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과외를 그만두기 전 마구 구입해 두었던 레고들을 만들었다 부수
었다 하며 놀고 있다. 몇십년이 걸릴지 모를 한자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 부담이
되는 일이지만, 사실 더 부담이 되는 것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운전면허 기능교습. 더 이상 미루면
못 딴다며 직접 학원에 가 등록까지 해 오신 어머니에게 등을 밀려 어영부영 시청각교육을 받고
오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유산소운동만큼이나 오래 된 기계와의 악연이 다시 한 번
맹위를 떨칠까 걱정된다.
국민학교의 여섯 해동안 매해 만들었던 고무동력기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날아간 적이 없었다. 졸업
을 앞두고 있던 6학년 때에는 -심지어 탐구생활에 포함된 숙제거나 대회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반드시 성공해 보리라 마음먹고 방학을 맞아 혼자 세 대나 만들었던 적도 있다. 결국 지금까지의 인생
의 마지막 고무동력기가 되었던 최대호 3호는 약 2m를 비행한 뒤 장렬히 전사하였다. 93년 겨울의
찬 바람을 맞으며 소년 최대호는 무수히 실패한 라이트 형제처럼 주저앉아 머리를 싸 쥐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오락은 p2p로 받아 돌리면 그만이지만 5.25 디스크 여남은 장이 있어야 인스톨을 할 수 있
던 때가 있었다. 프린세스 메이커나 어스토시아 스토리, 퍼스트 퀸 4 등, 오늘날 30대를 바라 보는 청
년들의 유년기의 기억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을 그 이름들. 그러나 두근거리며 디스크를 빌려 와
넣어 봤자 내 컴퓨터는 항상 오류를 토해 냈다. 옆에서 기다리던 다음 친구에게 넘겨 주고 수시간이
지나 전화를 해 보면, 그들의 집에서는 또 멀쩡히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토요일 오후 학교에 남아 있어 하고 싶은 어린이는 없었기에 선생이 억지로 내보낸 라디오조립
경진대회에서 나는, 참가자 전원이 조립을 마치고 퇴교할 때까지도 -남들이 쓴 땜납의 두배를 써 가
면서도- 완성을 하지 못 했다. 끙끙대며 결국 어찌어찌 얽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아폴로 13호가 달 뒷
편에서 보내 오는 듯한 소리만이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다. 그 대회에서 나는 그 해 특별히 신설된
'노력상'을 수상하였다.
운전면허 시험에 대한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 놓으면, 주위의 면허증 소지자들은 대부분 막상 해 보
면 쉽습니다, 라고 위로를 해 온다. 고마운 일이지만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감사
한 마음이 아니라 '막상 해 본 순간'의 기억이다.
말년에 야간당직근무만을 일삼던 나는 어느날 만만한 반장이 잠 든 틈을 타 순찰차를 몰고 인근을
돌아 볼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교통계에 근무하는 현역 의무경찰이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가 적발
되면 적어도 지역신문 사회면의 구석쯤은 화려하게 장식할 사건임은 알고 있었지만, 근무지였던 영
종공항은 새벽에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데다 제대를 한 달 남겨 놓고는 영창에 가지 않는다는 규정
또한 알고 있었기에 계획할 수 있었던 만행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 인쇄해 둔 운전시동요령을 손에
든 채로 두근두근하며 순찰차에 시동을 걸고 부릉 나가던 나는 그대로 전방 45도 방향의 기둥을 들이
받아 버렸다. 콩트에서나 보는 상황이지만, 당황하여 무언가를 눌렀는지 밟았는지 아무튼 뭘 했는데,
나는 뒤를 보고 있었지만 차는 기둥으로 다시 돌진해 버렸다. 진땀을 흘려 가며 겨우 차를 다시 주차
시켜 놓고, (그나마 나중의 디테일한 주차는 내려서 밀며 했다. 여러분, 로체는 무겁다.) 나는, 나 자
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서 평생 면허를 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무튼, 이제 며칠 후면 그 운전을 제대로 배우게 된다. 총 일곱 시간의 시청각 교육이 끝난 뒤 나는
혼자 멍하니 수십대의 차량들이 개미처럼 꿈틀거리는 석양의 기능연습장을 바라 보면서 제길,
괜히 1종 신청했네, 라고 중얼거렸다.
