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04.24 10:39

 

 

 

 

'청년논객' 노정태의 2014년 신작.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 '노정태의 논객시대'라는 코너로 진행했던 내용

 

을 묶어 한 권으로 출간했다. 부제는 '인문, 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어떻게 이렇게'가 아니라 '어쩌다 이렇게'라는 표현에서, '지금'은 매우 부

 

정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이며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이었던 '옛날'이 있었다는 저자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지금'과 '옛날'이 언제였는지를 적시하는데 별다른 망설임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오직 SNS에서만 뜨거웠던,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던 2012년 대선의 과정과 결과가 적나라하게 보여주듯이, 우리는 이미 죽어버렸고 열정이 식어가는 사회 속에서 간신히 숨만 쉬면서 살아가고 있다. (p 29)

 

 

...'그때'(따옴표는 내가 강조)는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나는,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10석을 차지하던 짜릿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997년에는 역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2002년에는 몇 번이나 낙선할 줄 알면서도 지역갈등 구도에 정면도전한 어떤 신념의 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사용하던 한국인들은 온 국민의 숙원이었던 월드컵 16강을 넘어 4강에 오르는 위업을 목격했고, 1인당 GDP는 2만 불을 넘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인 1997년이 한 차례 언급되고 있긴 하지만, 진보 정당의 국회 10석 차지, 노무현의 당선,

 

월드컵 4강, GDP 2만 불 등의 다른 모든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2002년이다. 조금 더 범박하게

 

말하자면 노무현의 시대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까 저자에게 있어 한국 현대사의 '긍정적' 최고점은 2002년, 혹

 

은 노무현 시대의 출발점이다. '진보' 정권이 '신념의 사'를 후보로 하여 재집권에 성공하였고, 사회 인프라는

 

명백한 발전 도상에 있었으며, 문화와 경제에 걸쳐 유미한 가치들을 성취해 냈던 한 때이다.

 

그러나 10년 후, IMF 위기 이후 꾸준히 이어져 온 왜곡된 사회 구조는 경제 뿐 아니라 정신, 사상적 측면에서까

 

지 그 구성원들을 적극적으로 압박하게 되었고, 보수 정권은 두 차례의 집권에 성공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그

 

때 그 시절'을 이끌었던 빛나는 담론들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맹위를 떨친 뒤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이렇다. 아니, 2002년에는 그렇게 좋았는데, 그동안 뭐가 어떻게 됐길래 이런 2012년이 온

 

거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여 사건을 순서대로 재구해도 좋고, '강준만 식'으로 연표를 짤 수도 있다. 그러나 노정태

 

는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사건에 개입하고 발언해야만 했던' 여러 논객들의 이력과 전술을 교직하는 편이 지난

 

십 수 년간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되살리는 데 가장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어온 과

 

정 속에서 그 때 그 때마다 논객들이 글과 책의 형태로 내놓았던 발언들을 찾아내어 교차시킨다, 는 것을 구체적

 

인 방법론으로 택한 것이다. 평론의 대상이 되는 논객은 총 9명이다. 목차의 순서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여기까지 정리해 놓고 한 차례 쉬도록 하자. 한윤형이나 박가분 등의 이름과 얽어 노정태를 이미 알고 있다면 이

 

야기는 빠르다. 이들은 현재 진보 계열의 언론-평론가에서 손꼽히는 30대 초중반의 필진들이다. 몰랐더라도, 유

 

시민이나 김어준부터 출발하여 김규항과 박노자까지를 '우리'의 논객이라고 칭하는 데에서 그 정치적 당파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명백히 2014년 현재 위기에 놓였다고 할 수 있는 진보-개혁

 

세력과, 좌절감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그 지지자들의 시선에서 쓰여진 결과물이다. 따라서 그 시선에 동의하

 

는 독자라면, 말하자면 스스로가 노정태의 '우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여기는 독자라면, 이 시도와 결

 

과가 통째로 무미해 보이거나 불쾌할 수 있다. 이것이 본문을 설명하기도 전에 정리에 정리를 거듭한 이유이

 

다. 이 책은 '어느 한 편'의 이야기이며 그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여기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논쟁이 벌어질 여지를 줄였으니 이제 다시 책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정태에게

 

있어 현재란 '실패'한 역사이기 때문에, 그 과정과 영향을 주고받은 논객들의 현재 좌표 또한 추락의 선상에 있

 

는 것으로 파악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사람들까지 이런 실패를 할 정도였으니', 혹은 '이런 사람들이 이런

 

실패를 했으니',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꼭지마다의 주제는 '그가 어떻게 실패했나', 혹은 적어도 '왜 상승하지 못했나'를 밝히는 데에 놓여

 

있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논객의 1997년부터 2014년까지의 이력 가운데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주요한 변곡

 

점들을 소개하고, 그에 따른 말하기/글쓰기의 전략의 생성, 변화를 분석한 뒤, 그 영향을 고찰하는 식으로 구성

 

된다. 무슨 일을 겪었으며,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됐으며, 어떤 식으로 말/글을 내뱉었나, 그리고 그 말과 글

 

은 어떤 영향을 끼쳤나, 라는 것이다.

