밀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세 개의 소챕터라는 기준의 예외는 공이 빠지고 평가와 과만 있는 4

 

장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 소챕터의 제목만 읽어봐도 -세 명이 파악하는- 한국 현대사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책 목차를 이 독후감의 댓글로 첨부하려 한다.

 

 

 

윤여준이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을 높게 평하거나, 이상돈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거나, 이철희

 

가 김대중의 전략적 면모를 재조명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평이다. 똑같이, 윤여준이 노무현의 '뺄셈 정치

 

'를 지적하거나, 이상돈이 DJP연합의 정략성을 비판하거나, 이철희가 박근혜의 불통을 거론하는 것도 놀랍지 않

 

다.

 

 

 

러나 윤여준이 김대중의 탁월한 식견을 칭찬하는 한편 이회창의 반개혁적 면모를 공개하는 장면, 이상돈이

 

노무현의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인정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 임기 1년에 대해 혹독한 점수를 내리는 장면, 이

 

철희가 이승만의 정치력이 김구보다 위였다고 평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의 아젠다 세팅 능력을 비판하는

 

장면 등은 무척 신선했다. 특히 여기에 이 패널 조합의 특장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토론 과정에서 합의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는 세 인물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공과이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유신 전 박정희가 이룬 성과,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

 

제, 김대중의 IMF극복 등이다. 반대로 입을 모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승만의 권력욕, 박정희의 유신, 김영

 

삼의 IMF, 김대중의 측근 비리 등이다. 이렇게 한 명의 대통령이 공이든 과든 대체로 확실한 명암을 갖는 한편,

 

의미와 장단점을 논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두 대통령도 있다. 각각 해당 장의 소챕터 제목으

 

로 문장을 만들어 보자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큰' 전두환 대통령과, '건설사 CEO

 

스러웠'으며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의 과오를 저질렀고 결국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를 남

 

긴 이명박 대통령이다.

 

 

 

각각의 대통령에 대한 9개의 장이 끝나고 나면 시점을 한국사회로 옮겨 문제점과 대안을 논해 본 10장 '미래를

 

말하자'와 11장 '지금 선 이 자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의 개혁 방향을 토론하고 향후

 

크게 성장할 정치 인물들을 평가하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총평한다.

 

 

 

정리하자. 먼저 장점부터. 하나. 역대 대통령이 집권 순서대로 호명되며 그 공과가 평론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

 

에 한국 현대사에 처음 접근하는 사람에게 거칠게나마 큰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 유효할 것이다. 둘. 어떤 형태로

 

든 권력의 최정상에 닿아 본 이들의 '뒷담화'가 섞여 있어 정보의 가치가 높다. 셋.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가 편하다. 넷.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 패널들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토론을 공부하는 데 좋은 참고서가 되어

 

준다.

 

 

 

단점은 장점을 그대로 뒤집은 데서 나오는 것이 많다. 하나. 강연이 아니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얘

 

기라서, 평가의 논거로 사용되는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사의 굵직한 정보들을 미

 

리 알고 있지 않다면 어려운 독서가 될 수 있다. 둘. 언급한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특히 활약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소간 감정적이거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

 

일 때도 있다. 셋. 대담의 녹취록 형식이라 막상 읽어보면 분량이 그리 길지 않다. 정리된 글이 아니라 발언한 것

 

을 받아쓴 것이라 입말체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발언자가 바뀔 때마다 한 줄씩 떼어서이기도 하다. 넷. 억지 주

 

장을 하지도 않지만 강한 반대를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놓고 하는 끝장토론이 아니고 정해

 

진 시간 내에 9명을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 토론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총평.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가 독서의 목적만 확실히 정해두고 읽기 시작하면 확실한 성과를 거

 

둘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패널들의 발

 

언을 접하는 것 또한 여러 책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장점이다. 각 패널들의 팬인 독자나 약간 깊이 있는 현대사

 

개괄서를 원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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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에서 언급한, 이 책의 목차를 따서 붙인다.


