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9.05 김종철, <폭력의 자유> (시사IN북. 2013, 7.) (2)
  2. 2013.07.01 c일보 (1)
  3. 2012.05.11 마틴 린드스트롬,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2)
독서일지2013.09.05 08:06

 

 

 

 

 

 

1.

 

서른이 넘은 뒤로는 인천의 본가에 갔다가 하루 자고 오는 일이 더욱 줄었다. 계획에 없이 갑자기 자게 되는 일

 

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리를 펴게 되는 것은 명절날의 전날이라든지, 혹은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약속이나

 

행정적인 업무가 심야나 오전에 있을 경우 등으로 한정되었다.

 

 

 

볼 일이 있기 전까지는 꼼짝 않고 자리라 생각하지만, 잠귀가 밝은 나는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밖이 아직

 

어슴푸레할 무렵, 잊고 있던, 그러나 십수 년 간 들었던 터라 삽시간에 귀에 달라붙는, 현관문 여닫는 소리에 잠

 

을 깬다. 때는 아침 여섯 시. 아버지가 <조선일보> 가지러 나가는 소리이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신문만이 있는데 <조선일보>를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심심해지면 보는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인 줄로만 아는 유년기를 보냈다든지, <한겨레일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것이

 

스무 살 넘어서의 일이라든지 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기준으로 본다면야 무식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

 

이지마는, 나 스스로는 눈 딱 감고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거침 없이 말할 때마다 오래된 선배들의 얼굴 한 귀퉁이가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

 

채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동아는...'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이십대 중반의 일, 그 말의 뜻

 

을 알게 된 것은 서른 근처의 일이었다. 바로 그 간극을 가르는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라는 이름, 약칭 '동아

 

위'를 오랫동안 지켜온 초기 멤버이자 현재는 해당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철 씨의 신작, <폭력의

 

유>이다.

 

 

 

 

 

2.

 

이 책의 부제는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이다. 제목의 맥락대로, 이 책은, 시기로는

 

일제강점기부터 MB정부까지를 다루고, 주제로는 주로 신문과 방송을 위주로 한 언론의 역사를 엮었으며, 독자

 

의 대상으로는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요하는 전문가들보다는 통사적 차원에서 개괄과 일람을 원

 

하는 '젊은이'들을 상정하고 있다. 내용과 기획의도가 잘 반영된, 좋은 부제라고 생각한다.

 

 

 

650여 쪽에 달하는 책은 '부록'을 포함해 총 10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다. 본문 격인 1 - 9부을 나누는 기준은 정

 

에 따른 것이다. 집권 자체가 길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관한 3부나 가장 최근의 것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관한 9부가 상대적으로 긴 10개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나머지 부는 대체로 30쪽 정도에 걸쳐 3-5

 

개 정도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의 소챕터들 또한 그 안에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첫 번째 소챕터를 통해 해당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 양상, 혹은 해당 정권의 언론관 등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준 뒤 다음 소챕터들에서 개별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모범적이다.

 

 

 

내용은 부제에서 적시한 그대로 한국의 현대언론사이다. 손꼽히는 언론사들의 기원과 성쇠, 우리 사회에서 언론

 

이 보여주었던 명암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해직기자'임을 굳이 밝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논조

 

의 방점은 사주보다는 기자에, 보수보다는 진보에, '산업화'보다는 '민주화'에 놓여져 있다. 인과관계를 잘 얽어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실들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따금 섞여들어가 있는 저자 본인의 경험도 훌륭한 양념

 

역할을 한다. 신익희의 사망 날 신문을 읽고 침통해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의아해 했다든지, 백골단에게 맞아가며

 

쫓겨나고 동아투위를 건설했다든지, 감옥에서 동지들과 언젠가 만들 <한겨레일보>를 구상했다든지 하는 경험을

 

모두 직접 말해줄 수 있는 언론인이 이제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경외감을 가졌던 부은, 당시 인물들의 발언을 따옴표를 붙여 재구성했다든지 하

 

는 식으로 약간의 드라마타이즈는 있지만, 본인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 주었을 사건들을 언급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대체로 담담하다는 것이었다. 회상과 슬픔에 사무쳐 왈칵, 하고 감정을 쏟아내었더라면, 그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마는, 그러나 이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젊은이'들은 갑작스런 격차에 당

 

황하거나 혹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본인이나 동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는 집필 의도

 

를 잘 살린, 프로페셔널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은 담백한 문체이다. 수십 년 간 기자로 단련해 온 저자이니 이것

 

은 예상 외의 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600쪽이 넘도록 이렇게 강건하고 담백한 문장을 읽고 나니

 

마치 정갈한 집밥을 담뿍 먹고 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꼭 적어두고 싶다.