 

 

 

노정태의 시선에 동의하거나 공감한다면, 인물과 그 이력의 선택이 대체로 효율적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저 이름들과 그들의 언행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강준만의 실명비판, 유시민의 지식소

 

매와 현실정치 참여, 박노자의 '냉소주의'나 김어준의 '선동', 그리고 고종석의 절필 선언 등은 분명 해당 시기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적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정태에게 동의하거나 공감한다면', 바로 여기에 이면의 칼날이 있다. 거듭 말하는 바와 같이 저 인물

 

과 그 이력이 한 단면을 넘어 사회 전체에 분명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재구해 내어 다시 곱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노정태의 '우리'에 불과하다. 본래부터 '우리'가 아니었던 이들만 해도 사실은 현대사를

 

관통해 늘 다수였을일지도 모를 일이며, 적어도 노정태가 파악하는 '최고점'에 한정하여 '우리'였던 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수가 여전히 '우리'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나의 20대를 바라

 

보며 쓴 책이기도 한 셈'이라는 서문의 한 줄을 흘려읽을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노정태의 '우리'란 실은 노정태 머리 속의 '20대의 나'를 수없이 복제한 가상의 집단일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논객시대'를 재구해 내어 현재사를 다시 '현재화'하겠다는 이 책의 기획의도는 그 혼자나 혹

 

은 그를 둘러싼 소수집단의 욕망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인가. 한 쪽에 속한 정치적 입장을 함부로 '우리'라고 표현한 경솔함, 폭력성을 걷어내고 나

 

면, 청년 논객 한 명이 자기의 시선으로 본 한국사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라는 반론, 있을 수 있다.

 

 

 

나로 한정해 말하자면 위의 문제점을 딱히 문제점으로 여기지 않는다. 저자인 노정태와 생물학적 나이가 비슷한

 

덕에 나는 그와 비슷한 관점에서 현대사를 겪었다. 대통령과 왕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때쯤에는 이미 문민 정

 

부가 들어서 있었고, 청소년기에 김대중의 집권과 6.15 공동선언을 목도하였으며, -실제로는 응원 외에 딱히 한

 

일도 없었지만-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고, 지지율 2%의 대선 후보를 당선시켰다. '우리'에게

 

있어 개인과 세계(사회, 구조)의 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 가까웠다. 개인이 마음을 먹고 집단을 이루면 개인을

 

둘러싼 세계는 반드시 변했다. '우리'는 그 물적 증거를 몇 개나 손에 쥐었다.

 

때문에, 개인과 세계와의 거리가 다시 현격하게 멀어져 버린 지금을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까지'로 여기게 된

 

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논객 개개인에 대한 노정태의 평론 중 몇 개의 말단에는 동의하지 않지

 

만, 그 주된 문제의식에는 격심하게 공감한다.

 

 

 

공감하면 즐겁게 읽으면 될 것을 굳이 문제점을 찾으려 하게 된 것은 근래에 읽은 두 권의 책 때문일 것이다. 얼

 

마 전에 독후감을 올린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아직 독후감을 올리지 않은 권혁태의 <일본 전

 

후의 붕괴>이다. 각기 한국과 일본의 청년 세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보이는 경향성 가운데에는 섬뜩하게

 

닮은 장면들이 있다.

