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5.07 19:51

 

 

 

 

 

출판사 미디어트리거의 기획작.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세 명의 패널을 초대하여 '대통령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토론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정리해서 출간한다. 부제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 대통령을 이야기하다.'.

 

 

 

중앙집권형 국가에서 정치를 말할 때 대통령을 논하는 것은 당연한 첫걸음이다. 그 기획의 패널으로 굳이 이 세

 

명을 부른 이유로는 아마도 '합리성'이나 '관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명에게는 모두, '속해 있는' 진영의 논

 

리와 완결이 일치하지는 않은 언행을 보인 공통점이 있다.

 

 

 

윤여준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으며 16대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소장을 지낸 바 있고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캠프의

 

전략을 짠 '책사'로 유명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전략

 

을 지도하여 참패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을 구원했던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는

 

안철수와 박경철의 '희망콘서트'를 후원하기도 했고 201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연

 

설을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 함께 하다가 2014년 3월,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합당을

 

하는 과정에서 결별했다. (이 책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 이전인 2월에 출간됐다.)

 

 

 

중앙대 법대 교수인 이상돈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조선일보>의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당

 

시 대통령이던 김대중, 노무현에게 날린 신랄한 독설은 보수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이후 보수의 재집권에 성공한 MB정부 하에서, 이상돈은 정부와 각을 세우는 의견을 내놓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특히 4대강 사업은 추진되고 있는 중에도 그 의도와 부작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하여, M

 

BC 100분 토론에서 화면 왼편에 자리잡은 패널이 정부를 공격하는 진기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진짜 보수'

 

를 표방하던 그는 19대 대선에서 김종인, 안대회와 함께 박근혜 캠프의 참신함과 합리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약했지만 대선 이후로는 그에 값하는 활동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집권 1년차가 지난 뒤부터는

 

'비상식적 인사'나 '무너진 신뢰' 등을 근거로 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인 이철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고,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당대표인 김한길 의원의 보좌관 직을 수행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몸을 담기도 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 부소장을 거쳐 현재는 1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특히 19대 대선을 전후하여 활

 

발한 방송 활동으로 이른바 개혁-진보 진영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평론가가 되었다. 인생 대부분의 이력이 민

 

주당에 놓여져 있지만, 사안을 논함에 있어 당략이나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공과를 비교적 공정하게 가늠한다

 

는 평을 받아, 급격히 보수화된 방송 환경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론가로 자리잡았다.

 

방송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나 팟캐스트, 그리고 인터뷰 등에서는 현재의 민주당

 

전략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 면도 있다.

 

 

 

이런 이들의 언행은 일각에서 '변절'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논거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또 자

 

신이 설득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자세'는 진영 간의 극단적인 대립과 정략이 심화되는 정세에서 많은 사람들

 

에게 '합리성'과 '관용'을 지닌 것으로 보여졌다. 특히 그런 일면이, 논쟁적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명된 까닭일 것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종 제목인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와 달리 토론의 주제 이름은 <대통령의 과

 

거,현재, 미래>였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대부분 전현직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서로에 대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호명되는 대통령은 4대 윤보선과 10대 최규하를 제외한 9명이다.

 

 

 

총 11장 중 1장부터 9장까지가 각각의 대통령을 다루고 있다. 보통 20쪽에서 30쪽 가량의 분량인데, 가장 짧은

 

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다룬 10쪽의 4장이며 가장 긴 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38쪽의 7장이다.

 

 

 

각 장은 다시 세 개의 소챕터로 나뉘는데, 책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소챕터는 대체로 '그 대통령

 

정권이 갖는 의미', '그 정권의 공', '그 정권의 과'로 구분되어 있는 듯 하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이 구

 

분이 엄밀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아울러 세 개의 소챕터라는 기준의 예외는 공이 빠지고 평가와 과만 있는 4

 

장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 소챕터의 제목만 읽어봐도 -세 명이 파악하는- 한국 현대사의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에, 책 목차를 이 독후감의 댓글로 첨부하려 한다.

