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지나다닌다는 것에 깜짝깜짝 놀라는 요즘이다. 모르고도 우연히 들
어왔다는 건 저 긴 주소로 보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고, 이 곳을 원래 아는 사람들이 가르쳐 주
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꽤 그럴 듯한 말이다.
요 근래에는 (대학교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 가도 매일 약속이
생기던 1학년때도 아니고, 한두어시간 정도 중도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싶었던 부분
들을 살짝살짝 건드려 보고는 하는데. 역시 가장 많이 읽는 분야의 책은 세미나에서 후배들에게서
모르는 부분을 질문당하여 당황하지 않도록 연극관련의 책이고, 그 외에는 메디치 가문에 관한 책
들과 정약용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는데.
메디치 가문은, 말하기도 부끄럽다. 지난 겨울 연극 '세개의 해트모자'를 준비할 무렵 연극연습을
하기 전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여자친구를 매일 잠깐씩이라도 보고자 했는데, 약간이라도
일찍 가거나 그 사람이 일이 늦게 끝나면 시간이 남아 흥미성 책을 읽곤 했었다. 드래곤 라자 시리
즈나, 퇴마록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같은 것들. 그 책들을 읽으며 가장 애용했던 곳이
중앙도서관 2층 유럽문학이 있는 부분 가장 안쪽이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메디치 가문에 관한 책들
이 주욱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읽어 봐야지 읽어 봐야지 했던 것이 근 일년이 걸린 셈
이다. 그나마도 아직 몇 권 못 읽었다.
정약용 선생님의 시는, 재수할 때에 접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면은 있지 않은가.
남들이 보면 이상한 흥미라고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모르지만 그냥 좋은 것들. 나는 서예와 한
시가 그랬다. (나이 먹고서부터는 피아노도 약간.) 눈을 감고 시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그 풍광이 유
려하게 펼쳐지는 한시. 정확한 전문이 떠오르지 않아 적지는 못 하지만 정약용 선생님의 시에는 그
풍취가 은근한 것이 참 많았다. 너무 자극적이어서도 안 된다. 적당히, 적절히의 그 오묘한 맛.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한 형의 대학원 주제가 정약용 선생님의 글들인 것도 괜한 호감이 생기는 데에
한 몫 했다. 그래서 몇 권 읽어두었던 것인데.
나는 '고전 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다른 수업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발표들을 강건너 불
보듯이 멍하니 보고 있어 어느새 나만 발표를 안 한 상태이길래 냉큼 하겠다고는 했지만 주제가 막
막하던 차에 정약용 선생님의 글들을 써 보자는 생각이 났다. 아름다운 풍광들을 읊은 시들을 묶어
보면 그것도 하나의 훌륭한 주제가 되지 않겠는가, 싶어. (여담이지만, 이번 학기에 나는 18학점
을 듣고 있는데, 인터넷 강의등으로 없게 되는 수업등을 빼고 계산을 해 보니, 일주일에 고작 열두
어시간밖에 수업이 없었다. 그러니 수업에 정을 못 붙이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고(인천이라 학교 중앙도서관에 못 가니까.), 인터넷을 돌아다
녀 보기도 하고. 야아, 역시 다산이야, 하는 시들도 찾아 내고. 그러다가 크게 충격을 받는 시를 찾
았다. 선생님의 글이 아니라, 선생님에 대해 읊은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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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한가로이 웃으며 오가지만,
그야 이 마루에 걸터 앉아 가슴을 쓸어 내렸으렷다.
약천에서 물떠다 솔방울로 데워 차 끓였다지만,
차맛은 진정 쓴 것이었으렷다.
제자들 몇몇 가르치며 수백 권 책을 썼다지만,
회한은 참 깊은 것이렸다.
대나무 전나무 동백나무 어우러져 아름답다지만
그는 진정 슬펐으렷다.
지금이사 기왓집이다마는,
그이는 말대로 초당(草堂)에 살았으렷다. -김우인의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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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당이라는 이름의 기왓집을 웃으며 지나가는 나그네였던 것이다. 어쩐지 기분이 참담해졌다.
죄갚음을 위해서라도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문 전공하기를 잘했다.
아 참, 지인들이 들으면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지만, 인천에서의 시간이 하도 무료하여 또 혼자
머리를 잘라 보았다. 약간 마음에 들지 않긴 했었지만, 파마머리를 잘라 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에이.