 

'청년 세대'라고 범박하게 칭했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거대 서사'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 나고 자란 10대,

 

20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더이상 개인이 세계를 변혁하거나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혹은 아예

 

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는 원래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진보-개혁 세력이 입만 열면 내세우는 '전후 평

 

화'나 '민주화', '5월 광주' 따위의 입바른 소리에 '질려 버렸다'. 그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거니와

 

'지겹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피해이기까지 하다. 그 소리를 듣고 앉아있을 바엔 남들 다 비정규직으로 나가떨어

 

지더라도 나만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기계발'에 매진하거나, 혹은 오타쿠나 히키코모리, 니트 족이 되어 자신

 

만의 마이크로 월드로 침잠한다. 세계가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회학적으로 진실로 판명된다면, 이들

 

의 행동은 '합리적이고 현명한' 것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싸가지 없거나 한심하긴 하지만,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라는 의견. 있을 수 있다. 문제

 

는 그러한 경향성의 극단에서 분명한 연관성을 갖는 위험한 현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베'나 '재특회'로 상징되는 병적 증후들이다. 이들은 개인과 세계와의 연결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내

 

면으로 침잠하는 데에 이르렀다가, 그 외로움을 달래고 자기를 인정받기 위해 한 발 나아가 '천황'이나 '독재 정

 

권'과 같은 위악적 상징들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민주화니, 전후 평화니, 외국인과의 평화로운 공존이니, 지겹

 

다. 결국 너희들 잘났다는 소리이고, 나한테는 아무 득도 없는 지겨운 말 아니냐. 나는 너희가 싫고, 너희를 조롱

 

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히 그 반대되는 지점을 일부러 택할란다. 나는 약자를 괴롭힌다는 평을 듣든 악마의 길을

 

택했다는 평을 듣든 그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연대감과 소속감을 확립하고 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들이 바로, 노정태와 내가 속해 있는 '우리', 그러니까 '논객시대' 등의 고유한 이름을 갖고 호칭될 수 있는 거

 

대서사의 마지막 세대 바로 뒤에 오는 세대들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재특회나 보수 우익이 '전후'의 대척점을

 

찾아 둥지를 틀고, 일베가 '안티 - 민주화'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듯이, 고작 몇 살 차이이긴 하지만 형 뻘인

 

'우리'가 '우리 때엔 진중권이 날라다녔지', '나꼼수 집회 때 십만 명이 모였었어'라며 으스대고, '너넨 씨발 젊은

 

놈들이 그런 것도 없냐?' 라고 몰아부칠 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물론 그렇게 '20대 개새끼론'에 몰려버린 이들이 반드시 일베나 재특회로 흘러들어가 평온을 찾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이전에는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던 투표에 한 번쯤 나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

 

을 수 있고, 분명한 동기를 갖고 진지하게 현대사 공부에 매진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는 변하

 

지 않는다 - 나는 그걸 확실히 알고 있다 - 그런데 저 꼰대는 내 판단과 삶의 방식을 조롱하며 자신의 오래 전 훈

 

장을 갖고 으스대기만 한다'는 의식의 흐름 쪽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나는 우려하는 것이다. '재

 

수 없으니까 피하자' 정도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뭐가 됐든 큰 거 한 방 준비해서 저 새끼한테 반격하자'

 

가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관련하여 권혁태의 책에서 읽었던 인상적인 언급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1995년, 일본에는 '옴 진리

 

교 사건'이라는 테러 사건이 있었다. '옴 진리교'는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1984년 일으킨 신흥종교단

 

체로, '옴 진리교 사건'은 이 종교단체가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스물아홉 명이 사

 

망하고 6천여 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을 가리킨다. 주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부모 세대는 물질만 주고 정신은 교육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공허함을 느꼈다. 하지만 '옴 진리교'와

 

'전통적 일본 공동체(여기에서는 천황을 상징으로 하는 극우적 내셔널리즘을 가리킨다)'는 우리의 정신이 기댈

 

곳을 주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세대'를 중심으로 하여 이들의 죄를 묻지 않거나, 나아가 옹호, 동경

 

하는 발언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옴 진리교를 악으로 규정하고 뿌리를 뽑으려는 '사회의 정의' 쪽에 더 큰 공포

 

를 느꼈다'든지, '옴진리교 신자들에게는 나에게는 없는 삶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열광했다'든지 하는 것이 그

 

것이다. 이 발언들에서 선악의 경계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꼰대들의 거대서사에 카운터로 날릴 '큰

 

한 방'이 있었을 뿐이다.

 

 

 

 

 

 

Posted by 최대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오늘은 독후감을 통해 최근의 어지러운 생각을 한 차례 정리하는 데 주력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쳐,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적지 못했다. 노정태의 필력은 이미 정평이 난 것이고, 언급, 비판되는 인물과 역사 또한 그가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혹은 있었던 것이므로 깊이도 웅숭하다. 진보의 입장에서 2000년대를 추억하거나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싶은 이라면 대체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4.04.24 10: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2.12.25 21:10

 

 

 

 

 

 

 

인기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자 중 한 명인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신작. 이번엔 소설이다.

