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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김지룡/갈릴레오SNC, <사물의 민낯>

 

 

 

 

 

 

야릇한 감정에 길게 썼다가 다시 읽어보니 영 후져서, 다 지우고 짧게 다시 쓴다.

 

 

책. 섹시한 제목과 잘빠진 표지 디자인 외에, 별 거 없다. 50여 개의 '사물'의 기원과 얽힌 이야기가 전부. 그 가

 

운데에는 '엉클 오스카!'의 아카데미 상 이야기와 같은 리더스 다이제스트 급 일화도 상당하다. 얽힌 이야기도,

 

네이버나 구글을 몇 번 툴툴 털면 나오는 수준의 것들이다.

 

 

그런데도 읽었던 건 저자 김지룡 씨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명문대를 졸업하고 무사히 취

 

업하였으나 인생이 재미없고 때마침 일본 만화에 미쳐있기도 하고 해서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는 그의 책의 서

 

사는 서두부터가 컬쳐 쇼크였다. 다음도 없고 네이버도 없고 케이블도 우리 집에는 없던 시절에, 잘 나가던 어른

 

이 만화책이 좋아 일본에 갔다가 백수가 됐다든지, 백수가 된 김에 수천 권의 만화를 읽다 보니 일본어가 트였다

 

든지, 시간이 남아 빠찡꼬에 갔다가 건달과 싸움이 붙은 끝에 친해졌다든지, 자격증도 없는데 한국인을 상대로

 

일본여행 가이드를 해서 큰 돈을 벌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듣도보도 못하던 것이었다. 제대로 된 일

 

탈 한 번 해 본 적 없이 곧 고3을 맞이하게 될 내게 그의 진진한 술회는 구원과도 같았다. 이후로, 그는 '나는 솔

 

직하게 살고 싶다', '망가진 서울대생의 유쾌한 생존법', '인생 망가져도 GO' 등의 책들을 통해 '밑바닥에 떨어져

 

도 자기가 잘 하고 재미있는 것만 찾아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세기말적 메시지를 전했다. 책들은 대체로 꽤나

 

성공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문화평론가'라는 직종으로 여러 방송에 출연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때 내가 그에

 

게 보낸 것은 대체로 응원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잊고 살다가 십 년만에, 영 섭섭한 이 책의 저자로 다시 만났다. 책을 덮고도 못내 야릇한 기분에 책날개

 

를 뒤적거리다가, 저자 소개를 보았다.  

 

 

책임 크리에이터 김지룡.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이른바 '신의 직장'에 입사했지만 재미가 없어 4년 만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지은 책으로는 ......이 있다.

 

 

김지룡을 김지룡으로 만들어줬던 게 서울대나 게이오였던가? 찾아보니, 그 사이에 그는 일본어 교재를 내기도

 

하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아동 경제 교육 전문가'가 되어 '21세기 내 아이를 위한 재테크 10계명'등의 책을 내

 

기도 했던 모양이다. 탓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내가 그 형 입에다 밥을 한 숟가락 넣어준

 

것도 아니고. 그래도 '게이오 경영학 박사 과정 수료'를 보면서 나는 좀, 형,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하는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