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른이 넘은 뒤로는 인천의 본가에 갔다가 하루 자고 오는 일이 더욱 줄었다. 계획에 없이 갑자기 자게 되는 일
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리를 펴게 되는 것은 명절날의 전날이라든지, 혹은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약속이나
행정적인 업무가 심야나 오전에 있을 경우 등으로 한정되었다.
볼 일이 있기 전까지는 꼼짝 않고 자리라 생각하지만, 잠귀가 밝은 나는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밖이 아직
어슴푸레할 무렵, 잊고 있던, 그러나 십수 년 간 들었던 터라 삽시간에 귀에 달라붙는, 현관문 여닫는 소리에 잠
을 깬다. 때는 아침 여섯 시. 아버지가 <조선일보> 가지러 나가는 소리이다.
그러니, 내가 세상에는 세 종류의 신문만이 있는데 <조선일보>를 보던 사람들이 조금씩 심심해지면 보는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인 줄로만 아는 유년기를 보냈다든지, <한겨레일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 것이
스무 살 넘어서의 일이라든지 하는 것은, 사회 일반의 기준으로 본다면야 무식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일
이지마는, 나 스스로는 눈 딱 감고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중동'이라는 단어를 거침 없이 말할 때마다 오래된 선배들의 얼굴 한 귀퉁이가 어두워지는 것을 알아
채지 못했던 것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그래도 동아는...'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이십대 중반의 일, 그 말의 뜻
을 알게 된 것은 서른 근처의 일이었다. 바로 그 간극을 가르는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라는 이름, 약칭 '동아
투위'를 오랫동안 지켜온 초기 멤버이자 현재는 해당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철 씨의 신작, <폭력의
자유>이다.
2.
이 책의 부제는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이다. 제목의 맥락대로, 이 책은, 시기로는
일제강점기부터 MB정부까지를 다루고, 주제로는 주로 신문과 방송을 위주로 한 언론의 역사를 엮었으며, 독자
의 대상으로는 각각의 사건들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요하는 전문가들보다는 통사적 차원에서 개괄과 일람을 원
하는 '젊은이'들을 상정하고 있다. 내용과 기획의도가 잘 반영된, 좋은 부제라고 생각한다.
650여 쪽에 달하는 책은 '부록'을 포함해 총 10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다. 본문 격인 1 - 9부을 나누는 기준은 정
권에 따른 것이다. 집권 자체가 길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관한 3부나 가장 최근의 것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 관한 9부가 상대적으로 긴 10개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나머지 부는 대체로 30쪽 정도에 걸쳐 3-5
개 정도의 소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의 소챕터들 또한 그 안에서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첫 번째 소챕터를 통해 해당 정권과 언론과의 관계 양상, 혹은 해당 정권의 언론관 등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준 뒤 다음 소챕터들에서 개별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모범적이다.
내용은 부제에서 적시한 그대로 한국의 현대언론사이다. 손꼽히는 언론사들의 기원과 성쇠, 우리 사회에서 언론
이 보여주었던 명암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해직기자'임을 굳이 밝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논조
의 방점은 사주보다는 기자에, 보수보다는 진보에, '산업화'보다는 '민주화'에 놓여져 있다. 인과관계를 잘 얽어
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사실들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따금 섞여들어가 있는 저자 본인의 경험도 훌륭한 양념
역할을 한다. 신익희의 사망 날 신문을 읽고 침통해 하는 아버지를 보고 의아해 했다든지, 백골단에게 맞아가며
쫓겨나고 동아투위를 건설했다든지, 감옥에서 동지들과 언젠가 만들 <한겨레일보>를 구상했다든지 하는 경험을
모두 직접 말해줄 수 있는 언론인이 이제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경외감을 가졌던 부분은, 당시 인물들의 발언을 따옴표를 붙여 재구성했다든지 하
는 식으로 약간의 드라마타이즈는 있지만, 본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가져다 주었을 사건들을 언급하면서도
그 목소리가 대체로 담담하다는 것이었다. 회상과 슬픔에 사무쳐 왈칵, 하고 감정을 쏟아내었더라면, 그에게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마는, 그러나 이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젊은이'들은 갑작스런 격차에 당
황하거나 혹은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본인이나 동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는 집필 의도
를 잘 살린, 프로페셔널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은 담백한 문체이다. 수십 년 간 기자로 단련해 온 저자이니 이것
은 예상 외의 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600쪽이 넘도록 이렇게 강건하고 담백한 문장을 읽고 나니
마치 정갈한 집밥을 담뿍 먹고 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꼭 적어두고 싶다.
3.
그 귀한 집밥을 먹고도 간사한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앙탈
부리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달고 이야기해 보자면.
첫째는, 근현대 정치사를 잘 모르는 독자라면 접근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두꺼운 분량 내에서 해당 시
기의 정치적 상황 또한 설명해 줄 수 있는 만큼 설명해 주었고, 아울러 이 책의 방점은 언론사에 찍혀 있는 만큼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언급되는 역사적 맥락과 사건들을 기왕에 알고 있지 못하다면, 인과
관계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근현대사는 쥐꼬리만큼 포함되어 있고 그나
마도 선택 과목제와 집중 이수제로 국사 과목을 이수한 '젊은이'에게 건네는 책이 아닌가.
