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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10.21 2017. 10. 20. 쥐순이. (1)
  3. 2017.01.29 흰둥이
  4. 2017.01.29 고양이 (2)
  5. 2016.10.31 또 신고
일기장/20182018.07.23 15:56

 

말에는 크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형식이 있다. 충실한 내용이 있어도 형식이 소략하면 거친 말이 되고 형식은 화려하되 내용이 공허하면 간교한 말이 된다. 내용과 형식이 모두 갖추어진 말은 그 외의 장식 없이도 충분한 영향력을 갖는다. 비유하면 한 끼로 든든한 백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그 위에 유효한 맥락이나 비유, 유머 등의 장치를 활용하는 전략까지 더해진 말은 상찬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듣고 접한 정치인 가운데 말이란 무엇인가 뿐 아니라 말에서의 유머란 전략은 무엇인가를 가장 잘 꿰뚫어 보고 나아가 훌륭한 활용까지 실천해 낸 인물인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금일인 2018년 7월 23일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경찰은 자필로 작성된 유서가 발견되었고 주변의 정황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검이 필요 없는 자살임을 공식 발표하였다. 자연인 노회찬의 삶은 여기에서 끝났다.

 

소속 정당이 긴 침체 끝에 재도약의 맏물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본인 또한 십 년을 한결같이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과 잘 소통해 왔던 이 때에 그가 슬픈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는 세칭 '드루킹'이라 불리는 정치 브로커로부터 5000여만 원의 정치자금을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은 관련된 의혹이 제기되던 시점부터 관련 사실을 일체 부인하여 왔으나 사망일인 오늘 발견된 자필 유서에서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아울러 금전은 받았으나 청탁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그를 반대하고 혐오했던 진영까지도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상상하여 그에 맞춰 생각해 보면 힘이 있는 말이기는 어렵다. 그 자체로 이미 부정한 일이고 또 드루킹 특검의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되는 사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한 변호는 따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요새 주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내는데, 올해에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태어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이들 가운데 정치에 조금이나 관심이 있다 하는 축에도 멀지 않은 과거에 긴 시간 동안 대통령을 제치고 첫 손에 꼽혔던 주요 인물인 이회창을 아는 이는 전혀 없다. 대부분은 김영삼과 김대중도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 못하는 바로 그것이, '역사'임을 거듭 느끼며 산다. 잊혀지는 사실들에 대한 개개인의 회상과 관련 없이 역사는 남길 만한 것만을 남기고 제 길을 간다. 

 

그러니 정치인 노회찬의 삶도 앞으로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한 세대는 고사하고 당장 2년 후인 2020년 21대 총선에서 첫 투표권을 손에 쥔 이 중에 노회찬을 알거나 혹은 기억하는 이는 몇이나 될 것인가. 개중 그의 정신을 추모하여 투표 행위에 반영하는 이는 또 몇이나 되겠는가. 어쩔 수는 없다. 다만 나는 그것이 슬퍼, 홀로 일찍 피어 더 피지 못했으나 나름으로 아름답게 만개했던 그를 기억하고자, 오랜만에 일기장을 열어 부고를 전한다. 

 

마지막에 덧붙이는 사진은 다음에 소개하는 영상에서 내가 갈무리한 것이다. 손석희 현 JTBC 보도부문 사장이 MBC에서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2009년의 일이다.

 