 

 

 

 

 

3.

 

그 귀한 집밥을 먹고도 간사한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앙탈

 

부리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달고 이야기해 보자면.

 

 

 

첫째는, 근현대 정치사를 잘 모르는 독자라면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두꺼운 분량 내에서 해당 시

 

기의 정치적 상황 또한 설명해 줄 수 있만큼 설명해 주었고, 아울러 이 책의 방점은 언론사에 찍혀 있는 만큼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언급되는 역사적 맥락과 사건들을 기왕에 알고 있지 못하다면, 인과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근현대사는 쥐꼬리만큼 포함되어 있고 그나

 

마도 선택 과목제와 집중 이수제로 국사 과목을 이수한 '젊은이'에게 건네는 책이 아닌가.

 

 

 

둘째. 아무래도 분량 상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선택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거론되는 사건들이 역사적인 중량감이 있었던 것들인만큼 남겨진 사진들도 무

 

척 드라마틱한 것이었을텐데. 기자 출신이며 현재도 언론인이라는 저자의 특성 상 밝혀지지 못했던 사진이라든

 

지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사진 등을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호기심 없이 600쪽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일 것이다.

 

 

 

셋째. '언론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음에도 방송사와 신문사, 그 중에서도 특히 '5대 신문'이라고 하는 전국 단위

 

활자 일간지에 거의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명박 정부 시대를 다루는 9부에서 <리셋

 

KBS>나 <뉴스타파> 등이 단편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YTN, MBC, KBS의 파업과 관련된 연장선 상

 

에서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올드 미디어 내에서도 지방지, 주간지, 월간지 등 다른 카테고리의 언론에 대해 다

 

루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인터넷 신문, 팟캐스트, 1인 블로그 등의 뉴 미디어에 관

 

한 언급이 거의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위에 적은 세가지는 개인적인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이 책이 꼭 갖고자 하는 본질적 미덕

 

만을 갖추는데도 600쪽 이상의 분량이 들어갔다. 그 이상의 시도는 분명히 상업적인 무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지금부터 적는 두 가지의 불만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비교적 사소한 불만인 첫번째는 '부록'의 성격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책은 9부의 본문과 '부록'의 합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록에서는 머독,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줄리언 어산지가 소개된다. 앞의 두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의 만행과 그 악영향을 다루고 있으며 어산지에 관해서는 그가 설립한 위키리크스의 성공 이

 

력과 의의를 기록하고 있다. 언론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실 사례를 제시했다고 하면

 

이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해직 기자의 입장에서 썼다고는 하나 되도록 공정한 통사를 구성

 

하려고 했던 본문의 의도와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물론 본문 중에서도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구분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선언되지 않으며,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 뒤 독자에게 선택하도록 하거나, 혹은 선택

 

할지 말지조차도 독자에게 넘기고 있다. 독자는 그 안에서 '좋은 언론'의 부침과 명암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한편 부록에서 선택된 사례들은 선연한 의도를 띈다. '공공의 적 머독과 베를루스코니',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라는 소챕터 제목만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질문들이 얼

 

마든지 덧붙을 수 있다.

 

'머독이나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이 권력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인데, 권력이 언론을 억압하였던 대부분의 본문 내

 

용과는 무슨 상관일까?', '사주 한 명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일까?', '폭스 뉴스가 나쁜 언론인 것처럼 종편

 

언론도 나쁘다는 것일까?', '위키리크스가 가진 절차적 부당함도 있는데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등

 

등.

 

만약 '나가는 말' 정도로 해서 세 개의 사례를 간단히 언급한 뒤,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매끄럽게 이어주는 짧은

 

글을 썼더라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조차도 여운의 형태로 잘 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록은 약

 

55쪽으로, 본문 중의 웬만한 부보다도 길다. 무시할 수 없는 중량을 갖고 있는데 그 방향성이 본문과 달라, 불

 

편한 채로 독서를 마무리하게 된다. 