둘째. 아무래도 분량 상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진 선택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단 한
장도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쉽다. 거론되는 사건들이 역사적인 중량감이 있었던 것들인만큼 남겨진 사진들도 무
척 드라마틱한 것이었을텐데. 기자 출신이며 현재도 언론인이라는 저자의 특성 상 밝혀지지 못했던 사진이라든
지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사진 등을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호기심 없이 600쪽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은 무척 고된 일일 것이다.
셋째. '언론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음에도 방송사와 신문사, 그 중에서도 특히 '5대 신문'이라고 하는 전국 단위
활자 일간지에 거의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명박 정부 시대를 다루는 9부에서 <리셋
KBS>나 <뉴스타파> 등이 단편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YTN, MBC, KBS의 파업과 관련된 연장선 상
에서 설명되고 있을 뿐이다. 올드 미디어 내에서도 지방지, 주간지, 월간지 등 다른 카테고리의 언론에 대해 다
루어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인터넷 신문, 팟캐스트, 1인 블로그 등의 뉴 미디어에 관
한 언급이 거의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위에 적은 세가지는 개인적인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이 책이 꼭 갖고자 하는 본질적 미덕
만을 갖추는데도 600쪽 이상의 분량이 들어갔다. 그 이상의 시도는 분명히 상업적인 무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지금부터 적는 두 가지의 불만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비교적 사소한 불만인 첫번째는 '부록'의 성격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이 책은 9부의 본문과 '부록'의 합권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록에서는 머독, 베를루스코니, 그리고 줄리언 어산지가 소개된다. 앞의 두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이들의 만행과 그 악영향을 다루고 있으며 어산지에 관해서는 그가 설립한 위키리크스의 성공 이
력과 의의를 기록하고 있다. 언론의 역사를 정리하며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실 사례를 제시했다고 하면 굳
이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해직 기자의 입장에서 썼다고는 하나 되도록 공정한 통사를 구성
하려고 했던 본문의 의도와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부연하자면. 물론 본문 중에서도 '나쁜 언론'과 '좋은 언론'의 구분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판단은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선언되지 않으며, 충분한 근거를 제시한 뒤 독자에게 선택하도록 하거나, 혹은 선택
할지 말지조차도 독자에게 넘기고 있다. 독자는 그 안에서 '좋은 언론'의 부침과 명암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한편 부록에서 선택된 사례들은 선연한 의도를 띈다. '공공의 적 머독과 베를루스코니', '위키리크스가 일으킨
언론혁명'이라는 소챕터 제목만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질문들이 얼
마든지 덧붙을 수 있다.
'머독이나 베를루스코니는 언론이 권력에 영향을 미친 케이스인데, 권력이 언론을 억압하였던 대부분의 본문 내
용과는 무슨 상관일까?', '사주 한 명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일까?', '폭스 뉴스가 나쁜 언론인 것처럼 종편
언론도 나쁘다는 것일까?', '위키리크스가 가진 절차적 부당함도 있는데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일까?' 등
등.
만약 '나가는 말' 정도로 해서 세 개의 사례를 간단히 언급한 뒤,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매끄럽게 이어주는 짧은
글을 썼더라면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질문조차도 여운의 형태로 잘 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록은 약
55쪽으로, 본문 중의 웬만한 부보다도 길다. 무시할 수 없는 중량을 갖고 있는데 그 방향성이 본문과 달라, 불
편한 채로 독서를 마무리하게 된다.
두번째는, 전체의 구성이 '권력 - 언론 간의 투쟁'의 틀로 짜여지다 보니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자본 - 언론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는 왜 의료민영화에
소리를 높였나, 와 같은 질문은 정치적 상황의 정보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자본과 언론 간의 혼맥, 유착 관계와
같은 전통적 이슈 뿐 아니라 근래에 불거지고 있는 통신사 설립 운동, 네이버로 상징되는 포털과의 불화 등도 자
본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언론사'를 재구할 때에는 빠질 수 없는 문제이다. 이 코드를
씨실로 삼는 후속작이 나온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개론서가 될 것이다.
4.
아쉬움과 불만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고 많았지만 그만한 애정의 반증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바랄 만한
책이니까 바람이 들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쓰는 것인데다 제공받은 책으로 정해진 기간까지 써야 하는 독후감이
라 부담을 갖고 시작한 독서였는데, 글이고 뭐고 나중 일은 난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500쪽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끝나간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흥미로운 주제에 탄탄한 구성, 담백한 문
체를 갖춘 삼박자 모범생. 지금 당장 부담스럽더라도 일단 사 놓고 현대사 공부와 병행해 가며 읽으면 언젠가는
책값의 몇 배를 되돌려 줄 우량주. 언론이나 사회, 역사를 읽고자 하는 이에게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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