    1. 이승만 대통령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다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불행이 시작되다

    2.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그 선연한 빛과 그림자
    유신, 전과 후
    유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다

    3.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크다

    4.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의 가교/물통령
    북방정책, 통일정책은 분명한 공
    역사의 의미를 읽어라

    5. 김영삼 대통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로 박수 받고
    씻을 수 없는 과오, IMF

    6. 김대중 대통령
    26년만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
    햇볕정책, IMF극복은 공
    게이트로 날이 저물다

    7. 노무현 대통령
    이회창이 진 선거일 뿐?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8. 이명박 대통령
    건설사 CEO스러운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9. 박근혜 대통령
    야당이라는 인식으로 당선?
    변했나, 원래 그랬나
    변화는 가능한가

    10. 미래를 말하자
    개헌은 가능한가
    대한민국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11. 지금 선 이 자리
    다시 이곳과 현재를 말하다
    뭔가 변하고 있다
    윤여준, 안철수의 새정추로

    윤여준·이상돈·이철희 인터뷰

    2014.05.07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재밌는 조합이네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라니.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언제까지 대통령 개인의 한계로 국가가 흔들흔들 대는 걸 지켜봐야 하는지 걱정됩니다. 여담이지만 아마 MB가 2년만 더 해먹었으면 전두환만큼 분량이 적어지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2014.05.10 15: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세 사람은 공히 그 분을 너무 싫어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같이 보냈더라면 정말 한 쪽 분량만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2014.05.11 04:43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4.03.27 07:34

 

 

 

 

 

 

열 살 무렵까지 살았던 동네에는 기묘한 건물이 있었다. 교도소도 아닌데 철책은 높았고 드나드는 차는 하나같

 

이 80년대의 인천에는 흔치 않았던 중형 세단들이었다. 유년기의 관찰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위압적인

 

인상을 풍기는 각그랜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공교육 과정에 영어 과목도 없었고 동네에 학원이라고는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 정도 뿐이었던 시

 

절이라 우리의 방과후는 자기 전까지 대개 동탐험과 저녁 식사, 그리고 제 2차 동네 탐험으로 이루어져 있었

 

다. 이곳저곳을 쏘다니는 와중에 문방구에서 혀가 새빨개지도록 불량 식품을 사먹어도, 뒷산 절간에 바쳐진 사

 

탕을 훔쳐먹어도, 심지어는 네의 무고한 창문을 깨먹어도 꿀밤 몇 대로 끝나곤 했지마는, 앞서 말한 '기묘한

 

건물' 근처에서는 서성거리기만 해도 모르는 어른에게조차 크게 혼났던 기억이 난다. 그 건물이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의 인천 지부였던 것을 알게 된 것은 20여 년 후의 일이다.

 

 

 

국가정보원의 시초는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자 쿠데타의 참모 격인 김종필

 

에 의해 고안된 중앙정보부이다. 중정은 이후 1980년 12월, 12.12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안전기획부로 개편된다. 김삼의 문민정부 시기인 1995년, 안기부는 그간 둥지를 틀고 있던 '남산'을 떠나 현

 

재의 위치인 내곡동의 신청사로 이사를 하였다. 김영삼을 이어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은 1999년, '중

 

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라는 명칭이 국민 일반에게 주던 부정적인 느낌을 없애고자 '국가정보원'이라는 새 이

 

름을 붙였다.

 

 

 

지나간 근현대사에서 뿐 아니라, 2014년 현재에도 국가정보원은 정치 카테고리에서 가장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는 주체 중 하나이다. 2011년 서울시청에 재직 중인 화교 출신 새터민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

 

를 조작했던 사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를 전후하여 인터넷 게시판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건, 2013

 

남재준 원장이 정국의 전환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대화록을 폭로한 사건 등이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이다. 이러한 한때. 벼르고 별러 왔으나 부록을 합하여 88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 부담스러워 미뤄 오던

 

이 책의 독서를 감행했다.

 

 

 

앞서 국정원의 연원 요약에서 밝혔듯, 정보기관이 '남산'에 있었던 것은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 때이다. 책의

 

저자 김충식은 그 가운데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중앙정보부 시절에 남산에서 있

 

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책의 표지에 사격 연습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책이 기획되고 출간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노태우 정권 때인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러나 생생한

 

현장감을 그대로 담아낸 취재 자료들은 값진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어 그 이후로도 근현대사를 다루는 서적과

 

프로그램 등에서 활발하게 인용되어 왔다. 그리고 18대 대통령 선거를 3주 가량 앞둔 2012년 11월 말에 개정

 

증보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오늘 독후감을 쓰고 있는 책은 바로 이 개정증보판이다.