 

 

 

윤여준이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을 높게 평하거나, 이상돈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거나, 이철희

 

가 김대중의 전략적 면모를 재조명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평이다. 똑같이, 윤여준이 노무현의 '뺄셈 정치

 

'를 지적하거나, 이상돈이 DJP연합의 정략성을 비판하거나, 이철희가 박근혜의 불통을 거론하는 것도 놀랍지 않

 

다.

 

 

 

러나 윤여준이 김대중의 탁월한 식견을 칭찬하는 한편 이회창의 반개혁적 면모를 공개하는 장면, 이상돈이

 

노무현의 상대방에 대한 관용을 인정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 임기 1년에 대해 혹독한 점수를 내리는 장면, 이

 

철희가 이승만의 정치력이 김구보다 위였다고 평가하는 한편 노무현 정부의 아젠다 세팅 능력을 비판하는

 

장면 등은 무척 신선했다. 특히 여기에 이 패널 조합의 특장점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토론 과정에서 합의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하는 세 인물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공과이다.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유신 전 박정희가 이룬 성과, 노태우의 북방외교,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

 

제, 김대중의 IMF극복 등이다. 반대로 입을 모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이승만의 권력욕, 박정희의 유신, 김영

 

삼의 IMF, 김대중의 측근 비리 등이다. 이렇게 한 명의 대통령이 공이든 과든 대체로 확실한 명암을 갖는 한편,

 

의미와 장단점을 논하는 데 있어 일관되게 부정적 평가를 받는 두 대통령도 있다. 각각 해당 장의 소챕터 제목으

 

로 문장을 만들어 보자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큰' 전두환 대통령과, '건설사 CEO

 

스러웠'으며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의 과오를 저질렀고 결국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를 남

 

긴 이명박 대통령이다.

 

 

 

각각의 대통령에 대한 9개의 장이 끝나고 나면 시점을 한국사회로 옮겨 문제점과 대안을 논해 본 10장 '미래를

 

말하자'와 11장 '지금 선 이 자리'가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의 개혁 방향을 토론하고 향후

 

크게 성장할 정치 인물들을 평가하며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총평한다.

 

 

 

정리하자. 먼저 장점부터. 하나. 역대 대통령이 집권 순서대로 호명되며 그 공과가 평론의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

 

에 한국 현대사에 처음 접근하는 사람에게 거칠게나마 큰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 유효할 것이다. 둘. 어떤 형태로

 

든 권력의 최정상에 닿아 본 이들의 '뒷담화'가 섞여 있어 정보의 가치가 높다. 셋. 대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가 편하다. 넷. 억지 주장을 펴지 않는 패널들이기 때문에 모범적인 토론을 공부하는 데 좋은 참고서가 되어

 

준다.

 

 

 

단점은 장점을 그대로 뒤집은 데서 나오는 것이 많다. 하나. 강연이 아니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얘

 

기라서, 평가의 논거로 사용되는 인물, 사건에 대한 정보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현대사의 굵직한 정보들을 미

 

리 알고 있지 않다면 어려운 독서가 될 수 있다. 둘. 언급한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권력에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특히 활약했던 시기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소간 감정적이거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

 

일 때도 있다. 셋. 대담의 녹취록 형식이라 막상 읽어보면 분량이 그리 길지 않다. 정리된 글이 아니라 발언한 것

 

을 받아쓴 것이라 입말체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발언자가 바뀔 때마다 한 줄씩 떼어서이기도 하다. 넷. 억지 주

 

장을 하지도 않지만 강한 반대를 하는 장면도 거의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놓고 하는 끝장토론이 아니고 정해

 

진 시간 내에 9명을 다루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를 갖는 토론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총평.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독자가 독서의 목적만 확실히 정해두고 읽기 시작하면 확실한 성과를 거

 

둘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패널들의 발

 

언을 접하는 것 또한 여러 책에서 만나기 어려운 특장점이다. 각 패널들의 팬인 독자나 약간 깊이 있는 현대사

 

개괄서를 원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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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에서 언급한, 이 책의 목차를 따서 붙인다.