당시 손석희 앵커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의 진행에서 하차하게 되었는데, 인기리에 진행 중이었는데도 하차에 명확한 이유가 없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아무튼 <100분 토론> 팀은 당시까지 10년의 프로그램 연혁 가운데 8년여를 함께 해 온 손 앵커의 하차를 맞아, 고인을 포함해 유시민, 송영길, 나경원 등 그간 인기 있었던 패널들을 모아 <100분 토론>이라는 프로그램과 TV 토론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토론을 기획하였다. 그리고 프로그램 말미에 김주하 앵커, 김혜수 배우, 신영복 교수 등 각계의 저명 인사들에게 받아온 '손석희 인물평'을 방송했는데, 따뜻한 덕담이 오고간 뒤에 마지막으로 출연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손 교수님과 저는 나이가 비슷한데 늘 젊어 보이시는 비결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100분 토론> 제작진은 이어 화면에 박 시장과 손 앵커의 사진을 맞붙인 뒤 손 앵커 사진 뒤에 후광 CG를 넣고 재미난 음악도 삽입하는 드문 시도를 했다. 스튜디오로 넘어온 화면에 등장한 손석희 앵커는 난처한 웃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안경을 추스렸다가 이내 다시 카메라를 응시하며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여기 노회찬 대표도 저랑 동갑이십니다'라고 말했다. 토론을 지켜보던 장내에는 웃음이 터졌고, 노회찬 의원은 방청객들을 바라보며 활짝 웃다가 이내 V자를 그렸다. 그와 같은 삶의 이력을 가졌던 이 가운데 이처럼 천진함을 잘 보존한 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그 뒤의 삶 또한 녹록치 않았으나 꺾이지 않는 상찬을 지치지 않고 우리 앞에 차려놓았던 비결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어. 가장 기억하고 싶은 모습을 덧붙여 둔다.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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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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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같은 날 <광장>의 작가 최인훈 선생께서도 향년 84세로 별세하셨다. 별도의 글을 지어 추모하기로 한다.

    2018.07.23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일기장/20172017.10.21 15:57

 

 

 

 

 

 

오랜만에 쓰는 일기이다.

 

팟캐스트 <방과후 수업>은 구성원의 변화로 인해 정리를 했다. 손꼽게 즐거운 시간이었던 만큼, 예전만큼 즐겁지 않은데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은 자신에게나 결과물로서나 좋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금도 이따금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이전에 올렸던 에피소드들을 자기 전에 한 차례씩 듣는다. 어떤 것은 무척 재미있어서 듣다가 몇 시간이 지나는 수도 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첫 고양이 흰둥이를 들인 뒤, 몇 달의 격차를 두고 샴 고양이 한 마리와 러시안블루 고양이 한 마리를 차례로 데려왔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철제 캐비닛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를 가둬 놓고 키우는 곳에서 비실거리는 모습이 눈이 밟혀 데려온 러시안블루 고양이는, 데려온 지 열흘이 조금 넘었을 때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이른바 '범백'이라고 줄여 부르는,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으로 죽었다.

 

일본신화에는 일왕을 포함하여 인간의 직계 조상으로 여겨지는 호노니니기라는 신이 있다. 이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만났던 두 여인이 나무와 꽃이라는 이름의 고노하나(木花)와 바위라는 이름의 이와(巖)였다. 호노니니기는 못생긴 이와가 아니라 예쁜 고노하나와 혼인을 하여 인간을 낳게 되는데, 영생의 바위가 아니라 필멸의 꽃과 나무를 택했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후예이면서도 결국은 죽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신화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려올 때부터 작고 병약했던 고양이에게 이와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인데 몇 차례 불러볼 기회도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분양자는 몇 차례의 연락이 오가던 도중 전화번호를 바꾸고 사라져 버렸다.

 

한 달 뒤 나는 새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들였다. 먼저 들인 샴 고양이가 쥐처럼 생겼기 때문에 쥐순이라고 불렀던 것을 따라 회색곰과 같은 털색을 갖고 있어 곰순이라고 불렀다. 이번에는 애교가 많으니 사람을 따르느니 하는 것을 보지 않고 그저 건강한 것만을 따졌기 때문에 곰순이는 같이 산 지 반 년 여가 넘은 지금도 튼튼하다.

 

구월 말, 나는 첫 전세집의 계약이 끝나 광진구 중곡동에서 중랑구 상봉동으로 이사를 했다. 광진구 내의 중곡동과 건대입구에서만 일을 해도 되었던 때가 지나고 노원구 하계동까지 출근의 범위가 넓어져 그 중간쯤 되는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그간 번 돈으로 새 책장과 큰 책상을 넣을 수 있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이전 동네만큼 골목이 많지 않아 정겹지는 않지만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등의 편의시설이 이어져 있어 편리하기는 하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서울의 동쪽으로 이사 오면서 정을 붙인 중랑천이 여기에도 흐르고 있어 마음이 좋다. 함께 국토종주를 다녀왔던 전기 자전거는 배터리의 양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현역이다. 중곡동에 살 때와 똑같이 전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함박눈이 내려 길이 미끄럽거나 하지 않으면 좀 춥더라도 겨울에도 쭉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 생각이다. 다행히도 관련 법안이 통과되어 내년인 2018년부터는 자전거 도로에서의 통행도 합법이라 한다.