 

 

 

책의 본문은 총 2부 20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61년 5월 김종필이 이화여고 앞 정동호텔의 방에서 새로운

 

정보기관의 체제를 짜기 위해 고심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72년 유신의 선포와 그 직후의 분위기까지를 다룬다.

 

2부는 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에서 시작해 80년 12월 유학성 대장이 예편과 동시에 초대 안

 

기부장에 취임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한 장은 보통 15쪽에서 45쪽 정도의 분량을 갖는데, 장을 나누는 기준은 대체로 부장의 취-퇴임이거나 정계

 

주요한 사건 전후이다. 여기에 중정과 관련된 '10대 사건',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간단한 약력을 정리해

 

놓은 '정치 파워엘리트 인맥사전' 등의 내용이 실린 부록이 덧붙여져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를 다루는 근현대사 도서는 시중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당시 체제 안정에 주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중앙정보부이므로, 그러한 도서들에서 중정의 활약상을 빈번히 목격할 수 있는 것은 당연

 

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특장점은 그 모든 일들을 '중정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데에 있다. 근현대사

 

를 압축해 놓은 한두 권 분량의 도서에서는 아무래도 집권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저항 세력의 대표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 가장 상징적인 인물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내용의 흐름이 짜여질 수

 

밖에 없다. 대체의 맥락을 이해하거나 해당 도서의 저자가 전달하려 하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

 

이 없지만, 현실의 인과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는 누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러한 '껍질'을 들춰 내고 그 밑에서 정략과 음모 등을 통해 가장 활발히 암약했던 세력인 중정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준다.

 

 

 

이 '보여주기'는 관련 인물들의 직접 증언, 회고록 등을 통한 간접 증언, 그리고 유출되거나 공개된 각종 문서들

 

을 인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특히 사건의 발생 일시나 경과 등과 같은 건조한 자료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발언 인용과 현장 묘사 등을 통해 마치 현장에서 함께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생생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20여 년 전 이전에 출간되었음에도 꾸준히 인용되고 마침내 증보 개정판까지 나오게 된 것

 

은 그래서일 것이다.

 

 

 

한편 단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의 초판이 출간된 것은 92년의 일로, 당시 이러한 사회과학 서적을 접할 수 있

 

는 연령의 독자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정치적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중정이 뒤에서 이러이러한 계략을 꾸며서 마침내 그 사건이 터졌다'까지만 말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해서

 

터진 그 사건의 자세한 경과나 이후에 정계와 사회에 끼친 영향 등까지 일일이 다 설명하고 비평해줄 필요는 없

 

었을 것이다. 당시의 독자들도 다 아는 얘기였을테니 말이다. 당연히, 당시를 체험하지 못했거나 공부하지 않은

 

오늘날독자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경험을 못 했든 공부를 안 했든 아무튼 그 시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독서가 어려워지는 지점 하나 더. 저자

 

는 한 장에서 인물이나 단체를 다룰 때 종종 그 장이 다루고 있는 시기 이후까지의 행적을 함께 소개하곤 한다.

 

이를테면 73년 윤필용 사건을 소개하면서 하나회를 언급한 뒤, 그 하나회가 70년대에 어떻게 성장했으며 80년

 

대에 어떻게 집권했고 90년대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정리해 주는 식이다. 몰랐던 하나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 것은 고맙지만, 이렇게 한참 몰입하며 읽다가 어느새 다시 73년과 74년으로 돌아가버린 내용을 접하

 

면 조금 혼란스럽다. 나는 현대사 강의를 위해 정리해 두었던 연표를 꺼내어 옆에 두고 같이 읽었다. 지금은 이

 

때 얘기하는 중이지, 지금은 한 해 넘어가서 이 때 얘기하는 중이지, 하고 손으로 짚어가며. 이왕의 개정증보판

 

인데 챕터의 첫머리마다 간단한 연표라도 넣어 줬더라면 무척 고마웠을 것이다.