 

 

 

책의 판형이 조금 작고 두께가 적당히 두툼하여 '소설책'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3, 40년대 신문의 만평을 떠올

 

리게 하는 표지 삽화도 지나치게 세련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양장이나 금박, 아니면 거창한 문구

 

의 띠지가 있었다면 집어드는 마음이 좀 무거웠을 것 같다. 온라인 서평 몇 개를 살펴보니 표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실제로 손에 쥔 것은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대기업 총수도 아닌, 옛 재경

 

부 출신의 모피아(MOFIA)들이다. 그들은 거미줄같은 인맥과 거대한 국제 자본을 등에 업고 오직 자신의 이해 관

 

계를 따라 움직인다. 우석훈이 그간 각종 출판과 강연,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전달해 온 내용이기도 하다.

 

면 좋다, 정도가 아니라 몰라서는 안 된다 수준의 이야기이므로, 새로운 매체를 통해 다시 한 번 전달되는 것이

 

한편으로 반갑다.

 

 

 

하지만 메시지가 아닌 매체, 즉 소설로서의 이 작품을 생각해 보면 몇 가지의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화자'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소설에 있어, 책 밖에서 실제로 자판을 두드리고 책의 인세를 받아 생활을

 

영위하는 '작가'와, 책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또 하나의 가상 인물인 '화자'는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인

 

물이다. 소설을 감상하며 우리가 보다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화자' 쪽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화자는 3

 

인칭 관찰자였다가 전지적 작가 혹은 변사가 되기도 하고, 갑작스레 강사가 되기도 한다. 내용의 효과적인 전달

 

을 위해 이야기 전략을 다변화한 것이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시도된 것이라고 보기

 

에는 어려웠다. 한 예를 들자면, 애정이나 갈등이 깊어지는 '극적인' 신에서 갑작스레 '강사' 화자가 나타나 그

 

장면이 일어나게 된 경제학적 배경을 설명한다든지, 혹은 맥락과 큰 관계없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한다든지 하

 

식이다. 반대의 경우도 왕왕 있다. 이야기를 듣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갈팡질팡하는 화자 탓에 스트레스가 발

 

생하는 셈인데,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길에는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냥 우석훈 형이 해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지 뭐'하고 화자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집중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책장을 덮거

 

나. 어느 쪽이든 한 권의 소설로서는 치명적인 운명이다.

 

 

 

두번째로는 이야기의 유기성을 꼽을 수 있겠다. 작가 스스로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듯 이 소설은 본래 영화 시나

 

리오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이 없더라도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소설의 호흡이 영화의 그것이라는 분

 

명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3부로 나뉘어 총 40개의 장이 있는데, 살펴보면 각 장이 하나의 씬(Scen

 

e)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활자보다는 영상을 선호하고 긴 호흡을 불편해 하는 요즘의

 

자를 위해 근래의 소설들이 많이 차용하고 있는 글쓰기 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른 장르의 방법론을 가져올

 

때 그것이 기계적인 적용이 되지 않도록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러한 고민이 없지는 않았겠

 

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결과로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였다면 조명, 음악, 배우의 연기 등 다

 

양한 요소들을 통해 씬과 씬 간의 간극이 채워지고 거기에서 맥락이 생겨났을 부분들이 이 책에는 공백으로 남

 

겨져 있는 경우가 꽤 있다.

 

 

 

세번째 아쉬운 점은 캐릭터이다. 이 소설은, 거칠게 정리하자면 정의감을 가진 개인이 구조적 음모에 맞서 싸우

 

고 끝내 승리를 거두는, 곧 새 세계를 창조하는 전형적인 영웅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형적인 것은 나쁜 것

 

이 아니다. 그것이 '전형'이 된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아온, 말하자면 '좋은 것'으로 인정받아

 

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똑같다면 굳이 새로운 작품이 생겨날 이유는 없다. 따라서 핵심은,

 

이미 익숙해져 버린 '전형'을 얼마나 '전형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성적 캐릭터, 곧 전형

 

적 캐릭터의 변주는 그 주요한 장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인물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거나, 혹

 

은 전형의 변주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은 별다른 좌절이나 갈등을 겪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감으로 일관하는 인물이다. 여자 주인공이라

 

고 할 수 있는 인물은 한국인 여성으로 미 국방성과 건당 천만 달러의 뒷거래를 하는 브로커의 지위까지 올라갔

 

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중년의 나이에 만난 -강북의 연립 주택에 어린 딸과 살고 있는- 주인공과