 

이사를 오면서 첫 고양이였던 흰둥이를 원래의 임시 보호자에게 돌려주었다. 주인이 함께 살고 있는 빌라 형태의 새 집은 전세계약서에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기재가 되어 있는데, 수컷인 흰둥이는 덩치도 크고 울음소리도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이가 좋았다면 어떻게든 들였을 것이지만 흰둥이는 일 년여가 지나도록 나를 보면 피하거나 겁을 먹곤 하였고 나도 그 모습이 탐탁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따금 내 집을 방문하는 다른 손님들에게는 비교적 살갑게 구는 것을 보면서, 다른 집에 가 편하게 사는 것이 저나 나나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 자란 고양이의 분양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흰둥이는 사람들이 돈 주고 데려가는 품종이라, 길에서 볼 수 있는 코리안 숏헤어보다는 훨씬 빨리 좋은 사람 만나리라 생각했다. 곧 분양을 갔다고 들었으나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이사하고 한 달쯤 지난 뒤, 새끼 때에 데려왔지만 어느새 여덟 달의 나이가 된 러시안 블루 곰순이의 중성화를 결정했다. 평소에도 튼튼했던 곰순이는 수술이 끝난 뒤에도 곧 마취가 풀리고 잘 돌아다녀서 마음을 놓았다. 곰순이보다 넉 달 나이가 많은 샴 고양이 쥐순이를 먼저 중성화하지 않은 이유는, 언젠가 출산과 육아를 시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살이 빠지기 시작해 진료부터 일단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성화 수술을 한 병원에서는 이렇게 마른 것은 더 큰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셔야 한다고 유명한 동물병원 몇 군데를 소개해주었다.

 

추천받아 찾은 병원에서 쥐순이는 건식 복막염으로 의심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몇 달 전 이와가 걸렸던 범백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 중의 하나이다. 이 병은 고양이 치료에 관한 서적에도 치사율이 100퍼센트로 소개되어 있다. 다만, 복막염에는 복수가 차오르는 습식 복막염과 그렇지 않은 건식 복막염이 있는데, 건식 복막염의 경우에는 치료를 잘 하면 몇 년 정도는 사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했다.

 

고양이를 상대로 한 의료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무슨 병인지 확진을 받기도 어렵고, 받았다 하더라도 마땅한 처방이 없다. 범백이나 복막염 같은 치명적인 병조차 수액을 맞추고 강제로 고단백질의 사료를 먹여 스스로 극복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춘 뒤 집으로 데리고 돌아오면서, 시간과 돈이 들고 일상이 피곤해지더라도 오랫동안 버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유명한 병원이라 예약이 밀려 있었던 탓에, 평소와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 했던 나는 쥐순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도 한숨 잤다. 사람을 좋아하는 쥐순이는 잘 때에도 내가 자는 이불에 들어와 자는 것을 새끼 때부터 좋아했다.

 

몇 시간가량 자고 일어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샴 고양이는 본래 크기가 작은 품종이고, 암컷인데다가 근래에 무척 말라버린 쥐순이는 더더욱 작다. 게다가 웅크리고 자기 때문에 이불의 어디에서 자고 있든 나와 닿는 지점은 기껏해야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이다. 그런데 양쪽 허벅지에 모두 무언가와 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이불을 젖혀 보니 쥐순이가 옆으로 죽 늘어져 있었다. 머리와 엉덩이가 각기 내 양쪽의 허벅지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에는 마음이 편안할 때 곧잘 그러고 잠에 들어 나를 웃긴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 수액을 맞고 상태가 좋아진 것일까 생각하며 이불을 더 젖히자 똥과 오줌을 싼 흔적이 있었다. 깔끔을 떠는 쥐순이는 그런 실수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불안한 마음에 쥐순이를 들어서 세워보자 쥐순이는 젖은 휴지를 세워놓을 때처럼 스르르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다급히 병원에 전화를 거는 도중에 쥐순이는 움찔움찔 하더니 누운 채로 똥을 쌌다.

