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튜샤 지원 추첨에서 떨어지고 나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대는 사실, 나에게 있어 그렇게까지 커다란 위협이 되지 못 하는 화제이다. 시간이 지나 돌아 봤을
때, 카튜샤 쪽이 일반병보다 압도적으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 하는 것
이고, 사실 카튜샤 가고자 했던 이유 중에 가장 컸던 것은 내 한 몸 편해 보자였으니 어쩌면 안일한
의식을 개혁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실 머쓱해서 덧붙이는 말이기도 하고, 자위기도 하고.
재수는 위협이 되었다. 지나서 보았을 때 혹여나 재수 쪽이 살면서 도움이 되는 경험이 많았다 할
지라도 내 스무살을 온통 빼앗긴 것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는 필요로
하는 시간이 같으니 그 과정이 지나고 나면 어차피 같은 결과로 작용할 것이라, 커다란 걱정이 안
되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어디를 가든 2년 2개월짜리로 갈 것이고, 가기 전에 싫든 좋든 2년 2개
월이 지난 후에는 난 예비역이 되어 있을 거란 말이다. 추첨운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고, 살면서 주의하는 것도 부차적으로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근래의 삶은, 살면서 더 이상은 없었다고 생각하는, 책임감 대회피의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처럼, 이 시기가 지나면 다음 학년이 오겠지. 이 텀이 지나면 다음 텀이 오겠지.
재수 때에서야 그, 틀 안에서 안주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깨진 것인데, 요새 너무 안일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너무 절실하게 느낀 이틀이었다. 무언가를 내 손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하다 못 해 학교 숙제마저도 부담감으로 느껴질만큼 스스로 너무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당연히 학교 다니고, 당연히 수업 듣고, 방학 되면 잠깐 여행 다니다가 당연히 연극을 준비하고.
마치, 패러디처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대학생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연극부 학생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사람
이 그러하듯. 누구 하나 이 것이 정답이라고 규정지어 놓은 바 없지만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은연중 머리속에 박혀 있는 어떤 규정. 그 규정의 패러디로서 내 인생을 살다.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져 볼 때이다.
왜 사는지. 왜 하는지. 왜 안 하는지. 모든 것에 대해.
패러디가 아닌 리얼 최대호로 살기 위해.
(그러나 레슬리 닐슨이 브루스 윌리스보다 풍성한 머리숱을 가진 것은 정말이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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