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遊記/4대강 자전거길

4. 4대강 남한강자전거길 - 한강 종주 완료

 

 

 

 

혹시나 잊으셨을까봐. 저는 지금 충주 - 남양주 방향의 남한강자전거길 마지막 구간인 양평군립미술관 - 능내역

 

구간을 달리고 있습니다.

 

 

 

 

 

 

 

 

 

다시 나타난 아트터널. 배트케이브처럼 안으로 이어진 조명이 빛난다. 조명 끝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이 터널 또한 내리막임을 알 수 있다.

 

 

 

 

 

 

 

 

 

남한강자전길이 10km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터진 낭만 깨방정. 이때껏 사진 한 방 안 찍고 몇십 km를

 

달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여기저기 렌즈를 들이댄다.

 

 

 

 

 

 

 

 

 

별 특징도 의미도 없는 철교에서도 괜스리 찰칵.

 

 

 

 

 

 

 

 

 

콧노래 불러가며 슬슬 달리고 있는데 아니, 안내판에 익숙한 이름이. 춘천 신매대교. 지난 주에 다녀온 북한강자

 

전거길의 마지막 거점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둘러보니 저 멀리로 거지 꼴을 해서는 북한강자전거길 종주를 마쳤

 

던 운길산역이 보인다. 그렇다면.

 

 

 

 

 

 

 

 

 

당연히 운길산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밝은광장 인증센터도 보이겠지.

 

 

 

 

 

 

 

 

 

지난번엔 대판 넘어져서 욱신거리는 어깨를 붙잡고 칠흑같은 어둠에 들렀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생겼었구나 너.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네. 잠시 추억에 젖었다가 가던 길 마저 간다.

 

 

 

 

 

 

 

 

 

드디어 능내역 도착. 능내역은 운길산역이 생기면서 2008년에 폐역되었고 지금은 일종의 철도박물관이자 자전

 

거길의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다. 나름의 명소이기 때문에, 운길산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와서 밝은광장에서 자

 

전거를 빌려 이 능내역까지 짧은 라이딩을 즐기는 코스도 인기가 있다 한다. 

 

 

 

 

 

 

 

 

 

역 앞의 폐철로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어 인근의 막걸리집, 전집에서 메뉴를 구입한 사람들이 가지고 와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예전에 레일 바이크가 달렸던 흔적도 남아있다. 수익이 안 났던 것일까.

 

 

 

 

 

 

 

 

 

낯선 광경에 재미있어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띈, 택배보다 반가운 종주 인증센터 안내판. 사진에는 햇살이

 

비추어 잘 안 보이지만 '전방 100m'라고 적혀져 있다.

 

 

 

 

 

 

 

 

 

전방 100m에서 50m 달리자 이번엔 전방 50m라는 안내판이 또 나온다. 사람들 많은데에 오니까 되게 친절하다

 

너네. 북한강자전거길에서는 표지판 하나 없어서 내가 길을 몇 번 잊어먹었는데.

 

 

 

 

 

 

 

 

대체로 행정기관의 건물 내에 있었던 다른 유인 인증센터와 달리 능내역 인증센터는 위의 사진에 등장하는 자

 

전거 정비소이다. 근처에 이 건물밖에 없는데 아무리 봐도 안전행정부 산하의 공식 인증센터 같지가 않아 나도

 

한참 기웃거리다 들어갔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확대해 보니 이렇게 정문에 떡하니 안내판 붙어있었다.

 

 

 

사장님은 굉장히 무뚝뚝한 분이었다. 유인 인증센터를 맡고 계시다면 인증과 수첩 판매 등은 분명히 당신의 직

 

일텐데도 마치 그런 걸 진짜로 요구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는 듯이 느릿느릿하게 확인을 해 주었다.

 

 

 

사장님이 컴퓨터를 켠 뒤 4대강 자전거길 인증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 종주기록을 등록하는 동안, 중년의 라이더

 

가 한 분 들어왔다. 이분은 도장이 빼곡히 찍힌 내 수첩을 흘긋 보더니, 나도 서울에 있는 한강 인증센터 다 돌았

 

는데 한강 종주 스티커 좀 붙여 주시오, 라고 말했다.

 

 

 

사장님은 그 분을 쳐다보지도 않고, 충주 갔다 오세요, 라고 말했다. 중년 라이더가, 뭐요?, 라고 반문하자 사장

 

님은 계속해서 모니터를 쳐다 보면서, 한강 종주가 서울이 다가 아니고 한강 끝에 충주까지니까 갔다 오시라고,

 

라고 말했다. 중년 라이더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궁시렁궁시렁 내뱉더니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큭큭 소리를 흘리면서, 아니 사장님, 충주 갔다오라는 이야기를 뭐 200m 저

 

쪽에 능내역 갔다오라는 것처럼 하세요, 라고 말하자 사장님은 그예야 얼굴을 들어 내쪽을 보더니 벙긋 웃으면

 

서 어딘가 멋쩍은 소리로 충주가 옆동네지 뭐, 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재미있는 분이었구나, 하고 좀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 나는, 여주보에서의 일이 기억이 나서 유인 인증센터의 깨끗한 도장을 좀 찍어주시면 안 되겠느

 

냐고 부탁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언제 웃었냐는 듯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면서 그런 거 없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갔다. 유인 인증센터 바로 옆에 붙어있는 능내역 무인 인증센터.

 

 

 

 

 

 

 

 

 

철도가 그려진 능내역 인증센터 스탬프를 마지막으로 남한강자전거길의 인증이 끝났다. 이 참에 남한강자전거

 

의 스탬프들 디자인이나 감상해 보자.

