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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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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는 모르지만, 나는 나름대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다. 남들의 기준이 어떻든간에 내 스스로 만족한다 느끼면 묵묵히 참을 줄 알고, 또한 남들의 기준

이 어떻든간에 불합리하다 생각하는 상황은 때려 부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내 인생에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일은 되도록 남에게 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며, 혹여 남들이 그 자신에게 일어나면

크게 화를 낼 것이 뻔한 일을 뻔뻔한 얼굴로 내게 저질러도 적어도 세번은 참으려 노력해본다.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 내게 따로이 벌을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에 상응할 만한 벌을

줘 왔다 생각한다.

이렇게 살고 있자니 자기 것은 포기할 줄 모르고 남의 것은 포기하기를 요구하는 사람을 가장 미워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태생이 미숙한 탓에 감히 그런 사람을 경멸한다 크게 말하지는 못

하고 다만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이십대이다.


근래에 내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공정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몇가지의 일들이 연이어 있었다.

평소에도 그리 살려 노력하지만 하나하나만으로도 감정과 분리시켜 생각하기가 힘든 일들이 갑자

기 일어나는 바람에 심중이 소란스러웠던 것이다. 건강에 관한 일도 있었고, 신변에 관련된 일도 있

었지만 대부분이 아직 진행중이라 자세히 적기는 어렵다. 덥고 편하면 잠이 오니까 바닥에 대나무자

리를 펼쳐 놓고 그 위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것이 요즈음의 거의

유일한 일과이다. 여러가지 일들과 관련하여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떠올려 그 하나하나를

공정하게 다시 보려 애쓰고 있자니 그 각각의 사실마다 그때그때의 분함과 슬픔, 배신감등이 그대로

살아나 나는 가만히 누워 있기가 몹시 힘들다.


화가 나는 마음이나 어이없는 마음, 혹은 슬픈 마음을 가라 앉히려 나는 일부러 즐거운 음악을 들어

보기도 하고 선선한 때를 골라 산책도 나가 보고, 때로 사람을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만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 가장 힘든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쉽게 평온해질 수 없다.


대학교에 갓 들어갔던 해에 점을 본 일이 있었다. 사주중에 사람을 싫어하는 수가 들어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그때인데, 사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러 나는 거기에 절절히 공감하게 되었다. 이후에

또 따로이 보았던 점에서, 세상에 큰일을 할 사람이라 사람이 싫다 하여 떠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름에 사람인人자를 셋이나 넣어 그 수를 눌러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거 잘됐다 싶었는

데, 요새같아선 그냥 싫어하게 내버려두지 뭣때문에 그렇게까지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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