    1. 이승만 대통령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말하다
    부인이 한국인이기만 했어도
    불행이 시작되다

    2.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그 선연한 빛과 그림자
    유신, 전과 후
    유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다

    3. 전두환 대통령
    태어나지 말았어야
    업적은 없고 후유증은 크다

    4. 노태우 대통령
    민주화의 가교/물통령
    북방정책, 통일정책은 분명한 공
    역사의 의미를 읽어라

    5. 김영삼 대통령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로 박수 받고
    씻을 수 없는 과오, IMF

    6. 김대중 대통령
    26년만에 당선된 집념의 사나이
    햇볕정책, IMF극복은 공
    게이트로 날이 저물다

    7. 노무현 대통령
    이회창이 진 선거일 뿐?
    개혁을 위해 준비해야할 것들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심다

    8. 이명박 대통령
    건설사 CEO스러운
    미디어법, 4대강, 대기업 편중, 그리고
    최악의 경제정책, 최악의 공공부채

    9. 박근혜 대통령
    야당이라는 인식으로 당선?
    변했나, 원래 그랬나
    변화는 가능한가

    10. 미래를 말하자
    개헌은 가능한가
    대한민국 재구성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주목하라

    11. 지금 선 이 자리
    다시 이곳과 현재를 말하다
    뭔가 변하고 있다
    윤여준, 안철수의 새정추로

    윤여준·이상돈·이철희 인터뷰

    2014.05.07 1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재밌는 조합이네요 윤여준, 이상돈, 이철희라니.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언제까지 대통령 개인의 한계로 국가가 흔들흔들 대는 걸 지켜봐야 하는지 걱정됩니다. 여담이지만 아마 MB가 2년만 더 해먹었으면 전두환만큼 분량이 적어지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2014.05.10 15:0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세 사람은 공히 그 분을 너무 싫어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같이 보냈더라면 정말 한 쪽 분량만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2014.05.11 04:43 신고 [ ADDR : EDIT/ DEL ]

독서일지2014.03.29 06:52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인 사학자 한홍구의 신작. 부제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저자 서문'에 집필 동기가 밝혀져 있다. 2011년 모처에서 한국사 학자 몇 명이 모여, 다음 해인 2012년이 유신

 

이 선포된지 40년이며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고 또 그 선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유력한 후보로 나서

 

는 때에, 한국사 학자들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다 한다. 학자들은 그 시대를 체험하

 

한 세대들을 위해 특히 유신 시대를 개괄하는 작업이 필요하겠다는 데 중지를 모았고, 모임의 막내인 한홍구

 

그 일을 맡게 되었다. 한홍구는 오랫동안 여러 일을 같이 해 왔던 <한겨레>의 에디터 고경태를 찾아가 취지를

 

명하였고 고경태는 <한겨레> 토요판에 새 코너를 개설해 주었다. 1년 반 가량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한홍구의

 

신과 오늘'의 시작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과 함께 대선 분위기가 겹쳐 해당 코너는 큰 화제를 모았

 

다. 나 또한 한 편 한 편 즐겨찾기에 추가해 가며 애독했던 기억이 난다. 이 코너는 2013년 5월 31일, <직설>을

 

함께 펴냈던 소설가 서해성과 개그우먼 곽현화와 함께 나눈 대담인 41편 '마지막 이야기꽃'으로 끝을 맺었다.