 

 

 

하기사 단점이라지만 그 또한 다른 책들로 공부를 쌓고 나면 불편하지 않을 터. 다만 선뜻 권하기 어려운 것은

 

앞서 고백한 것처럼 소도 때려잡을 만한 880여 쪽의 분량 때문이다. 즐겨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에게

 

는 오히려 즐거움이겠지만 시험 삼아 도전해 보려는 이에게는 이래서 학교 다닐 때 국사 공부가 하기 싫었었지,

 

하는 새삼의 깨달음을 줄 수도 있겠다. 긴 분량이지만 결국 요약하면 '중정은 나빴다'이고, 핵심은 '어떻게 나빴

 

나'와 '얼마나 나빴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떻게'와 '얼마나'는, 독서와 팟캐스트 청취 등을 통해 당대

 

의 물정을 어느 정도 아는 이에게조차 충격적인 수준일 것이다. 이 땅에 있었던 일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게 되

 

는 이 거리감, 이 거리감에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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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인 김충식 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30년 간 재직하였고, 2011년에는 가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에 임명되었다. 이후 교수직을 휴직하고 그제인 2014년 3월 25일로 임기가 종료된 2기 방송통신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2기 방통위의 최대 이슈였던 종합편성채널의 재승인을 두고 여당 추천 위원들과 강한 설전을 벌였으나 석연치 않은 과정 끝에 끝내 재승인 허가가 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전국언론노조에서는 그 책임을 물어 그의 연임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결국 3기 방통위에서는 물러나게 됐다.

    2014.03.27 07: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3.11.13 01:19

 

 

 

 

 

 

이 표지, 대단하다. 근래 접한 표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다.

 

 

 

위에 실은 표지 그림은 띠지가 포함된 출판사 제공 이미지이다. 띠지를 제하고 나면, 바닥을 탄탄하게 밟고 서

 

있는 발 끝까지 전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주름 없는 품에 가려져 있지만 어깨는 단단하고, 요새의 유행에 비해

 

다소 넓은 바지통은 그대로 강력한 다리를 연상케 한다. 적당한 중키에 주머니에 찔러 넣은 팔까지, '강인함'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얼굴이다. 목과 색깔이 달라 합성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감정 없는 눈매와 가볍

 

게 다문 입술은 몸이 이미 전달한 언어와 동일한 내용을 갖는다. 그리고 반쯤 가려진 그 모습. 어딘가의 뒤에 숨

 

어있는 것일까. 숨었다고 보기에는 이미 당당하게 드러난 반신이 있다. 훔쳐보는 것일까. 훔쳐 보는 얼굴은 이렇

 

게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그는, 나를, '감시'하는 중이다. 이토록 당당하고 권력적으로, 그

 

는 아직도 '살아 있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시에 그와 가까이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닥 대단할 것도

 

없는 이런저런 일화 끝에,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전두환, 나쁜 새끼지. 사람도 많이 죽이고. 그런데 그 앞에 가 있을 때엔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구. 대통령 앞이

 

라 긴장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진짜 좋은 거야. 재미있고, 남자답고, 내 마음도 잘 알아주고. 나오면서 그런 생

 

각을 했지. 아아, 악당도 저쯤 되면, 나 같은 사람의 그릇으로는 잴 수도 없나 보다, 하고."

 

 

 

위의 표지를 찬찬히 보다 보면, 그리고 그 얼굴을 뜯어보고 있노라면, 당시 그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기

 

도 하다. 선인이 아닌 것은 알겠다. 그러나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 무섭다. 말 잘 들으면 잘해 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전두환은 '아직도' 살아 있다. 백담사는 잊자. 합천에는 그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다. 시민들의 반대

 

개관되기는 못했지만, 모교인 대구공고는 전두환 자료실을 만들었다. 각하배 골프대회에서 큰절을 받고, 육

 

사의 사열식에서 경례를 받는다. 전직 대통령들 중 그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영예이다. 도대체 왜.

