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대강 북한강자전거길 - 하늘을 날다

 

 

 

 

하하하 15km. 하하하 성장한 내 마음. 신나게 달리다가 이름도 처음 듣는 '마석역'을 지나게 됐다. Magic Stone

 

Station. 스네이프 교수가 호그와트로 출퇴근하는 역 이름 같구나. 언제 또 와보랴 싶어 사진도 찍고 마석역 앞의

 

읍내도 둘러본다. 이차로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으로 2-3층 가량의 상가가 늘어선, 전형적인 읍내 풍경이다. 닭

 

집에선 튀긴 닭 냄새가 흘러나오고 분식집에선 하루 종일 끓여 걸쭉해진 떡볶이에 윤기가 흐른다. 어디 들러서

 

식사를 하며 충전도 할까, 하며 북한강자전거길에선 습관이 된 노선 검색을 해 본다.

 

 

 

 

 

 

 

 

 

뭐래 이거. 아까는 15km랬는데 갑자기 19km가 넘게 나오다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며 부모보다 더 믿어왔던 지도 어플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마주치게 되니 역사

 

가 오래 된 내 안의 러다이트 운동이 다시 시작됐다. 믿을 만한 기능으로 사람 살살 녹일 때부터 내 불안불안했

 

지. 이 기계 자식 드디어 정체 드러냈구만. 이젠 네 말 안 들어. 난 맞게 들어왔어. 확신이 있어. 나 4대강 종주길

 

(합산해서) 150km 넘게 달린 사람이라고.

 

 

 

하고 휭휭 달려 측정해 보니 21km. 어라, 어라 하면서 조금 더 가 측정해 보니 22km. 읍내 풍경마저 점점 사라지

 

고 숲이 나오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엄마와 아내, 그리고 네비의 말은 듣고 볼 것이라는 계명이 마침

 

내 떠올랐다.

 

 

 

길을 잃었구나!

 

 

 

 

 

 

 

원래 가야 했었던 길 코스를 다시 검색하고 나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위의 지도로 말하자면 밑

 

으로 쭉 내려갔어야 했는데, 출발점 앞의 갈래길 중 잘못된 길인 왼쪽 길을 택해 하하하 15km, 하하하 나의 성장

 

하며 달려간 것이다.

 

 

 

 

 

 

 

그렇게 잘못된 왼쪽 길로 들어 달려온 것이 5.72km. 현재 서 있는 마석역에서 유도리 있게 돌아돌아 가는 경로

 

도 없고, 출발했던 샛터삼거리 인증센터로 돌아가 3구간을 다시 시작하라는 안내가 떴다. 나는 실수로 길을 잘

 

못 들어갔다가 그대로 다시 돌아 출발점으로 가는 것을 군대 고참만큼 싫어한다. 그런 때엔 뭔가 새로운 경험이

 

있겠지 하고 시간이 들더라도 다른 길을 택해 목적지로 향한다. 하지만 그건 지리도 잘 알고 교통편도 많은 서울

 

에서의 이야기이다. 모르는 동네에서, 해는 지고 배는 고프고 전방 후레쉬는 없고. 내 멋대로 길을 뚫으며 갔다

 

가는 얼마나 더 피곤해질지 알 수도 없다. 빼도박도 못하게 된 형편이라 나는 샹소리를 연발 내며 핸들을 돌렸

 

다.

 

 

 

그렇게 이십여 분을 달렸다. 마침 만난 내리막에서 시원한 바람에 마음을 씻어내려 있는대로 페달을 밟았다. 이

 

제 샛터삼거리 인증센터로 돌아왔구나.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다시 상쾌한 마음으로 마지막 3구간 시작하자.

 

15km만 달리면 귀가길이다!