 

내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던 것 같다. 나는 범백으로 죽은 새끼 고양이 때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병원은 바빴는지 통화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통화 버튼을 한 번씩 누르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남은 시간이 고작 몇 시간 안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까지 활발했던 쥐순이이고 그 사이에 한 일이라고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은 것뿐이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황망해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다녀온 뒤 쥐순이는 추웠는지 콧물이 나 있었다. 그 추운 길을 다시 가서 또 그 유리 상자 안에 가둬두고 수액을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니 반응이 있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덮고, 이따금 틀어주면 편안해 하는 것 같았던 하프 음악을 틀어 주었다.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쓰다듬으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았는데 눈물이 나서 여의치는 않았다. 중간에 잠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설탕물을 먹여 보았지만 쥐순이는 삼키지 못했다.

 

두어 시간 정도 쓰다듬으면서 맥박이 차츰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간 몸을 돌려 가방 정리를 하다가 문득 쳐다보자, 방의 불을 켜 놓았기 때문에 가로로 길쭉해져 있던 쥐순이의 눈이 처음 데려오던 새끼 때처럼 크고 새까매져 있었다. 천천히 다시 몸에 손을 대어보니 맥박이 멎어 있었다.

 

나는 다이소에 가서 호미와 삽을 샀다. 철제로 된 큰 삽은 없었다.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남양주로 갔다. 남양주의 한강변에는 큰 식당이 많은데, 일전에 갔던 닭백숙 집에서 그 앞으로 큰 갈대밭과 자전거길, 그리고 남한강이 넓게 펼쳐져 있던 풍광을 보고 좋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 살 생애 내내 서울 촌년이었던 쥐순이게는 굉장한 광경일 것이다. 인적이 드물고 또 큰 나무가 있어 기억하기 좋은 곳을 골라 땅을 파고 쥐순이를 묻었다. 구멍이 평평하지 않고 오목하게 패여서 쥐순이를 누이자 웅크린 것 같은 자세가 되었는데 그것이 평소에 편해 하던 자세라 다시 눈물이 났다. 엉엉 울면서 흙을 덮고, 땅을 다져 밟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쥐순이를 덮었던 이불과, 쥐순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입었던 옷을 모두 빨았다. 쥐순이가 쓰던 화장실의 모래도 모두 버리고 화장실은 왁스로 소독을 했다. 어제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서 중성화 수술을 한 곰순이가 먹어야 할 약을 먹이고, 쥐순이의 보양을 위해 쿠팡에서 새로 시켰던 특식이 그새 배달 와 있길래 곰순이에게 먹였다. 수술하고 나서 식욕이 줄은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그나마 입을 좀 대어서 마음을 놓았다.

 

한 친구가, 사람이 죽으면 먼저 죽은 가장 사랑했던 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는 카툰 컷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여겨 나는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그것이 단지 내 경험이 부족해서였을 뿐임을 알게 됐다.

 

어제는 황망하여 챙길 정신이 없었다. 봄이 오면 좋아했던 간식과 장난감을 가지고 다시 찾아가겠다. 내 손으로 처음 데려왔고 가장 예뻐했던 고양이라 사진이 많지마는 오늘은 그간 찍었던 것 중에 가장 쥐순이다운 사진을 올려둔다. 사랑스럽고 당당한 고양이였다. 또 보자.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특별히 쓸 것이 없기도 했고 다시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사이 잊기도 했었는데, 친구 같고 새끼 같았던 쥐순이와 헤어진 다음날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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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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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종우

    자전거 국토종주로 처음 블로그를 찾아, 글들이 맘에 들어 방과후수업 팟캐스트도 찾아 듣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업댓이 안되어 접으셨나 했더니, 간만에 가슴 아린 글을 올리셨네요.
    대호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테니 가는 길이 춥지는 않았을 겁니다.
    뒤늦게나마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2018.01.22 19:27 [ ADDR : EDIT/ DEL : REPLY ]

일기장/20172017.01.29 01:26

그러나 흰둥이는 겁보였다. 선생님이 처음 발견하고 구조를 할 때에도 도망갈 수 없는 구석에 몰린 뒤로는 발톱이 다 닳고 사이에 피가 맺히도록 바닥이나 벽을 긁어대었다 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며칠이고 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고양이의 일반적인 습성이라 하지만 흰둥이는 함께 지낸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내가 밖에 나갔다가 새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면 어두운 구석에 숨어 한참이나 눈치를 본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나면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가서 숨어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숨어서 자고 있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내가 없을 때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 기대하던 쟈미난 생활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까지 내가 혼자 살던 삶과 별로 달라지던 것도 없어서 나는 그럭저럭 지냈다. 이따금 간식을 던져주면 배를 뒤집으며 벌러덩벌러덩 하는 것은 웃으면서 보았다.