 

 

 

두번째는, 전체의 구성이 '권력 - 언론 간의 투쟁'의 틀로 짜여지다 보니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본 - 언론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왜 의료민영화에

 

소리를 높였나, 와 같은 질문은 정치상황의 정보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자본과 언론 간의 혼맥, 유착 관계와

 

같은 전통적 이슈 뿐 아니라 근래에 불거지고 있는 통신사 설립 운동, 네이버로 상징되는 포털과의 불화 등도 자

 

본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언론사'를 재구할 때에는 빠질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코드를

 

씨실로 삼는 후속작이 나온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개론서가 될 것이다.

 

 

 

 

 

4.

 

아쉬움과 불만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많았지만 그만한 애정의 반증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바랄 만한

 

책이니까 바람이 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쓰는 것인데다 제공받은 책으로 정해진 기간까지 써야 하는 독후감

 

라 부담을 갖고 시작한 독서였는데, 글이고 뭐고 나중 일은 난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500쪽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끝나간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흥미로운 주제에 탄탄한 구성, 담백한 문

 

체를 갖춘 삼박자 모범생. 지금 당장 부담스럽더라도 일단 사 놓고 현대사 공부와 병행해 가며 읽으면 언젠가는

 

책값의 몇 배를 되돌려 줄 우량주. 언론이나 사회, 역사를 읽고자 하는 이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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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mplepeople

    이제 사회에 나가는 젊은이로써, 어쩌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한국 언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을 읽으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듯한 느낌입니다. 정말 좋은글 읽고 갑니다.

    2013.11.22 17:01 [ ADDR : EDIT/ DEL : REPLY ]
    • 한동안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되시겠네요. 일터에서 좋은 사람들 만나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2013.11.26 22:18 신고 [ ADDR : EDIT/ DEL ]

일기장/20132013.07.01 22:49

 

 

 

 

 

 

 

가방을 둘러메고 방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데,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하고 묻자 잠

 

시만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을 빼꼼 열어보니, 반팔 와이셔츠에 잘 다린 정장 바지를 입은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대뜸 내게 사진의 것처럼 세로로 트인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서는 세 장의 지폐가 부채꼴을 이루며 몸

 

을 반쯤 드러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봉투를 쳐다보다가 다시 그의 눈을 쳐다보자,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OO일보예요. 보시라는 게 아니고, 잘 봐달라고. 받아 두세요.

 

 

 

언론을 통해 수십 수백 차례나 접해왔던 사례인데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머리와 몸은 허둥거렸다. 눈길을 조

 

금 내려 그의 가슴께를 보던 나는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니, 아닙니다. 됐습니다.

 

 

 

닫은 문 저쪽에서, 옆 방의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건네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방을 메고 방 한가

 

운데에 꽤 긴 시간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시원하게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왜 블로그에 올리고 제보도 하게 사진 한 장 찍자고 말하지 못했나. 일기

 

에서 술자리에서 그 신문 씹어대던 헌걸찬 기세는 어디로 갔나. 눈 앞에서 실제 돈을 흔들어대니 홀린 것인가.

 

아니면 남자의 행색이 너무도 일상적이고 다소간 처량해 놀란 것인가.

 

 

 

나가보니 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점차 정신이 돌아온 나는, 에이 젠장, 그 돈 받

 

아서 뉴스타파나 국민TV에 후원해 주었더라면 솔로몬의 한 수였을 것을, 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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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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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남자는 그 신문을 한 부도 들고 있지 않았었다. 말하자면 그냥 돈만 뿌리러 온 셈이다. 그간 이런 일이 한 번도 없다가 왜 갑자기 지금 이 시점에 일어났지, 하고 생각하자 내 안의 시사 음모론자가 또 한껏 활약을 했다.

