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遊記/4대강 자전거길

5. 4대강 새재도보길 - 전기라서 죄송합니다

 

 

 

 

 

수안보 시외버스터미널이라지만 따로 터미널로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2차선의 길가에 세워준다. 서울 방향에서

 

온 라이더라면, 왔던 방향으로 돌아 300m 가량 달리면 새재자전거길의 두 번째 거점인 '수안보온천'의 무인인증

 

센터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공원 한 귀퉁이에 있다. 주변과 잘 어우러져 진짜 전화부스처럼 보이기 때문에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번 라이딩을 떠나기 전까지 몰랐는데, 4대강 자전거길의 무인 인증센터가 마치 전화부스처럼 보이는 것은 컨

 

셉을 그렇게 잡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폐 전화부스를 재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동안 헷갈리게 왜 저런 모

 

양을 해 놓았을까, 라고 비난했던 것이 머쓱해졌다. 현명한 행정이십니다. 죄송합니다. 

 

 

 

 

 

 

 

 

도장을 쿵쿵 찍는다. 이번 라이딩에서는 이 이후로 도장 인증샷을 거의 안 찍었기 때문에, 말 나온 참에 4대강

 

자전거길 홈페이지의 이미지를 가져다가 새재자전거길 도장 구경이나 한번 해보도록 하자.

 

 

 

 

 

 

 

새재자전거길의 도장 디자인은 다른 자전거길의 그것에 비해 특별히 개성이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명

 

료한 것은 보기 좋다.

 

 

 

 

 

 

 

 

수안보에는 온천의 고향답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료로 족욕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특히 라이더들

 

이 지친 발을 잠시 쉬게 하는 장소로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던 탓에 근처의 식당을

 

찾아 가장 빨리 나오는 메뉴라는 제육덮밥을 허겁지겁 먹고 바로 수안보를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악마의) 이화령. 길이는 19km로 나오지만 평지의 19km와는 다를 터. 나는 못해도 두 시간쯤 쓸

 

각오를 하고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씁쓸하였든 겁을 먹었든 제육덮밥이 맛이 없었든. 그것은 모두 속세의 일. 석 달 만에 다시 길 위로 돌아와 페달

 

을 밟기 시작하니, 왜 이걸 그렇게 하고 싶었나 이해가 된다. 여기는 단순하다. 페달을 밟으면 밟은만큼 반드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생각은 이따금 표지판을 인식할 정도로만 하면 된다. 허벅지가 기분좋게 당긴다.

 

 

 

 

 

 

 

 

구월의 중순에 달리자니 한낮이라도 때때로 시원하다. 그늘이 없거나 휙휙 지나가도 크게 아쉽지 않다. 처음 달

 

리는 길을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이내 목적지 중의 하나인 연풍과 문경의 표지판이 나타난다.

 

 

 

 

 

 

 

 

휭휭 달리고 보니 이화령까지 16km. 바닥에 새겨진 그 이름을 보니 선배님들의 블로그를 보며 흘렀던 식은땀이

 

다시 흐른다.

 

 

 

 

 

 

 

 

거울이 나왔길래 한 장 찰칵. 이번 라이딩 길의 제일 팔자좋은 컷이다.

 

 

 

떠나기 전날 밤에야 변변한 추리닝이 없는 것을 떠올렸다. 지난번의 라이딩은 모두 오뉴월의 일이었다. 웃옷이

 

야 그때 입던 티셔츠 입고 추우면 점퍼 하나 더 걸치면 그만이지만 반바지를 또 입었다간 커진 일교차 탓에 감기

 

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전거길로 떠나면서 8부 스키니를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랴부랴 연남동

 

일대를 배회하며 일이 만원짜리 추리닝 바지를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소셜커머스 사이트에 넘쳐

 

나는게 스포츠 웨어더구먼, 왜 진작에 하나 사놓질 않았을까. 고뇌하고 고민하며 옷장 서랍을 뒤지다가, 입은지

 