 

 

 

 

 

 

 

 

 

 

무인 인증센터에서 찍는 도장들도 이렇게 예쁘고 깔끔하게 찍혀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도장이 닳을만큼 많은 국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좋은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저 스탬프들을 일곱 개의 드래곤볼처럼 다 모았기 때문에 남한강 종주 인증스티커 획득. 그리고 지난번에 완주

 

했지만 유인 인증센터가 닫은 뒤에 도착했기 때문에 받을 수 없었던 북한강 종주 인증스티커도 이참에 획득. 

 

 

 

 

 

 

 

 

 

남한강과 북한강 유역을 통일했기에 한강 종주 스티커도 획득. 삼국지의 엔딩을 볼 때처럼 괜스리 가슴이 뜨거

 

워진다.

 

 

 

이렇게 남한강자전거길 종주는 일단 끝났다. 하지만 나는 더 갈 곳이 있었다. 예상치 않게 들렀던 몽양기념관과

 

달리, 세종대왕릉과 함께 꼭 들르려고 생각했던 유적지가 하나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인증센터에서 4분 달리면 나오는 다산유적지. 한문학 전공자라면 가슴 한 구석이 덜컹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이

 

름, 다산.

 

 

 

 

 

 

 

 

 

여기는 본디 다산의 생가와 묘가 있던 곳인데, 다산기념관과 실학박물관 등을 하나로 묶어 '다산유적지'라는 이

 

름의 일종의 문화시설로 승격시킨 곳이라 한다.  

 

 

 

 

 

 

 

 

 

하지만 이 곳의 방문기를 따로 하나의 기사로 독립시키지 않고 계속 쓰고 있는 것에서도 짐작하실 수 있듯, 관람

 

감상은 그저 그랬다. 그의 호이기도 한 여유당(與猶堂)과 묘를 직접 보았을 때에만 일말의 아릿함을 느꼈을 뿐

 

일일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요렇게 조렇게 꾸며 놓은 전체의 경관이 지나치게 인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

 

약용이라는 사람의 이력에서 나오는 감정들, 이를테면 젊은 날의 호방함이라든지 중년기의 좌절감이라든지 노

 

년기의 완숙함 같은 심상을 받기는 어려웠다. 말하자면 '인간 정약용'을 느낄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다. 관람객의

 

동선을 잘 고려하여 배치해 놓은 조형물과 건물들에서는 '우리 위대한 선조 정약용의 업적'을 자랑스레 보여주

 

려는 의지와 가족공원화를 통해 더 많은 휴양객들을 유치하려는 의도가 더 선연하게 읽혔다. 이런 시설은 이런

 

시설 나름의 의미가 있고 지자체에 기여하는 바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여긴다. 그저 관람객 중의 한 명인 나는

 

좀 별로였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묘. 비석 위쪽으로 보이는 언덕에 묘가 있는데, 세종대왕릉도 촬영이 가능했던 것에 비해 다

 

산의 묘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유적지 전체에 적용되는 일정한 기준이 없는 것일까? 아무튼 해가 질 무렵

 

땀을 식히는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혼자 묘 앞에 서 있자니 이런저런 귀한 생각들이 들어, 그래도 와보길 잘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팔당역으로, 남한강자전거길 일기의 초반에 썼지만 평일이라도 중앙선은 자전거 탑승이 가능합니다.

 

 

 

 

 

 

 

 

 

중앙선이라도 아침 일곱 시에서 열 시, 오후 다섯 시에서 여덟 시의 러시아워 시간에는 자전거 탑승을 삼가하도

 

록 권유하고 있다. 다산 유적지에 다녀오는 동안 저녁 일곱 시가 넘어갔기 때문에 여덟 시를 기다리며 잠시 앉아

 

쉬었다. 여덟 시 땡 치자마자 탑승. 자전거 차량인 꼬리 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회기를 지나 서울 안

 

쪽으로 들어가면 퇴근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자전거를 들고 탄 것이 좀 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종점인 용산

 

역까지도 그리 혼잡하지 않았다. 

 

 

 

용산역에서 내려 신촌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강대교를 눈 앞에 두고 빼도박도 못하게 자전거의 배터리가 다

 

닳아버렸다. 서강대교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는 4km 정도가 나오는데, 정말이지 새로 자전거를 탄 뒤로 가

 

장 힘든 4km였다. 전기 자전거 동지 여러분. 배터리가 닳고 나면 전기 자전거는 역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눈이 아프고서야 선글라스를 끼고, 팔이 타봐야 팔토시를 사는 게으른 초보. 이번엔 땡볕 아래 라이딩에서는 장

 

갑도 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팔토시가 끝나는 윗부분으로는 온통 타버렸다. 위 사진은 집에 돌아온 직후에

 

찍은 것으로, 탔다고는 하지만 분홍색으로 어딘가 귀여운 느낌도 있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엔 피부가 죽은 것처

 

럼 거뭇거뭇해져서 몹시 흉하다. 팔보다 더욱 흉하여서 올리지 못하는 얼굴과 허벅지 탓에, 나는 지금 자전거용

 

마스크와 다리 토시를 쇼핑 중이다. 햇볕에 타서 벌겋게 부어오른 허벅지는 이불에 쓸릴 때마다 잠을 깨우고, 코

 

카콜라 산타처럼 빨개진 코 끝은 내 손으론 처음 해보는 마스크 팩을 몇 번이나 거듭해도 가라앉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시도를 하고 경험을 했으니 부작용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조금 뿌듯하다.

 

 

 

적당한 고생담과 적당한 후유증을 남긴 채로, 세번째 출정인 남한강자전거길 종주 완료. 뻘짓까지 다 합쳐서 총

 

199km. 요새의 저는 밤마다 금강종주자전거길로 통하는 오천자전거길의 지도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빠

 

른 시일 내에 길 위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