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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2. 4대강 한강종주자전거길 - 인터미션

 

 

 

 

이제 가야 할 길은 아라자전거길의 종착점인 한강갑문에서 한강종주자전거길의 출발점인 여의도로 가는 일종의

 

인터미션. 지도로 검색해 보니 한강변 따라 가는 길이라 이번에도 난이도는 별로 높지 않을 것 같다.

 

 

 

 

 

 

 

한강갑문에 도착하자마자 난 15km 남았다고 알려주던 여의도. 한강갑문서 스탬프 찍고 잠깐 쉬었다가 출발해서

 

페달 몇 번 돌리고 나니 14km 남았다고 또 알려준다. 참말로 고맙구먼.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이 코스는 꼭 한강변만을 달리지는 않았다. 강서지구의 한강공원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

 

고, 일반도로 바로 옆을 달리기도 하고 하는 등 그때그때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긴장하며 판단을 하다 보니 어

 

느덧 눈에 익은 다리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장미꽃 사진 찍은지 40분 만에 도착한 선유도와 양화대교. 집에서 나선지 고작 다섯 시간쯤 됐는데 양화대교 보

 

니 눈물이 날 것 같다. 자전거 길 좁다고 욕설을 퍼부어서 미안, 양화대교.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갑

 

다.

 

 

 

 

 

 

 

양화대교부터는 강변의 모습이 뻔하고 뻔한 풍경이라 사진 한 장 안 찍고 슥슥 지나갔다. 검암역에서 서해갑문

 

을 향해 첫 페달을 뗀 때로부터 4시간째 달리고 있는 중이라 피곤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한강종주

 

자전거길의 첫 스탬프를 꾹 찍는다. 바로 전 스탬프인 서해갑문 스탬프가 흐릿하게 찍혔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로 항문에 힘 꼭 주고 있는대로 눌렀더니만 디자인이 뭉개지고 말았다.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숨쉬기가 불편할 것 같아 자전거용 마스크를 구입하지 않았던 것이 조금 후회됐다.

 

 

 

이 날의 목표는 사실 여기까지였다. 여의도에서는 지금 살고 있는 연희동이 직선 코스고 또 가깝다.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여의도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게다가 근래 출강하는 고등학교로의 출퇴근 길이 상당부분

 

한강종주자전거길과 겹친다. 여의도의 다음 거점들은 다음 주에 출근이나 퇴근하면서 들러 스탬프를 찍으면 일

 

석이조다. 게다가 네 시간이면 내 체력엔 과분한 운동이기도 했고 이제 그만 집으로 가서 밀린 책이라도 보며 평

 

한 토요일 밤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집으로 갈 차비를 차리고 있을 때쯤, 한 자전거가 내 옆으로 와서 끽, 하고 섰다. 딱 봐도 국토종주 중인

 

차림의 그 청년 라이더는 나보다 훨씬 벌개진 얼굴로 지친 숨을 내뱉으며 인증 센터로 들어가 스탬프를 찍었

 

다. 그리고는 허리를 쭉 펴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느 쪽에서 오셨어요' 라고 물었다. 차림

 

은 어설펐으나 인증 센터 바로 옆에 서 있어서 4대강 자전거 길을 달리는 동료로 보였던 모양이다. '서해갑문에

 

서 출발했어요'라고 답하자 청년은 '여기서 거기까진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다시 물었다. 이 때 시간은 이미 저

 

녁 일곱 시 반이 넘어 있었다. 내가 '서너 시간 걸릴텐데, 지금 가시게요?'라고 묻자 청년은 '부산에서 출발한지

 

삼 일 째인데, 오늘 밤에라도 끝내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서해갑문이나 한강갑문도 아니고, 내가 평소에 맥주

 

들고 오락가락 노닐던 여의도 한강변에서 진짜로 633km짜리를 달리고 있는 라이더를 만난 나는 크게 놀랐다.

 

 

무료 식수대의 위치나 길을 헤매기 좋은 곳 등을 서로 잠시 이야기한 뒤 청년은 떠났다. 나는 여의도의 바람을

 

쐬며 생각했다. 내가 하루종일 낑낑대고 온 걸, 해 다 져 가는 지금부터 한 방에 가려는 사람도 있는데. 매일 출

 

퇴근 길에 오가는 그까짓 거리쯤 지금 가면 어때. 네 시간 달리나 다섯 시간 달리나 어차피 내일 뻗을 것은 똑같

 

은데. 일곱 시 반 넘었으니 집에 가도 무한도전 본방사수도 틀린 노릇이고.

 

 

 

밑져야 본전이니 여기서부터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이나 해 볼까, 하고, 나는 여의도의 다음 거점인 뚝섬 인증센

 

터를 검색해 봤다.

 

 

 

 

 

 

17km. 1시간. 한강변 도로니 고저차도 없으렷다. 노선을 보니 어쩐지 웃는 입 모양 같아 느낌도 좋고.

 

 

같은 생각을 하던 나는 전기자전거의 배터리 칸을 보았다. 몇 시간을 달렸지만 배터리는 아직도 다섯 칸 중에 세

 

칸이 남아 있었다. 나는 갑작스레 '신에게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던 장군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가자. 이것은 가야만 하는 판이다. 나는 마포대교와 63빌딩을 지나 원효대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17km를 더 간

 

다는 것은 집에서 34km 더 멀어지는 것이라는 간단한 산수도 못 한 채로.