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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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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눈을 떴다. 눈꺼풀을 연지는 몇 주가 지났지만, 눈동자를 움직이며 말하는 사람을 쳐다

보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가족들은 합의하에 할머니를 지금 있는 일반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요양

원으로 모시기로 했다.


모시기 전날 마지막 저녁 면회에는 시간이 되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혼자 갔는데, 누군가가 죽고 있었

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요양원으로 옮기는 날에는 할머니를 싣고 가기 위해 구급차가 왔다. 할머니의 침대가 나간 뒤 간호사

들에게 인사를 하고 남은 기저귀와 물티슈 등을 주섬주섬 싸고 있는데, 거즈아줌마의 주위에 사람들

이 와 있었다.


중환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누워 있는 아주머니를 나는 거즈아줌마라고 불렀다. 양쪽 눈에

거즈를 붙이고 입에는 대부분 게거품을 물고 있는 모양새가 웬만한 모습에는 이력이 난 중환자실 가

족들도 눈을 돌릴만큼 섬뜩했다. 본인이 의식이 전혀 없거니와 가족도 한 번 본 적이 없어 왜 누워 있

는지,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거즈아줌마의 가족을, 마지막 날에 보게 된 것이다.


연휴라서 온 것일까. 연휴라서 올 수 있었던 것일까. 거즈아줌마보다 장비를 덜 달고 있었던 할머니

도 한 달 입원비는 백수십만 원이 나왔다. 아들로 보이는, 고작해야 일고여덟 살로 보이는 꼬마는 무

서워서인지 슬퍼서인지 거즈아줌마의 근처로 가지 못 하고 눈물만 닦고 있었다. 남편같은 사내가

서툴게 물수건을 빨아다 얼굴을 박박 문질렀는데, 그 와중에 거즈 아줌마의 눈에서 거즈가 떨어졌다.

거즈 아줌마는 거즈 아래 눈을 뜨고 있었다. 빛이 없는 눈이었다. 그런 눈을 나는 태어나 세 번 봤다.

그 중 하나는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고 하나는 죽은 사람의 눈이었다.


구급차의 뒤에 실려 덜커덩덜커덩 요양원으로 향하다가 차가 터널 안으로 들어갔을 때 캄캄해진 창

문에 내 눈이 비쳤다. 만개滿開의 만개에 이른 꽃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생명의 탐욕스러움에 몸서

리쳐질 때가 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모양새인데도 나는 내 눈이 무서워져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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