 

의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데, 살아온 삶의 이력과 잘 호응되지 않는 극적인 변화에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다. 모든 음모의 중심에 있는 인물도 행동의 동기와 일관성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개

 

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음모를 실행하는 팀의 팀원들이 '법률녀', '경제녀'등의 호칭을 달고 있었다

 

점이다. 각자의 전공 분야에 따른 호칭이라고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팀의 구성원끼리 '어이, 법률녀'하

 

고 부르는 게 사실적인 설득력을 갖는 장치라고 볼 수 있을까? 이해는 한다. 영화였다면 서로 다른 이미지의 배

 

우들을 배치하고 의상과 분장 등으로 일단은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소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고

 

민은 다른 소설가들도 모두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결과로서 입체적인 캐릭터의 구축에 성공한 사례들을

 

많이 보아 왔다. 이 부분은 분명히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가로서의 저자의 첫 행보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아쉬운 점들을 주루룩 늘어놓게 됐다. 하지만 다

 

시 한번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의 출판물로 이 책을 보자면 그 가치가 막대하다. 정치는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정보들을 알아내기가 어려운 것이지, 주어진 정보로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

 

치를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은 대개 덕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학습하고 체득하여 활용하며 살

 

고 있기 때문이다. 지만 경제는 눈 앞에서 뻔히 일어나는 일도 파악하기가 어렵다.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결과

 

는 둘째치고 의도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들 중 일부라도, 소설이라는 말

 

말랑한 당의정을 통해 직접 피해자인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경제학자들의 논

 

문 수천 편에 값하는 것일 테다. 저자도 이런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책 내에서 대통령 급은 실명

 

으로 언급되고 남덕우, 이헌재, 김진표 등의 인물들도 본의 이름과 유사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소설의 주요

 

시공간은 2014년이지만, 언급되는 2012년 이전의 사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며 소설 속에서 일어나고 있

 

는 일들도 현실 세계에 있었거나 있었을 법한 사건들반영되어 있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닌 셈이다.

 

 

 

 

총평.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학습소설'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냈다. 학습만화는 만화이긴 하지만 학

 

습에 보다 방점이 찍힌 만화이다. 하지만 거기에선 때로 '만화 삼국지'나 '먼나라 이웃나라'와 같이 어떤 만화보

 

다도 걸출한 위용을 자랑하는 명작들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우석훈이 위대한 학습소설가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다행히 원작이 모피아, 교육 모피아, 토건족의 3부작으로 기획되었던 것이라 하니 다음 소설을 만나게 되는 것

 

이 그리 먼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최대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음 번 작품의 매체는 웹툰이 어떨까? 전문 분야에 관한 지식이 꼭 전달되어야만 이야기를 진전시킬 수 있을 때, 나레이션이나 자막 등의 재미 없는 장치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영화, 드라마에 비해 만화는 일찌감치 만화칸 구석에 정보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었다. 우리는 이미 윤태호의 <내부자들>이나 <미생>에서 한 훌륭한 예증을 목도한 바 있다.

    2012.12.25 21: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3.01.04 17:12 [ ADDR : EDIT/ DEL : REPLY ]
  3. 네, 반가운 소식 또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현선 님도 빙판길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13.01.04 2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2.11.21 06:10

 

 

 

 

 

'우띨' 우석훈 씨의 2012년 10월 신작. 본래는 전 독후감인 <시민은 현명하다> 편의 끝부분에서 시민단체에 관

 

해 언급하며 이어서 이 독후감을 쓸 작정이었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권 별로 나눈다. 함께 엮어 생각

 

하면 더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으니 이 책을 읽을 분은 <시민은 현명하다>와 같이 읽으시면 좋겠다.

 

 

 

 

 

'정치'의 참여자를 그 참여도에 따라 선 상에 배열해 보면, 맨 아래에는 정치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투표도 하

 

지 않는 유권자가 있을 것이고, 맨 위의 정점에는 공당의 당직자와 국회의원들이 포진해 있을 것이다. 87년 체제

 

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 중 다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이에 누가 있는지를 고민해 보지 않았다. 마음에 맞는 대

 

통령 하나와 국회의원들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말했던 대로, 혹은 그들이 행해줄 것이라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무작정 무책임하거나 순진한 것이라고 공박할 수는 없을 것이

 

다. 그렇게 되라고 대의 민주주의가 생겨난 것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정치의 양 꼭지점 사이에 꽤나 많은 주체들이 있었다. 정치는 주무부서의 과장급 결재에서도 이

