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2.06.12 23:59

 

 

 

 

 

 

야릇한 감정에 길게 썼다가 다시 읽어보니 영 후져서, 다 지우고 짧게 다시 쓴다.

 

 

책. 섹시한 제목과 잘빠진 표지 디자인 외에, 별 거 없다. 50여 개의 '사물'의 기원과 얽힌 이야기가 전부. 그 가

 

운데에는 '엉클 오스카!'의 아카데미 상 이야기와 같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급 일화도 상당하다. 얽힌 이야기도,

 

네이버나 구글을 몇 번 툴툴 털면 나오는 수준의 것들이다.

 

 

그런데도 읽었던 건 저자 김지룡 씨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명문대를 졸업하고 무사히 취

 

업하였으나 인생이 재미없고 때마침 일본 만화에 미쳐있기도 하고 해서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는 그의 책의 서

 

사는 서두부터가 컬쳐 쇼크였다. 다음도 없고 네이버도 없고 케이블도 우리 집에는 없던 시절에, 잘 나가던 어른

 

이 만화책이 좋아 일본에 갔다가 백수가 됐다든지, 백수가 된 김에 수천 권의 만화를 읽다 보니 일본어가 트였다

 

든지, 시간이 남아 빠찡꼬에 갔다가 건달과 싸움이 붙은 끝에 친해졌다든지, 자격증도 없는데 한국인을 상대로

 

일본여행 가이드를 해서 큰 돈을 벌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듣도보도 못하던 것이었다. 제대로 된 일

 

탈 한 번 해 본 적 없이 곧 고3을 맞이하게 될 내게 그의 진진한 술회는 구원과도 같았다. 이후로, 그는 '나는 솔

 

직하게 살고 싶다', '망가진 서울대생의 유쾌한 생존법', '인생 망가져도 GO' 등의 책들을 통해 '밑바닥에 떨어져

 

도 자기가 잘 하고 재미있는 것만 찾아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세기말적 메시지를 전했다. 책들은 대체로 꽤나

 

성공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문화평론가'라는 직종으로 여러 방송에 출연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때 내가 그에

 

게 보낸 것은 대체로 응원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잊고 살다가 십 년만에, 영 섭섭한 이 책의 저자로 다시 만났다. 책을 덮고도 못내 야릇한 기분에 책날개

 

를 뒤적거리다가, 저자 소개를 보았다.  

 

 

책임 크리에이터 김지룡.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이른바 '신의 직장'에 입사했지만 재미가 없어 4년 만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은 책으로는 ......이 있다.

 

 

김지룡을 김지룡으로 만들어줬던 게 서울대나 게이오였던가? 찾아보니, 그 사이에 그는 일본어 교재를 내기도

 

하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아동 경제 교육 전문가'가 되어 '21세기 내 아이를 위한 재테크 10계명'등의 책을 내

 

기도 했던 모양이다. 탓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내가 그 형 입에다 밥을 한 숟가락 넣어준

 

것도 아니고. 그래도 '게이오 경영학 박사 과정 수료'를 보면서 나는 좀, 형,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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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써도 후지다. 기분이 후지기 때문이라고 자위해 본다.

    2012.06.13 00: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바나나

    안 후진대요? 최근 읽은 서평 중에 제일 유쾌해요. ㅎㅎ

    2012.06.20 18:11 [ ADDR : EDIT/ DEL : REPLY ]
  3. 지나가다..

    저는 김지룡씨를 님과 반대과정으로 알게 된 케이슨데요..부모60분이란 프로그램에서 이 분 강연을 듣고 감명받아 이 분 책을 사서 읽었거든요.. 아마 애들 상대로 경제교육이나 하는 나부랭이가 되어 실망하신 듯 하네요 애 낳고 보니 모든게 아이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더라구요. 아마 작가 역시 그랬을꺼라 추측해봅니다 이 분 성향상 자신이 가장 관심있는 분야에 몰두하시다 보니 이쪽으로 업을 삼지 않았나 싶어요 자녀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분 강연이 남다르게 느꼈을꺼라 생각합니다. 서문 잘 읽었습니다. 이분이 책제목을 과하게 섹쉬하게 뽑는 스탈인건 저도 동감이랍니다 전교 1등하는 법...이라니..ㅜㅜ

    2012.09.20 22:30 [ ADDR : EDIT/ DEL : REPLY ]
    • 2

      나중에 애가 생기시면 다시 관심이 생기실지도 ...ㅎㅎ

      2012.09.20 22:34 [ ADDR : EDIT/ DEL ]
  4. 네. 사회 일반의 김지룡 씨에 대한 평가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청소년기에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해 주었던 분이 예전과는 무척 다른 방향의 가치관을 보여주시는 것에 대해 개인적인 소회를 적은 것입니다. 본문 중에 소개했던 그의 예전 책들은 돈보다는 자신의 희망, 특기, 열정 등을 먼저 개발하고 그 과정을 즐길 것에 대한 내용이었거든요. 몇 달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보다는 오래 전에 헤어진 첫사랑이 변한 모습을 보았을 때 더 실망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012.09.21 01: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5. 이 글을 쓴지 약 1년 반 후인 2013년 12월, 김지룡 씨는 변희재 씨와 손을 잡고 '우파청년포털'을 표방하는 사이트인 '수컷닷컴'을 열었다. 문을 연지 한 달 정도가 지난 2014년 1월 현재 수컷닷컴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비슷한 색채를 띄고 있는 '일간베스트'의 이용자들을 상당수 흡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당초 언론에는 변희재 씨가 수컷닷컴을 기획하고 런칭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후에 김지룡 씨가 인터뷰를 통해 이는 자신이 2009년부터 기획해 온 사이트이며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내오던 변희재 씨를 내세우면 지명도를 높이고 더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 홍보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변희재 씨가 운영하는 사이트인 '미디어워치'에 실린 김지룡 씨의 인터뷰 주소이다.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43875

    2014.01.14 17: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