 

코너의 특성 상 분명히 한 권의 책으로 묶여서 나와 주리라 기대하였는데 연재 종료 반 년 후가 지난 2014년 1

 

월, 이렇게 <유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책 제목 그대로, '유신시대'를 기록하였다. 총 5부로 나뉘는 본문은 '유신 전야'인 1971년에서 시작하여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의 사형일인 1980년 5월 24일에서 끝난다. 여기에 선거 기간 중 '5.16과 유신의 시비는 역사

 

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던 박근혜 당시 후보의 발언을 듣고 쓴 '박근혜 후보에게 드리는 공개장'과, 박근혜 후보

 

가 당선된 다음날 썼던 글인 '신유신의 밤', 이 두 편의 글이 부록으로 덧붙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이름들은 시사/역사 부문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들었거나 혹은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 시를 몇 차례 읽기만 했어도 크게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만이 갖는 특장점은

 

독자를 거듭 이끄는 그 끈질기고 가열찬 손길에 있다.

 

 

 

4부 '유신의 사회사'에서 국방/행정/교육 등에 걸쳐 사회 전반을 살펴본 것을 제하면, 책의 대부분은 유신 시

 

대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 그리고 그 사건과 청와대/중정/국회와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말하자면, 유신

 

세력과 저항 세력의 이력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과 이력이란 인과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시간 순으로 차근차근 정리하기만 하면 그 나름으로 훌륭한 집필 전략이 된다. 71년에는

 

이런이런 사건이 있었다, 다음 해인 72년에는 이런이런 사건이 있었다, 하고.

 

 

 

그러나 한홍구는 몹시 끈질기다. 하나의 사건을 설명하고 나서는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앞에서 설명했던 다른

 

건들을 연결하여 다시 언급한다. 예를 들어 1974년에 있었던, '언론'에 관련된 한 사건을 소개했다 치자. 관련

 

물이 나올테고 사의 경과가 나올테고 결과와 영향이 나올 것이다. 그렇구나. 74년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 때의 '언론'에 대해 잘 알겠다, 하고 다음 장을 넘기려는 독자의 팔목을, 한홍구는 한 차례 더 그러쥔다. 아직

 

안 끝났어. 그리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던, 해당 시기 국내의 정치 상황, 국외의 외교적 상황 등을 다시 꺼내

 

어 거론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앞에서 했던 얘기를 왜 또 하지?', '언론 얘기 잘 끝났는데 왜 갑자기 정치 얘기지?'

 

, 혹은 '응, 다시 한 번 설명해 주니 외우기도 좋고 편하네' 정도의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야말로 '현실'을 재구하는 의미 있는 방식이다. 그때 뿐 아니라 지금도, 아니 언제라도, 인간은 '언론', '사회',

 

'국방'의 카테고리로 나뉜 삶을 살지 않는다. 카테고리의 총합인 '74년'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 해에는 언론의

 

사건도 있고 사회의 사건도 있고 외교의 사건도 있다. 그 하나하나가 섞여 개개인의 삶, 그러니까 죽간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삶 뿐 아니라 박정희의 삶, 이후락의 삶, 차지철의 삶 등에 중층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

 

홍구의 끈덕진 손길의 동력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오는 듯 하다. 역사란 몇 가지 사건의 단선적 연결이 아니

 

다. 당대의 모든 사건이 인간과 교섭하여 토해 내는 총체적 결과물이다. 알아다오. 부디 알아다오.

 

 

 

한홍구는 저술과 강연을 통해 종종 '유신시대를 끝내지 못하'고 '민주화를 완성시키지 못한' 기성세대로서의 부

 

채의식을 토로하곤 한다. 나는 앞서 이야기한 '끈덕진 손길'에서 그 부채의식에서 발로한 사죄의 실천을 발견한

 

다. 이것은 몹시 주관적인 인상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런 사학자가 있어서 고맙다'라는 전작들의 독

 

후감과 달리, 이 책의 독서를 통해 처음으로 '이런 스승이 있어서 고맙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본인의 직능 활동

 

이나 영달, 경제적 성공 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인 나의 이해와 공감, 그리고 각성을 위해 이렇게까지 끈덕지

 

게 노력하는 이를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70년대의 한국사를 '유신'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해 낸 것이기에, 본인이 취하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호불호