 

루어지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연초 보고서에서도 이루어지고, 외국계 금융자본의 클릭에서도 이루어졌다. 여의

 

의 상층부가 밀약하거나 방조하거나 외면하는 사이, 이들은 다수의 삶에 굵직굵직한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꼭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가 미처 주목하지 못하거나 혹은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에,

 

'사회의 공익' 등과 같은, 말하자면 '당장 돈이 안 되는' 목적을 가지고 뛰어든 주체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들이

 

'운동'을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을 포함한 '정치' 주체들을 선 위에 배열해 준다. 저자 스스로가 시민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았

 

기 때문에 그 내용은 주로 범진보 계열의 시민운동의 이력과 현황, 한계와 미래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지만 보수

 

시민단체와 행정부의 주무 부서, 모피아, 삼성 등에 관한 언급도 두루 미쳐 있다. 결국 저자의 메시지는, '모르면

 

진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의 구호인 '정치는 쫄지마, 경제는

 

속지마'와도 일통한다. 맞기 싫으면, 어느 쪽에서 때리는지를 알아야 피하거나 반격할 수 있다. 추우면 어디가

 

아랫목인지를 찾아야 가서 누울 수 있다. 총선에서 이겼다고, 대선에서 이겼다고 속편하게 배 두드리며 콧노래

 

나 흥얼거리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책은 2부로 나뉜다. 1부인 '시민의 정부'는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은 것으로, 앞서 말하였던 '주체들'

 

에 관한 이야기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시민운동의 현재'에서는 여러 가지의 도구로 시민운동을 설명한다. 시민운동의 당위성, 시민운동과 민중운

 

동의 차이, 시민운동 내부의 분위기, 시민운동의 지지기반 등에 관한 내용이다. '시민운동'이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귀중한 가이드이다.

 

 

2장 '시민의 정부란 무엇인가'는 연재물을 묶은 탓인지 유기적인 주제의식을 찾기는 어렵다. 느슨한 공약수를

 

찾자면 시민사회와 '정치'가 유기적인 연관을 맺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이 가운

 

데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시민적 가치를 담는 방법'이라는 챕터에서 제기된 '캐비닛 연정'으로, 집권을 위해

 

연정을 하되 특정 부처는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 계열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이다. 우석

 

훈은 여기에서 강기갑 전 의원이 농업을 맡고 진보신당의 노회찬 의원이 법무를 맡는 것은 어떨까, 하는 예시를

 

들고는 유연성과 교섭력의 부재 탓으로 그런 구상이 현실화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개인적으로도

 

동의하는 주장이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뻥이 심해지는 공약만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내각 구성안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보통신부 장관에 안철수, 방통위 위원

 

장에 박경신, 감사원장에 박영선, 해양수산부 장관에 김두관, 같은 식으로. 알맹이 없는 정책 공약보다 후보의

 

의지도 더 잘 보여줄 수 있고, 민주당 외의 연정 세력들도 '비판적 지지'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억울한 감정을 다

 

소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3장 '시민의 정부, 어떻게 만들까?'에서는 현재 행정부 주무부처들의 실상을 고발한다.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등을 비롯해 총 8개 부서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평가가 이어진다.

 

 

4장 '서울시장 선거와 2012년 총선 전후'에서는 시민단체의 성공적인 정계 진입 사례였던 박원순 시장의 선거

 

과정을 복기하고 박 시장이 경계해야 할 점들을 주문하고 있다.

 

 

5장 '변화하는 시민운동'에서는 시민운동의 현황 가운데에서도 내외적 요인에 의해 전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이

 

는 양상들에 대해 언급한다. 예시로 거론된 것은 자금관리의 측면, 시민단체 내 노조활동의 측면, 여성 시민운동

 

의 진화 등이다.

 

 

6장 '시민운동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제목은 '시민운동의 장애물'이나 '시민운동이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바꾸

 

는 편이 더 좋겠다. 시민운동이 맞서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된 '주체'는 총 여섯이다. 오염된 공무원들, 삼

 

성 공화국, 모피아, 혁신 없는 우파 민주당, 상식 없는 행정, 그리고 토건 토호.