    2013.07.01 22: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독서일지2012.05.11 01:55

 

 

 

 

 

 

추천받아 읽었다. 표지날개의 안내에 따르면, 저자인 마틴 린드스트롬은 '존경받는 브랜딩의 권위자이자 브랜드

 

미래학자'로, '일 년에 300일 정도를 전 세계로 출장을 다니면서 수많은 CEO와 유명인, 심지어 왕실을 위해 자

 

신의 지식과 혁신적인 방법론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2009년 유례 없는 경

 

기 침체의 한가운데서', '지난 20년 동안 마케팅과 브랜딩 전쟁의 최전선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속임수와 음모를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별로, 예쁘지는 않다. 20년이 넘게 '브랜드'로 돈 잘 벌어먹고 이제와 폭로를 해서 잘 살아보시겠다? 게다가 저

 

자의 다른 책 중 하나는 WSJ에 의해 '최고의 마케팅 도서 10'에 선정되었으며, 본인은 2009년 '신경과학과 브

 

랜딩 분야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고

 

하니, 브랜딩에 관한 속임수와 음모를 폭로하겠다는 고운 말일랑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브랜딩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지키면서 업계의 음모를 폭로하겠다는 이 모순적 기획은, 책 속에서는 놀

 

랍게도 잘 구현되어 있다. 타사의 브랜딩은 진실을 은폐하여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하는 '음모'로, 본인의 브랜딩

 

은 전설적인 성공의 결과를 가져온 창의적 시도로. 읽어본 뒤의 내 생각으로는, 이 형은 아마 직접 만나 물어보

 

면 '뻔뻔해져야지'라는 자의식조차 없을 것만 같다. 내 건 당연히 브랜딩. 네 건 당연히 허위광고 혹은 사기.

 

 

 

이렇게 기획이 뻔한 책을 읽을 때엔 독서의 목적이 확실해져서 오히려 즐거운 면이 있다. '음모'로 까발려진 재

 

미있는 정보만 잘 섭취해서 정리해 두고 책은 다시 안 보면 된다. 그래서, 오늘의 독후감은 읽으며 흥미로웠던

 

정보들만 이 뒤로 주루룩 정리하고 끝. 음모론 도서들을 선호하거나, 혹은 쇼핑에 대한 가벼운 즐길 책이 필요

 

한 분들께 열없이 권장.  

 

 

 

- 아시아의 한 거대 쇼핑몰에서 산모를 대상으로 하여 어떤 테스트를 행하였다. 의류 매장에는 존슨&존슨즈 베이비파우더를 뿌리고, 식품 및 음료수 매장에는 체리 향기를 뿌리고, 산모들이 태어날 적에 유행했던 편안한 노래들을 틀어놓았다. 쇼핑몰 경영진은 이러한 시도가 산모와 관련된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도 함께 나타났다. 이 감각적인 실험을 한 지 일 년 정도가 지나, 흥미로운 현상을 보고하는 편지들이 엄마들로부터 쇄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그 쇼핑몰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아이들이 차분해졌다고 편지에 썼다.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던 아이들이 그 쇼핑몰에 들어오면 신기하게 조용해졌다.

 

 

- 손 세정제 시장 규모는 미국에서만 4억 2천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은 항균 세정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신종 인플루엔자와 사스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바이러스들은 공기 중 수분 입자를 타고 전파된다. 즉 감염된 사람들의 재채기나 기침에 의해, 또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오염된 물체를 접촉한 손으로 눈이나 코를 문지를 때 전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전세계적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세계 최대 세정제 생산 기업인 Purell의 매출은 50% 성장했고 Clorox 세척제는 2009년 이후 23%의 성장을 일구어냈다.

 

 

- 어떤 상품들은 소비자의 죄책감을 파고 들기도 한다. 오늘날 구운 스낵 제품들의 포장지는 건강을 염려하는 여성들의 '두려워하는 자아'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치토스 포장지가 미끄럽고 번들번들한 재질인 것에 반해, 구운 스낵의 포장지는 대부분 무광 재질이다. 번들거리는 포장의 무의식적 차원에서 기름지고 느끼한 피부를 연상시킨다.

 

 

- 매일 아침 신문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72%의 사람들이 맨 위에 놓인 신문을 들고 그 아래에 있는 신문을 뽑는다. 맨 위의 신문이 사람들의 손을 가장 많이 타서 제일 더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72%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뽑은 신문을 잠깐 훑어보고는 다시 제자리에 놓는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은 계속해서 똑같이 손때 묻은 신문을 돌려보고 있는 셈이다.