 

가 크게 갈리는 책일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의 별점 평가란을 보면 대부분의 평점이 만점과 최하점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홍구의 시각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주장에 논거를 더 하고 또 한 명의 스승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주장의 객관성을 검증해 보기 위해서라도 독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책을 덮고, 오래 전에 훑어보았을 뿐인 긴급조치 1-9호의 전문을 다시 찾아 읽었다. 마지막으로 선포된 긴급조

 

치 9호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적어둔다. 1975년 5월 13일부터 시행되었던 이 조치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

 

로 판정난 것은 38년 후인 2013년 3월의 일이다.

 

 

 

 

 

- 긴급조치 9호

 

 

①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 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다. 학교 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예외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
라. 이 조치를 공연히 비방하는 행위

 

② 제1에 위반한 내용을 방송·보도 기타의 방법으로 공연히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배포·판매·소지 또는 전시하는 행위를 금한다.

 

⑦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미수에 그치거나 예비 또는 음모한 자도 또한 같다.

 

⑧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

 

⑪ 이 조치의 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주무부장관이 정한다.

 

⑫ 국방부 장관은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로부터 치안질서유지를 위한 병력출동의 요청을 받은 때에는 이에 응하여 지원할 수 있다.

 

⑬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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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2013.12.09 10:39

 

 

 

 

 

1.

 

 

12월만 되면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십여 년 전인 2002년 말의 어느 날이다. 대학교 2년 째의 겨울방학

 

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 있던 나는 아침 나절부터 TV 앞과 컴퓨터 앞을 분주히 오가다가 자정 무렵 환호성을 질렀

 

고 아버지는 여덟 시 무렵부터 아예 안방의 방문을 걸어닫고 드러누웠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일이다.

 

 

 

아버지는 수십 년 된 <조선일보>의 열독자이다. 내가 투표권을 얻게 된 뒤로 치른 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후보에게 투표한 적이 없다. 작년의 18대 대선에서는 그동안 지지했던 정당의 후보가

 

아닌 다른 이를 찍으셨지만 그마저도 겹치지 않았다. 별다른 말씀은 없었으나 불충한 아들은 '2번'을 찍기 위

 

서가 아니라 '1번'이 여자였기 때문에 노선을 바꾸셨던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쪽이 되었든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은, 술자리가 아니면 평소의 생활에서 서로 긴 대화를

 

나누지 않고, 평소에 긴 대화가 없으니 술자리에서도 특정한 주제가 없으면 딱히 찾을 공감대가 없는 신세의 아

 

들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효도의 수단이다. 접점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즐겁고 열정적인 대화의 소재가 되어

 

준 것만 해도 나로서는 만족이다. 아버지도 그쯤을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수다의 차원이라고 해도 좋을 그 대화들 가운데 문득 결이 튀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가 지지하는 사람을 내가 까 내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아버지가 폄하하는, 일상과 같은 장면 중에,

 

마침 그 맘때의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6월 항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가 읽는 신문과 보

 

는 TV 채널에는 이런 게 단 한 번도 안 나왔겠지, 하고 우쭐해하며 그 해 있었던 몇 가지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 연대 앞에서 출발해 서울시청까지 이어졌던 이한열 선배의 영결식을 듣던 아버지가, 그래, 연대 앞에서 출

 

발했었지, 라는 말을 했다. 깜짝 놀라며 거기에 갔었어요, 라고 묻자, 아버지는 6월에 있었던 전국적 시위의 인

 

천 집회에도 퇴근하고 나갔었다고 말했다. 아니, <조선일보>의 유료 구독자인 우리 아버지가 6월 항쟁의 한복

 

판에! 물론 그 해 87년의 12월에, 서른이 넘어서야 생애 처음으로 맞은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아버지는 기나

 

긴 '1번'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6월 항쟁이라니.