 

택배 상자로 만들어 준 임시 집에서 흰둥이는 잘 잤다. 다만 뭘 하고 있나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크게 뜨고 콧김을 퓽퓽 내쉬는 탓에, 나쁜 짓 하는 것 같아 근처에도 안 가게 된 것은 좀 서운했다. 이래서야 혼자 사는 것과 다른 것이 무언가.

 

일주일 가량이 지났을까, 손에 간식을 쥐고 있으면 다가와서 얼른 하나 먹고 다시 도망갈 정도는 친해졌을 때, 나는 박스 안으로 손을 넣어 흰둥이를 쓰다듬어 보았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았던 어설픈 지식대로 귀 사이의 머리통을 긁어 주고 목덜미와 턱을 만져 주었더니 의외로 순순히 옆으로 누워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친해진 표시일까, 하는 생각도 좀 기쁘고, 내 집에 와서 안정을 찾은 모양이다, 하는 생각도 기뻐서 나는 여기저기를 긁어 주었다.

 

그러다가, 벌렁 누워서 배를 보이고 있으니 배를 만져달라는 것일까 하고 배도 한참 만졌는데 흰둥이는 갑자기 얼굴을 귀신처럼 일그러 뜨리면서 캬악, 캬악, 하고 수 차례나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친해졌다는 생각이 배신당한 것 같기도 하고, 박스 깊숙이 들어가 있는 손이 걱정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큼직한 고양이가 눈 앞에서 그렇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는 것을 처음 본 탓에 놀라기도 해서, 나는 그 감정을 뭉뚱그려 화가 났다. 먹이 주고 똥 치워주고 쓰다듬어 줬는데 이게 주인한테, 하고. 화가 난 나는 박스를 후려쳤고 흰둥이는 정신 없이 집 안의 구석을 찾아 도망다녔다. 이때까지 나는 고양이가 무시하거나 위협을 할 때 말고도 무서울 때에 캬악 소리를 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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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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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72017.01.29 00:37

반 년 전에 썼던 일기와 같이, 중곡동에 은거하는 일상에 큰 변화도 없거니와 영글은 생각들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대본으로 말로 충분히 풀어내고 있어서, 일기에 딱히 쓸 것이 없다. 작년인 2016년의 여름에 한 번, 최근인 2017년 1월에 한 번 해서 두 번이나 교토에 다녀온 것은 개별의 일기로 쓸 것이 아니라 잘 갈무리해 하나의 컨텐츠로 묶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와중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넘의 집 전세 얹혀 살고 있는 처지에 활동력 좋고 밤낮으로 짖는 개는 어차피 키울 수가 없었다. 그러한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고시원 쪽방 생활을 할 때부터 개보다는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개인적인 취향을 가져오던 차였다.

 

변곡점을 만난 것은 팟캐스트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는 '오래된 기타' 선생님의 작업실에서였다. 집 근처이기도 하고 음악가의 작업실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또 출강하는 고등학교의 바로 앞에 있어 동선이 좋기도 하여 기왕에도 자주 들락날락하던 곳이었다.

 

이전에도 선생님의 작업실에는 고양이나 개가 한 마리씩 있는 경우가 있었다. 선생님의 여자친구가 고양이 구조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분이고 선생님도 그에 영향을 받아 동네에서 발생하는 고양이 구조에 열심히 참가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조한 고양이를 작업실에서 1-2주일 간 임시 보호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다만 이전에는 막 구조된 고양이들답게 철창 안에 갇혀서도 무척이나 날카로왔고, 또 대부분 눈에 익은 코리안 숏헤어 종이라, 막연히 품어오던 고양이 양육의 계획에는 별다른 영감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바닥을 자유롭게 돌아댕기고 있던 붕실붕실한 털뭉치 두 마리가 내 발치로 다가와 빙빙 휘감고 돌았다. 만화에서나 보던 광경으로, 나는 처음 보는 고양이가 나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친밀감과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들어올려 품에 안아보니 손바닥 하나 반 만한 새끼 고양이가 내 가슴에 착 안겨 고롱고롱하였다. 꼬리털뭉치가 제 몸만한 노르웨이숲 고양이였다.

