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독후감은 좀 속 편하게 쓰려고 한다. '스압'을 감당하고라도 아름다운 사진들을 감상할 각오가 되신 분이
라면, 내가 주절주절 써 놓은 말일랑 큰 신경 쓰지 마시고 느긋하게 스크롤해 보시라.
너스레 떨지 말고 직구로 던지자. 책날개의 소개에 의하면, 저자는 '야구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우연히 관람했
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을 계기로 인물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다. 여러 종류의 인물 사진을 찍다
가 무용수들의 공연 사진 촬영을 맡게 된 저자는, 무용수들의 몸이 참으로 아름다운 피사체라는 인상을 받고 일
상적인 장면에 그들의 동작과 움직임이 녹아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앞서의 공연 사진
촬영 중 알게 되어 섭외한 무용수들, 혹은 SNS를 통해 즉석에서 모집하기도 한 무용수들과 함께 도시의 아무 장
소나 찾아가서 바로 그 때 머리에 떠오른 동작을 찍어 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물들은 'www.dancersamongus.com'이라는 웹페이지에 차곡차곡 쌓였고, 큰 인기를 얻게 되어 마침내 같
은 이름의 사진집으로 묶여서 나왔다. (이 웹페이지에서는 지금도 모든 사진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영어권
독자가 아닌 우리의 눈에는 낯선 주소 이름일 수 있는데, 'dancers among us'라고 띄어쓰기 해서 읽으면 외우기
편하다.)
출판사 제공의 간단한 책 소개만 읽고도 뻑이 가서, 도서관에 당장 예약을 걸어 두었다. '일상적 공간에서의 무
용수'라면, 같은 성격의 사진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피나 바우쉬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빔 벤더스 감독의 <PINA>의 한 스틸컷이다. 잡지에서 우연히 보고는 마음을 홀딱 빼앗겨, 휴대폰으로 촬영해
두고는 그 뒤로 몇 달 동안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곤 했었다. 결과물이 후져서 이 블로그의 <화첩> 카테고
리에는 올리지 않았지만 드로잉도 몇 장 씩이나 그렸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서야 마침내 무용이 '아름다운' 예
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전문 무용수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성격의 사진이라면 'YOWAYOWA CAMERA'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여성인
이 블로거는 'levitation photography', 우리 말로 하자면 '공중부양 사진'이라는 장르명을 만들고, 그 이름에 어
울리게 언제 어디서든 점프하는 사진만을 찍어 블로그(http://yowayowacamera.com/)에 올렸다. 2009년부터
시작됐던 활동은 2011년 6월에 올라온 17장이 마지막이지만, 그 사이의 작품들은 지금도 해당 블로그에서 찾
아볼 수 있다.
오늘 독후감의 대상은 아니지만, 요와요와 블로그까지 가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몇 장 더 올려본다. 눈요기 하셔
라.
요와요와 블로그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 부동산 광고나 심상한 인테리어 광고에나 등장했을 법한 건물
사진에, 점프하는 인물 하나가 들어갔을 뿐인데 굉장한 흡입력을 갖는 작품이 되었다.
조명과 잘 어우러지면 이렇게 환상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UFO에 납
치당하는 지구인'이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물론 이 분도 평범한 분은 아니고, 트램폴린 하나 없는 시멘트 바닥에서도 위와 같이 굉장한 점프력을 자랑하는
체육인의 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인즉슨, 일반인이라도 좋은 점프력과 셀프 타이머가 달린 카메라만 있
다면 이렇게 굉장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니. 전문 인물사진 작가와 무용수가 만난다면 그 결과가 도대
체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에 씩씩 콧김을 내뿜으며 이 책,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을 예약했던 것이다.
결과야 당연히, 독후감을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성공. 모니터 화면으로 봐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
진인데 빠닥빠닥한 종이에 잘 인쇄된 결과물을 본다고 상상해 보라. 정말이지 시각 신경계의 소돔이나 라스 베
가스와 같은 독서 경험이었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이기도 한 위의 사진이 'dancersamongus' 프로젝트에서 가장 먼저 외부의 주목을 받은 사진이
었다고 한다. 강렬한 붉은색도 눈을 잡아끄는 한 요소이긴 하지만, 저 정도로 다리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확실히
감상의 진폭은 확 줄어들었을 것 같다. 무용수와의 작업이라는 작가의 구상이 빛나는 순간이다.
나는 감상하는 와중에서도 내 일상생활 속에 써먹을 만한 예제를 찾고자 하는 비밀스런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
문에, 영 실현이 어려울 듯한 위의 사진 같은 경우는 감흥이 좀 덜했다.
하지만 요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구미가 당긴다.
파스 몇 개 붙일 각오만 한다면 이 사진도 무리는 아니다.
'내 생활에서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무용수만이 할 수 있는 과도한 동작들에는 조금 흥미
가 덜 갔는데, 그런 와중에도 마음을 빼앗긴 것을 부인할 수 없었던 한 장. 사람의 몸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그리고 가장 좋았던 사진을 마지막으로 올린다. 무용수와 회전목마. 글씨로만 써 놓아도 낭만이다.
나는 사진집을 세 권 갖고 있는데, 모두 역사적 사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들로 감상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니까
순수하게 감상과 드로잉을 위해 구입하고 싶어진 사진집은 이 책이 처음인 셈이다. 중고서점에서 잘 기다려 보
다가, 영 안 나올 것 같으면 신간으로라도 꼭 구입하겠다.
독후감에 내 생각 하나 없이 남의 사진들만 주루룩 늘어놓은 것이 조금 찔리긴 하지만, 나부터가 남의 블로그에
가서 사진이 많이 있는 기사의 글에는 눈을 거의 두지 못한다. 나도 안 읽는 걸 남에게 읽으라고 주절주절 쓰는
건 비효율적이고 또 무례한 것 같기도 해서, 아무런 깊이 없는 오늘의 접시물 독후감도 그냥 스스로 눈감아주기
로 했다. 어쩌면 말만 많은 다른 독후감들보다 훨씬 더 읽는 분에게 쾌감을 드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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