 

 

 

같은 양말 신고 같은 수건을 쓰고 집에서는 팬티 한 장 입고 있는 가풍을 전수해 준 내 아버지라, 무의식적으

 

속속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겨 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책상물림인 아들이 기껏해야 남들이 정

 

리해 놓은 책 몇 권이나 읽고 외웠을 그 역사들을 매일 아신문을 받아보며 살아낸 인물이다. 아버지는 신익희

 

가 죽던 56년에 태어났고,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마침내 대통령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던 63년에 국민학교

 

에 들어갔다. 국민학교 졸업은 3선개헌이 통과되던 69년, 중학교 졸업은 유신이 선포되었던 72년, 고등학교 졸

 

업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던 75년의 일이다. 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버지는 박

 

정희 대통이 피살되던 79년 두 번째의 직장에서 결혼할 여자를 만났고 바덴바덴의 함성이 울려퍼지던 81년

 

첫 아들을 낳았다.

 

 

 

그러니 <채널A>를 즐겁게 시청하고 계시는 지금의 아버지와는 다른, 그 때 그 때마다의 아버지의 생각이 있었

 

던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87년 6월 항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삼십

 

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인천지하철도 없었던 시절에 주안역에 나가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

 

타고, 신촌역에 내려서 두리번거리며 연대 앞 방향을 찾던 시절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와

 

의 술자리가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2.

 

위의 글을 읽으며 일말의 공감을 느꼈던 분이라면 분명히 나름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은 책 한 권. <한

 

레> 토요판의 에디터이자 이 카테고리에는 <한홍구, 서해성의 직설>의 편집자로 등장한 바 있었던 고경태 씨

 

의 <대한국民 현대사>이다.

 

 

 

출발은 1993년의 일이었다. 이 해, 환갑도 되지 않은 고경태의 아버지는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먹먹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이십 대의 고경태의 눈에, 아버지가 34년 동안 만들어 온 스물다섯 권의 스

 

크랩북이 들어왔다. 매일매일의 신문에서 인상적인 사진과 기사, 만평 등을 골라 표지까지 손수 만든 스크랩북

 

에 붙여 넣고 짧은 감상평이나 시 등을 정성스레 적은, '가족의 보물'이었다. 밤마다 386 컴퓨터에 일일이 그 평

 

과 시를 입력해 넣었지만, 아버지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고 아들도 책을 낼 짬밥은 아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67년생인 아들은 쉰을 눈 앞에 두었다. 스크랩북 중 반 이상이, 생전의 아버지가 자신보

 

다 어렸을 때 만든 것인 나이가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스크랩한 기사의 사건들을 다시 공부하여 정리하고, 남

 

기고 전할만한 시를 골라내어 한 권의 책을 써냈다.

 

 

 

 

3.

 

책은 두툼하다. 550쪽이 약간 못 되는 분량이다. 무거운 종이를 쓴 탓인지 비슷한 두께의 다른 책들에 비해 중량

 

감도 묵직하다. 책상 위에 펴고 읽는 것이 적합하다. 누워서 들고 읽다 보면 어느새인가 배 위에 올려져 있는 것

 

을 발견할 수 있다.

 

 

 

본래 한 웹진에 기사의 형태로 게시되었던 글이다. 분량과 구성에 큰 고저가 없다. 한 꼭지는 15에서 30쪽 가량

 

이고, 그 안에는 사진의 형태로 정리된 아버지의 스크랩, 그 스크랩에 딸린 평과 시, 스크랩에서 다루고 있는 사

 

건에 대한 아들의 심층적인 연구, 그리고 이 스크랩과 시, 연구 전체에 대한 아들의 평이 어우러져 있다.

 

 

 

아버지의 스크랩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에서 시작해 1992년 정부가 북미 무역협정의 자동차 원산지

 

규정을 한국에도 적용하려 하는 것을 GATT에 제소할 예정이라는 기사로 끝난다. 시국이 시국이었던 만큼 아무

 

래도 정치, 사회 기사가 주를 차지하고 있고, 재난과 범죄 기사도 적지 않다.