 

 

 

 

 

여기까지가 경향신문에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의 모음이다. 말하자면 1부 제목이자

 

책 제목의 반인 '시민의 정부'에서 '시민'은 '시민단체'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저자는 1부를 완성하고 난 뒤,

 

시민단체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혹은 시민단체와 함께 가는 과정에서 '시민'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

 

해서까지 써야 할 책무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집필된 것이 2부인 '시민의 경제'이다. '시민의 경제'의 '시민'

 

은 말 그대로 시민인 셈이다. 2부는 시민의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시민 경제의 내용과 방향성에 대해 언급한

 

다. 꼭지 별로 집필된 1부와 달리, 2부는 이어서 집필된 듯 내용이 유기적으로 얽힌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시민

 

이여 각성하라'정도이겠는데, 기실 이 알찬 내용들을 저런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범죄에 가깝다.

 

 

 

 

 

총평. 우리가 사는 사회상을 좀 더 현실에 가깝게 파악하게 하는 정보와 시각, 그리고 저자 특유의 편안한 설명.

 

알차게 꽉꽉 들어찬 이 내용의 전말을 드래그 몇 번 분량 내에 요약하는 것은 애당초 포기한 일이라, 기실 이번

 

독후감은 누구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다시 읽을 나 자신을 위해 대강의 뉘앙스를 정리해 둔 것

 

에 불과하다. 나는 이 책을 반납 전까지 한 차례 더 읽을 것이고, 가격 할인에 들어가면 바로 구입할 것이다. 독

 

서를 권하기엔 형편 없이 모자란 글을 써 놓고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면구스럽지만, 시간 되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나 보자. 후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Posted by 최대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독서일지2012.08.24 15:56

 

 

 

 

오랜만의 독서일기이다. 시간이 되는 한 독서는 늘 하고 있는 일이니 책을 읽지 않아 쓸 것이 없었다는 변명은

 

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왜 쓰지 못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카테고리의 독자를 명확히 타케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읽어보고 책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이에게 건네는 글이라면 명확한 목차 정리

 

와 체계적인 요약이면 된다. 이전부터 내 블로그를 읽어와서 나 개인에게 애정을 갖고 있는 이에게라면 내 기준

 

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재편집하여 에세이 형식으로 쓰면 된다. 어느 쪽이든 분명하게만 정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요약만 하는 글은 내가 쓰나 남이 쓰나 똑같지, 그렇다고 나한테 의미있

 

는 부분만 떼어내서 마음대로 써 버리면 책 내용은 전혀 안 나올수도 있는데, 하고 이런저런 불평들을 붙여왔던

 

것이다.

 

 

답해야 할 질문을 찾아내었을 뿐 답은 찾지 못한채로 이러구러 지내는 와중에 다시 독후감을 쓰게 만든 책, 'C급

 

경제학자'로 자처하는 우석훈 씨(이하 우석훈)의 <1인분 인생>이다.

 

 

 

 

 

같이 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팟캐스트 방송인 '나는 꼽사리다'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선대인 씨(이

 

하 선대인)의 책들이 철저하게 경제 현안에 주목하여 수치와 도표로 논리를 쌓고 구체적 정책 등의 대안을 제시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석훈의 책들은 일단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제 현상들에 착안한 뒤 그 근저의 사회문화

 

적 동인을 탐색하여, 부당한 권리를 누리는 이들에게는 일갈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

 

서 선대인의 책은 명쾌하고, 우석훈의 책은 따뜻하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우석훈은 어떤 문제에 눈길을 돌리나, 어떤 과정으로 그 원인을 찾는가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말하자면 우석훈의 인문학적 시선에 관한 일종의 에세이이다. 5-10페이지 가량에 걸쳐 하나의 주제

 

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고 있는데, 직업이 경제학자이니만큼 경제 문제들이 간간히 등장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소재 수준을 넘어가지 않고, 대부분은 그가 살면서 겪었던 경험에 관한 내용들이다.

 

 

나는 사실 에세이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접해 본 에세이집 가운데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성찰

 

하고 고백하거나 혹은 세상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신념, 메시지 등을 담고 있기보다는, 제3자가 보아도 편

 

집된 것이 분명한 편린적 추억들을 나열하여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상은, 대개 재미가 없다.

 

 

그런데 <1인분 인생>에는 - 내가 보기에 - 글 전편을 유기적으로 관통하는 테마가 두 가지 있었다. 자신에 관해

 

다룰 때 드러나는 '마흔넘이', 그리고 타인에 대해 다룰 때 드러나는 '사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

 

다.  