샘 연기는 실패했다. 으흑.
어왔다는 건 저 긴 주소로 보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고, 이 곳을 원래 아는 사람들이 가르쳐 주
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꽤 그럴 듯한 말이다.
요 근래에는 (대학교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 학교 가도 매일 약속이
생기던 1학년때도 아니고, 한두어시간 정도 중도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싶었던 부분
들을 살짝살짝 건드려 보고는 하는데. 역시 가장 많이 읽는 분야의 책은 세미나에서 후배들에게서
모르는 부분을 질문당하여 당황하지 않도록 연극관련의 책이고, 그 외에는 메디치 가문에 관한 책
들과 정약용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는데.
메디치 가문은, 말하기도 부끄럽다. 지난 겨울 연극 '세개의 해트모자'를 준비할 무렵 연극연습을
하기 전 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여자친구를 매일 잠깐씩이라도 보고자 했는데, 약간이라도
일찍 가거나 그 사람이 일이 늦게 끝나면 시간이 남아 흥미성 책을 읽곤 했었다. 드래곤 라자 시리
즈나, 퇴마록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같은 것들. 그 책들을 읽으며 가장 애용했던 곳이
중앙도서관 2층 유럽문학이 있는 부분 가장 안쪽이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메디치 가문에 관한 책들
이 주욱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읽어 봐야지 읽어 봐야지 했던 것이 근 일년이 걸린 셈
이다. 그나마도 아직 몇 권 못 읽었다.
정약용 선생님의 시는, 재수할 때에 접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면은 있지 않은가.
남들이 보면 이상한 흥미라고 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모르지만 그냥 좋은 것들. 나는 서예와 한
시가 그랬다. (나이 먹고서부터는 피아노도 약간.) 눈을 감고 시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그 풍광이 유
려하게 펼쳐지는 한시. 정확한 전문이 떠오르지 않아 적지는 못 하지만 정약용 선생님의 시에는 그
풍취가 은근한 것이 참 많았다. 너무 자극적이어서도 안 된다. 적당히, 적절히의 그 오묘한 맛.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한 형의 대학원 주제가 정약용 선생님의 글들인 것도 괜한 호감이 생기는 데에
한 몫 했다. 그래서 몇 권 읽어두었던 것인데.
나는 '고전 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고 있다. 다른 수업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발표들을 강건너 불
보듯이 멍하니 보고 있어 어느새 나만 발표를 안 한 상태이길래 냉큼 하겠다고는 했지만 주제가 막
막하던 차에 정약용 선생님의 글들을 써 보자는 생각이 났다. 아름다운 풍광들을 읊은 시들을 묶어
보면 그것도 하나의 훌륭한 주제가 되지 않겠는가, 싶어. (여담이지만, 이번 학기에 나는 18학점
을 듣고 있는데, 인터넷 강의등으로 없게 되는 수업등을 빼고 계산을 해 보니, 일주일에 고작 열두
어시간밖에 수업이 없었다. 그러니 수업에 정을 못 붙이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고(인천이라 학교 중앙도서관에 못 가니까.), 인터넷을 돌아다
녀 보기도 하고. 야아, 역시 다산이야, 하는 시들도 찾아 내고. 그러다가 크게 충격을 받는 시를 찾
았다. 선생님의 글이 아니라, 선생님에 대해 읊은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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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한가로이 웃으며 오가지만,
그야 이 마루에 걸터 앉아 가슴을 쓸어 내렸으렷다.
약천에서 물떠다 솔방울로 데워 차 끓였다지만,
차맛은 진정 쓴 것이었으렷다.
제자들 몇몇 가르치며 수백 권 책을 썼다지만,
회한은 참 깊은 것이렸다.
대나무 전나무 동백나무 어우러져 아름답다지만
그는 진정 슬펐으렷다.
지금이사 기왓집이다마는,
그이는 말대로 초당(草堂)에 살았으렷다. -김우인의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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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당이라는 이름의 기왓집을 웃으며 지나가는 나그네였던 것이다. 어쩐지 기분이 참담해졌다.
죄갚음을 위해서라도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문 전공하기를 잘했다.
아 참, 지인들이 들으면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지만, 인천에서의 시간이 하도 무료하여 또 혼자
머리를 잘라 보았다. 약간 마음에 들지 않긴 했었지만, 파마머리를 잘라 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는 느낌이다. 에이.
샘 연기는 실패했다. 으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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