 

 

 

질문의 답은 책의 형태로만 세어도 차고 넘칠만큼 나왔다. 거기에 한 권 더해질 뿐인 이 책은 무엇이 다른가. 작

 

는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그 질문에의 답을 부제로 마련했다. '철저히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먼저 지적하자. 이 책, 친절하지 않다. 5부로 나뉘었으나 무슨 기준으로 나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각각의 부에

 

속한 제목과 내용이 온전하게 일통하지 않는 탓이다. '전두환의 화술' 뒤에 갑작스레 '전두환 연표' 그리고 그

 

다음에 '전두환과 미국'이 나오는 배치는 그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게다가 저자인 <한겨레>의 기자 고나무는

 

가장 '기사 같지' 않은 문장을 쓰는 기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같은 신문사의 에디터조차 이 책의 추천사에서 '가장

 

문학적이고 탐미적인 전두환 르포이자 현대사 다큐멘터리'라고 소개했다. 연대별 사건을 따라가며 차곡차곡 쌓

 

여진 평서형 문장을 밟는 산책을 기대했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이 책의 독서는 탐험에 가깝다.

 

 

 

그러나 그 지역을 잘 아는 길은 역시 산책보다는 탐험이다. '가 봤다'고 하기에는 백배 즐기기나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맛집의 순례 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안다'고 하려면 황량한 공터도 양아치가 어슬렁거리는 뒷골목도

 

밟아봐야 할 일이다. '전두환의 화술', '전두환과 골프', '폭탄주와 전두환' 같은 소챕터는 그래서 소중하다. 신문

 

의 기사나 방송의 꼭지로 만들기에는 너무 사적이고 잡스러운, 그러나 그를 재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독재 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간

 

학생이 회고하기를, 고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고문을 하는 형사가 집으로 전화를 해 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순간이었다고. 81년 인천에서 태어난 내게 전두환은 '이미지'이다. 그러니까 그는 도청 하나쯤은 탱크로 밀어버

 

릴 수도 있고, 그 일로 농담을 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 29만원 밖에 없다고 코믹한 말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의 성

 

대모사를 들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그 모든 스펙트럼을 다 가질 수 있다. '이미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뒤의 나는 더 이상 웃으면서 전두환을 말할 수 없게 됐다. 사람이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

 

기 때문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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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3.11.22 13:13 [ ADDR : EDIT/ DEL : REPLY ]
  2. 현선 님 안녕하세요. 또 반가운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얼빠진 듯 했던 일년이 다 지나가네요. 무사하고 평온한 한편으로 이따금 즐거운 일 생기는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3.11.22 15: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2.11.29 05:41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11월 작. 저자는 2012년에 네 권을 출간하였는데, 출간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다. 오슬로 대학 한학 교수 박노자를 인터뷰한 <좌파하라>, 영화감독 양익준을 인터뷰한 <Let's cinema party?

 

똥파리>, 서울시장 박원순과 그의 선거 캠프 인사들을 인터뷰한 <시민은 현명하다>, 그리고 '고발전문자' 이

 

상호를 인터뷰한 <이상호 GO발뉴스>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각기 세 권씩이 출간됐으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마음 편하게 정기 구독하도록 계간 잡지로 나와 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줄은 알겠지

 

마는. 아니면 최소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 담당 에디터 만이라도 통일해 주면 어떨까. 매 출간마다 출판사는 바뀌

 

는데 제목과 표지 디자인은 알찬 내용에 비해 좀 처지는 느낌이다. 개성이 없을거면 통일성이라도 있어주길 바

 

라는 건 장서가들의 공통된 소원이 아닐까 싶다.

 

 

 

 

 

이상호는 기자다. 그것도 고발 전문 기자다. 그가 취재한 아이템 가운데에는 이른바 '대박'이 많았다. 그런데도

 

대중 일반에게 그는 뉴스의 전달자보다 뉴스의 주인공으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강한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그가

 

'센 놈'들만 골라서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호는 자유총연맹을 건드렸다. 이상호는 전두환을 건드렸다. 그

 

리고 이상호는, 삼성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는 그 댓가를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이 가운데 삼성 X-file 건은 본

 

인이 취재 과정에서 메모하였던 것들을 정리하지난 7월 <이상호 기자 X-fil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

 

다. 한 주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고 수기 형태이기 때문에 긴박감과 진솔함이 한층 하다. 삼성 X-file 건만을

 

놓고 보실 분이라면 그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좀 더 객관적인 자료를 원한다면 삼성 X-file 건에서 이상호와 함

 

께 최대의 피해자로 꼽히는 노회찬 의원이 출간한 <노회찬과 삼성 X파일>이 도움이 된다.)