 

 

오래 전부터 마흔이 되면 은퇴하려 했다는 언술에서 보이듯, 우석훈 개인에게 마흔은 상징적인 나이였던 것 같

 

다. 이전의 삶에서 포기했던 정신적 가치들을 되찾고, 그 댓가로 물질적인 성공을 반납하였을 뿐인데 그의 삶에

 

서는 단지 수입이 줄어들은 것 외에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석훈은 이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차근

 

차근 적어두었다. 읽다보면, 아, 마흔에도 이렇게 고민하고 변화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한편으로,

 

이런 형하고 같이 일을 하면 무척 피곤하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말하자면, '인간 우석훈', 혹은 '우석훈이라는

 

이름의 한 40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자세해진다는 것이다. 우석훈을 공부하는 데에도, 인간을 공부하는 데에

 

도 모자람이 없을 교재이다. 이 부분은 마흔의 성장통을 겪고 있거나 혹은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았을 뿐 마흔

 

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타인과 사회에 보내는 우석훈의 시선을 살피다 보면, 그가 왜 매력적인 문필과 맥동하는 가슴을 가졌음에도 문

 

학이나 사학이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을 선택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이 대체로 개인의 재능이나 무능함, 성실과 나태함 등 보다는 그를 둘러싼 사회 환경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연장선 상에서 아마도 <88만원 세대>나 <문화로 먹고 살기>등이 태어났을 것이다.

 

알바해서 등록금 대 가며 대학교 다니느라 연애도 못했는데, 그렇게 겨우 졸업을 했더니만 이번엔 취업이 안 되

 

어 혼자 소주 먹는 한 청년아,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와 다른 이들에게 꿈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

 

었는데 유수의 학교를 졸업하고도 밥을 굶다가 죽어버린 한 시나리오 작가여,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

 

는 너희를 구조적으로 착취하도록 견고하게 설계된 '제도'이다. 그러니 울지 말고, 죽지 말아라.

 

여기에 우석훈의 연구의 '따뜻함'이 있다. 개별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여타의 저서들에 비해 에

 

세이 형태인 이 책에서는 이 '따뜻한 시선'을 좀 더 자주, 그리고 직접적인 형태로 접할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테마 모두 개인적으로 큰 감흥을 받아, 답도 없고 정리도 잘 안 되는 독후감이나마 오랜만에

 

끄적거리게 됐다.

 

첫 번째 테마인 '마흔넘이'에서는 글쓰는 이로서 자극을 받았다. '1981년생을 위한 책을 쓰고 싶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욕망이었다. 생의 어떤 때에는 위로가 주제이고 어떤 때에는 성찰이, 그리고 마지막 권 쯤에서는 회고

 

가 주제가 될, 장르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시리즈가 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 그 한 현실적 이상향을

 

발견하고 자극을 받았다.

 

두 번째 테마에서는 결혼 적령기의 한 30대 초반으로서 공감하였다. 90년부터 2010년까지 초혼 연령은 4-5세

 

정도가 올라갔는데, 우리가 형들에 비해 연애에 더 탐닉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예인이나 사회 저명 인사들이

 

늦게 결혼하니까 그 영향을 받은 것일까? 아니, 문제는 집값이다. 평범한 직장생활로는 둘째 치고, 양가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평범한 집안끼리 만났다면 서울에 전세 한 채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돈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결혼 직전까지 부모와 사는 '캥거루족', 잠시나마 나와 살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

 

가는 '연어족'등의 신조어는 왜곡된 사회 구조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엄청난 결

 

혼 준비 비용에 서로나 서로의 집안의 경제적 무능함을 탓하다가 헤어져 버린 커플, 늦어진 결혼만큼 늦어진 출

 

산에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니면 셋쯤 낳으려던 계획에서 둘이나 하나로 줄여버린 아이 엄마,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과 아침저녁 얼굴을 맞대다가 감정적인 싸움을 벌이고 짜증을 내거나 후회를 하고 있는 청년. 이

 

들의 '개인적' 문제는 과연 개인적인가?

 

 

 

 

Posted by 최대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1인분 인생>이라고 제목을 달았더니 메인 페이지에 올라가질 않아서 <일인분 인생>이라고 고쳤다. 의도적 오기임을 밝힌다.

    2012.08.24 17: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제목은 출판사의 작품인 듯. '누군가의 나'로 살지 말고 '나의 나'로 살자는 의도인 것 같은데 내용과 엄청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일본어의 '이치닌마에'가 연상되어서 그리 참신하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표지그림도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잘 표현됐다고는... 차라리 내용 중의 키워드 중 하나인 '고양이'와 연계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그래도, 일개 독자의 의견보다는 매일같이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어떤 게 더 돈이 되는지 더 잘 아시긴 하겠지마는.

    2012.08.24 17: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