었다 하며 놀고 있다. 몇십년이 걸릴지 모를 한자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 부담이
되는 일이지만, 사실 더 부담이 되는 것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운전면허 기능교습. 더 이상 미루면
못 딴다며 직접 학원에 가 등록까지 해 오신 어머니에게 등을 밀려 어영부영 시청각교육을 받고
오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을까. 유산소운동만큼이나 오래 된 기계와의 악연이 다시 한 번
맹위를 떨칠까 걱정된다.
국민학교의 여섯 해동안 매해 만들었던 고무동력기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날아간 적이 없었다. 졸업
을 앞두고 있던 6학년 때에는 -심지어 탐구생활에 포함된 숙제거나 대회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반드시 성공해 보리라 마음먹고 방학을 맞아 혼자 세 대나 만들었던 적도 있다. 결국 지금까지의 인생
의 마지막 고무동력기가 되었던 최대호 3호는 약 2m를 비행한 뒤 장렬히 전사하였다. 93년 겨울의
찬 바람을 맞으며 소년 최대호는 무수히 실패한 라이트 형제처럼 주저앉아 머리를 싸 쥐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오락은 p2p로 받아 돌리면 그만이지만 5.25 디스크 여남은 장이 있어야 인스톨을 할 수 있
던 때가 있었다. 프린세스 메이커나 어스토시아 스토리, 퍼스트 퀸 4 등, 오늘날 30대를 바라 보는 청
년들의 유년기의 기억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을 그 이름들. 그러나 두근거리며 디스크를 빌려 와
넣어 봤자 내 컴퓨터는 항상 오류를 토해 냈다. 옆에서 기다리던 다음 친구에게 넘겨 주고 수시간이
지나 전화를 해 보면, 그들의 집에서는 또 멀쩡히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토요일 오후 학교에 남아 있어 하고 싶은 어린이는 없었기에 선생이 억지로 내보낸 라디오조립
경진대회에서 나는, 참가자 전원이 조립을 마치고 퇴교할 때까지도 -남들이 쓴 땜납의 두배를 써 가
면서도- 완성을 하지 못 했다. 끙끙대며 결국 어찌어찌 얽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아폴로 13호가 달 뒷
편에서 보내 오는 듯한 소리만이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다. 그 대회에서 나는 그 해 특별히 신설된
'노력상'을 수상하였다.
운전면허 시험에 대한 고민을 조심스레 털어 놓으면, 주위의 면허증 소지자들은 대부분 막상 해 보
면 쉽습니다, 라고 위로를 해 온다. 고마운 일이지만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감사
한 마음이 아니라 '막상 해 본 순간'의 기억이다.
말년에 야간당직근무만을 일삼던 나는 어느날 만만한 반장이 잠 든 틈을 타 순찰차를 몰고 인근을
돌아 볼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교통계에 근무하는 현역 의무경찰이 무면허로 운전을 하다가 적발
되면 적어도 지역신문 사회면의 구석쯤은 화려하게 장식할 사건임은 알고 있었지만, 근무지였던 영
종공항은 새벽에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데다 제대를 한 달 남겨 놓고는 영창에 가지 않는다는 규정
또한 알고 있었기에 계획할 수 있었던 만행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 인쇄해 둔 운전시동요령을 손에
든 채로 두근두근하며 순찰차에 시동을 걸고 부릉 나가던 나는 그대로 전방 45도 방향의 기둥을 들이
받아 버렸다. 콩트에서나 보는 상황이지만, 당황하여 무언가를 눌렀는지 밟았는지 아무튼 뭘 했는데,
나는 뒤를 보고 있었지만 차는 기둥으로 다시 돌진해 버렸다. 진땀을 흘려 가며 겨우 차를 다시 주차
시켜 놓고, (그나마 나중의 디테일한 주차는 내려서 밀며 했다. 여러분, 로체는 무겁다.) 나는, 나 자
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서 평생 면허를 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무튼, 이제 며칠 후면 그 운전을 제대로 배우게 된다. 총 일곱 시간의 시청각 교육이 끝난 뒤 나는
혼자 멍하니 수십대의 차량들이 개미처럼 꿈틀거리는 석양의 기능연습장을 바라 보면서 제길,
괜히 1종 신청했네, 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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