 

 

 

 

 

지승호의 올 해 책들 가운데서 살펴보자면, <좌파하라>와 <시민은 현명하다>를 한 묶음으로, <Let's cinema

 

party? 똥파리>와 <이상호 GO발뉴스>를 다른 한 묶음으로 가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인터뷰집이긴 하지만,

 

전자는 탈자본주의와 서울시장선거라는 '이슈'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고, 후자는 영화인 양익준과 기자 이

 

상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뤄지고 있다. 전자는 깊어서 좋고, 후자는 넓어서 좋다.

 

 

 

 

 

책은 총 4장으로 나뉜다. 1장 '요즘 기자로 산다는 건'은 현재 이상호과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사건, 그리고 만나

 

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다. 2장 '워스트 5 & 베스트 10+α'는 제목 그대로 이상호가 스스로 뽑은 기자 인생 최고

 

의 취재 다섯 개, 최악의 취재 열 개이다. 3장 '못다 한 이야기들'에서는 삼성 엑스파일 건 이후 일어난 일들과

 

참여정부와 삼성의 밀월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 '고발뉴스 이상호의 기자론'은 이상호가 생각하는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범상한 제목으로 정리하고 놓고 보면야 확 눈길 가는 곳이 없지만, 각 장을 채우는

 

내용들은 모두 십수 년 간 출입처 기자가 아니라 현장 기자로서의 삶을 지향해 온 이상호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을 감수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실 읽다 보면 연민과 공감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듯한 <이상호 기자 X-file>과 그 사람의 진심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이상호 GO발뉴스>를 모두 접한 뒤에

 

도, 이상호가 완벽한 선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명감'과 '진정성'을 모두 갖춘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

 

길지는 몰라도 때로 당대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가 직접 밝는 이력에도 그런 모습은 몇 차례 발견되고, 본인이 모르는 와중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뉴스의 전달자가 아니라 뉴스의 주인공으로 비추어지고, 그럼으로써 사회에 꼭 전달되어야 했던

 

메시지들이 물타기 된 것은 자본과 보수 언론의 주도면밀한 공세가 주 원인이었겠지만 서툴고 거칠며 전략이 부

 

재한 그 자신에게도 일단의 실마리가 있었다 할 것이다. 지만 그럼에도 세세한 흠결을 집어내어 그에게 면박

 

을 줄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명만이라도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고 왜 무섭지 않았

 

을까. 정말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예수의 기도였다고 한다. '주여,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제게서 거둬주십시오. 하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마시겠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기자들은 경찰에서 검찰으로, 검찰에서 국회로 출입처를 옮겨가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회사에

 

서는 좌천되고, 뉴스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전두환을 인터뷰하다 수갑을 차고 삼성을 고발하다

 

고소를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고발 기자로 남는 이유로, 이상호는 이한열의 이름을 꺼낸다. 1987년, 이한열은 연

 

세대 경영학과의 2학년 과대표였고 이상호는 1학년 과대표였다. 그해 늦봄, 학생들은 전두환 정권에 맞서 수업

 

거부를 행하였는데, 첫 날 백양로를 채웠던 400명은 날이 갈수록 줄어 열흘째 되던 날에는 부대표와 이상호, 그

 

리고 이한열만이 남았다. 이한열은 새우깡과 막걸리를 사왔고 셋은 청송대에 올라가 울었다 한다. 그리고 운명

 

의 6월 9일, 이한열은 연세대 정문에서 전경을 향한 맨 앞 줄에 섰고, 이상호는 그의 뒤통수를 보고 두번째 줄에

 

섰다. SY-44가 수직으로 발사됐고 이한열은 쓰러졌다. 발사 소리에 도망가던 이상호는 누군가 쓰러진 것을 보

 

고 돌아와 그의 다리를 들었고, 세브란스에 눕히고 나서야 그것이 이한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 전 관련된 일기(http://chleogh.tistory.com/1695)에서 올린 사진에, 얼굴이 나오지 않은

 

이한열의 다리를 들고 있었던 학생이 이상호였던 셈이다. 때로, 한 순간이 지배하는 인생이 있다. 이상호의

 

순간은 87년 6월 9일이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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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호 기자가 현재 취재 중인 내용들 중 특히 흥미가 있었던 것은 전두환 일가의 재산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겨레 등에서 간헐적으로 추적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과거사 청산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그 사람'의 세력화는 현재진행형일 뿐 아니라 범보수진영의 보이지 않는 주축 중 하나라고 한다. '29만원' 등의 희화적 소재로만 '그 사람'을 접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공부하고 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호 고발기자가 있어 고마운 또 한 번의 순간이다.