 

 

 

그때,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내 등 뒤로 무언가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속도가 있었던 만큼 소리

 

의 여운은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뭔가가 떨어졌다면 가방에서 떨어진 것이다. 자전거의 짐받이에 가방을 묶어두었는데,

 

그 안에 있는 물건 가운데 잃어버리게 되면 내가 한동안 크게 불편해지지 않을 물건은 하나도 없다. 되도록 빨리

 

멈춰야 한다. 후레쉬도 없는데 여기서 더 멀어졌다간 얼마나 넓게 수색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전거를 많이 타신 분이라면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어떤 상황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나는 힘껏 브레이크를 잡았고, 다음 순간에는 자전거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과학적 원리는 단순하다. 힘찬 속도로 달리던 자전거는 급격하게 브레이크가 잡히자 땅과의 마찰력을 통해 그

 

자리에 멈춰섰지만, 같은 속도로 달리던 내 몸은 관성의 힘을 받아 핸들 너머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핸들을 잡고 있던 자세로 날아갔기 때문에 팔부터 떨어졌다. 손바닥이 땅을 짚게 되고 그 위를 날아온 몸이 눌러

 

버린 형국이 되어서 어깨가 아팠다. 팔이 빠진 것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멋지게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살피면 좋았겠지만 (넘어진 시점부터 이미 멋지다고 하긴 어렵긴 하다) 나는 잠시간 바닥에 누워 버둥거리며 아

 

야야 아야야 소리를 냈다. 복식을 낼 힘이 없어 목에서만 나오는 몹시 경망스런 소리였다. 스스로의 아야야 소리

 

를 듣다 보니 조금 웃겨서 일어날 힘이 났다. 널부러져 있던 윗몸을 일으켜 주저앉아 둘러보자 자전거는 멀찍이

 

에 쓰러져 있었고 팔이 아파 깨닫지 못했는데 무릎팍이 여기저기 뛰어댕기던 어릴 때처럼 까져 있었다.

 

 

 

 

 

 

 

 

산지 얼마 안 된 이어폰도 끊어져 버렸다. 정말 얼마 안 됐는데. 어휴. 자전거는 앞바퀴의 물받이가 떨어지고 오

 

른손잡이에 달린 브레이크가 나갔다. 가방은 출발하기 전 지퍼를 잠궜을 때 모양 그대로 있었다. 내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이 떨어졌거나 혹은 가방에서 떨어졌지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길가로 자전거

 

를 끌어다 놓고 한참 가방 속을 살펴 봤지만 없어진 것은 없었다.

 

 

 

 

 

 

 

 

 

 

당장은 안장에 앉고 페달을 돌릴 수가 없어 자전거를 끌고 비척비척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여분 전 출발했던

 

샛터삼거리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휴대폰은 마지막으로 위의 사진을 찍고 방

 

전되었다. 별 것 없는 사진이지만 혹시 나와 같은 실수를 하고 또 돌아오는 길에 나와 같은 부상을 입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일기로서는 별 재미없는 내용이라도 굳이 부연 설명을 적는다.

 

 

 

먼저 이 사진은 잘못된 길 쪽에서 찍은 것임을 이해해 보자. 사진의 왼쪽 중앙에 가로등이 비춰지는 곳이 샛터삼

 

거리이다. 경강교 쪽에서 오는 사람은 사진 왼쪽의 멀리에 있는 터널을 빠져나와 샛터삼거리 인증센터에 도착하

 

게 된다. 그의 방향은 이 사진을 찍은 나와 마주보는 것인 셈이다.

 

 

 

그가 도장을 찍고 인증샷을 찍고 이제 샛터삼거리의 건널목에 서서 3구간으로 출발하려 할 때, 내가 위의 사진

 

을 찍은 지점 쪽으로 쭉 직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별다른 표식도 없고, 모양

 

또한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려오던 자전거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건널목을 앞에 두고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 사진으로 말하자면 오른편의 불이 켜진 가게 쪽으로 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급한 내리

 

막이기 때문에, 자전거길을 뜻하는 하늘색 점선이 경사에 가려 잘 안 보인다. 밤이라 어둑어둑한 것과 일주가 거

 

의 다 끝났다는 내 부주의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관리자의 잘못이 됐든 내 미숙함이 문제가 됐든, 아무튼 이런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 질질 적는다.

 

 

 

그렇게 마지막 구간인 샛터삼거리 인증센터 - 밝은광장 인증센터의 15km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