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짧게 설명하자. 여덟 명의 변호사가 자신이 맡았던 사건의 경과와 결과, 그리고 소회 등을 정리하였고 작가와 기자 각각 한 명이 그 초안을 읽기 좋게 가다듬었다. 모두 묶어서 낸 것이 이 책이다. 부제는 '미네르바에서 용산참사까지 말 못 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살고자 한 사람들, 그들이 지켜낸 이 오만한 시대의 정의로운 순간들'.
너스레 떨지 말고 직구로 설명하기로 하자. 민변 출판홍보팀의 김영준 변호사가 최초에 기획을 시작했다는 것이나 부제에서 적시하는 사건들의 이름이나, 이 책은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일어났던 사건들 가운데 크게 논란이 되었고 또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기본권을 후퇴시켰다'고 평가받는 사건의 변호사들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이다.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사건은 총 8개이다. 사건의 발생 순서와 기소, 판결 순서 등이 서로 달라 그냥 무작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담당 변호사이다.
-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사건 (김갑배)
-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사건 (한명옥)
- <PD수첩> 사건 (김진영)
-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최강욱)
- 전교조 명단 공개 사건 (김영준)
- 2009년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강영구)
- 용산참사 (이재호, 신동미)
한때 전국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사건들인데, 국정원 개혁 문제와 세월호 사건, 그리고 이어지는 인사참사 등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고작 2년차인데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이름들인 것 같다. 바로 그래서 이 책의 가치가 중하다 할 것이다. 위의 사건들은 모두 행정적인 판결이 났을 뿐 실제로는 고유한 맥락을 갖고 꾸준히 살아 있다.
미네르바는 '경제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우던 필명의 지위를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고 건강도 심각하게 해치고 말았다. 정연주는 판정에서는 승소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KBS사장에 복직하지 못했으며, <PD수첩>의 핵심 제작진들은 해고되거나 좌천됐다.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인 김종익 씨는 당사자들의 법적인 처벌은커녕 시원한 해명 한 번 못 들은 채 눈물을 흘려야 했고 불법사찰의 내부 고발자인 장진수 씨는 안정된 직장인 총리실 공무원 직에서 파면됐다. 보수 정권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던 전교조는 지난 2014년 6월 21일 서울 행정법원의 1심으로 법외노조가 됐다. 그리고 용산은 이름을 바꾸고 규모를 줄여 전국 각지에서 은밀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전교조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에 대한 처우는 개인적 불행에 그치지 않고, 유사한 신념과 언행을 지켜온 이들에게 경고 효과를 주는 한편 또다른 실제적 처벌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유용성은 막대하다 할 수 있겠다.
사건의 담당 변호사가 집필한 것이어서 핵심적인 정보와 시간의 흐름 등이 잘 정리되어 있고, 기자와 작가가 한 차례 더 다듬어 준 덕인지 전문 법률 언어 등이 많지 않아 쉽게 읽힌다. 재판과 언론 발표 뒤에서 진행되었던 뒷이야기들엔 영화를 보는 듯한 긴박감이 있고, 전문 법조인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리걸 마인드의 작동 방식도 흥미로운 생각거리이다. 얼마 전 독후감을 올렸던 <올해의 판결>과 함께 읽으면, 진보 진영의 법조계에서 특히 이명박 정부 시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일람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독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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