    2012.11.29 05: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kmk

    폭파의 절규 Naver ckmk1

    2012.11.29 16:40 [ ADDR : EDIT/ DEL : REPLY ]

일기장/20122012.10.16 18:35

 

 

 

 

 

 

지난 9일 국회 교과위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김태년 의원에 의해, 국사편찬위가 천재교육에서 펴낸 역사교

 

과서의 87년 6월 항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한열 씨의 사진을 수정하도록 권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국사편찬

 

위원회는 권고의 사유가 "학습자가 중학생임을 고려해 직접적이고 참혹한 사진 제시에 대해 재고려"를 요망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수정을 '권고'하였을 뿐이라면 강제력이 없다는 점에서 그닥 큰 쟁점으로 보이지 않지만,

 

태년 의원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검정교과서로 채택돼야만 공신력 있는 교과서 업체로 인정받을 수 있

 

고, 참고서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명목적으로는 권고이지만, 사실상 수정지시로 받

 

아들여진다.' 이 사진은 결국 명동성당의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YONSEI'라는 글씨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저 청년은 87년 6월 9일 당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다. 66년 생으로 나이는 스물두 살,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으로는 스무 살이었다. 스물두

 

살인데 2학년인 이유는 재수를 했기 때문이다. 종로학원에서 수학했다 한다.

 

 

저 청년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이유는 머리에 최루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수차로 최루액을 뿌

 

리거나 하지만 당시에는 유탄발사기처럼 총에 넣어 발사하는 최루탄이 있었다. SY-44라고 한다. 사각 45도로

 

발사하면, 즉 45도의 각도로 하늘을 향해 쏘면 70m까지 날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최루탄을 수평으로 발사한

 

경찰이 있었고, 그 최루탄에 이한열이 맞은 것이다.

 

 

최루탄이 날아다닌 것은 연세대의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6월 10일에 전국적인 큰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전에 연세대 학생들이 미리 모여 일종의 궐기대회를 열었던 셈이다. 6.10 항쟁이

 

라고도 하고 6월 항쟁이라고 통칭하기도 하는 이 큰 시위의 당시 공식 명칭은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

 

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였다. 말하자면 이한열은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과 '호헌철폐'를 주장하기

 

위해 시위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박종철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의 학생이자 학생회장이었다. 그는 이한열이 죽던 87년의 1월, 용산의 남영동 대

 

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죽었다. 잡혀간 이유는 같은 과의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중이던 박종운의 거취를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민주화추진위원회', 약칭 '민추위'는 서울대학교 학생운동의 비

 

공개 지도조직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행하는 한편 전두환 정권에 맞서는 활동을 펼쳤다. 전두환 정권은

 

이 민추위에 관련된 조사를 남영동의 대공분실에 일임하였는데, 여기에서 박종철을 잡아들인 것이다. (민추위의

 

위원장이었던 문용식은 현재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인 문재인의 캠프 대변인이고, 관련인사였던 김근태 전 의

 

장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작년에 별세하였다. 박종운 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소속되어 있었던 민

 

주정의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 2000년과 2004년에 두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박종철은 87년 1월 13일 밤에 잡혀서 1월 14일 밤에 죽었다. 경찰은 14일 밤 시체를 서둘러 화장하려고 하였으

 

나 당시 부장 검사는 사체보존 명령을 내렸고, 1월 15일 행해진 부검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의 흔적이 발견되었

 

다. 고문의 흔적이 발표되기 전, 치안 본부장 강민창은 '조사를 하다가 (책상을) 탁 하고 치니 (박종철이) 억 하

 

고 쓰러졌다'며 박종철의 사인이 쇼크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뒤 직접적인 사인이 고문이었음이 밝혀지

 

자, 정부는 물고문만이 있었을 뿐이며 조사를 담당하였던 두 형사의 소행이라고 결론짓고 박종철의 사체를 화장

 

하였다. 같은 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에 의해 전기고문의 사실과 함께 치안본부의 차장급 인사를

 

포함해 다섯 명이 관련되어 있었으며 죄를 뒤집어쓴 두 명에게 금전적인 보상이 있었음이 추가로 밝혀졌다. 이

 

한열이 죽기 한 달 전의 일다.