 

사연은 기구했다. 세가 들어오지 않는 빈 집에, 거기에 살지 않는 주인이 어미와 새끼 세 마리를 방치해 놓고는 문을 잠가 버렸다는 것이다.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낑낑 소리에 동네의 '캣맘'들이 가서야 상황을 알고는 먹이를 좀 준 모양이다. 캣맘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동네에서 구조로 이름난 오래된 기타 선생님을 불렀고, 선생님은 주인과 협상하여 새끼 두 마리 남매를 데려왔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치료와 임시 보호를 하다가 새 주인을 찾아주곤 하던 선생님은, 마침내 스스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또 두 고양이가 워낙 예쁘기도 해서 그대로 입양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키운지 몇 달이 지나 내가 키우는 내 고양이에 정이 든 지금에도, 직접 본 고양이 중 가장 예쁜 고양이는 그 집 고양이들이다. 본 지 몇 분 만에 당장 지금부터 한 마리를 얻어다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남매를 사이 좋게 행복하게 키우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서운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선생님은 얼마 뒤 구조한 고양이를 대뜸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사료와 모래 등의 기초지식을 정신 없이 배우고 난 뒤 선생님은 돌아가고, 세 살의 터키쉬 앙고라 흰둥이와 나만 방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앉아 있게 됐다.

 

터키쉬 앙고라는 온 몸이 흰 털로 뒤덮인 '품종 있는' 고양이이다. 사자갈기 같은 것이 달린 장모종이 있고, 몸의 모양이 거의 그대로 보이는 짧은 털의 단모종이 있는데 흰둥이는 단모종이다. 접종과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고 귀 속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버려졌든지 집을 나왔든지 아무튼 최근의 일일 것이라 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너무 컸다. 선생님네의 노르웨이 숲 고양이들은 털이 붕실붕실하여도 워낙에 새끼들이라 작은 데다가 눈망울이 동그래서 귀여운 맛이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내 방의 고양이는 다 큰 것이라 너무 컸고 무엇보다 보는 내가 흠칫할 정도로 사납게 생긴 눈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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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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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최대호님

    고양이가 궁금하네요. 사진 좀 올려주세요~ ^^

    2017.03.03 14:58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7.08.06 12:10 [ ADDR : EDIT/ DEL : REPLY ]

일기장/20162016.10.31 18:24

 

<서초교회 잔혹사> 독후감 한 편으로 도대체 몇 번의 신고를 당했는지 모르겠다. 신고 주체는 지난번과 같은 주식회사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 '잊힐 권리'를 근거로 해서 신고 주체를 대리하여 인터넷 게시물에 대한 지속적인 신고로 결국 게시물 차단을 유도하는 업체인데, 특정 범죄의 피해자 등이 사건과 관련된 기억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을 때 같은 경우에는 인권을 구제하는 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처럼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해 피해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단지 이름이 언급되었거나 혹은 건조한 문학 비평에 지나지 않는데도 신고를 일삼는 데에는 눈쌀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지난번까지는 독후감 게시물 자체가 신고의 대상이었고 신고 주체도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의 대리인인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였던 것에 비해, 이번에 신고된 두 건의 게시물은 위 문단에 적은 내용과 이후의 진행 상황을 적었던 일기글이며 신고 주체가 다른 이의 대리인이 아닌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인 것으로 봐서 그냥 자기 회사를 위해 신고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일기에 몇 번째나 쓰고 있지만, 티스토리의 게시물이 신고를 당하면 피신고자는 복원을 원할 경우 30일 내에 복원 요청 소명서를 내야 한다. 복원될 때까지 피신고 게시물은 작성자 본인조차도 열람할 수 없다. 복원 요청이 접수된 뒤, 다시 30일이 지나기 전 신고 주체가 재차 신고를 하면 그 건은 방통위로 넘어가 심사를 받게 된다. 30일이 지나도록 신고 주체가 응답을 하지 않으면 해당 게시물은 30일이 지난 뒤 자동으로 복원된다. 이런 한심한 노릇을 몇 차례나 거듭하다 보면 몹시 귀찮고 진이 빠지는데, 그렇게 해서 그깟 게시물 하나 지우고 말지 뭐,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마도 주된 목적일 것이다. 돈 있으면 별 일이 다 되는구나, 하고 혀를 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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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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