 

 

- 우리는 마멀레이드를 살 때 신선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마멀레이드는 신선 식품이 아니다. 만들자마자 팔아야 하는 그런 식품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마케터들은 그런 사실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에, 병뚜껑에 흰 색 띠를 부착함으로써 신선함이라고 하는 '환상'을 창조하고자 했다. 그 띠가 온전하게 붙어 있다는 말은 아무도 뚜껑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텔 역시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다. 호텔 직원들은 욕실 변기 뚜껑에 종이 띠를 감아두거나, 미나 바 위의 물 컵에 종이 뚜껑을 덮어놓는다. 보잘것없는 종이 한 장으로 아무도 그 변기와 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아이디어는 참으로 놀랍다. 이 띠를, 마케터들은 '신선 띠fresh strip'이라고 부른다.

 

 

- 마멀레이드 업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집에 와서 병을 딸 때 '뻥'하는 소리가 나도록 설계를 하였다. 이 소리는 지금 내가 산 제품이 신선하고,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물론 '뻥'소리가 실은 실험실에서 개발되어 특허를 받은 음향이라는 사실은 절대 알리지 않고 있다.

 

 

- 입술이 건조할 때 바르는 립밤의 박하향은, 멘솔 담배의 멘솔처럼 습관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많은 기업들이 '민감성을 높이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향료와 방부제, 라놀린, 염료' 등 뿐 아니라 페놀이나 석탄산과 같이 입술을 더욱더 '건조하게' 만들 수 있는 성분들까지 추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립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스스로 수분을 보충하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입술이 더 빨리 건조해지기 때문에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립밤을 더 자주 발라야 한다. 1993년,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교수인 스티븐 프레이는 립밤의 페놀 성분이 말 그대로 입술을 마비시키고 나면, 티눈, 굳은살, 사마귀 같은 죽은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는 성분인 살리실산이 살아 있는 조직인 입술을 괴사시킨다고 설명하였다.

 

 

- 오랫동안 마케팅 세상에서 일하면서 나(저자)는 한 가지 진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세상 그 어디도 아시아만큼 브랜드워시 작업이 잘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루이뷔통은 기가 막힐 정도로 아시아 집단 문화의 허를 찔렀다. 그들은 일본 여성들 78%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파리에서의 결혼'이라는 꿈을 자극했다. 그들은 다른 지역보다 일본에서 유독 매장 디자인을 프랑스적인 느낌으로 설계했고, 프랑스 명찰이 새겨진 여행 가방들을 진열하였다. 루이뷔통의 우수 고객은 매장 내에서 프랑스산 모에샹동 샴페인까지 맛볼 수 있다. 루이뷔통 전체 시장에서 프랑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루이뷔통 홈페이지에서 어떤 언어를 선택하더라도 프랑스어로 전환하는 옵션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루이뷔통은 최근 제품의 상당 부분을 인도에서 생산하는데, '프랑스'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일본 시장으로 넘어오는 제품들만은 프랑스 제조로 채우고 있다.

 

 

- 최근 미국의 대형 마트인 Trader Joe에서 고급 초콜릿인 Ghirardelli를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기존의 화려한 포장지와 번쩍이는 상자는 없고, 대신 예스러운 손 글씨가 적힌 커다란 갈색 종이 가방만 보였다. 가방 안을 들여다보니 크기가 제각각으로 잘린 초콜릿 '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마치 부부가 경영하는 가게에서 손으로 자른 듯했다. 그 모양새에서 뭔가 진정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라델리 두 봉지를 사가지고 와서 비교해보았을 때 나는 각각의 덩어리들이 똑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러진 것처럼 보이는 덩어리들은 손으로 자른 게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대량 생산된 초콜릿이었다.

 

 

- 스파키스라는 식품 체인은 200개에 이르는 매장들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에 따라, 소비자들이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쇼핑을 할 때 2달러를 더 소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왼쪽으로 돌면서 쇼핑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오른손잡이에게 물건을 집기가 더 편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른쪽에 정문을 만들어둔 것은 자연스럽게 반시계 방향으로 쇼핑 동선을 유도하려는 미묘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생각해 보니, 서울 연희동의 '사러가'를 포함해 내가 자주 가는 서너 군데의 SSM은 모두 입구가 오른쪽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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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H

    책 되게 많이 읽으시네요. 혹시 블로그에 올리시는 책 모두 구입하신 책입니까?

    2012.05.14 23:54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는 대학원생이라서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어요. 넉넉치 않은 형편이라 한 차례씩 접해본 뒤 두고 읽을 만한 책들을 구입합니다.

    2012.05.15 00:5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