 

 

 

 

 

'호헌철폐'는 '호헌'을 '철폐'시키자는 말이다. '호헌(護憲)'은 헌법(憲法)을 보호하고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개

 

헌(改憲)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호헌은 특히 같은 해인 87년 4월에 있었던 전두환 당시 대통

 

령의 '4.13 호헌조치'를 지칭한다. 헌법에는 여러 조항이 있지만, 87년의 쟁점들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통령

 

선출 방식과 임기에 관한 조항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된 뒤 최규하가 1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만 다음 해인 80년 8월 사

 

임한다. 79년 12월 12일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장군이 이미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 8월 27

 

일, 유신 헌법에 의거, 국민 가운데 선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2540명 가운데 2525명이 서울 장충체육관에

 

출석하여 간접선거 방식으로 11대 대통령 선거를 치룬다. 후보는 전두환 단독 출마, 총 2525표 가운데 찬성 25

 

24표, 무효 1표였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권은 개헌을 단행한다. 종래의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

 

를 통해 당선되며 임기 6년에 종신 집권이 가능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라는 점은 동

 

일했지만 임기 7년에 단임제였다. 이 헌법에 의거, 전두환은 81년 치뤄진 12대 대통령 선거에서 90%를 상회하

 

는 득표율로 당선된다.

 

 

왕정이나 다름없던 유신 헌법에 비춰보면야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지만, 형식만을 갖추었을 뿐 사실상 후계자

 

지명을 통해 지속적인 집권이 가능했으므로 대통령 선거를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가 아니라 국민 모두에 의

 

한 직접선거로 전환하자는 것은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그런데 임기 마지막 해인 87년의 4월, 전두환

 

정권이 이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호헌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누가 봐도 차기 집권자는 전두환의 육사 동기이자

 

쿠데타 세력인 노태우였고, 군정(軍政)은 종식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한열이 죽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사인조차 은폐된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과 집권에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군부 정권. 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로

 

6월 10일이 낙점되었다. 그 하루 전, 연세대에서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고 이한열은

 

여기에서 최루탄을 맞았다.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는 사진은 다음 날 아침 뉴욕타임스와 중앙일보 1면에 실렸고,

 

이 사진은 6월 항쟁의 전국적인 폭발에 동력원이 되었다. 보름여 간에 걸친 시위 끝에 민주정의당 대표 노태우

 

는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약속하는 개헌안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12월, 직선제에 의한 13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인 두 축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으로 따

 

이 출마하여 각기 28%, 27%의 득표율을 얻음으로써 득표율 36.6%의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고

 

인의 통치는 5년 연장되었다. 이한열은 이 해 7월에 죽었다.

 

 

 

 

 

 

 

 

 

 

연세대학교를 찾아본 사람이라면 교문에서부터 삼거리까지 길게 뻗은 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백양목이 많

 

았다 하여 백양로라 불리우는 이 길을 통해 이한열은 세브란스로 옮겨졌고 거기에서 죽었다. 기록을 살펴보니

 

그는 지금도 있는 '만화사랑'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한다. 만화를 읽고 그림을 그리러 오다니던 그 길을,

 

이 날 그는 '열사'가 되어 죽으러 지났다. 교과서의 학습자인 중학생에게 그의 죽음이 더 참혹한 것인지 사진이

 

더 참혹한 것인지, 나는 무서워 말하지 못하겠다. 연세대 앞을 찾은 이한열의 조문객들 앞에 버티고 선 그들의

 

모습이 다만 오래 전 그 날의 흑백사진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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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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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올해 제 1회 '이한열 만화상'을 제정하여 공모하였다.

    2012.10.16 18: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여러번 보아온 사진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티셔츠에 Yensei라고 쓰여져 있는 거라든가. 가만 보니 내가 아는 그 곳이나 하는 것은
    지금에야 다시 보았네요.

    그리 정면으로 얼굴을 들이대고 본 적은 없었나봅니다. 부끄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네요.

    2012.10.19 00: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