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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지연의 결혼식





일요일이었던 어제 서강대 성당에서 있었던 지연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지연이와는 미랑님, 지영양과 함께 최강 6학년 3반 동창이기도 하지만 어릴적 성당에서 천영성체를

같이 받은 교우이기도 하다. 엄마의 장난감을 사 주겠다는 말에 속아 한 달 동안이나 억지로 교리공부

를 해야 했던 나는 세례식 이후로 성당에 발길을 끊었지만, 아무튼 성당과 집 사이를 여러 명이 함께

오가며 떠들고 장난치고 하던 것은 즐거운 기억이다. 십육 년 전의 일이다.


비록 함께 올린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많은 닭띠들과 비교해 보면 승학초등

학교 2회 동창들은 대체로 유난히 동안인 편이다. 지연이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어릴 때의 얼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친구라, 식장의 입구에 서 있는 결혼사진을 보고 있는데 한편으로 재미있으

면서도 무척이나 낯설고 조금은 찡한 기분이 들었다. 신부대기실에서 그야말로 오월의 신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묘한 기분은 한층 더했다.


교회의 결혼식에는 몇 차례 참석한 경험이 있으나 성당에서의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식순을 알지 못

한 채 신부님이 시키는대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다 보니 다소 피곤해지긴 했지만 모든 순서마다 각각

소중한 의미가 부여되고 하객들이 경건하게 그에 함께 참여하는 분위기에는 마음이 움직이는 데가

있었다. 식의 마지막에 이르러 양가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가슴팍을 누르고 다소곳하

게 고개를 숙이는 지연의 옆에서 형님은 기세 좋게 절을 하였다. 근래 본 다른 사람의 행동 중에

가장 부러운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마침내 올 시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미랑의 그분 영석이 형이 송래까지 태워다 주

셨다. 송래에서 관교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타고 창문을 열자, 비 오기 전의 바람이 들이쳤다. 시

원하고 상쾌해서 한참을 쐬다가 옆 쪽을 쳐다보자 밖이 어두운 탓인지 반대쪽 창문에 양복을 입은 스

물 여덟의 최대호가 비쳤다. 나는 저녁을 먹으며 지영에게 했던 '지금 지연이 결혼식에 온 스물여덟의
우리를 비디오로 찍어서 1993년 6학년 3반 교실에다 틀어주면, 아무도 안 믿을거야 그치?'라는 말이

다시 생각나 조용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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