 

 

 

 

4.

 

필자는 단순히 아버지를 추모하고 그의 대업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만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책의

 

곳곳에서는 아버지가 쓴 시의 추상성이라든지, 좀 더 견고하지 못한 통찰의 깊이와 같은 것을 유머러스하게 질

 

타하는 필자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살갑지는 못하지만 실은 사랑하는, 익숙한 부자 관계의 모습이 보여서,

 

또 쉰을 눈 앞에 둔 아저씨가 자기 아버지에게 투정처럼 귀여운 타박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웃

 

음이 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면밀히 살펴 보면, 이러한 '장치'는 이 책이 내 아버지에 관한 일종의 족보인 한편,

 

같은 땅에 태어나 살다가 죽은, 주관성과 편향성 충분한, 그러니까 '평범한' 한 사람의 역사를 재구하는 사회과

 

학서의 일종이기도 하다는 기획 의도 하에 배치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대한국民 현대사>라는 제목

 

과 '국민으로 살아낸 국민의 역사'라는 부제는 그렇게 해서 붙었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필자의 아버지는

 

긴 시간의 스크랩 동안 강철과 같은 일관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대체로 그때그때의 상식적인 수준의 반응을 보

 

이고 있으며, 감성적인 접근도 종종 눈에 띄고, 생애의 말년에는 다소간 '우경화'의 경향도 있다. 그렇지만 일자

 

천금의 정사正史만이 역사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역사는 있다. 모두에게 존경받지 못할 수는 있어도, 어떤 사람

 

에게도 무시받을 수는 없다.

 

 

 

 

5.

 

쉬운 책은 아니다. 애당초의 스크랩부터가 특정한 카테고리나 주제의식 하에 뽑힌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신문 독

 

자가 긴 세월 동안 때마다의 관심에 따라 편집해 놓은 것이다. 그 결과물을, 아버지라는 사람도 보여주고 한국

 

현대사도 보여주겠다는 두 개의 목표를 갖고 아들이 다시 편집했다. 34년의 세월이 담긴 26권의 책을 그냥 한

 

으로 축약하는 것만도 거친 흔적을 남길 터인데, 이렇게나 많은 난맥이 있다. 당연히,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기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요한 몇 개의 사건들만이 편린적으로 언급되어 있어 이해가 어렵

 

다는 인상을 받기 쉬울 것이다. 현대사를 복습하거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싶다면, 최소한 여러 사건들의 인

 

과 관계나 해당 시기의 사회적 환경 정도는 금세 떠올릴 수 있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재미나 공부를 떠나 무엇보다도 한 명의 아들로서 이 책의 기획의도에 깊이 공명했다. 글 쓰는 사

 

람으로서 이 이상의 정성스러운 효도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이상의 애정을 보일 수 있을까. 그는 아버지의 삶을

 

역사로 끌어안았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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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2012.11.29 06:47

 

 

 

 

 

공부를 하다 보면 딱히 대학원에서의 주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분야가 있다. 최근의 몇 년 간 나는 주로 그런 분야의 책들을 읽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하나하나

 

씩을 리스트에서 지워 나가는 동안 끝내 도전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주제들이 몇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방 직

 

후의 한국사이다. 식민지 시기는 전공인 한국 한문학에서도 어느 정도의 연구들이 진척되어 있어 전공 공부의

 

환으로 접할 수 있었고, 6.25부터는 한국 현대 소설을 강의할 때 작품과 연계하여 설명하면서 스스로 다시

 

번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해방 전후부터 6.25까지는 무슨 책으로 첫걸음을 떼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우연한 기회를 만나 추천받았다. 사학자 김기협 씨의 10권 예정 시리즈 중 제 1권. 부제는 '해방은

 

도둑처럼 왔던 것인가'.