한참 되어 구석에 몰려 있던 대학원 야구팀의 유니폼이 눈에 띄었다. 처음 찾았을 때엔 야, 이런 옷이 있었네, 그

 

때 참 재미있었지 하고 다른 쪽으로 치워두었었는데, 서랍을 몽땅 엎고도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그 유니폼이 새

 

삼 눈에 들어왔다. 하기사 저것도 운동할 때 편하라고 만든 옷인데. 너무 하얘서 기름때 묻을 것이 걱정되긴 하

 

지만 어차피 언제 다시 야구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추리닝 없어 라이딩을 못 간 멍청이가 되는 것보다야 백

 

배는 낫겠지. 입어보니 또 얼추 맞았다. 그렇게 해서 이번의 여행에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전국의 라이더 선배님, 친구 여러분. 안녕. 이번 라이딩 길에서 두번째로 팔자 좋은 컷.

 

 

 

 

 

 

 

 

요런조런 장난 쳐가며 달리다 보니 드디어 표지판에 '조령', '문경새재' 등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자 시

 

작이구나. 바지춤 튼실히 걷어올리고 전립선에 힘을 바짝 준다.

 

 

 

 

 

 

 

 

어우, 저 능글맞게 올라가는 길 좀 봐.

 

 

 

 

 

 

 

 

겁은 그만. 충분히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기에선 별로 쓸말이 없다. '소조령(小鳥嶺)'은 말 그대로 '작은 새재'이다. 작다고 하지만 새

 

재인 것이다. 한편 이 블로그의 기사를 쭉 읽어오신 분이라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내 자전거는 알톤의 이스타

 

26s, 즉 전기자전거다. 전기자전거는 평지에서보다 약간의 경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차체 무게가 약 30kg

 

에 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 자전거에 비하면 훨씬 용이하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새재

 

자전거길에서 두번째로 악명높은 조령을 큰 어려움 없이 넘었다. 힘겹게 올라가 정상을 성취한 라이더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편안하게 올라간 것에 화가 날 라이더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오르막 뒤에 찾아오는 달콤한 내리막. 새재자전거길의 내리막은 커브가 많고 경사가 급하여, 브레이크 놓고 마

 

음껏 달릴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은데, 소조령에서 내려오는 내리막은 아주 편안하고 즐겁다. 추가로 팁 하나 더.

 

충주에서 상주 방향으로 가는 경우, 오르막은 짧고 내리막이 무척 길다. 반대 방향에서 오시는 분이라면 긴 오르

 

막과 짧은 내리막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나만의 인상이 아니라 길에서 만난 다른 라이더들도 공통적으로 느꼈

 

던 바라 하니 참고하시라.

 

 

 

죽죽 내려오다보면 '마애불좌상' 표지판이 눈에 띈다. 내리막의 쾌감을 잠시나마 거스르게 하는 이름이다. 속도

 

를 늦추며 옆을 쳐다보니 금세 갈 수 있는 거리에 거대한 부처님 바위가 앉았다. 

 

 

 

 

 

 

 

 

앞에 서있는 게시판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집에 와 검색을 해보니, 고려 때 지어진 불상이라 한다. 특히 두 분

 

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양식이란다. 낯설고 신기해 보인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바

 

위의 높이는 12m, 두 분이 앉아있는 감실은 가로세로 4m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같은 인상인데도 그 큰 바위

 

앞에 서 있자니 페달을 밟던 가쁜 숨이 잦아들고 숙연한 기분이 든다.

 

 

 

 

 

 

 

 

옆에는 당연히 돌탑이. 풀이 휘감고 올라간 것으로 보아 어제오늘 세워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나도 하나 얹었다.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하나 없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소원을 빌었다.

 

 

 

 

 

 

 

 

저 아래 달랑 서있는 내 자전거. 다시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