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까지 해야 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다.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든, 국가의 행정 체제에 잡히는 내 공적
신분은 '강사 / 과외 강사/ 학원 강사'이다. 이제의 나는, 내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
를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다. 내공이 쌓였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고, 덜 모자란 사람이 더 모자란 사람을 한 발이
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분명 교육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 수업의 특징 중 하나는 딴 소리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대 소설을 강의하면서 나는 소설의 내용
자체보다 소설이 집필된 시기의 사회상과 작가 개인의 삶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정작 내용은 잘
모르지만 교과서에도 나오고 EBS 문제집에도 나오고 하는 통에 이름만 들어도 지겨워지는 그 소설들은, 그러나
'한국 문학사의 거장'들이 언젠가는 국정 교과서에 실리고 대입 시험에 출제될 '걸작'을 위해 집필한 것이 아니
다. 졸리면 잠을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땡기면 정을 통하던 형과 누나들이, 자신의 삶과 당대의 영향을 먹고
싼 귀한 배설물이다. 화석화된 걸작이 아니라, 까고 씹다가 때로 느끼는 것이 있는 '이야기'로 여기게 하기 위해,
나는 구보 박태원의 가장 웃긴 머리 스타일 사진을 찾거나, 60년대 후반 강남 지역의 지가 상승률이 지금 물가로
하면 얼마정도인지를 계산하는 데에 시간을 쓴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지만 결국 학습 목표는 단 하나, 그 안
의 '사람'을 느낄 것, 이다. 수업 시간에 딴 얘기 듣는 재미, 학교에서 정해준 교재로 진도를 빼지 않는다는 불온
한 즐거움, 그리고 수업의 방향성과 대체로 일치하는 최근의 수능과 논술 경향성 등에 힘입어, 학생들로부터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개중 공부를 직업으로 택하고 싶다는 피드백을 받거나 하면 일단은 차가운 얼굴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기쁘다.
덕분에 자만하고 있던 모양이다. 50년대의 사진 자료도 시간 되는대로 모아두는 판인데, 지난 정권 하 노동계
에서의 상징적 사건 중 하나였던 한진중공업 사태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기사를 모아서 구분해 둔 카테고리만
세 개이다. 몇 월 몇 시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용역이 들어가던 날, 첫 희망버스가 출발하던 날, 조남호 회장이
국회에서 답변 요령지를 컨닝하던 날, 김진숙 위원이 내려오던 날, 최강서 씨가 목을 매던 날 등이 모두 기억난
다. 학생들이 원한다면 갖고 있는 자료를 엮어 한 시간짜리 수업을 해 줄 수도 있고, 몇 명 정도는 울릴 수도 있
다. 말하자면, 나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안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부끄럽고 먹먹해 하며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사태를 그저 '알' 뿐이기 때
문이었을 것이다. 입시에 찌든 고등학생이 '현대소설의 시초는 무정'을 외우고 '작가는 민족지사이자 친일파인
춘원 이광수'를 외우고 '형식적 특징은 연장체, 장르는 계몽 소설'을 외우듯이, '희망버스', '송경동', '85호 크레
인', '조남호' 따위의 단어와 함께 '분노'마저도 외워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대강을 욕하고 버
블 세븐을 욕하고 전경련을 욕하던 그 습관 그대로, 시간을 내어 기사만 쭉 훑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알량한
상식을 자랑하는 만족감을 섞어, 줄줄줄 외워버린 것이 아닐까.
핑계는 아주 많았다. 백기완 할아버지가 갔으니까. 정동영이 갔으니까. 국회에서 청문회 한다니까. 김진숙이 내
려왔다니까. 조남호가 합의해 준다니까. 그렇게나 많은 핑계를 댈 수 있었던 건,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
거니와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심사를 필사적으로 합리화하려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그리 부끄러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멋적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데 뭘. 노동 전문가도 아니고 시민 단체 소속도 아니고 운동 가요를 많이 아는 것
도 아니고, 그냥 30대 대학원생인 내가 뭘 할 수 있었을라고.
그런데 한진중공업의 형과 누나들이 딱 바로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정동영의 청문회나 문재인의 당선과
같은 '역사적 사건'도 소중했지만, 그들에게 또 소중했던 것은 '종이배를 접는 시간'이었다. 자신들을 위해 전국
에서 버스를 타고 몰려들어 음식도 나눠주고 아무 노래나 같이 부르고 밤늦게까지 소주를 마실 생면부지의 사람
들. 동료들이 쫓기고 죽어나간 침울한 현장에 사람 냄새를 가져다 줄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을 기다리며 접는 색
색의 종이배. 선박을 만들던 그 손으로 접는 종이배. 나는, 정말 바빴다면, 그 종이배 하나만 받고 돌아와도 됐었
다. 희망버스가 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설레어 하며 몇 시간씩 끓여 놓았다는 어묵탕 한 그릇만 먹고 돌아와도 됐
었다. 85호 크레인, 까마득한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김진숙 위원 눈에, 문정현 신부가 든 촛불과 내가 든 촛불이
무슨 차이가 있었을 것인가. 하다 못해 촛불을 들고 자리에 앉아서 조용필 19집을 듣고 있어도 됐었을 것이다.
독후감을 쓰면서, 책 표지를 몇 번씩이나 다시 쳐다본다. 제목을 한자한자 읽고 있자니 종이배를 예쁘게 딱딱 맞
춰 접지 못하는 굵은 매듭의 손이 떠오른다. 이제야 겨우, 사람의 손 하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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