 

 

 

 

김기협은 서울대 사학과 교수이자 해방 전후와 6.25 전후의 수기를 묶어 <역사 앞에서>라는 일기문을 출판하였

 

김성칠 씨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학자가 되어 많은 역서와 저서를 남겼고, 예순이 넘었을 때에

 

이르러 '여생을 바치기 쉬운' 이 집필에 착수하였다.

 

 

 

 

 

<해방 일지>는 <역사 앞에서>와 같은 일기 형식을 취한다. 1945년 8월 2일 '포츠담 회담에 나타난 원자폭탄'을

 

시작으로 하여 하루나 이틀 차이로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꾸준히 적어나간다. 당대의 혼란스럽고 한편으로 다

 

양하였던 군상과 현상을 이념의 잣대로 재구성하지 않고 최대한 원상에 가깝게 복구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선택

 

된 방식일 것이다. 그 결이 얼마나 촘촘한가 하면, 430페이지 분량의 1권에서 진행된 시간은 45년 8월 2일부터

 

같은 해 10월 29일까지의 90일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형태를 유지하겠다는 집필 의도를

 

지키기 위해 중간중간 가벼운 내용을 넣거나 저자의 개인적인 추억, 소회 등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읽어보

 

면, 해방 직후는 그야말로 사건의 연속이었다. 읽다보면 저자가 각별히 꼼꼼해서가 아니라 애당초 쓸 것이 많아

 

서 이렇게 속도가 안 나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하루하루 치의 일기는 작가가 편집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실시간으로 연재되고 있다.

 

그 성실함은 연재가 시작된지 1년 반여가 지난 지금까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어서, 이 독후감을 쓰고 있는

 

11월 29일 새벽에 프레시안 사이트를 방문해 보니 1947년 11월 28일의 일기가 올라와 있었다. 현재는 1946

 

8월 30일까지를 다룬 4권까지 출간된 상태이다. 저자는 내년 8월에 탈고하는 것을 목표로 있다 하니 내년

 

말이면 10권 세트를 기약해 볼 수 있겠다.

 

 

 

 

 

아무리 불편부당하려 한다 해도 역사를 설명하면서는 어떤 자료를 취해 보여주느냐부터 이미 중립이 있기 어렵

 

다. 그래도 이 책은 최대한 많은 목소리와 여러 시각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 가운데 무엇을 갈

 

라낼 것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깜냥이라, 주장의 파악은 둘째 치고 사실관계만 숙지하는 데에도 세 번쯤은

 

읽어야 할 것 같지마는, 이 길을 따라 가면 건실한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든다. 학생들이 관심이

 

없는지 도서관에 1권부터 4권까지 난짝 있길래 일단 모두 빌려는 왔는데, 그림과 사진 없이 꽉꽉 들어찬 내용이

 

다 합치면 1,900쪽이 조금 넘는다. 이만한 분량 앞에서 질리기 전에 감사의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오랜만의 일

 

이다. 세트가 완간되면 신간으로 구입하고 주위의 청년들에게도 두루 권할 것이다. 이런 책을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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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세한 내용은 나도 열심히 그림 그리고 표 그려가며 정리 중이다. 언젠가 그림과 손글씨로 정리한 것을 스캔하여 여기에 독후감의 일종으로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과학 도서를 읽으며 막연하게 기획해 왔던 바이기도 하다.

    2012.11.29 06: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역사 앞에서>를 관심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도 꼭 한 번 짬을 내봐야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잘 보고 갑니다.

    2012.11.29 12: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여강여호 님의 블로그 구경을 한참 하고 돌아왔습니다. 요사이 눈에 한번에 들어오는 책들만 읽다보니 올리는 독후감도 한쪽으로 기우는 것 같아 경계의 마음이 있었는데, 선생님처럼 장르와 방법론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두면 독서가 더 풍부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얻었습니다. 댓글을 통해 티스토리의 우수 블로그로 선정되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책을 다루는 블로그가 화제성, 가십성 블로그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은 제게도 기쁜 소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2012.11.29 15:3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